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21화 (121/140)

〈 121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5)

* * *

훈련을 마치고 보고서 작업을 겨우 끝냈다. 이제는 눈감고도 보고서를 쓸 정도로 규격에 맞춰서 쓰게 되었는데 이 정도야 옛날부터 해온 작업이라 익숙한 작업이지만…. 문제는 현장직은 서류작업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어째 직급이 오를수록 서류작업만 늘어난다. 뭐…일단은 오전 서류작업을 끝내고 점심시간에 회사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다. 어차피 훈련도 끝냈고 보고서도 끝냈으니 이대로 퇴근이나 해 버려?

퇴근에 관한 고민을 하였지만, 다음 주에 있을 원정을 생각하니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 훈련 끝난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원정이라니. 뭐 어느 기업이든 사람을 쉬지 못하게 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쩌겠냐 억울하면 대주주가 되어야지.

게이트 원정 일정은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훈련과 게이트 원정을 각 팀별로 번갈아 가면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기업이 움직일만한 급의 게이트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결국 월급 루팡하는 거 보기 싫으니까 위에서 굴리는 거지뭐…. 만약에 정말 돈이 되는 게이트라면 전 현장 사원 훈련이고 뭐고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전원 집합 걸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은 오늘의 일정을 즐겨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기에 내 옆에서 쭈욱 시끄럽게 굴던 두 명의 잉여스러운 사원에게 질문하였다.

“그런 이유로 오늘 가게에가려는데 좋은 의견 없냐?”

“엣, 정말로 가시는 겁니까?”

“오, 팀장님 드디어 가시는 건가요! 올 때 위스키 한 병~.”

“끄응, 잉여 듀오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했지….”

“엑, 팀장님 잉여라뇨…! 저희는 그저 팀장님을 따를 뿐이지 말입니다!”

“올소! 나리 선배 말대로 저희는 팀장님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나거든요!”

나리와 현준이는 정말이지 도움 안되는 듀오다. 게이트나 훈련 때는 멀쩡한데 왜 쉴때만 이러는 것일까…? 아, 풀어 준 내 탓이지….

“그래 물어본 내가 잘못했다. 어째 1,3,5 조장들 보다 나를 더 놀려 먹으려하니?”

소파에 몸을 가볍게 기대는 게 아니라 아주 푹 가라앉듯이 기대어 버렸다.

나리는 워낙 쥐어박아서 처신을 잘하는데 현준이 저거는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어쩌겠냐 독립하겠다고 뛰쳐나온 내 업보지…. 뭐…. 그래도 후회는 없다.

사실 대답을 원하고 한 질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랑겸 의견을 모을 심산으로 질문을 하였는데, 때마침 현준이가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팀장님 지금 가시게요? 뭐 오늘 일은 다 했으니까 팀장급이면 퇴근해도 아무 말없긴 하겠죠. 그래도 저는 반대입니다!”

“어? 아니 아직 연락을 안 해서 일정은 안 정해졌는데 왜?”

일상생활에서의 현준이라면 이런 대화에서조차 장난 거리를 찾는데, 이번만큼은 작전중의 진중함이 보이는 표정이었다. 괜히 나까지 신경 쓰이게 만드네 이거.

“거기 사장님의 퇴근 시간 직전에 만나는 거죠!”

“어…. 현준아 그건 좀 민폐 아닐까?”

“어허! 나리선배 어째 남자의 마음을 모르는 겁니까!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 있어 보이지 않나요? 게다가 시간대와 그 거리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사장님이 퇴근하기 직전의 시간대면 손님이 없을 게 분명하거든요!”

“오…? 그런가? 현준이가 그렇다는데 저도 그의견에 찬성합니다 팀장님!”

“쓸데없이 꿍짝이 맞기는…. 그냥 지금 가면 안 돼? 오픈시작 시간쯤 만나는 편이 편하지 않을까?”

그편이 성화 씨가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나의 생각을 저지한 것은 귀신이라도 본 건지…. 경악한 표정의 현준이 였다. 그렇게 충격받을 말인가?

“리얼? 진짜로? 진심입니까 팀장님?”

“아니 왜?”

