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너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10)
* * *
지혜 씨에게 안겨 있으니 따뜻한 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온기 몇 주 만에 느끼는 것일까? 물론 가장 최근은 지혜 씨와 하룻밤 같이 잔 그날이다. 순수하게 잠만 잤던 그날이다.
나쁘지 않은 느낌에 담배를 피우면서 따뜻함을 즐기고 있는데, 지혜 씨의 움직임이 딱딱하다고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 고개를 위로 돌리니,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었던 것이다.
하긴, 고개를 잘못 돌렸다가는 사람 머리카락을 태울 수도 있거니와 재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아, 미아네여! 이거라도 쓰세여!”
“으허…. 고마워요.”
말은 못 하겠고 재가 떨어지거나 불이 붙을 까 봐 엄청 천천히 피웠나보다. 그래도 재가 조금은 내 머리에 떨어진 듯하네, 일단은 재떨이를 대신할 것을 지혜 씨에게 주었다.
“이걸로 괜찮은 건가요?”
“머가요?”
“아니 그…. 유리잔에 술인데 조금 그렇지 않나요?”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여 오는데, 내가 준 것은 빈 잔에 진을 넣어서 주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은 구성인데 아무렴, 어떠한가? 재떨이 가지러가기가 싫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의 감촉이 딱 좋았다. 기분 좋게 취함과 동시에 부드러운 쿠션감에서 오는 두둥실 거리는 그 느낌. 아 이거 내일 숙취각이다. 부탁해 내일의 나!
“음…. 유리잔을 직접 지지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가끔 그래 쓰기도하고여….”
“안, 안 더럽나요?!”
“씼으면 깨끗해져요! 어쨌든 훈련 어떠셨나요…?”
딱히 앉고 나니 할 이야기도 없었고 담배도 피우고 있겠다…. 훈련 이야기를 되도록 피하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기에 다시 한 번 더 질문하였다.
“으음…. 최대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역시 궁금한가 봐요?”
“녜!”
“이거만 다 피우고 말해요 네?”
“좋아여!”
솔직히 어떤 일이 있어서 머리 아픈 일이 많다는 건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도 불안한 자세에서 담배를 피우는 채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그랬는지 다 피우고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기다려서 손해 볼일은 없었기에 잠시나마 같이 담배를 피우는 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있었다.
베란다에서 야경을 보면서 피우는 맞담배 같은 그런 로망은 없지만, 폐점 시간의 가게에서 단둘이 엉긴 채로 한대 피운다니….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이거 다음의 일에 관해서 망상하게 되지만 어디까지나 망상이다. 지혜 씨는 내가 순진한줄 알고 있기에 차마 말을 못 때겠다. 이렇고 저런 이야기 같은 망상을 하다가 현준이의 얼굴이 생각나자 왠지 모르게 술기운이 조금씩 사라졌다.
아무리 술 기운이라지만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임시 재떨이를 들고 있는지혜 씨는 팔도 안 아픈 것인지 받은 자세 그대로 들고 있었다. 내가 재를 털려고 할 때마다 가져다주는 것이 은근 편리한데…?
서로 비슷하게 담배를 태운이후 잔 안에 꽁초를 버리니 잔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나 또한 무릎 위에서 내려와서 옆에 앉았다. 그때 들려오는 아쉬움이 섞인 한마디가 들렸지만,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뭔가…. 술이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보니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계속 허벅지위에서 꼼지락대면 부담이 갈까 봐 내려온 것이다.
이걸 맨정신으로 어떻게 한데….
그렇게 서로가 어색한 분위기에 빠지기 전에 남아 있는 다른잔을 들어서 진과 보드카를 섞기 시작했다.
“어엄, 너무 마시는 것 아닐까요? 아니 취하면 저…. 저야…. 크흠”
“오늘은 마시기로 했잖아요?”
“저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일 출근 괜찮겠어요?”
“못 일어나면 하루 쉬죠.”
“끄으응….”
이상한 소리를 내는 지혜 씨를 뒤로한 채로 적당히 보드카랑 진을 섞었다.
이 술의 이름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진만 마시기에는 취향이 심하게 갈릴지도 몰라서 희석하는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물이나 토닉워터를 사용하겠지만, 지금 현재 테이블 위에 없으니 보드카를 활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보드카 비율을 높여서 만든 술을 지혜 씨에게 건네었다.
“이름은 없지만 한잔 드셔보세요. 초록병에 들어간 화학식으로 구성된 무언가의 술보다는 괜찮을 것이에요.”
지혜 씨는 내 옆에서 잔을 받더니 쓴웃음을 지으면서 곤란하다는 듯한 말을 하였다.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일반 소주를 엄청 싫어하시네요?”
“소주는 전통방식만 인정할 거예요. 초록병에 들어간 무언가의 액체는 술이 아니에요.”
