〈 117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1)
* * *
현준 씨의 무자비한 정보의 폭탄이 내 머릿속에 그대로 투하되어서 그런지, 잡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니 잔 실수가 많았다. 주문을 잘못 들어서 다시한 번 더 묻거나, 계산기를 잘못 눌러서 현금결제로 누르지를 않나…. 칵테일의 리큐르의 비율을 잘못 넣지 않나…. 다행히 서빙 전에 눈치를 채서 바로 버렸다. 마실 수도 없고. 아까워라….
어, 음 그러니까 현준 씨와 대화했던 정보를 재정리해서 간단하게 말하면,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그 모임에 참가시킬 겸 대화할 장소가 필요해서 나를 떠본 것이다 이거지…?
나 자신 스스로에게 전생자니 뭐니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거 막상 타인에게 빙의자 모임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까 실감이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말 다한 거다.
그보다 빙의자라…. 대부분 빙의자라는 의미인 건지…. 태어날 때는 기억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기억이 돌아오는 전생자가 없는 건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가게에 방문했을 때 물어보면 알겠지.
그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보냈을까? 남자의 경우에는 원하던 삶을 살았을까? 여성의 경우는 어떻고…. 상상만 해 봐야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근데 프림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고 하지만 엘프라서 청각이 인간보다 월등히 좋은데…. 이런 정보가 새어 나가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미처 거기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일까? 아마 전자라고 생각된다. 현준 씨가 원하는 것은 장소이기도 하니까 종업원인 프림까지 대화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미 아닐까? 어, 그러면 비켜달라 할 이유가 없는데…뭐지? 그렇게 고민이 깊어 지려던 그때 손님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여기 계산요.”
“아, 네!”
잡생각만 하다 보니 손님이 계산을 요청할 줄은 몰랐다. 물론 당황한 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계산을 했으니 다행이려나…?
오늘따라 장사가 안 되는지 손님이 뜸하게 오고 있었다. 고민이 있는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지만, 내 제정상 좋지 않다.
하아아….
괜히 사람 떠보려고 온 현준 씨가 밉상으로 보일 뿐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몇몇 전생자인지 빙의자인지 같이 오던지!
그렇게 나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
***
후반 영업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 손님이 나간 이후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제 곧 마감시간 전이다. 그 말은 곧 지혜 씨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으아아…. 큰일 났다.
안 그래도 정보의 폭탄이 기습적으로 머릿속에 투하돼서 혼란스러운데, 지혜 씨 까지라니…. 아니이…. 나쁜 건 아닌데…. 아닌 데에…!
테이블에 늘어져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던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프림이 얄밉게만 느껴진다.
너무 자각 없이 일을 저지르긴 했다만….
어떻게 말을 할지 정리를 다시 한번 하려던 그때.
딸랑~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긴장감이 더욱더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옆 머리를 타고 흐르는 땀 한 방울…. 그리고 가게 안에 들어온 사람은 좁은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성화 씨이이이이!!!!!! 저 왔어요!!”
지혜 씨가 가게에 들어왔는데, 퇴근한 모습 그대로 온 것인지 아니면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 그런 것인지,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입고 들어왔다.
흰 블라우스는 일부러 윗 단추를 푼 것인지 슬쩍 보이는 가슴골과, 정장 재킷이 몸에 딱 맞아서 그런지 잘록한 허리까지 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점은 H라인 스커트는 아닌 정장 바지지만, 슬림 핏이라 그런지 아주 어울렸다.
그렇게 커다란 멍멍이 같이 밝게 웃으면서 가게 안에 들어온 지혜 씨를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일단 빌어야겠지?
머릿속이 복잡한데…. 변명하려고 머리를 굴리니까 머릿속이 복잡한 것이 아닐까?
“아, 안녕하세요.”
“에이. 왜 그리 긴장해요! 오랜만에 본 연인끼리! 자! 텐션 높여봐…요?”
“앗, 그, 그러니까!”
내가 당황하면서 어떻게 말을 할지 머뭇거리던 그때 지혜 씨의 시선은 프림에게 향했다.
프림 특유의 감정 없는 표정과 대비되게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가…. 인상을 한번 찡그려 보고는 어떻게 억지웃음으로 바뀌면서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서, 성화 씨…. 이 엘프는 뭐…. 뭐죠?”
지혜 씨의 반응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이종족 노예가 합법화라고는 하지만 반대되는 성별의 지성체라면 여러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주로 성적인 의미의 안 좋은 상상일 것이지만, 놀랍게도 나와 프림은 그런 적이나 그런 분위기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지혜 씨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였다.
