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혼자가 아닌 건 좋은데 이건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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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씹는 것이 취미라도 되는 것일까? 이번에도 얼음을 씹으면서 내 말을 듣던 그녀는 헌터가 된 동기에 대해 물으니 별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동기 중 하나는 능력 때문이겠지? 전조도 없이 눈떠보니 이세계일 때, 그때 능력하나는 정말 제어가 잘되더라고. 먹고 살려니까 헌터가 좀 더 많이 번다 정도?”
“능력이라하면 팀이 수색팀이니까 감지계열 맞죠?
“맞아, 그 희귀하다는 감지 능력이 있다는 것에 이게 특전인가 싶었지. 그때는 이세계니 뭐니 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했고 호기심도 있고 하니까? 그렇게 헌터일하게 되었지.”
“에 딱 그런 이유인가요? 설마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라는 중2병스러운 생각에 지원하게 된 것인가요?”
이전까지만 해도 이세계에서 눈을 뜨게 된 게 얼마나 짜증 나니 불만이니 같은 소리하다가 능력을 갖춘 호기심에 헌터를 지원했다 하면… 조금 그렇지 않은가? 말이 맞지 않아서 되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여 왔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올 만한 이야기겠지만, 당시에는 짜증 나고 혼란스러워도…. 그래도 이 세상의 ‘주인공’ 아닐까? 같은 생각은 한 번쯤은 했지. 안 했으면 그거 거짓말이다?”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같아서 놀릴 만한 꼬투리조차 없네요.”
“그게 나의 장점이지. 그보다. 세상의 주인공이니 뭐니 그런 생각은 한 달… 아니 한 주도 안 돼서 박살 나버렸지. 아니 대부분 이런 방법으로 정신을 차리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를 회상하는 모습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이거 괜히 트라우마를 건든 것일까?
“좋지 않은 추억이라면 뭐, 여기까지 말하셔도 상관없는데요?”
괜히 들어 봤자 분위기만 어색해질 것 같기에 이야기를 안 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미 지나간 추억이라는 듯이 말해 왔다.
“아냐 아냐.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기억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경험은 아니었거든…. 아니 나쁜 경험인가? 그냥 훈련소가 좇같았지.”
“어라 바로 실전에 투입돼서 훈련하거나 그러지는 않나요?”
“응? 신병을 게이트에 바로 투입할 이유는 없잖아? 미쳤다고 투입하겠어? 그냥 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아 좇됐…. 아니 난 좇 안달렸지. 그냥 조졌다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
“에….”
응? 훈련소에서 힘든 일이라도 있던 것일까? 내가 납득을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내가 납득하기 쉽게 설명해주기 시작하였다.
“아니 잘 생각해 봐. 특전이니 뭐니 해 봐야 감지 능력 하나뿐이잖아? 아니 이게 특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특출난 것은 능력뿐이라면 훈련소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어…. 육체적으로 고생 좀 했다?”
아마 훈련소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한 번 더 알게 되었다는 그런 전개 아닐까? 보통의 여성이 갑작스레 이세계에 떨어졌는데 이곳 기준에 적응이 쉽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상황일 것이다.
“맞아. 나름 적응을 하고 헌터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지 훈련소에서 사내놈이냐고 그런 소리도 엄청 들었지. 거기서 다시한 번 더 알게 되는 거야 아 내가 사는 곳과 다르구나…. 그래도 이점은 있더라? 이전 세상보다는 체력이 좋다는 정도?”
“너무 현실적인 문제라서 슬프기까지 한데요?”
“뭐, 그게 현실이니까. 결국 이야기 속의 주인공 정도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정도? 겠지? 그보다 리필좀 해 줘.”
“네에네에. 이번엔 좀 더 진하게 해 줘요?”
“그러면 좋지.”
“빈잔이나 줘 봐요.”
리필을 해주겠다 하니까, 얼음까지 깔끔하게 다 먹어서 비어 있는 잔을 내밀었다.
