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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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떤 칵테일을 만들어 볼까, 연상되는 이미지와 생각해 둔 칵테일은 많았다.
단맛 칵테일, 혹은 화끈한 칵테일, 혹은 정장에 어울리는 칵테일 같은 다양한 칵테일이 연상되지만, 이 칵테일 만큼 지혜 씨 한테 어울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지혜 씨 외에도 헌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의미를 가지기에 알맞은 칵테일이 틀림없지만…. 지금은 지혜 씨를 위해서 만든다 생각하면 그걸로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떤 칵테일 인가요?”
궁금한 듯이 물어보는 지혜 씨.
방금 전과 같은 험악한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지만,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혜 씨가 애써 웃으면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노력 한다든지, 나 또한 그런 지혜 씨에게 맞추면서 웃어 주었다.
가족 같은 관계였다면, 싸운 직후 서로 말도 안 붙이거나 그러겠지만, 연인…. 아니 초보 연인 사이다 보니 뭔가 어색함이 가득 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서로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느낌…? 남들이 본다면 풋풋한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어색한 분위기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색다른 경험….아니 처음 격는 기분이라 나쁘지는 않았다.
“비밀.”
“에에…그게 뭐예요 가르쳐 줘요오!”
말해 준다 해도 지혜 씨는 모를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놀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앞서기에 알려주지 않았다.
투정 부리는 지혜 씨를 뒤로하고 백바에 위치한 위스키를 보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술로 할까?
이번 칵테일이면…. 라이 위스키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라이 위스키 한 병을 꺼냈다. 물론 오래 숙성된 물건은 아니다. 그래도 최소 2년은 숙성된 것이지만, 괜찮은 맛을 내는 위스키다.
일반적인 위스키가 보리로 만든다면 라이 위스키는 호밀로 만든 위스키를 총칭한다. 맛 또한 주재료가 다르기에 향신료향이 강하며 건조한 느낌이 나는 맛이다. 어디까지나 위스키 기준이다.
즉 단맛이 많이 없는 위스키라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 위스키를 들고 뭘 만들까 살짝 고민을 해 보았다.
지혜 씨 앞에서는 있는 척을 하긴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 칵테일 저 칵테일 같은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선택한 칵테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분위기에 맞는 칵테일을 다시 선택하고 있지만, 역시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괜히 지혜 씨를 기다리게 하기는 싫으니까 고민하는 척하면서 미리 정해 둔 체리 브랜디를 꺼냈다.
“쨘~. 라이 위스키랑 체리 브랜디입니다.”
“와~위스키네요, 그리고 체리? 브랜디…? 인가요? 어라…. 브랜디는 와인으로 만드는 게아닌 가요…?”
기본 상식이자 고정관념이 있다 보니 일반인이라면 헷갈릴 것이다. 브랜디는 분명 와인으로 만드는 술 일 텐데…. ‘체리’브랜디라니? 말 장난을 치는 건가 싶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이건 기본 상식도 아니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지식이기에 궁금해하는 지혜 씨에게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였다.
“뭐 정확하게 말하면, 브랜디에 체리 원액과 몇몇 향신료를 넣어서 숙성시킨 거라서요. 즉, 체리넣은 브랜디 정도?”
“어… 음 그러니까 향을 가미한 술이다…?”
“그쪽이 좀 더 정확해요. 그리고 체리 브랜디라 해서 브랜디 맛이 안날까 봐 신경 쓰일 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더 달면 달았지 심심하지는 않은 맛일 거예요.”
“그, 그런가요?”
“네! 안 그래도 달디단 브랜디에 체리 원액과 향신료를 넣고 좀 더 숙성시킨 물건이잖아요? 이게 맛없으면 이거 만든 회사는 문 닫아야 해요!”
“흐으으음.”
내 말을 듣던 지혜 씨는 묘한 표정으로 턱을 괴면서 나를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가 싶어서 지혜 씨를 빤히 바라보니, 나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성화 씨는 정말로 술을 좋아하시네요?”
양손에 술병을 들면서 신나게 술에 대해서 설명하던 모습이 지혜 씨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던 것일까?
지혜 씨의 갑작스러운 질문과 묘한 표정에 술병을 든 채로 어정쩡하게 선 채로 고민을 하였다.
어디까지나 기습 질문에 당황한 것이기에 정신을 차리고는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네! 좋아해요. 하지만….”
“하지만?”
“칵테일 쪽이 더 좋아요! 다양한 맛을 내잖아요? 같은 레시피라도 비율과 섞는 방법에 따라서 맛도 확확 바뀌니까요? 그런 점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되다 보니까 가게까지 열었네요?”
“아~ 그래서 가게를 여신거군요.”
