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23화 (123/140)

〈 123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7)

* * *

내가 서 있는 장소와 바라보는 방향이 너무나도 불편했기에 소파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되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직업과 옷차림새 등이 알게 모르게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그렇기에 대등한 관계를 위해서 자리를 옮길 것을 권하였다.

쟁반을 들고 소파로 가려는 데 자리를 옮길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는지 지혜 씨의 행동이 주춤주춤거린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강아지 같아서 귀엽긴 한데…. 으음, 키가 나보다 큰데도 저런 모습을 보여서 더 귀여운 것일지도? 일단 쟁반을 들고 카운터에 나오자 내 옆에 붙어서 내가 들고 있는 쟁반을 잡으러 하였다.

“제, 제가 들게요!”

흠…. 이해는 한다. 이곳 연애사에서 자주 나오는 내 남자한테 무거운 거 못 들게 하겠다는 그거.

으음, 그렇게까지 무거운 것인가 싶어서 얼굴은 지혜 씨를 향해 있지만 눈동자만 움직여서 트레이 위를 바라보니…. 확실히 조금 무게가 나가는 구성이긴 하네…. 얼음덩어리와 위스키, 체리 브랜디병, 보드카, 기타 도구들…. 겉 보기에는 무거워 보이지만, 나는 가볍게 느껴 지는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것인가…?

아하! 포인트 따려는 그런 것? 그렇게 생각하니 장난을 쳐볼 생각이 머릿속에 한가득 하였지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바로 앞 테이블에 앉는 것일 뿐이며, 지혜 씨에게 말해줘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 남아 있기에 장난을 칠 수는 없었다.

“테이블이 바로 앞이잖아요? 넘겨 주는 게 더 귀찮아요. 게다가 가벼워요.”

“그, 그러네요. 가, 가볼까요.”

처음에 명랑하게 들어온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쩔 줄 몰라서 그저 따라오기 바쁜 지혜 씨였다.

정말 테이블이 바로 앞이지만, 이것만큼은 해 보고 싶어서 걸음을 평소보다 더 천천히 걸으니 그 속도 그대로 따라오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 봤자 몇 걸음 걸으니 벌써 테이블 앞이었다. 테이블 위에 트레이를 올려놓고 지혜 씨에게 앉을 것을 권유를 하였다.

“자, 앉으세요.”

“넵!”

나보다 더 긴장한 모습에 장난은 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나도 앉을까 싶어서 트레이 위를 잠깐 바라보는데…. 부족한 게 몇 개 있네? 바로 내가 마실 잔과 지혜 씨의 잔이 없었다. 지혜 씨가 이미 마시던 마티니 글라스? 손님한테 다른 칵테일이 들었던 잔을 계속 쓰기는 그렇지 않은가?

“잠시만요. 물건 몇 개 깜빡 해서 들고 올게요.”

“그럼 제가 가져올게요!”

“에이, 손님한테 그럴 수는 없죠. 그리고 뭘 들고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 그러네요. 아하하…. 죄송합니다.”

“어…. 죄송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술이 들어가시더니 더 군기가 잡힌 모습은 왜일까요?”

“그, 그냥 자리가 바뀐 것뿐인데 괜히 긴장돼서 그럴 뿐이예요!”

“긴장부터 풀고 계세요. 금방 올게요.”

“넵!”

90도 각도로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아 있는 지혜 씨를 뒤로하며 물건을 가지러 카운터 안에 들어가니 프림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을 전혀 신경 안 쓰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잡아 둘 수는 없지만…. 혼자 이 시간대에 바깥에 보냈다가 어떤 수모를 당할지도 모르고…. 어쩔 수 없나?

“프림 여기서 책 보고 계세요.”

의외로 분위기를 잘 보는지 고개만 끄덕이고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책 정도는 자유롭게 살수 있도록 했는데, 인류역사 책을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거 보다 이 종족에 관한 내용이라도 나오면 읽는 입장에서 조금 그럴 텐데, 본인이 정한 책이니까 상관없으려나…?

책을 읽고 있는 프림을 뒤로한 채 가게의 조명 몇 개를 꺼 두었다. 지금부터 소파에 앉아서 지혜 씨랑 대화할 예정인데 손님이 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조명을 다 끄기에는 좀 그렇고 프림이 앉아 있는 카운터쪽 조명만 켜두었다.

그 뒤, 진열장을 바라보는데, 조명이 집중돼서 그런 것일까? 감회가 새로웠다.

많은 양의 술과 차 상자 등이 정리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손이 가는 대로 대충 두다 보니까 왼쪽 오른쪽이 나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열장의 왼쪽은 알콜 없는 음료종류, 오른쪽 진열장은 알콜류로 진열된 상태다.

찻잎을 보관하는 상자의 대부분은 알루미늄 캔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양한 풍경이 그려진 반면, 술병들은 다양한 색의 유리와 함께 자신만의 독특한 라벨이 붙여진 모습이 이곳이 카페 겸 바를 운영하는가게라는 느낌을 확 주는 진열장이다.

새삼스럽게 백바를 바라보다 보니 감상적이게 되어 버렸다. 이 이상 지혜 씨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잔 몇 개와 머그컵, 아마레토를 진열 장에서 꺼내어트레이 위에 올려 두었다.

그 후 손님쪽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소파에 돌아가려고 하니 고개를 돌린 지혜 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

다행히도 입 바깥으로 말이 안 나왔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서 어떻게 할지 몰랐는데, 지혜 씨가 먼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죄를 지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일까?