정말 깔끔하게도 마시고 먹었네….
아이스티 정도면 비싼 음료는 아니니까 리필 몇 번 정도는 상관이 없었다. 아니 대화상대가 되어 준 값이라 생각하면 싸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리필을 해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헌터일을 지원하게 된 이유는 알았지만, 헌터 일을 계속하는 이유 및 동기는 무엇일까?
“그보다 적성이 맞아서 헌터일을 계속하게 된 것인가요?”
다 만든 아이스티를 내밀면서 질문을 하였는데,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뭐, 계속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있었지. 바로 로망이 있다 정도?”
“로망요? 뉴스나 들려오는 이야기만 들어도 전쟁터 그 자체 던데요?”
헌터라는 직책이 말만 로망이 넘치지 실제 전쟁과 다름없는 일하기에, 로망이 있다는 말에 진심인지 물었지만, 전혀 다른 대답이 왔다.
“그거야. 실제로 들어가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그 로망이지. 바로 그게 결정적인 동기야.”
“아까부터 이야기에 너무 뜸 들이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결정적인 동기가 뭔데요?”
이야기가 늘어지는 기분이 들기에 직설적으로 물었더니 그녀는 리필받은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할지 말지를 조금 고민하였다. 말하기 싫은 모습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막상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런데…. 그 당시에 이래나 저래나 돈은 좀 필요했으니까. 헌터 일은 신입이라도 꽤 돈을 만지거든? 그래서 돈이라도 벌고 빨리 때려치자 생각하고 처음 게이트에 진입을 했을 때 그때 그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할 거야. 게이트에 처음 진입하면 뭐가 보일 것 같아?”
“어. 글쎄요? 아마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건 대부분 전면전 중인 게이트를 뉴스에서 봐서 그런 걸지도 몰라. 하지만 헌터들은 ‘야생게이트’ 라고 불리는 생성된 지 얼마 안 된 게이트를 주로 탐사를 하거든? 그때 게이트 너머에 있는 이 종족들은 아직 게이트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야. 게이트를 인지했으면 진즉에 이쪽으로 넘어왔을 것이고. 그럼 군대가 출동 하겠지.”
“그 말은…. 즉. 발견된 지 얼마 안 된 게이트에 들어가면 일반적인 자연 그대로의 상태라는 의미인가요?”
“맞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처음 게이트에 들어간 그날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콧소리를 살짝 흥얼 거릴 정도였다.
“첫 게이트가 정말로 멋진 곳이라도 나온 것인가요?”
너무나도 궁금하기에 질문을 하였더니 그녀는 진심이라는 듯이 이때까지 보지 못한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맞아! 진짜 가 본 사람만 느끼는 건데. 처음 게이트에 진입할 때는 긴장 그 자체였지. 들어가자마자 전투가 벌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처음 게이트에 들어가서 이세계에 진입했을 때 말이야.”
“진입 했을 때?”
“이곳 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 경관이 펼쳐졌지. 때마침 절벽 위에 형성된 게이트라서 내려다보기 딱 좋았는데 수십키로미터까지 쭉 뻗은 산림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을이라도 있는지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몇몇 마을이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었어. 아마 당산나무 처럼 마을의 수호신 느낌이겠지만 물어볼 방법이 없지…. 그리고 더 쩌는 게 뭔지 알어?”
“뭔데요?”
들뜬 아이처럼 자신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공유 하려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등 뒤를 돌아보면 수백 미터는 가뿐히 넘기는 수직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에서는 수십 개의 폭포가 형성되어 있었어. 이곳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잖아? 안 그래?”
“즉, 계단형식으로 된 절벽의 중간에 첫발을 디뎠다는 말이군요?”
“맞아. 딱 중간쯤? 거기서부터 자연 경관에 반해 버렸지. 그렇게 이곳저곳 게이트를 탐사하면서 자연경관에 푹 빠지게 되었다는 건데…. 아쉬운 건 결국 그 자연이 파괴되는 점일까?”
