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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18화 (118/140)

〈 118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2)

* * *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상황이 가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분명 프림을 등록한 것을 문제삼으면서 화내거나 실망하는 모습을 보일줄 알았다. 하지만 지혜 씨는 전혀 다른 부분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

“어…. 그, 느, 능력이 있잖아요? 존재감이 없어지는 그 능력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지혜 씨는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 응…. 오랜만에 받아본 걱정이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자존심 이랄까? 나 하나 정도야 지킬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겼다. 길거리의 여성 정도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던 나에게 지혜 씨는 일갈을 하였다.

“제 손하나 못 벗어나면서 뭘요? 능력이 만능은 아니잖아요? 성화 씨의 능력은 접촉하면 풀리거나 전자장비에는 그대로 노출 되잖아요?”

화난 표정이 더욱더 험악해짐과 함께 지혜 씨는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직업이 전업 헌터라서 그런 걸까? 팔을 빼지를 못하겠다. 마치 콘크리트에 파묻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여자한테 진다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로는 생물학적 차이를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지혜 씨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틀린 걸까?

일단 팔을 빼내는 것은 포기하고, 대답부터 하는데, 지혜 씨 표정이 정말로 무서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살기를 띈 눈빛 이거나 나에게 화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표정만 한껏 찌푸린 그 상태였다.

“…잡히기 전이라면 괜찮지 않나요?”

“일대일도 아니고 일대 다수였다면서요? 한 번이라도 잡히면? 감지 능력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하실거였는데요!?”

조용한 분노가 있다면 이런 상황을 뜻하는 것일까? 여기까지 말이 나왔다면 내가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내 능력에 약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 인원 중에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머릿수로 밀어붙였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그날의 일은 천운이 따른 것이었다.

“그, 그날은 운이 좋았던 거로 하죠….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 할 테니까…. 그보다 조금 아픈데…요….”

그래도 꼴에 남자라는 자존심이 있는지 안 하겠다가 아닌 조심 하겠다로 말하였다. 하지만 지혜 씨는 그런 나의 대답에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아… 성화 씨?”

“네?”

지혜 씨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손목을 잡은 상태를 풀어 주지는 않았지만, 꽉 잡고 있던 힘은 어느 정도 풀어 주었다.

“양아치년들을 상대로 정의롭게 행동했냐 안 했냐가아니라 무모하게 행동하는 거에서 걱정돼서 화내는 거예요….”

“그정도까지는 무식하게 행동하지 않아요…. 봐요 잘해결되었잖아요?”

“으아아… 정말로 눈치나, 자각이 없어…현준아 어떻게 하니….”

자각이 없다니 본인앞에서 그런 말이라니 실례다. 엘프도 구해 냈고 제대로 데리고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지혜 씨는 좌절하는 느낌을 주면서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두통이 온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현준 씨를 찾고 있는 게 분명 오기 전에 무슨 대화를 하거나 코칭해준 게 분명하다. 그래서 현준 씨를 찾는 거고…. 이 정도면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닌가?

나는 잡혀 있던 손목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뭔가 해방되었다는 기분에 손목을 돌리고 있었다.

“눈치나 자각 정도는 있거든요…?”

“뭐어… 이미 좋게 끝났으니까….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저랑 약속 하나만 해요.”

“약속요? 갑자기 무슨 약속?”

지혜 씨는 약속을 하자는 말과 함께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왔다.

“저와 성화 씨가 오랫동안 사귄게 아니니까 이런 약속하자는 게 미안하기도 한데요….”

“음, 어떤 약속이길래 이렇게 망설이는 거예요?”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있는지혜씨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진지하면서도 고민이 많은 표정이었다.

어떤 약속을 하려고 하기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일까? 그렇게 지혜 씨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생각 외로 간단한 약속이었다.

“위험한 일이다 싶으면 일단 저한테 전화라도 해주세요.”

“에이…. 그 정도 약속 정도면 미안 할 이유가 있나요?”

“그치만, 행동을 제약하는 거잖아요? 이런 약속정도야 ‘사귀니까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지 않아 서요.”

“그, 그런가요…?”

지혜 씨의 연애관을 엿볼 수 있는 약속내용이었다.

일단 동의한다는 의미로 지혜 씨와 손가락 약속을 하는데, 지혜 씨의 거친 손을 잡는 게 몇 주 만인가? 약속을 하는 척하면서 새끼손가락을 세게 걸며 엄지손가락을 강하게 밀고 있었다.

솔직히 긴장했다. 연인 사이 할 만한 약속이 뭐가 있을까 하면서 머릿속을 풀가동 시키고 있었는데, 그런 간단한 약속이라니. 그 정도야 이쪽이 감사할지경이다. 문제가 생겨서 남에게 전화를 하거나 할…. 전화번호조차 없었던 시절이 많다 보니 습관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혼자 처리하려 했지만, 이제 누군가에게 요청을 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손을 덜 수 있지 않은가?

프림을 구출할 때에도…. 사실 지혜 씨에게 전화할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상황이 급박하기도 했으며, 심야시간에 지혜 씨에게 전화하기가 미안하기에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옳은 표현이려나? 하지만 이제 문제가 생기면 전화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나에게 이득만 있는 것 같은 약속 같은데…?