내가 모르겠다는 듯이 묻자 현준이는 옆에 앉아 있던 나리의 양어깨를 잡으면서 나에게 설명하듯이 말을 하였다.

“혀, 현준아?”

“자! 나리 선배와 팀장님의 현재 차이가 뭘까요!?”

“어…. 직급이 다르다? 맹하고 안 맹하고의 차이? 제일 많이 꾸미지만 정작 남자가 없다?”

“팀장니이임!?”

나리의 어깨를 흔들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던 현준이는 바로 그거라는 듯이 큰 소리를 냈다.

“그렇죠! ‘꾸밈!’ 나리 선배봐요!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오프숄더 스웨터에 정성스럽게 땋은머리…! 하지만 지금, 팀장님의 상태는 어떻죠?”

“내가 뭐…어…?”

현준이가 뭐저리 흥분을 하나 싶어서 시선을 아래로 돌려 보는데…. 가슴만 이... 아니 아니, 훈련복겸 유니폼인 츄리닝을 입고 있었으며 프린팅된 공략(??) 이란 한자가 윗 가슴 부분에 큼지막하게 찍혀 있었다.

으음, 이건좀 심했나…?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양손으로 뒷머리를 만져 보았는데…. 곱창밴드로 대충 묶어 올린 상태였다.

역시…. 이건 좀 심했나?

나 자신도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여 어떤 말을 할지 몰라 가만히 있던 그때.

“어…. 팀장님 조금 심한 거 아닙니까? 제가 좀 도와 드릴 까요? 에헤헤….”

나리라면 악의가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순수한 호의로 한 말이 분명하지만…. 왜 이렇게도 무언가가 내 가슴을 관통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거 봐요. 그 상태로 가면 가게 사장님도 기겁 할걸요?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 말을 믿어 보시죠!?”

“그,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중요하죠! 사귀는 여성의 단정한 모습이나 청초한 모습을 보는 남성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 여성들은 너무 안 꾸며서 싫단 말입니다! 꾸며요! 나리 선배봐요! 잘 꾸미잖아요!? 봐요 팀장님만큼의 미드는 아니지만, 오프숄더로 남성을 유혹해 보겠다는 마음가짐!”

말을 끝낸 현준이는 양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나리의 양 가슴을 잡고 주물렀다.

아니 저정도 장난이야 평소에 친다고 하지만….주무르는 강도가 조금 심했다.

“햐으응! 야! 너!”

헌터 일이 험하다 보니 저 정도 접촉은 심심치 않게 보는 편이지만…. 최근 들어 너무 거리낌 없이 여성을 만지거나 공공장소에서도 그러는 점을 날 잡아서 한번 말해야겠다.

그보다 여기 여성들이라니…. 거 헌터일하다 보면 편한 복장이 좋을 수도 있지.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어떻게 할지 몰라 입만 닫고 있으니 답답해하는 잉여듀오즈였다.

그것을 보다 못한 두 명은 나에게 옷에 관한 설명을 시작 하였다. 그렇게 패션 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몇십 분을 이야기했을까? 휴게실에서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보아하니, 슬슬 점심시간도 끝나갈 시간이다.

이야기는 이쯤 해 두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결론은 깔끔하게, 단정하게, 그리고 가슴을 강조해라?”

“정답!”

평소에도 장난을 잘 쳤지만 오늘따라 아주 과장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되려 수상함까지 느껴진다. 이번에는 또 뭘로 나를 맥이려고? 라고 생각하기에는 성화 씨의 가게에 단체로 간 이후부터 나에게 스킨쉽을 해 오거나 장난치는 경우가 없어졌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도와주려는 것일까?

그보다 나리는 무엇을 상상하는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팀장님의 패션 센스 보고 싶지 말입니다. 언제나 츄리닝 혹은 전투복이지 않습니까.”

“어? 정장 입을 거야.”

“에에에….”

“뭐가 ‘에에에’야 오늘 당장 보러 갈 생각인데, 패션 같은 사전 준비 많은 작업을 언제 해?”

“음, 그것도 그렇지 말입니다.”

헌터일하는 여자치고 패션에 관심이 많던 나리인지 은근 기대하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대충 말하였다.

