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누군가의 일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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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폭풍이 휘몰아 친 것 같은 전반 타임이었다.
결국 무엇을 위해서 온 것인가 싶은데…. 준서인가 그 사람이 벌린 일은 대신 해야겠고…. 집에서 하려니 영 마음이 안 내켜서 때마침 이야기로 들은 가게에 쳐들어와서 꼬장부린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믿고 싶다. 아니 믿어도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그녀가 나갈 때 연락처하나 받지 못하였다.
이것참….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모르는 상황이네.
뭐 전생자 모임 어쩌고에 모임 장소로써 활용한다 하니까 언젠가 오겠지 싶었다. 정 궁금하면 현준 씨에게 물어보면 그만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 지금 현재의 문제는…. 장사를 시작한 지 몇 시간째 지만…. 정말이지 손님이 없었다.
가끔 있지 않은가? 배달 음식을 기다리면 진즉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도 도착하지 않거나. 자동차 운전을 하는데 운이 좋게 신호등 마다 파란불이 들어와서 정차없이 지나가는 그런 상황 말이다.
정말 가끔가다 손님이 없는 그런 날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단골손님조차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가게 안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이런날은 술병이나 유리잔위에 앉은 먼지나 털면서 가게를 정리하는 날이긴 하지만…. 최근 프림이 들어온 뒤로 손이 늘어서 그런지 청소를 자주 하다 보니 할 일이 없어졌다.
정말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테이블에 엎어져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지만…. 아까부터 옆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손님이 없는 상황이기에 특별한 문제…. 는 아니지만….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다.
이번에도 나의 투쟁을 읽고 있는 프림 때문이었다.
아니 그냥 자유롭게 내버려 두긴 했는데 저 책을 읽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곳 사람들처럼 이 종족을 강하게 억압할 생각은 없지만,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기에 묻게 되었다.
“저…. 프림? 아니 프림니임?”
원래 과묵하다 보니 대답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어떤 말을 할지 막막하였다.
“그…. 그러니까 책은 재미있어?”
“응.”
“어떤 내용이?”
내가 질문을 하자 바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귀를 몇 번 쫑긋하고는 생각이 난 듯이 대답하였다.
문제는 그 대답이 나의 두통을 유발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역사의 진보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계급과 초능력의 투쟁이 아닌 종족의 투쟁이다?”
“어…. 그러니까 그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
진지하게 책을 압수 해야 할지 고민을 해 보려는데 그때 프림이 대답을 하였는데.
평소라면 어떤 생각하는지 모를 그런 깊고 고요한 호수 같은 눈빛이었다면, 이번만큼은 그 어느때보다 눈이 초롱초롱한 느낌으로 말을 하였다.
“생물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보다. 강한 자를 따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법? 이거 엘프도 같아.”
“오….오우….”
솔직히 이때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내가 사자새끼를 키우는 것은 아니겠지?
너무 당황해서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그리 큰일은 아닐 것 같다. 프림이나 나나 소시민과 그 소시민에 속한 엘프인데 무슨 일을 하겠는가?
설마 엘프 혼자 혁명을 일으키거나 그런 일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예민하게 군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 정도…?
그렇다고 해서 저런 책을 계속 보게 둘 수는 없으니 다른 책이나 추천을 해 봐야겠다.
“음…. 그책 다 읽고 다음에 다른 책도 읽어봐…. 아하하….”
“응.”
프림은 언제나 같은 톤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향하였다.
정말이지 손이 안 가서 편하긴 한데…. 너무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답장을 기다리지만, 오늘은 정말 무슨 날이라도 된 것일까?
지혜나 수아의 연락이 전~혀 없었다.
하아…. 진짜 운수가 안 좋은 날 인 걸까? 전반 시간에는 이상한 동향 사람을 만나지 않나. 지금은 손님도 없지 연락도 없지….
아 물론 지혜는…. 내가 사고 친 것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회사일이 바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해서 수아까지 말이 없는 것은 엄청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 해서 둘에게 각자 뭐하는지 연락을 보냈지만 말이 없었다.
분명 출근 시간 전까지 연락을 잘했는데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연락이 없는 점이 수상하다.
진짜 최악의 날인가 싶어서 오늘은 빠르게 장사를 끝낼까 싶어서 일어나려던 순간 가게의 문이 열렸다.
가게 안에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들어왔는데…. 차림새가 정장이었다. 아마도 헌터가 아닌 회사원 같은데…. 같은데…. 으음….
오늘따라 이상한 손님이 첫 손님으로 들어오는 것이 정해진 것일까? 회사원의 모습 또한 만만치 않은 몰골이었다.
