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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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내뱉은 말로 인해서 어처구니없게 당황한 지혜 씨를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게 할까 생각해 보니, 시선을 돌려줄 수 있는 행동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들고 있는 머그컵을 아주 천천히 지혜 씨의 잔에 닿게 하니, 잔이 닿는 소리와 함께 지혜 씨는 민망한 분위기에서 다른 화재로 돌릴 만한 건수가 생겼다.
하지만 정말이지….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아니랄까 봐, 예상한 그대로의 대화 주제였다.
지혜 씨는 잔을 들고 짐짓 과장된 몸짓하면서 마티니 잔을 그대로 앞으로 내민 모습이….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너무나도 어울리지가 않았다. 정장을 입고 대기업을 다닐 스타일의 여성이 마티니 잔을 든 채로 일반 고깃집에서 할 법한 행동을 하다니, 언밸런스의 극치다. 그렇다고 해서 못 봐줄 것은 아니고 재미있다 정도?
“자! 건배라도 할까요?! 성화 씨가 살짝 대었지만 그래도 건배 한번 해요!”
“그래요. 그럼”
“”건배!!””
두꺼운 머그컵과 얇은 마티니 잔이 서로 맞닿았지만, 청명한 소리가 아닌 둔탁한 느낌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배를 했으니 이대로 잔을 내릴 수는 없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마신 뒤 잔을 내렸다.
“음, 훈련 수고하셨습니다?”
“에이, 매번 하는 훈련이라서 힘든 줄도 모를 정도니까, 수고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고생하셨잖아요?”
“음, 뭐, 그러네요…. 고생이라. 최근 같은 내용으로 훈련해서 그런지 애들이 빠져서 그거 교정한다고 고생은 한 것 같네요. 조지지도 못하고 이게 뭔….”
자기 고민을 말하고는 잔을 한번 돌린 뒤 남은 레드 러시안을 그대로 다 마셨다.
확실히 일반 술에 비하면 쉽게 넘어가는 맛이다. 역시 달달한 술은 독한 알콜 도수를 숨기기 최적화인 것 같다. 체리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제일 먼저 와서 그런지, 그다음 오는 높은 알콜 도수의 열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지혜 씨를 따라서 한 번에 다 마셨다.
역시 속에서 올라오는 알콜의 열기보다 입안에 감도는 달달한 체리 향에 더욱더 집중이 되었다.
“직장 생활은 해 본 적이 없지만, 역시 다른 사람에게 지시를 하는 입장이면 많이 힘든 가 봐요? 그보다, 다 마셨으면 잔 좀 주세요.”
“아, 네! 여기요…. 그, 일반 직장보다 부하 관리가 더 힘들 거로 생각돼요.”
“사람 사는 환경이 다 비슷하다 생각해서 헌터 일이나 일반 사무직이나 하는 업무만 다르지, 팀원 관리는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다른가 봐요?”
이번에도 체리 브랜디를 사용할 것이기에 특별히 잔을 씻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을 할 것이다.
지금 현재 재료로는 더 이상 만들 칵테일이 없기에 체리 브랜디 그 자체를 잔에 천천히 따랐다.
약간의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액체가 잔 안에 찰랑거리면서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하는데, 벌써 내 코에 체리향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다 찬 잔을 지혜 씨 앞으로 내민 뒤 내 잔에도 채우기 시작하였다.
“고마워요. 이거 계산 다 하고 있죠?”
“그럼요…? 계산 다하고 있어요. 사장이니까요?”
술을 한 번에 마셔서 그런지 벌써 살짝 취한 감각은 들지만, 아직은 멀쩡하다! 그렇기에 머그컵을 들고 있는 손을 높이 들며 사장이라는 것을 한번 어필해 보았다.
“이번에도 걱정되기는 한데…. 아니 어쨌든. 워낙 위험 수당이 높은 일이다 보니까 현장에서는 말을 잘 듣는데 훈련은 영 시원치 않아서 머리가 아프네요.”
“저 잘 안치해여! 그래서 어떤 훈련하는데여?”
