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혼자가 아닌 건 좋은데 이건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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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울컥해서 욕이 나온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동향사람에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있다면 바로 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현재의 기분을 설명하자면 타인에게는 상관없지만 아는 사람 한정으로 꽁꽁 숨겨둔 무언가를 들키는 그 기분을 실시간으로 맛보는 중이었다. 그런 기분과 함께 표정이 썩어들어가며 순간적으로 열이 올랐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본인은 남자 같지 않나요?!”
“부정은 안 해 구르고 굴러봐 싫어도 이런 성격이 된다니까?”
아무런 타격이 없다는 듯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차를 쓴날 어쩔 수 없이 문서작업을 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나 하기 싫어요 포스가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으며,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두껍게 끼여 있었다.
나에게 눈길 하나 안 주면서 타자를 치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풀리지 않는 듯이 기지개를 켜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손가락을 비비면서 질문을 해 왔다.
“그보다 담배좀 피워도 돼?”
“금연인데요?”
“에 할망구들은 여기서 잘도 피운다던데”
맥주를 주문 할 때도 그렇고 이 가게의 사정을 잘 안다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 흡연을 하거나 맥주를 마시는 손님에 나이가 드신 여성들이라면 떠오르는 손님이 있었다. 대충 관록이 느껴지는 은퇴연령의 헌터 손님 두 분을 말하는 것 같았다. 같은 회사 소속인 것일까?
“저, 지금 말하는 분이 한분은 사투리를 쓰고 또 한분은 정중한 말투 쓰시는 그분들…?”
“대충 그 두 사람이면 맞을걸? 곧 은퇴 예정이라 실권이 많이 없지만 짬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음, 금연인데 말이죠….”
“추워서 나가기 싫은 걸.”
금연이라고 말을 하였지만, 동향사람이라고 할지…. 대화 장소가 필요하다던 현준 씨의 말이 생각나서 그런지…. 아니 그 이전에 퀭해 보이는 모습에 측은함을 느껴서일까?
“하아…. 잠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프림에게 손짓하니까 프림이 천천히 걸어서 문 앞에 걸린 팻말을 클로즈로 바꾼뒤 문을 잠구었다.
아, 담배 냄새 어떻게 빼지 걱정하던 나를 신경도 안 쓰며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면서 꺼낸 물건은 전자담배였다. 궐련 보다는 향이 덜하긴 하지.
“전담이니까 냄새 걱정 마.
그래도 양심은 있었나 보다. 환기를 어떻게 빡세게 할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담배를 피우면서 서류작업을 계속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사축이나 다름없는 모습보다는…. 내가 아는 여성과 동떨어진 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물론 이곳의 여성이라 생각하면 아주 어울리면 어울린다지만….
“진짜 여성인데 여자 같지 않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말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뭔가 안어울려요. 서로의 정체를 알아서 그런 걸까요?”
“그렇지? 부정은 안 해. 관념이 다른 곳에서 살다 보면 적응 못 하는 분류가 더 이상한 거 아닐까? 그래도 이건 말할 수 있다. 현준놈 그 새끼처럼 즐기는 건 진짜 이상한 거야.”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현준 씨의 뒷담을 하는데, 도대체 평판이 어떻길래…? 대충 예상은 가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기에 질문하게 되었다.
“엄~청 즐기나 봐요?”
에둘러 질문을 하였지만, 그녀의 답변은 돌직구 그 자체였다.
“걸레야.”
“엑…”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본인이 할 말만 하고는 담배를 문 채로 문서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본인이 말하고도 좀 아닌가 싶은지,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잡고는 말을 하였다.
“아니 걸레는 좀 아닌가.”
“그, 그렇죠?”
“응, 표현상 좀 그러네. 그럼 오락실의 스틱 같은 놈이야.”
“….”
이때까지 사회에 찌들은 사회인의 표정이었다면, 이번만큼은 활짝웃으면서 대답하는 모습이 아주그냥 맥이려고 하는 말 같았다.
이거 내가 지금 경찰에 신고하면 성추행으로 몰고갈수 있으려나? 고민하던 그때 별것 아니라는 듯이 손으로 좌우로 젓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본인 말로는 파라다이스라는데, 솔직히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이어지면 질리지 않을까?”
“그건 사람 나름 아닐까요…?”
“그건 그래, 뭐 최근에는 자제하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한 여성한테 꼽혔다나 뭐라나.”
“연애 이야기인가요?”
갑작스레 이야기가 연애로 빠지려는 것 같아서…. 아니 누군가의 연애사라면 재미있는 이야깃 거리이니 들을 준비를 하였지만, 내가 기대하던 대답은 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나도 몰라. 그보다 잘도 순한 성격으로 적응했네.”
“네? 갑자기 뭔 소리죠?”
대화하면서 문서작업하기에는 집중되지않아서였을까? 문서작업을 관두고는 전담을 잡은 손으로 턱을 괴고는 나를 바라보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었다.
