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세계의 음료가게-128화 (128/140)

〈 128화 〉 혼자가 아닌 건 좋은데 이건좀(1)

* * *

지혜와 함께마신 이튿날의 영업은 결국 임시휴업으로 처리하였다. 가끔 우울해서 술을 퍼마신 다음 이튿날 가게를 쉬어본적이 몇 번 있다 보니 자연스레 쉬게 되었다. 가게수익과 생활비는…. 이번 달 술 컬렉션 구매를 조금 참으면 괜찮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튿날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기만 하였다. 지혜도 숙취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인지 안 아픈 척을 하다가 일어설 때 휘청거리는 것이 들켜서 결국 바닥에 같이 누워서 뒹굴거렸다. 일상적인 대화나 핸드폰을 만지거나 술 컬렉션을 구경하면서 대화하는 정도? 나란히 누워 있어서 그런지 지혜의 달콤한 향기가 어제보다 진한 것 같았지만…. 그건 기분 탓이라 생각하자. 내가 냄새를 맡는 행동을 슬쩍슬쩍 취하긴 했지만, 지혜는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역시 역전 세계 다운 건가…?

그리고 프림이 읽고 있던 책을 뺏을지 말지 진지하게 생각도 했다. 아무리 노예제를 채택하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의 투쟁’이라니 그런 책은 안 된다! 게다가 프림이 구매한 책 옆에는 혁명과 관련된 책이 많았는데…. 그냥 관심이 많아서 읽는 것이겠지…?

그렇게 저녁까지 뒹굴거리니 2일 이상 외박은 여러 가지 의미로 곤란하다는 이유로 기숙사로 돌아간다 하였다. 아마 저녁밥을 먹으려던 시점에서 걸려 온 전화탓 같은데…. 언니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지나 씨의 연락은 아니고 다른 언니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전화를 받은 뒤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 같은데…. 누구인지 몰라도 민폐였다.

일단 저녁은 기숙사로 돌아가서 잔다는 전제하에 저녁밥을 먹었지만, 화려한 요리실력 같은 것은 없기에, 냉장고에 보관된 신선식품을 적당히 먹는 정도로 그쳤다.

아니 뭐, 인스턴트보다는 신선한야채도 많고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닭가슴살이 듬뿍 들어간 샐러드 팩 정도면 좋지 않은가? 사실 요리 몇 번 해 먹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결국 며칠 못 가서 항복을 선언하였다.

1인분 분량만 요리하려니 효율이 나쁘기 때문이다. 역시 요리를 한다면 2인분 이상 아닐까?

2인분…. 2인분…. 이른 생각이긴 하지만 결혼한다면 내가 요리해야하는 것일까? 진짜 자신 없는데….

냉장고 현황을 체크하는지혜도 ‘이 정도면 괜찮네…. 요리에 자신이 없구나.’ 라는 눈빛을 받기는 했지만, 요리잘하는 애인에 대한 환상을 깨서 미안 해지네. 날을 잡아서 식사초대를 하던지 해야 요리를 못 하는 애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상념을 떨쳐 내고 가게에서 일이나 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벗어나지를 못 하는 것은 자영업의 단점이 아닐까? 그보다 나가고 싶더라…. 지혜와 데이트…. 데이트? 응?

한 단어로 인해서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그 기분을 아는가? 왜 이때까지 깜빡했지?

‘지혜한테 데이트에 관해서 말 했…던가?’

땀이 잘 흐르지 않는 체질이라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식은땀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사, 사랑하는지 이야기 같은 거 물어볼 때 돌아갈 때까지 답변을 안 줬던 이유가 그거였냐!?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까지 입이 가벼울리가 없잖아? 없나…?

일단은 뭔가 일이 있었는데 분명 안 좋은 쪽으로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쎄한상태다.

이런 상태를 노린 것인지, 쥐고 있는 손에서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죄를 지은 죄인처럼 핸드폰을 바라보는데….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니 내가 저지른 사건이니까 당사자는 나인가?

­ 오빠~ 뭐 해?

몇 주 전이었다면 별생각 없이 답장을 하였겠지만, 지금은 좀 곤란하다. 그래도 약속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가게보고 있지? 그보다 오늘은 바쁜가 봐? 가게에 안 오고?

­아니 뭐, 가끔 안 갈 때도 있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네???

최근 들어서 수아가 잘 보이지 않기는 한데…. 살짝 불안 한 것은 기분 탓 이려나? 뻔질나게 가게를 들리던 수아가 어느 순간부터 가게를 잘 오지 않으니 걱정되기는 한다.

아마 남자 친구 같은 게 생기지 않았을까? 수아 스타일이 좀…. 잘 놀것 같이 입는다.

패션 감각도 투박하지만 단정한 스타일의 지혜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최근 들어 잘 안입지만, 핫팬츠에 검은 스타킹 형광색포인트를 준 옷이나 신발 그리고 활동성이 좋은 민소매 옷을 입는다. 대부분 그렇게 입지만 최근에는 추워서 그런지 두껍고 긴 점퍼를 입고 다니더라, 한번은 내가 춥지 않은지 물어 봤더니 핫팩이 점퍼안에 가득해서 따뜻하다고 하였다. 이렇게 다니는 편이 활동하기 편하다나 뭐라나…. 아마 얼어 죽어도 포기못 하는 패션 같은 무언가라 생각된다.