“으으음. 지금 상황이 더 머리가 아파질 것 같은데요…?”
“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정도인가 봐여?”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지혜 씨는 머리가 아픈 듯이 빈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훈련 때 말을 안 듣는 팀원이라…. 머리가 아플만하지….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공감정도는 해 줄 수 있다.
이마를 살짝 주무르고는 내가 건네어 준 잔이 생각이 났는지 잔을 천천히 들고는 브랜디의 냄새를 한번 맡고는 조심스럽게 아주 조금 맛을 보기 시작하였다.
계속 체리 브랜디를 넣어온 잔이라서 맛이 심각하게 변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잔도 몇 개 준비했지만, 이건 다른 술에 사용할 용도다.
이번에는 칵테일이 아니라 원액을 부워서 그런지 조심스러운 반응인데, 한 모금 하고 나니 자기 생각과 다른 맛이라 그런지 깜짝 놀란 표정을 보여 주었다.
“와 체리향 엄청 진하네요? 술 보다 시럽 같은데요?”
“그게 정확한 표현이에여! 말이 체리브랜디지 거의 알콜 들어간 체리 시럽느낌? 단독으로 마셔도 괜찮죠?”
“네. 대신 살찔 것 같은 맛이네요.”
“그냥 달게 느껴져서 그런 거지 칵테일로 마셔도 칼로리는 변하지 않아요~.”
“윽. 최근에 훈련을 해도 쪘다는 소리 듣고 있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오.”
최근 살이 쪘나 싶을 정도로 건장한 모습인데…. 지혜 씨는 들어서 안 될 것을 들은 것처럼 곤란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잔을 놓거나 하지는 않고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아마 한 번에 마시기에는 느낌이 좀 그래서 천천히 마시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리큐르라만 마실 때 모든 리큐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리큐르는 설탕 시럽 같은걸쭉한 느낌을 준다.
이것을 칵테일로 만든다면 다른 술이 걸쭉한 느낌을 없애주기 때문에, 원샷을 좋아하면 그렇게 마셔도 괜찮지만, 리큐르는 왠지 모르게 한 번에 마시기가 꺼려진다.
직접 느껴지는 향이 강렬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
나 또한 아주 천천히 마셔보니, 입안에 달콤한 체리향이 가득했다.
이 맛에 리큐르를 단독으로 마시지.
속에서 올라오는 알콜의 열기를 잊은 채로 몇 번더 잔을 홀짝였다.
“에이 지혜 씨 정도면 살쪄도 귀여울 것 같아여.”
“그거 헌터로서 실격이라는 발언 아닐까요?”
“에이. 헌터 짤리면 제 가게에서 일 하실래여?”
“오…. 그건 그거대로 끌리는 제안이네요!”
“에이, 농담이예요. 이 일 보다는 헌터 일이 더 선망 받고 돈을 벌잖아여? 어쨌든 헌터 훈련은 어떤 것을 하나요오?”
평소보단 즐거운 일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마셨다 생각했는데 벌써 머그컵에 든 리큐르를 다 마셨다. 머그컵에 가득 채우지는 않았지만, 반 정도 채운 게 벌써 없어지다니. 지혜 씨는 아직 반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이런…. 나 혼자 마셔버린 거네?
잔이 비어 있으면 대작 하기에 조금 그러니까 나도 ‘헌터’ 칵테일을 마셔볼 요량으로 위스키와 체리브랜디를 머그컵의 반쯤 차도록 조절하면서 부웠다. 그러면 ‘사장님표 대충 계량한 칵테일’ 완성이다.
“성, 성화 씨 너무 마시는 것 아닐까요?”
“에이. 평소에도 이 정도는 마셔요! 아마 페이스가 빨라 보여서 그런 것 아닐까여?! 그보다 훈련 이야기 빨리요!”
평소보다 높아진 텐션을 만끽 하면서 지혜 씨에게 헌터이야기해줄 것을 독촉 하였다.