그렇기에 궁금증이 생겨서 지혜 씨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보통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그런 곳 절대 가지 마!’ 라던가 ‘그런 장소는 무조건 피해’ 같은 말하지 않던가요…?”

정말 순수한 의문으로 질문을 하였지만, 지혜 씨는 영혼이 조금 빠져나간…. 비유하자면 조금은 해탈한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약간 웃고 있었다.

“하하…. 만나고 난 뒤 쭉 대화하면서 느낀 거지만, 이 약속이 더 잘 먹힐 것 같아서요. 더. 잘요…. 하하…. 성화 씨가 말한 그런 약속은 글쎄요…. 해봤자 일 것 같은 느낌이라…하하….”

“그, 그런가요?”

혼자서 하하하 거리는 지혜 씨인데….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일이 생기면 부르는 정도의 약속은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생각이 되지만, 막상 약속하고나니 얼굴에 핏기가 몰리는 기분이다.

뭔가, 뭔가! 보호받는 그런 기분…? 아니 나도 보호를 해주고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보호받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어, 그, 그러니까 그냥 연인 사이의 호의 같은 그런 거겠지?

아직은 사귄 지 몇 주 되지 않기에 많은 만남은 없었지만, 그래도 챙겨 주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화하고 난 뒤의 지혜 씨는 테이블 위에 엎어져 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철야를 하고 난 뒤 뻗어 버린 커리우먼의 느낌?

“하아…. 그보다 엘프 속옷 사이즈를 몰라서 저한테 물어본 거네요….”

“하…하하…그,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그냥 처음부터 말해 줬으면 제가 알려 줬을 텐데….”

아, 이거 질투 보다는 자신이 상상했던 일이 아니라 삐진 느낌이다.

“여자한테 가슴 사이즈 묻거나 측정방법 묻는 건 실례 아닌가요…?”

가슴이나 그런 건 좀 성적인 부분이라 생각되기에 최대한 자제하며 물은 거로 생각했는데, 지혜 씨의 대답은 전혀 다른 대답이었다.

“왜요? 뭐…. 지방 덩어리 크기를 묻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측정 방법 정도야….뭐, 얼마든지 가르쳐 드릴 수는 있죠.”

오랜만에 느끼는 문화의 충격이었다.

새, 생각해 보니 그러네 여긴 내 기준으로 이세계지…. 이제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충격을 받는 느낌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이런 충격이라니.

“그, 그러네요! 가, 가, 가슴정도야 아하하….”

“흐으음? 이쪽 이야기는 내성이 없나 봐요? 현준이는 심심하면 원정가서 공동샤워실에서 여성들 가슴 만지고 그러던데.”

“켈록! 크흡. 아, 미안 해요 갑자기 사례가.”

아니! 현준 씨가 이세계를 즐기고 있나요? 라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지내는 거야?

“뭐어, 헌터일 자체가 험하다 보니까…. 휴식할 때 섹드립이 난무하기도해서 현준이가 이상한 거 일 수도 있죠. 원정가서만 그러니까…. 그보다 성화 씨가 이런 쪽에 내성이 없다니…. 기쁜데요?”

“내성…이 없지는 않은데. 아니 왜 그걸로 기쁜 건데요?!”

“당연히 섹드립으로 성화 씨를 놀리거나 장난칠 수 있는 부분이 늘어서요!”

“아니 그게 뭔….”

의기양양하게 자기 속마음….아니 본심을 다이렉트로 말해 오는데, 역시 이세계는 이세계 다웠다.

그렇게 오래 살아왔다고 생각되는데,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기 까지는 내 착각일 지도 모르겠다. 능력 자체가 모르면 소외되기 쉬운 능력이기도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어져서 그런 것일까? 지혜 씨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프림을 슬쩍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보다 엘프라….”

“역시 좀…. 그런가요?”

“좀…. 그런 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성화 씨가 소유하겠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사귀고 있다고 하지만 그걸 하지 마라 할 권리는 없잖아요?”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다.

차라리 하지 마! 같은 명령조였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프림을 데리고 키우겠다고 강하게 말 하거나, 돈이 좀 들지만 진짜 안전한 보호소를 찾는 액션을 취한다거나 그랬을 것인데, 저런 말을 해주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웃으면서 식은땀이 난다는 느낌은 이런 것인가?

그, 그보다 나를 엄청 생각해주고는 있구나…?

역시 사람은 문자나 통화 보다는 직접 만나 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여기서 계속 이야기하게 된다면, 내 양심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한잔 마실 것을 권유하였다.

“그, 그보다! 뭐,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아! 생각해 보니 제가 왕창 마시러 온다 했죠? 자, 뭐가 좋을까요?”

“이번에도 제 마음대로 해도 될까요?”

“좋죠?”

“네~ 주문받았습니다. 손.님~.”

‘에이 손님이 뭐예요!’ 하면서 딱딱하다고 말하는지혜 씨의 말을 의도적으로 살짝 무시하면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지혜 씨를 보니 그냥 떠올라서 만드는 칵테일일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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