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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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오랜만에…. 아니 며칠 만에 마셔서 그런지 조금 몽롱하였다. 이게 다 프림탓이다. 이것저것 일이 있으니 계속 술을 마실 타이밍을 못 잡다 보니 술에 약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겨우 세잔? 아니 두잔 하고도 몇 모금이었나? 어라? 지금 내가 만든 칵테일을 마셨던가? 음으음~아무래도 좋다.
누군가를 떠올리니 울컥해 버려서 저지른 짓이지만, 생각보다 편안한 자리였다. 허리가 좀 비어서 조금 불편한점을 빼면?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 건 이 세상에서도 같다.
“어. 음…. 지금 현재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요…. 그래도 앉으실 거면 옆에 앉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냥 옆에 앉아 주시면 안 될까요오!?”
‘??’
아니 왜? 연인 사이 정도면 이 정도야 괜찮지 않은가? 아니 관계의 깊이에 따라서 이런 행동의 강도가 변할 수 있겠다만…. 지혜 씨 같은 헌터면 오히려 술집에서 남자를 끼고 그럴 것 같은데 내 착각인 것일까?
아니 착각이 아니라 그런 전제하면 안 된다. 기본적인 대화 정보를 들어 보면 회식정도에서 엄청 퍼마신다고 했지 그런 술집을 간다는 뉘앙스도 없었다. 게다가 위스키도 어려워하는 모습이 이성을 옆에 끼고 마시는 그런 곳에는 가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떻게 아냐고? 대충 영업 시간에 온갖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지혜 씨 말대로 자리를 옮길까 싶지만…. 이미 저지른 것 어쩌겠는가?
마지막에 마신 술의 알콜까지 내 몸속을 돌기 시작하는지 몸이 가는 데로 머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심하게 흔들거리지는 않았지만, 흔들 거리다 지혜 씨의 가슴팍에 얼굴이 닿기도 하였다. 물론 의도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기에 나도 모르게 계속 흔들거리면서 앉은 자리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지혜 씨는 향수를 안 쓰는 것일까? 정장을 입었기에 향수를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가게에 들어왔을 때 향이 나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이번에 가까이 붙어 있어 보니 향수를 안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향수의 향보다 살냄새가 난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역전 세계랍시고 냄새 같은 것도 역전일까 싶어서 살짝 걱정한 적도 있었는데, 그냥 성별이 다르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머리가 미약하게 흔들리며 지혜 씨의 가슴팍에 살짝 닿을 때마다 달콤한 살냄새가 조금씩 느껴졌다.
그렇게 지금 현재를 즐기고 있던 내가 못마땅 했던 것일까? 지혜 씨가 말을 걸어오는데 뭔가 다급한 느낌이었다? 다급할 일이 있나?
“으아악! 뭐라도 말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자꾸 그러시면 앞으로 술 마시는 거 금지 할거예요!?”
술에 취해서 그런지 두둥실 떠 있는 기분과, 기분 좋은 흔들림을 뒤로한 채로 지혜 씨가 저러는 이유에 관하여 고민을 해 보았다.
아! 말을 안 해서 조바심이 난 거구나!
내가 말을 안 하니까 본인 나름대로 조바심이 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화해의 의미를 담아서 내가 마시던 머그컵을 지혜 씨 입 근처까지 가져다주었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 지혜 씨 위에 앉은 이유가 이 칵테일을 주기 위해서였던가? 왠지 모르게 생각하면 울컥하는 사람도 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신나게 마실 시간이 아닌가?
“아, 그건 안대여. 자 한잔 마셔봐요. ‘사장님표 적당적당히 계량한 칵테일’인데 한번 마셔바여.”
“아니 성화 씨 이게 아니잖아요…!”
지혜 씨가 목소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곤란 하다는 듯이 나 화났다는 듯한 말투인데…. 어라? 왜 화내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혜 씨 온다 했으니 용모단정하게 옆 머리카락까지 꼼꼼하게 빗었고…. 알콜 상태나 맛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며, 내가 지혜 씨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것쯤은 무겁지도 않을 것이다.
화내는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이었다.
“자! 마셔바여! 마시써여!”
“으으…. 성화 씨이이….”
그냥 웃으면서 술을 같이 마시자고 권유할 뿐이었다.
역시 술은 항상 옳은 것일까? 화를 내었다 생각되는지혜 씨가 점점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당한 느낌이랄까?
“이제 슬슬 팔이 아픈데여….”
“하아…. 이번만이예요?”
“아싸“
한숨을 살짝 쉬고는 내가 먹여주는 적당적당 칵테일을 마셔주기 시작하였다.
결국, 내 말을 들어 주는 지혜 씨였다.
다 큰 어른이 떠먹여 주는 것을 받아먹는 모습에 뭔가 말로 표현 못할 귀여움이 느껴 지는데…. 이거 귀엽다 말하면 화내겠지? 말을 할까 말까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하지 않고 나만의 추억으로 남기는 것으로 하였다.
그렇게 술을 한 모금 정도? 아니 무게감으로는 반 정도를 마시고는 머그컵에서 입을 뗐다.
“자, 다 마셨으니까 옆에 앉…. 머어 하시는 거에예요…?”
“잘해쓰니까 상? 주는 건데여?”