아리송한 기분을 느끼면서 소파까지 걸어간 뒤 자리에 앉으니 오늘 하루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서 있거나 불편한 자세로 있던 반동 탓이다.

“으아. 오늘 하루도 끝났네요.”

“그러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지혜 씨야말로 고생하셨어요.”

“아하하….”

서로 하루를 끝내는 말을 주고받으니 오묘한 기분이었다.

사귀고 난 뒤 결혼까지 하게 되면 이런 이야기를 매일 하려나? 아니 지혜 씨의 경우에는 헌터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매일은 못 할지도?

그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니 이대로 뻗을까 싶지만…. 술이 눈앞에 있었다!

지혜 씨도 한잔 걸쳐서 그런지 아주 약간? 미묘할 정도로 얼굴이 붉거나 그랬다. 자칭 술잘알인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자, 한잔 더 할까요?”

“좋죠. 이번에도 헌터라는 칵테일로 주실 건가요?”

“음~ 저는 보드카에 체리 브랜디를 섞어볼 예정인데, 어떠세요?”

“좋죠. 오히려 성화 씨가 해주거니까 더 기대되는데요!?”

정말로 좋다는 듯이 약간의 과장된 몸짓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해주는데 되려 이쪽이 부끄러울 뿐이다.

“그, 그럼 잠시만요.”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살짝 묻어났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을 하며, 소파에 앉은 채로 커다란 사각얼음이 담겨 있는 통에 체리 브랜디와 보드카를 각각 1:2~3 정도를 부었다. 정확한 계량이 없어서 적당한 비율로 통 안에 부웠을 뿐이다. 이게 완전히 일면식도 손님이라면 정확히 계량해서 내겠지만 지혜 씨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들고 싶을 뿐이다.

이제 ‘헌터 칵테일’ 과 똑같은 방법으로 통 안에 들어 있는 얼음을 천천히 휘저어 주었다.

“음, 얼음을 통으로 쓸 필요가 있나요? 그냥 일반 얼음을 사용 못할 이유라도 있나요?”

내가 만들던 모습에 호기심이 동하였는지 지혜 씨가 질문을 해 왔다.

얼음이라…. 칵테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아주 잠깐 고민을 한 다음, 지혜 씨의 잔에 칵테일을 따라 주면서 입을 열었다.

“조각으로 사용하면 물이 많이 나오거든요.”

“으으음? 같은 얼음 아닌가요? 아, 술 감사합니다”

“달라요 저어언혀 달라요. 정확히 말하자면 얼음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인 거에요. 그래야 얼음 녹은 물이 적게 나오거든요. 게다가 조각 얼음을 잔에 넣어 두면 마실 때 불편하잖아요? 지혜 씨 잔을 보면 얼음 들어가면 엄청 불편하다 느껴 지겠죠?”

“아, 확실히 마실 때 뭐 있으면 불편할 잔이네요. 그보다 표면적을 줄인다라…. 가끔 쐐기 진형으로 상대 진형에 때려 박는 느낌이랑 비슷하려나요?”

쐐기 진형으로 적진에 박아버리는 건….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표현이긴 하다. 정확히 내가 상상한 것을 말하자면…. 움직이지 않는 거점식 방어보다는 밀집형 방어 진을 취함으로 각개 격파 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지만, 지혜 씨 말도 틀린 것이 아니기에 적당히 수긍하며 넘겼다.

“그러네요~ 자, 다 되었네요. 건배라도 할까요?”

“저, 성화 씨…?”

“네?”

각자의 잔에 칵테일을 전부다 따랐기에 건배라도 할까 제의를 하였지만, 지혜 씨는 뭔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를 부르고는 약간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머그컵은…. 그렇지 않나요?”

아니 왜? 머그컵이 얼마나 편한데? 멋이 없을 뿐이지 아주 좋은 컵이다. 튼튼하지, 보온성좋지, 설거지할 때 편하지. 칵테일 잔 하나는 은근 값이 나가기에 관리하기 힘든 물건이다. 설거지할 때나 쥘 때 힘 잘못주면 깨지거나 부러진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잔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돈을 받고 칵테일을 파는 입장에서 플라스틱 잔은 아웃이다.

그렇기에 설거지하는 입장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게 편해요.”

“아니. 그….”

“편해요.”

“네. 그, 그럼 건배나 할까요? 그보다 이번 칵테일 이름이 뭔가요?”

지혜 씨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설거지는 중대 사항이라 타협할 수가 없었다. 한 잔이라도 부담 스러운 잔은 줄이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칵테일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네.

“이번 칵테일은 ‘레드 러시안’ 이라고 해요. 보드카에 붉은색이니까 지어진 거겠죠?”

“음? 그런 단순한 이유로 이름이 레드 러시안 인가요? 그럼 화이트 러시안도 있겠네요?”

“있어요. 화이트 러시안.”

“아니 이름이 어떻게 화이트 러시안이예요! 그럼 블랙 러시안도 있겠네요?!”

“네, 블랙 러시안도 있어요.”

“엑…?”

지혜 씨와 건배를 하려던 자세에서 그대로 멈춰 버렸다.

본인 나름대로 장난을 쳐보려 한 것이지만, 둘 다 실존하는 칵테일이라 그런지 말한 본인 자신도 당황한 눈치다.

놀리거나 장난치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놀려 먹는 재미가 있었다.

중독되면 안 되겠지만…. 지혜 씨 정도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 하면서 지혜 씨의 잔에 머그잔이 살짝 닿게 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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