축 처진 어깨와 서류를 잔뜩 들어 있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가방. 그리고 퀭 한 눈빛과 심각한 다크서클…. 그나마 전반전에 있었던 손님과 다른 점은 머리가 정돈된 정도…? 아니 어디까지나 비듬이 떨어지는 떡진 머리와 비교한 것이지 어느 정도 헝클어진 상태였다.
흠…. 뭔가 생각이 날 듯해서 현재 시간을 확인하는데…. 11시였다.
오전 11시가 아니라 오후11시에 정장의 모습으로 가게에 들어왔다…?
야근을 끝내자마자 가게에 들어온 모습이 측은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차라리 이런 가게에 마시러 들어오는 것보다는 그냥 집으로 바로 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약간의 측은함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녀는 좀비처럼 흐느적 흐느적 거리면서 테이블 자리까지 오더니, 엎어지듯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이 정말 측은함이 느껴질 정도…?
“저어어…. 무, 물한잔부터 괜찮을 까요…. 되도록 시원하게….”
“아! 네네! 자, 잠시만요!”
테이블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쩍쩍 갈라지며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엄청나게 고생을 했구나….
일단 주문 이전에 시원한 물부터 주지 않으면 말라 죽을 것 같기에 황급히 제빙기에서 얼음을 가득 퍼서 유리컵 안에 채웠다. 그리고 정수기 물을 따르고는 빠르게 손님에게 내주었는데, 이 행동들이 최근 들어 가장 민첩한 행동 중 최고의 속도였다.
“하아…. 감사합니다….”
얼굴을 테이블에 파묻고 있던 회사원은 손으로 테이블 바닥을 밀면서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하는데, 그 모습이 진심전력으로 무언가를 밀어내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사회인의 어깨에 걸려 있는 무게인 것일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일으켜 세우고는 시원한 물을 마셨다.
“하아…. 인생….”
“으음…. 아하하.”
그 시원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마치 맥주를 마시는 것 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번에 다 마신다음 깊은 한숨을 쉬고는 인생 이야기를 내뱉었는데. 어떤 답변을 할지 몰라 그저 웃을 뿐이다.
나의 웃음에 자신이 가게에 들어온 것을 자각한 것일까?
“아…. 죄송합니다…. 저, 그러니까…. 카페?”
“카, 카페도 하지만 지금 시간은 술도 파는 시간이네요.”
“술도 판다면 술집인가요…?”
“음. 정확히 말하면 바 네요.”
“아…. 바.”
이거 완전 좀비상태로 거리를 걷다가, 피곤에 절여져서 한계를 느끼고는 주변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온 상황이다.
그렇기에 카페도 하지만 알콜류도 판매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카페 영업시간에는 술을 못 팔지만, 바 영업시간에는 비 알콜류도 판매가 가능하다.
“어…. 그러면…. 그러며언….”
“그러면?”
무언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몇 번을 중얼거리면서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자신이 주문하고 싶은 메뉴를 말 하였는데…. 생각보다 강렬한 주문이었다.
“씨발…. 그냥 존나 게 취할 만한 메뉴로 주시면 안 될까요?”
“어…음… 진짜요?”
존나 게 취할 만한 메뉴라고 한다면 만들 기는 쉬운 메뉴다. 그냥 도수가 높은 술 몇 가지를 섞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사원 느낌의 손님이 지금 시간에 취할 정도로 마신다면 내일 출근 시간에 문제가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주문하면 내주는 것이 자영업의 비애? 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되물었는데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온다.
“아니 그러니까, 정말 취할 정도로 마시면 내일 출근 괜찮으신가요…? 아니 월차를 쓰셨다면 상관은 없겠네요.”
“어…. 그러네요…. 아니 씨발 생각해 보니까 그냥 마시고 사직서…. 아악! 다음달 카드값!”
이랬다가 저랬다가 텐션이 왔다 갔다 하는데…. 회사에서 엄청 굴려지는 것 같았다. 아직 젋어보이는 모습이 말단 회사원 같은데…. 스트레스가 상당한가 보다.
흐으음….
“혹시 시원한 칵테일도 괜찮을 까요?”
“시원한 거요…? 하아…. 씁….그냥 마시고 내일 될 대로 되라하죠….그걸로 주세요.”
“네ㅡ 잠시만요~.”
그녀의 주문받고 칵테일을 만들 준비를 시작했는데, 아마 이 칵테일이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 하면 다른 칵테일을 만들어 주면 괜찮겠지?
그렇게 가벼운 생각하면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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