나리가 말하는 패션을 생각해 보면…. 피부색에 맞춰서 옷의 색을 맞추고, 자기 체형을 생각해서 그에 맞는 스타일을 찾아야 하며…. 염색이나 색조화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데…. 그런 것을 한다 해도 머리가 아프고…. 오늘 당장 가게에 찾아가서 성화 씨를 볼 생각만 가득하기에, 정장을 선택하였다.

“팀장님 정도면 아주 모델 포스를 내뿜을 지도 모르겠네요. 자 그런 의미로 오늘은 반차 내고 지금부터 준비하러 가시는 겁니다!”

“그냥 퇴근하면 안 되냐?”

“그건 뭐…. 팀장님의 선택이죠? 그보다 거기 사장님 어땠어요?”

묘한 웃음으로 성화 씨에 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 현준이인데, 뭔가를 꾸민다는 표정은 아닌 것 같고…. 평소에 보지 못한 현준이의 모습인 걸지도 모르겠다.

“뭐, 어땠냐니? 뭐가?”

“에이 성격요 성격. 성격이 맞아서 사귀는 거 아닌가요…. 그게 아니면 팀장님은 혹시!? 남자의 외모만 보는 그런 성격?!”

“야이 씨! 콱!”

현준이는 조금 선을 넘은 듯한 발언을 해 버렸다. 그 말을 듣자 빡 돌아서 평소에 훈련 중 굴리듯이 굴려 버릴까 생각마저 했지만, 이게 또… 남자가 그런 발언하면 왠지 모르게 진짜 외모보고 사귀는 거냐고 진지하게 묻는 것 같아서 성질만 낼 뿐이다.

자기 양어깨를 잡으면서 이상한 포즈로 있던 현준이는 이내 장난이라는 듯이 손사래 쳤다.

“아하하 팀장님 화나셨다. 에이, 외모보고 사귈 성격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냥 궁금해서요 어떤 성격이길래 눈 높은 팀장님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싶어서요?”

“어, 글쎄….”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되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지만 이것만큼은 빠르게 말할 수 있었다.

“뭐랄까…. 작은데 라고 할지…. 이때까지 만나 본 남성들 중에 키가 작을수록 남성성이 강했다는 이미지인데, 성화 씨는 뭐랄까…. 첫 만남은 아주 민폐를 부렸고, 두번 째 만남 부터가 진짜인데 첫 느낌은 아주 여성스러운 성격? 대부분의 남성은 담배피우면서 컵라면까지 한 모습을 들킨다면 숨기려 하잖아?"

"그렇죠?"

"그런거 숨김도 없고 그 당시에는 퇴폐미까지 느껴졌다니까? 어쩃든,이상한 사람인가 싶었는데….갑자기유약한 모습을 보면 끌린다고 할지….보호 본능일려나?그 다음은 귀여워서…? 나도 가끔 작았으면 했거든.”

"우와….팀장님 그 발언 다른 여성들에게 상처이지 말입니다."

내 키와 양가슴을 몇번 만지면서 너무 큰거에 관한 불만을 토로하니 나리가 즉각 반응해버렸다.

왜 뭐? 크면 은근 불편한걸…. 그래서 성화 씨에게 끌린 걸지도 모르겠고…. 안아보면 품속에 쏙 들어오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펼치던 와중 현준이는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접수했습니다~. 그런 성격이었군요….”

“접수는 무슨 궁금증은 해결됐냐?”

“대에에충? 제가 직접 확인을 못해서 감은 안 잡히지만 그래도 팀장님의 취향을 알 것 같네요.”

또, 또 놀리기 모드로 들어가려고 하길래 큰 소리로 ‘야 너!’를 하려 하였지만,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나리를 끌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내일할 서류를 미리 하겠다나 뭐라나….

뭐, 나도 기숙사로 가서 일 년에 한번 입는 정장을 꺼내서 준비해야겠다 생각하며 일어날까 하는데, 현준이와 나리의 문자가 왔다.

[현 ­ 정장 셔츠 윗가슴트임 필수!]

[나 – 팀장님! 정장 입으시고 머리 하기 힘드시면 미용실 들렸다 가세요!]

정말이지…. 장난기로 똘똘 뭉친 바보 듀오였다.

그보다….사귀는 이유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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