“네, 그거라도 안 하면 삶의 의욕이 없을 것 같아…서요…. 하하…. 갑자기 우울한 이야기해서 미안 해요.”
술을 좋아하는 것과 가게를 운영하게 된 이유를 말하니 너무 어두운 이야기한 것 같아서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지혜 씨는 내 말을 듣고는 잠깐 고민하는 것 같더니, 활짝 웃으면서 답을 하였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까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 말을 하는지혜씨가 왜 그리도 밝게 보이던지, 뒤에서 후광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 나 이런 사람이랑 사귀는 거구나.
뭔가 좀…. 부끄러우면서도 기쁜 그런 기분에 휩싸이니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네’ 그 한마디가 왜 이리도 입 바깥으로 안 나오는지.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당황해서 그런 걸까? 그래도 잠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입안에서 맴돌던 대답이 입바 깥으로 나왔다.
“네!”
최근 들어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한 것 같았다. 프림은 옆에서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으나, 지혜 씨는 예상했다는 듯이 턱을 괸채로 웃고 있었다.
“자,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거예요~! 빨리 한잔 주세요~!”
“아차차…! 자, 잠깐만요!”
칵테일을 만들려 할 때보다는 가게 안의 분위기가 아주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편안 해진 분위기 속에서 칵테일을 만들 준비를 하였다.
우선 백바에서 꺼낸 병 두 개를 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아주 큰, 투명한 유리잔을 들었다. 평소라면 적당히 쉐이커를 사용하겠지만, 지혜 씨니까 나름 있어 보이기 위해서 유리잔을 사용한다.
그 유리잔에 얼음을 넣어야 하는데…. 비장의 무기를 꺼내었다. 바로 대형 사각 틀에 얼려 둔 얼음이다.
사각 틀에서 얼음을 꺼내어서 도마 위에 올렸다. 이대로 유리잔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송곳과 칼을 사용해서 얼음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얼음이 깨지면서 칼로 자르는 소리가 가게 안에 퍼져나갔다.
지혜 씨는 대부분 회식 자리에서만 술을 마셔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이 얼음을 자르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니 나 또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랄지, 어쨌든 최대한 유리잔에 한덩이로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로 컷팅을 한 뒤 유리잔에 얼음 한덩이를 넣었다.
직 사각형의 얼음 한덩이가 유리잔 안에 쏙 들어갔다.
이제 술을 넣을 차례다.
라이위스키 40ml, 체리 브랜디 20ml. 즉 2:1 비율로 술을 계량하면서 넣었지만, 여기에서 양을 두 배로 하고는 2.5:1 비율로 바꾸었다.
2:1은 위스키의 향을 느끼기 어려워서 개인적으로 2.5:1을 선호할 뿐이다.
손님에게 주문을 받았으니까 공식 레시피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 안하기에, 내가 마셔본 최고의 비율 만들고 있었다.
그러는 편이 지혜 씨에게 어필하기 좋지 않을까? 근데 생각해 보니까 지혜 씨는 비율의 차이에 의한 맛을 모르지 않던가…? 어라…?
어찌 되었든 이미 술은 다 따랐기에 다음 과정을 시작하였다.
“응? 이거 그대로 마시는 거 아닌가요?”
“아뇨~?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이게 다 만들어진 칵테일인 줄 알고 잔을 집으려 하였지만, 내가 잔을 뒤로 빼서 지혜 씨는 잔을 잡지 못하였다.
이 유리잔은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일 뿐이다.
컵을 잡은 채로 살살 흔들면서 바 스푼을 집었다. 아주 길쭉한 스푼인데 이걸 잔 안에 넣고 천천히 젓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스터라는 방식의 칵테일 기법이다.
쉐이커와 맛부터 다른 데, 쉐이커는 흔들 때 발생하는 미세한 공기 기포가 칵테일의 맛을 부드럽게 해주지만, 스터는 날카로운 맛 그대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섞였다 싶어서 이제 잔을 꺼내었다.
마티니 글라스라고 하는 잔인데, 흔히 칵테일 하면 떠오르는 역삼각형 잔이다. 이제 그 잔에 얼음이 들어가지 않게 바 스푼으로 얼음을 지지하면서 천천히 따르기 시작하였다.
얼음이 내구도 약한 잔에 떨어지는 순간 잔이 깨지기 때문이다.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갈색의 액체가 잔에 가득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잔을 준비하고 나니 머뭇거리게 된다.
지혜 씨는 지금인가 싶어서 웃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하는 말이지만, 지혜 씨 앞이라 그런지 엄청 긴장된다.
그래도 해야겠지?
마음을 다시 잡고는 잔아랫 부분을 손끝으로 살짝 누른 채로 앞으로 내밀었다.
“주문하신 헌터 칵테일 나….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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