설명을 시작하지 않으면 가게 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았다. 프림 특유의 표정이 지혜 씨에게는 도발로 보이나보다.
“그, 그러니까요오…. 어떻게 된 거냐면….”
변명이니 뭐니…. 결국, 나중에 가서 들키고나면 더 머리가 아파질 것 같기에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기로 하고, 지혜 씨를 의자에 앉힌 다음 냉수를 주면서 설명을 시작하였다.
***
내 설명이 끝나고 난 뒤 지혜 씨의 반응은 정말로 미묘하였다.
화를 내자니 애매하고…. 안 내려니 그 또한 애매한 그 무언가의 감정으로 인해서 하고싶은 말을 못 꺼내며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표정이었다. 괜히 미안 해진다.
“그러니까…. 등록한지 며칠 안 된 엘프인데…. 등록한 이유가 불쌍해서 주웠다? 진짜요?”
냉수를 한잔 마신 뒤 질문을 해 오는데,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질문을 해오는지혜 씨에게 그저 미안 할 따름이다.
다행히 프림의 이야기하면서 프림의 표정 변화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적대적인 분위기는 어느 정도 해결된 느낌이다. 그저 맹한 엘프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 그렇죠! 아무리 봐도 불쌍해 보이잖아요. 뭔가 뭔가! 불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잡아가려 하니까…. 왠지 모르게 주워 온…. 거죠?”
“짧게 요약하면 정의감이 불타올라서 그랬다…?”
“네…. 아하하….”
막상 생각해 보면 프림 건은 이렇게까지 굽힐 이유가 없는데….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계속 저자세로 나가게 된다.
내 말에 팔짱을 끼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지혜 씨인데…. 복장이 복장인지라 꽤 선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본인이 편해서 혹은 무의식적으로 풀은 윗 단추인데 팔짱을 끼고 있으니 더욱더 부각되고 있었다.
보는 눈이 즐겁기는 한데…. 너무 보면 티날까 싶어,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돌렸는데, 그 모습을 본 지혜 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성화 씨.”
“네.”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고 하지만 위험할뻔한 거 아시죠? 아니 냥줍 같이 이종족을 주울 수는 있다 쳐도 그 당시의 상황 듣기만 해도 아찔하거든요?”
“그, 그런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걱정하던 부분과 지혜 씨가 화내는 부분이 달랐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지혜 씨는 엘프를 등록했다 정도는 수긍을 해주고 있지만, 그 당시 상황에 관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았 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내가 설명을 잘못했나 싶어서 반론을 이야기하였다.
“하,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은 그렇게까지 험악하지 않았는 걸요? 여차하면 능력을 써 보면 해결이 될 거고, 결국 결과가 좋았으니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괜찮은 것 아닐까요…?”
결과가 좋으니 내가 한 과정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 궤변을 말하자, 지혜 씨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옆에 서 있던 프림은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을 신호로 지혜 씨가 입을 열었다.
“그건 결과론이잖아요!? 도중에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뒷골목 양아치들이 뭔 짓을 할 줄 알고요!?”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데…. 지혜 씨가 너무 흥분한 것 같다.
나 또한 할 말이 없었기에 결과가 좋았으니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하면서 지혜 씨의 빈 물잔을 잡으려고 하였다.
“으음.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괜찮아요 이미 결과가 좋았으니까 끝난 일이잖….”
변명조차 되지 않는 억지를 부리며, 지혜 씨의 빈 잔을 잡으려 하였지만, 지혜 씨의 손이 나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강하게 쥐고 있어서 꼼짝 못 하는 상황이었다.
“뭐가! 결과가 좋았으니 끝난 일이예요! 뭐가!!”
“아니, 그….”
“그런 상황에서는 본인 몸부터 챙겨야지! 왜 엘프를 구한다고 먼저 나선 거예요! 차라리…차라리 저 한테 전화라도 해줬으면…. 근처의 군이나 경찰에게 먼저 말한 다음 빠르게 왔을 텐데…. 왜!!”
“그, 진짜 아무 일 없이 끝났….”
“무사히 끝난 게 다행인 거지! 아니었으면요? 어디 상처라도 입으셨으면요…?”
“어….”
프림을 보았을 때보다 더 험악해진 얼굴로 나의 손목을 잡은 채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귀는 사이라는 관계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화를 내고 있다는 느낌 보다는 나를 걱정해주는 느낌과, 목소리에 아주 약간의 울먹임이 섞인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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