“아니, 뭐랄까…. 우리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이 세계가 조금 돌은 건 알잖아? 인류 부흥이니 뭐니, 다른 세계 침공 구실이나 만들고 있고 말이지.”
“갑자기 무거운 이야기인가요?”
“무겁다기보다는…. 잡담이겠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잡담?”
“재미없는 잡담일 것 같네요. 이제 적응도 다 된 것 같으니까요.”
평소에도 무시해 오려고 노력해온 주제를 대화 내용으로 쓰겠다니. 애써 무시해왔으며 적응이 되었다 생각하는 주제라서 그런지 솔직히 대화할 자신이 없는 주제였다.
“그렇긴 해 오랫동안 살다 보면 적응돼 버리지.”
“그보다 여기에 온 용건이 뭔가요? 이런 잡담이나 얼굴 한번 보자 가 아닌 것 같은데요?”
말을 슬쩍슬쩍 돌리거나 나에 관해서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 것일까? 나 또한 대화가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대화하게 되었다.
“용건? 아, 그래서 우리 준서에게 바람 넣은 년이 누군가 싶어서 찾아보려 했는데, 정보에 정보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뭐. 세상 좁지 않아? 동향사람이 바람을 넣었다니. 어쨌든 입대는 아니야.”
“전생의 군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의 영향으로 인해서 이곳의 군을 의심하는 건가요?”
이곳에서 군이라하면 주민을 지키며, 실질적으로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미지의 적과 상시 전쟁 중인 상황에 있는 집단이다. 헌터들이 군의 의뢰를 받는 사기업 용병집단이면, 군은 헌터로부터 받은 정보나 결과를 취합해서 총력전 혹은 전면전에 나서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전생의 기억이 영향을 주는 것인가 싶어서 질문을 하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아냐, 난 애초에 여자였고 군에 관해서 전생지식은 없는 편이지. 오히려 여기서 군대에 관해 배웠지.“
“흠, 그렇다면 준서라는 사람이 입대하면 팀에 공백이 생겨서 그러는 것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이곳에서의 군은 일반적인 국가를 지키는 ‘군’ 이라기보다는…. 반쯤 세뇌된 놈들 같아서 말이야. 우리 전생자 모임에서만 하는 이야기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는 말고.”
무언가 위험한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상체를 숙여서 조심히 이야기하는데, 군에 입대하면 세뇌라도 당하는 것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뭐, 조국을 위해서 희생해라부터 시작해서 인류는 위대하다 라는 내용으로 세뇌시키는 것일까?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되묻게 되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냥 소문에 의해서 믿는 거라면 근거가 부족할지도 모르겠네요.”
“아아…. 왜 알고 있냐고?”
역시 안 믿어 주나 중얼거리면서 조금 더 상체를 숙이면서 누가 듣지 말라고 더 낮은 목소리를 냈지만, 지혜보다 빈약한 가슴이라 그런지 비밀대화를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전생자 모임에서 탈퇴라 할지, 참가하지 않게 된 놈이 있는데 반쯤 국수주의 광신자가 되어서 말이야.”
“예?”
“원래 이 세계를 즐기겠다 말하던 놈인데 입대후에 혼이 바뀌었다 할 정도로 사람이 바뀌어서 군은 전생자 모임에서 기피대상 1호야.”
“그래서 팀원이 그런 곳에 가지 않았으면 하다. 이 말 인 건가요?”
“그렇지? 내 준서는 그런 곳 안 갔으면 하거든?”
흐음, 사람이 바뀔 정도로 군대에서 무언가를 당한다는 말인 걸까? 갑작스러운 정보라 그런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한정 의무 입대자를 제외하면 직업 군인 손님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국수주의적으로 변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음, 그보다 뭐라고 했지…? 내 준서…? 이거 혹시?
“그래서 본심은요?”
“뭐긴 뭐야 키잡이지.”
이때까지 보지 못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중지와 검지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끼운 채로 엄지를 까딱이는 모습이 이때까지 도시 괴담을 이야기한 것 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냥 군과 관련된 모든 정보의 신뢰가 와장창하면서 깨지는 느낌이었다.
“우와… 깬다. “
“깨긴 뭘 깨!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거나 이곳의 남성 같지 않은 남성! 그런 남자 여기서 드물어!”
내가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이런 느낌이었냐 라는 분위기가 되었다.
“와 전생에 남자들이 이성에 관해서 헛소리할 때 내가 바라보던 시선이 이런 모습이었나? 와 이거 마음이 아픈데?”
“아픈 걸 알면 그런 발언은 그만두시죠?”
“근데 오히려 두근거리는데…? 준서한테 가르쳐봐?”
“야이 씨….”
욕설이 절로 나오게 하는 손님은 드문데 그것도 연속으로 나오게 하다니, 생각보다 강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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