내 말을 잘 들어줬기에 나름의 상이랍시고 들고 있던 머그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 손은 지혜 씨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한 손은 지혜 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헌터라서 머릿결이 거칠 줄 알았는데 역시 편견이었나보다. 만질 때마다 비단실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볼 또한 쫀득쫀뜩한 맛이 있는데, 헌터 일을 그만두면 연예인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행동이 못마땅 했는지 지혜 씨는 내 손을 잡고는 타이르듯이 말을 걸어왔다.
“하아…. 자, 성화 씨 진정하고 옆에 앉아서 이야기해요. 네?”
“시른 데에에….”
그 말하고는 탁자 위에 있던 머그컵을 들려 하였지만, 이번에도 지혜 씨가 내 손을 막았다.
“자, 술은 그만 마시고 그냥 이야기해요? 네?”
“으으….그치마아안”
이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옆으로 앉는 다는 어정쩡한 자세로 있어서 허리가 아파서 그랬던 것일까? 그냥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으악! 성화 씨이이이이!! 더 심해졌잖아요!”
그냥 몸을 돌려서 지혜 씨를 등받이 삼아 앉게 되었다.
“에헷.”
이런 행동조차 즐거운 것일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즐거운 건 나 혼자뿐인지 지혜 씨의 한숨이 늘기 시작했다.
“하아…. 저 성화 씨 원래 취하면 아무한테나 그러지 않죠?
“치하면요?”
“네, 취하면요. 솔직히 걱정될지경인데요?”
지혜 씨 말에 생각해보니…. 술을 마시고 취한다면…. 이때까지 원패턴이었네.
우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지금 현재 상황이 상황인지라 즐거움에 웃음만이 가득 하였다.
“머 집에서 한껏 취하거나 가게에서 하아아안참 마신 다음에 다음에…. 담배나 피우겠져…? 흐흠, 같이 피우실래여…?”
이성으로써 감점이 될 만한 요인 같지만, 그래도 숨기기는 싫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안믿는 눈치였다.
“정말이지 손이 많이가는 사장님 같네요…끄으응. 정말로…. 그러니까 그…. 여자랑 술 마신적 없어요?”
아하! 내가 생각하던 이유와 전혀 다른 이유로 걱정하고 있었구나. 역시 사람의 머릿속은 알 수 없다더니, 생각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구나.
그래도 여자랑 술을 마셨는지 묻는 질문에는 미묘한 감정이었다. 신경 써 주는 점을 기뻐해야 할까? 무심한 점에 화내야 할까?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기에 그저 지혜 씨를 등받이 삼아 푹 기대었다.
등은 편한데 목 부분이 은근 불편 했지만, 그래도 푹신하니 버틸 만 하였다. 헌터일 한다고 해서 전신이 딱딱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약간 당황을 하지만 내 분위기를 보고는 특별한 말하지 않았다.
즐겁게 있다가 너무 가라앉아서 그런 것일까?
술이 들어가서 높아졌던 텐션이 반작용이라도 온 것처럼 순식간에 낮아져 버렸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해보았지만, 어떻게 말할지 감이 오지 않기에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혹시…. 지금 담배있나요?”
“네? 아, 있긴 한데…. 빨간 담배도 괜찮으신가요?”
“상관없어요.”
역시 지혜 씨는 분위기를 잘 보는 것 같다. 중간 관리직이라는 직책 때문에 눈치가 많은 걸까?
어찌 되었든 내가 앉아 있어서 불편한 자세지만, 지혜 씨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연초를 내 손에 쥐여 주고, 본인도 한 개비를 손에 쥐었다.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려 하지만 지혜 씨 먼저 피워라는 듯이 손짓을 몇 번 해주니 그제야 자신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번에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려 하였지만, 내가 거절하였다.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그냥 물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불을 끈 지혜 씨를 향해 몸을 살짝 틀고 고개도 틀었다. 그리고 입에 문 담배를 지혜 씨의 담배 끝부분에 대었다.
그냥…. 라이터 불이 싫어서 불 좀 빌릴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당황하는지혜 씨.
내 머리 위에 재가 떨어지지 않게 조절하다가 당황해서 그런지 비어 있는 손으로 황급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쥐었다.
“악! 오늘따라 왜 이리 장난을 많이 쳐요!?”
“사소한 복수요?”
“네? 복수라뇨…? 저 뭔가 잘못 했나요?”
“했죠?”
담배를 한 손에 쥔 채로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머그컵을 다시 쥐었지만, 이번에는 지혜 씨가 막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정도로 고민을 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감도 못 잡는 것 같았다.
“자, 지혜 씨? 제 능력이 뭐죠…?”
“은시…ㄴ…아…어, 으음 죄송해요?”
내 능력을 떠올리더니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눈치를 챘다.
지혜 씨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침울해하는데. 그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서로가 무엇을 바라보며 생각하는지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조금은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가볍게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충분하겠지?
“잘못 했으면 이야기나 해 줘요.”
“네? 어떤 이야기요?”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혜 씨 허벅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서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불편한 자리이긴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나쁘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주제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글쎄요? 그냥 사소한 이야기부터 해요. 서로를 알아가는데 이런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
내가 그 말을 끝내자 지혜 씨는 말없이 나를 안아 줄 뿐이었다.
어, 어라? 너무 분위기를 잡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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