“흐음…. 그런가요? 일단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내 말만 하고는 서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술을 마시자 들어오는 다양한 향이 내 코를 간지르지만, 평소와 다른 맛이다. 평가하자면 향이 옅지만 평소에 못 느끼던 그런 향까지 느껴지는 그런 맛?
진이 향이가장 강하다 보니 진의 다양한 맛이 나고 있다. 보드카는 향이 없는 술로 알려져 있지만 완전히 없지는 않다.
그렇게 한 모금을 끝낸 지혜 씨는….
“햐! 소주보다는 맛은 있네요.”
“그렇죠!? 초록병보단 괜찮죠?!”
“괜찮지만…. 초록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엑….”
내가 질색하듯이 바라보자 깜짝 놀란 지혜 씨는 보충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모습도 괜찮네.
“그, 그러니까 이거 돈을 받는 다면 얼마죠?”
“으음. ㅇㅇ,ㅇㅇㅇ원요.”
“그렇다면 그 가격에 소주 몇 병이 나올까요?”
“ㅇ 병요….”
“그렇죠? 가격적 우위가 있으니까 마시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마아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가격 측면에서는…. 양과 잔 수가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약간의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양만 많은 술이잖아요?”
그렇게 반론을 하자 지혜 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달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머리를 만져 주는 손길 또한 괜찮았는데 이거 습관이 될지도 모르겠네.
“그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요?”
“극소수일 것 같은 발언인데요.”
“아뇨? 저도 자주 마시는 걸요?”
“으엑.”
내가 싫은 듯한 표정을 짓자 지혜 씨는 예상했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잔을 높이들었다.
조금은 마셔서 반쯤 남아 있는 잔안에 들어 있는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물을 마시고 있는 줄 알겠지만, 무려 40도나 되는 술이 들어가 있다.
그러고 보니 초록병에든 액체보다 높은 도수인데도 지혜 씨는 별말 없이 마시는 것이…. 역시 헌터는 독한 술을 좋아한다 라는 소문이 사실인 것일까?
“이런 술을 좋아하는 성화 씨가 있듯이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 또한 성화 씨의 술이 싫을 수도 있겠죠?”
“음….”
“결국 본인의 취향과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요.”
“그렇긴 하죠….”
내가 일방적으로 그 술을 싫어할 뿐이지…. 사람의 취향은 다양하다는 것 정도야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 지혜 씨가 약간 밉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납득을 시켜 주려는 모습에서 안도를 하였다.
“뭐어. 방금 모습은 어린아이 같아서 좋았어요.”
“어? 아니 어린아이라뇨!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모습이라 해주시죠!”
“꼬맹이.”
“바텐더!”
“애어른이”
“술꾼!”
…
…
그렇게 나를 부를 호칭을 가지고 지혜 씨와 아주 잠깐 말싸움하고 있으니 웃음이 먼저 터져 버렸다. 한참을 웃고난 뒤에 지혜 씨가 잘 보이도록 양손을 들었다.
“에이 씨…. 항복. 알아서 불러요”
“음 어떻게 부를까요?”
“꼬맹이만 아니면 돼요.”
벌칙게임 받는 것처럼 지혜 씨의 선언을 기다리는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하고 웃더니 자신이 정한 호칭을 불렀다.
“성화.”
“네?”
“서로 씨를 붙여가면서 계속 부르기에는 조금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편하게 불러요? 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라니.
오히려 먼저 말해줘서 감사할 뿐이었다. 이거 도대체 연인 사이에 호칭을 언제 어떻게 정리할지를 몰라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혜 씨… 아니 지혜가 먼저 말을 꺼내주다니! 마음 바뀌면 곤란하기에 빠르게 대답하였다.
“네! 그렇게 불러요! 그, 그러니까 지혜?”
“네에~ 성화야?”
“킥”
“풉”
오늘따라 왜 이리도 웃음이 자주 터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손님 없는 가게에서 고요한 분위기를 배경삼아 지혜와 같이 한참을 마시기 시작하며 잡담을 시작하였다.
역시 헌터들의 훈련에 관한 로망은 로망이었을 뿐이었다. 듣기만 해도 개판인 상태네. 김지나 씨에게 혼안난 게 어디야? 그보다 나리씨는 의외로 크구나…?
그렇게 이야기가 깊어질 수록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일까? 다시 취하는 느낌이 들기도 시작했고 이전에 했던 말을 되새겨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시선의 차이라…. 지혜 씨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온다면야…. 역시 물어봐야겠지?
“그보다 지혜 씨는 저를 어떻게 생각해여?”
“네? 좋아해요!”
즉답이 돌아오지만 내가 원한 대답은 그런 대답이 아니었다.
좀 더 구체적인…. 뭐랄까…. 명확함이 느껴지는 대답?
“그러니까 저를 어떻게 생각하며, 조,좋….아니 사랑하는 거에여?”
내 말을 들은 지혜 씨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대답 선택을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비장한 표정…. 그런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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