아마도…. 헌터 일에 관한 미련이나 동경 정도는 남아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 훈련이라고 해봤자 개인 연습이나 훈련 협동심을 보겠다면서 마음이 맞지도 않는 학생과 팀을 이루어 줘서 평점이 멸망하는 경우만 생각 난다. 학창 시절이라 걔는 잘 있으려나?
“성화 씨가 그렇다면….그, 그런 건데. 뭐, 훈련이라고 해도 팀원 들간 합을 맞추는 정도고…. 나머지는 개인들이 각자 훈련하는 정도네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여…?”
아마 내 스스로 생각 하기를 [이게 끝?] 이라는 표정이 되어서 지혜 씨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어…. 뭐가 부족한 걸까요?”
“회사측에서 준비해준 화려한 폭탄을 터트려 주면서 모형이나 표적판같은 게 땅땅 나오면서 그걸 맞추고 움직이는 그런 거여!”
“끄응…. 성화 씨는 헌터 일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음, 아니 일반 인들이 대기업이면 그렇게 해준다 생각 하는 걸까요? 역시 TV 방송용 훈련에서 잘못된거예요. 그냥 로망 같은 거 없이 연병장에서 훈련하거나 조성된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정도네요. 가끔 팀끼리 편을 나눠서 모의 야전을 하거나 공성전을 하는 정도?”
“에에에….”
내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은 것 같은데, 지혜 씨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 말이 거짓이 없음을 말 하였다.
“진짜 그게 끝이예요.”
“못 믿는 건 아닌데 뭔가 김이 빠진 느낌이라서요. 그래서 훈련할 때 팀원이 말을 엄청 안 듣는 건가여?”
팀원에 관한 이야기하니 무언가 달관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워낙 실전에서 구른 애들이다 보니까…. 개인 훈련이나 대항전이 아니면 단체훈련은 거들떠도 안보려해요. 실전에서도 징그럽게 보는 사이인데 훈련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이걸 말한 게 현준이고 한 대 쥐어박아주긴 했는데 역시 몇 대 더 박아버릴걸 그랬나 봐요.”
“그 정도로 끝냈 다는 것은 지혜 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봐여?”
“부정은 못 하겠네요…. 훈련이 있는 날 만큼은 팀원들에게 본인을 주제로 성희롱적인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말을 끝낸 지혜 씨는 남아 있는 잔을 다 비웠다.
그보다 현준 씨라…. 모르고 이야기를 들었다면 뭔가 팀 내의 분위기 메이커 혹은 색정광…? 정도로 들리겠지만, 오늘 그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겁나게 이 세계를 즐기고 있네.’
뭔가 부러우면서도 패배한 이기분은 뭘까?
지금은 지혜 씨가 있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정말로 패배한 기분은 들었다.
그보다 지혜 씨의 잔이 비었네.
가게 사장으로서, 대작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지혜 씨의 잔에 어떤 술을 따라줄지 고민을 하려 했지만, 문득 현준 씨의 표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 이 세상을 즐기고 있소! 라는 당당한 표정의 현준 씨.
뭐지? 왜 꼴받지?
그렇기에 나는 머그컵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성화 씨…?”
지혜 씨가 당황을 하였지만 지금의 나는 이유 모를 분노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 분노를 가진 채로 지혜 씨의 옆에 다가 갔는데, 지혜 씨의 자세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 그대로였다. 게다가 나의 돌발행동으로 인해서 당황해서 그런지 더욱더 딱딱한 자세였다.
나에게 나쁘지 않은 자세라서…. 그렇게 지혜 씨 허벅지 위에 앉았다.
“저어어어어…. 성화 씨이이이이?”
당황하는지혜 씨의 목소리 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혜 씨의 허벅지 위에 앉아서 그런지 테이블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등에 기댈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지혜 씨의 비어 있는 잔을 대신해서 내가든 머그컵을 들어 올렸다.
“뭐 해요 안마시고여? ‘사장님 표 적당히 섞은 칵테일’이랍니댜?”
그 말 한마디에 지혜 씨는 얼어붙어 버렸다.
응…? 이러면 좋아할거로 생각 했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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