그리고 예상된 질문이 올 것 같아서 긴장해서 그런지 존댓말이 나가 버렸다.

­그래서 데이트 말인데 사정이 생겨서 다음 주로 할 건데. 다음 주 오빠 가게휴일 날 어때?

­네! 네 그러야죠!

­음? 오빠~ 답변이 이상한데에?

와씨…. 너무 긴장해 버렸다. 지혜 씨에게 말도 안 한 데이트를 벌써 하게 되다니. 그간 아주머니한테 신세 진 것을 생각하면 한 번쯤이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차라리 본인 남친이랑 데이트를 가지 나 같이 나이 많은 쪽이 뭐가 좋다고. 아니 그보다 남친이 있던 걸 물어본 적이 있던가? 박씨 아주머니야 농담으로 사귀어라 하지만 본인의 상태는 물어 본 적이 없었다. ‘오빠 사귀자’ 라는 것도 평소에 워낙 장난적으로 말해와서 남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수아 같은 스타일에 없는 게 이상하겠지? 가벼운 느낌의 동생과의 데이트겠지?

­아니, 그럴 리가! 어쨌든 어디로 갈 예정이야?

­음~ 도심쪽에 있는 아쿠아리움 정도면 어때? 괜찮을 것 같은데.

­응! 그럼 다음 주 휴일날 봐~!

일단 약속은 잡혔다. 아쿠아리움 정도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수아인데 이상한 일이 일어날 일도 없을 것이며, 어디까지나 오빠 동생사이니까….

이렇게 약속을 잡고나니 씁쓸함에 뭔가 아닌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지혜로부터 문자 하나가 와서 그런 표정을 짓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 가실 건가요?

­네??

주어 없는 문자가 도착을 하였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겼을 때의 이야기 인가…?

뭐 일단은 주어를 물어봐야겠지 하면서 질문을 하려고 하였지만, 지혜의 문자가 더 빨랐다.

­어~. 박.수.아와 같이 놀러 가는 일정요 언제 잡으셨나요?

오우…. 입이 방정이지…. 어제 숙취로 죽어날 때 지혜의 반응이 약간은 쌀쌀하면서도 뭔가 나를 믿어 준다는 반응을 보여줬는데 그것이었냐!? 문자로 글을 읽는 것 같지만, 뭔가 뚝뚝 끊어지게 대화해오는 것 같은 느낌은 내 착각이 아니겠…지? 사이 생각보다 안 좋았던데….

꼬여 버린 상황에 없어진 숙취가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 될뻔하였지만…. 차라리 좋은 게 아닐까? 숨길 생각은 없었고 무조건 말은 해야겠다. 생각해왔으며, 맨정신으로 말했어봐 그게 더 감당이 안 될 일일 것 같다.

차라리 이미 저질러진 일이기도하고…. 언젠가 말할 일이었다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슬슬 가게를 오픈할 준비도 해야 하니까 간결하게 답장을 하는 편이 좋겠지? 절대로 계속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서 이러는 게 맞다…. 어쩌겠는가? 지른 사람이 죄인인 것을.

­그, 다, 다음 주 휴일날 도심에 있다는 아쿠아리움 가자는 데요….?

­네! 알겠습니다! 때마침 그 전날 복귀하는 날이네요 그러니까 그날 ‘꼭’ 비워 둘게요 아 이제 출발연설 시작하니까 저녁쯤 문.자 할게요

­네, 네! 천천히 해주세요!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나니까 진이 다 빠진 기분이었다. 하이고…. 머리야 진짜 사귀는 것도 힘든 일 인 것 같다. 이것저것 신경을 쓸 일도 많고…. 이런 상황을 하렘을 즐기는 남성은 어떻게 버티는 것일까? 너무 소시민적인 마인드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

슬슬 가게를 오픈할 준비를 할 겸 옷매무새를 재 정리하면서 프림에게 청소 지시등을 하였다.

오늘은 특별히 완전한 바텐더 복장으로 입어 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소소한 정리하면서 가게의 오픈 준비하게 되었다.

***

그래 지혜와 어제 좋은 일도 있어서 오늘도 좋은 일이 이어지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인가?

“와! 진짜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정말귀여운 남자네! 감지 능력자가 아니면 가끔 인식하기 어렵다던데 어때 한번 감지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게 한번 능력 써봐봐!”

바 영업시간이 아닌데 이상한 손님이 들어왔다. 심지어 감지 능력자 같았다. 일단 표정은 손님 접대를 위해서 웃는 얼굴이지만, 속으로는 해머를 들고 손님의 정수리에 그대로 찍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였다.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지….

경찰을 불러? 아니 박씨 아주머니가 이 동네에서 힘좀 있는 것 같은데 수아를 부르는 편이 좋을지도…?

그건 최후의 방법으로 두고 일단 손님부터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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