“그런가요….”
그녀는 자연이 파괴된다는 점이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말을 하는데…. 환경보호단체 쪽의 성향이 가까운 것일까?
게이트에 존재하는 종족과 평화협상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인권 단체도 있는데….
내가 고민하는 표정이 보였던 것일까?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하였다.
“뭐, 게이트가 파괴되는 건 어디까지나 아쉬운 거지 내 목숨 걸고 그곳을 지킬 생각은 없어.”
“으음.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표정에서 나왔나요?”
“아아. 이런 이야기하면…. 인권단체 쪽 성향인지에 대해서 전생자 모임에서 자주 듣거든.”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지만 미안 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말을 해 보려 하지만 대화 주제가 한정적이었다.
“음, 그렇다면 게이트가 아니라 이곳의 자연 경관을 보거나 찍는 것은 어떨까요? 그 편이 안전할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이야기 주제는 자연경관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내 의견에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음…. 규모나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는 게이트쪽이 압도적이지. 물론 이곳 자연 경관도 꽤 좋긴 해. 도시 바깥으로 나가려면 한 가지 문제가 있잖아? 안 그래? 여기도 별로 안전하지 않다는 점?”
그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 세상과 우리가 살던 세상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
헌터니 게이트니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다른점에서 파생된 문제가 있었다. 도시와 도시간의 이동이나 국가 간의 이동이 힘들다는 점이다.
왜냐면 게이트가 언제 어디서 열릴지도 모르기에…. 도시가 아닌지역에는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새어 나온 이 종족이 이곳에 촌락을 만들어서 정착하는 경우가 있어서 도시간 이동이나 자연 탐사는 돈이 많이드는 행위다.
“하긴…. 도시 장벽 안에서 나가기가 힘들긴 하죠….”
“맞아. 도시에서 도시간 이동할 때 빼고는 다들 장벽 안에서만 생활하잖아? 난 그게 답답해서 말이야…. 결국 한번 본 게이트의 풍경맛을 못 잊어서 헌터일을 계속하게 된 거지. 정말 시시한 이유지?”
“음. 본인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 같네요.”
시시하지 않다.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아닌가? 그렇기에 멋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이 쓰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자신 스스로 써내려가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가.
별것 아닌 이유라도 자신이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행한다면 그 또한 멋진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지. 그녀는 내가 보라는 듯이 반쯤 남은 아이스티를 흔들었다.
“우린 그저 이 아이스티처럼 흔해빠진 존재 중 하나야. 아마 엑스트라 N번 정도겠지? 주인공? 그럴 리가.”
이건 좀 동의 못할 발언 같았다.
그렇기에 아이스티 가루가 들어 있는 통을 살짝 흔들면서 통을 보여 주었다.
“흔해빠진 아이스티라고 해도…. 비율에 따라서 맛이 바뀌기도하고, 어떤 음료를 넣는가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죠. 오히려 흔하니까 더 좋은 것 아닐까요? 모난 돌이 정맞잖아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더니 이도 저도 아닌 답변을 해주었다.
“음. 생각이 서로 다르니까 뭐라 말은 못 하겠는데. 주인공이니 뭐니…. 그냥 지금을 살 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아이스티를 다 마셨다.
답답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세상을 살아왔는데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리 썩 좋은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입바른 소리 정도로 듣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을 꺽기는 싫었다.
“그 방식이 어떻든 지금 현재를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그 누구든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닐까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머리 아픈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겠지. 그런 나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하아…. 오늘은 철학적인 이야기하려고 온 게 아니라 심심해서 노가리 까러 온 건데 말이지…. 철학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네.”
“대충 이야기하게 되면 이런 방향으로 흘러 가더라고요.”
“재미있는 사장님이네. 그보다 마지막 리필 될까?”
“물론이죠.”
그렇게 말하고는 리필을 해주었는데, 서로 동의라도 한 것인지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말없이 가게 안의 고요함을 즐기면서 있었다.
아…. 가게 오픈 시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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