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누군가의 일상(2)
* * *
오늘 장사도 잘 안되고 그나마 온 손님의 상태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
술집 장사가 다 그렇지….에휴.
일단 생각난 칵테일을 만들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혹시 취향이라든지 이것을 마시고 싶다 그런 건 정말로 없으시죠?”
“으…. 그냥 아무거나 줘요 하….”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건성건성이었다. 애초에 들을 만한 상황도 아니다. 정말로 피곤한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애초에 기분이 좋을리 없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시계를 보니 못해도 10시에 퇴근하고 지나가는 길에 가게에 들렸을 것이다….
이것 참…. 어떤 의미로 오늘 장사가 망한 것 같은데…. 같이 울어야 할지….
어쨌든 칵테일이든 음료든 사전에 취향을 묻는 편이 좋다. 잘해주면 평타지만 못해주면 악평이 쏟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되도록 알맞은 음료를 해주는 편이 좋지 않은가?
일단 아무거나라는 확답을 받았으니 내가 하려던 칵테일을 만들기로 하였다.
“네, 그, 그럼 아무거나 해드릴게요.”
“그웨에에….”
틀렸다…. 이미 반쯤 좀비화가 된 느낌이다. 지쳐서 반쯤 정신줄을 놓친 건 이해하지만…. 정신 차렸을 때 얼마나 쪽팔릴까?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냉장고를 열어서 재료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장식용 잎사귀는 이번에 쓰지 않을 것이고…. 아 우유가 좀 아슬아슬하네…. 이건 내일 주문하고…. 뚜껑이 닫힌 채로 있는 퓨레도 보이는데 생각해 보니 저게 얼마나 남아 있는지 체크를 안한지 좀 되었다. 이 또한 내일 출근해서 확인해야겠다.
말하고 보니 전부 내일로 미루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손님을 위해서라는 명목이 우선이기에 뒤로 미루는 것뿐이다. 절대 오늘 장사도 시원치 않아서 하려니까 귀찮음이 몰려 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이는 미리 냉각해 둔 술병들이 보였다. 주로 보드카나 위스키, 진 같은 술들을 냉각해 둔 것인데. 이렇게 냉각을 해 둬도 상관은 없다.
당연한 소리지만 어디까지나 ‘싼’ 술 혹은 대량으로 구매해서 상온보관 술과 냉장 보관 술을 따로 뒀을 때나 가능한 방법이다.
비싼 술은 이렇게 보관할 용기는 없다. 애초에 내가 마실 것도 아까워서 팔지도 않는다. 진짜 비싼 술은 생산 통제나 유통 통제를 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런 것이 어쩌겠는가….
아 고민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일단 냉장고에 보관 중인 술병들을 지나쳐서 잘 밀봉된 코코넛 밀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 혹시 과일도….아 그냥 알아서 할게요.”
여러 레시피가 있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돼서 물어보려 했지만. 고개를 박은 채로 ‘그웨에ㅔㅔ’ 라는 말을 반복하는 좀비가 있었다.
멘탈이 나간 사람인 것 같으니 빨리 음료나 줘야지…
까짓것…. 비싼 재료좀 넣어 줘야겠다.
며칠 전부터 냉장고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지나면 맛이 변 할 것 같기도하고…. 아직 신선할 때 서비스하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단 과일이 담긴 통과 코코넛 밀크, 파인애플 주스를 꺼내서 일어섰다.
이전에는 능력 때문에 나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최근에는 칵테일을 만들 때 신기하게 바라보는 손님을 보면서 일에 관한 재미라도 느꼈지만…. 오늘은 그런 손님은 없어서 그런지 영 힘이 나지 않는다.
뭐어….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하면서 믹서기 통의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잘 열리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거 생각보다 많이 빡빡한 상태다. 얼음을 갈아내거나 내용물을 갈다 보니 내용물이 튀어나오지 말라는 이유로 엄청 빡빡한 것일까? 어느 제품을 사도 다 똑같더라.
힘주기는 귀찮지만…. 열기는 열어야 하기에 힘을 주니,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이번에는 기계의 힘을 빌리는 칵테일이라 그런지 적당히 하자라는 느낌으로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코코넛 밀크와 얼음을 눈대중으로 한 명이 마실 정도의 양을 넣었다. 그리고 파인애플 주스를 한 컵 정도 넣고는 과일이 담긴 통을 열었다.
자, 이번에도 파인애플이다. 정확히 말하면 잘라둔 파인애플 조각이다.
파인애플 이라하면…. 코코넛과 같이 열대 느낌의 칵테일에 빠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다.
하지만 소비가 많이 될 듯이 많이 안 되는 재료인 게 유감스러웠다. 뭐…. 게이트에서 플렌테이션이 흥하다 보니 정말 싼값에 파인애플을 들이고 있어서 다행이지…. 이전 세계의 값이었다면…. 이렇게 막 썰어서 대충 쟁여두는 방법은…. 지갑이 감당 못한다.
파인애플 주스를 넣었지만 또 파인애플인가 싶지만 파인애플의 향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씹는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뭐, 적당히 넣었으면 이제 전원을 넣고 갈아주면 된다.
뚜껑을 꽉 누르고 전원을 넣어 주니 얼음이 분쇄되는 소리가 가게 안을 뒤덮는다. 매번 듣는 소리지만 처음 갈릴 때 몇 초는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니다. 통얼음이 분쇄될 때에는 엄청난 굉음이 들리지만 몇 초가 지나자 회전하는 기계음만 내면서 내용물을 섞고 있었다. 그 내용물은 부드러운 진흙이 된 것처럼 회전하는데, 점도가 스무디도 아니고 일반 액체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점도였다.
이 정도면 얼음을 추가하거나 주스를 추가할 이유는 없는 알맞은 점도다.
그렇게 믹서기를 끄고는 허리케인 글라스를 준비하였다.
흔히 열대지방의 느낌을 살린 음료에 자주쓰이는 그 잔이 맞다. S형태의 굴곡 혹은 튤립의 꽃 모양 같은 잔이 특징인데…. 단점은 설거지하기 정말귀찮은 잔이다 정도? 정말귀찮고 까다로운 잔이다.
가게니까 이런 잔을 사용하지 내가 마시면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어쨌든 잔에 갈아낸 내용물을 천천히 부으니 샛노란색의 액체가 잔안에 채워져 갔다.
자 이제 데코레이션으로 파인애플 조각을 유리잔에 꼽으려는데, 손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믹서기를 틀었을 때 시선을 끌은 것 같다. 워낙 큰 소리다 보니까 뭘 하는지 호기심이 동하였을 것이다.
일단 다 만든 칵테일에 빨대를 꼽아서 포인트를 줬다.
다 만든 칵테일을 언제나처럼 잔 아랫부분을 살짝 누른 채로 밀어서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주문하신 ‘아무거나’ 나왔습니다.”
정식 명칭이 존재하지만 발음하기 귀찮아서 아무거나 라고 말하자 손님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잔을 잡았다.
“정말 이름이 ‘아무거나’는 아니죠…?”
“뭐,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드셔 보세요.”
일단 정신부터 차려라는 의미로 시원한 음료를 마시길 권유 하니 손님은 잔을 잡고는 빨대로 마시기 시작하였다.
트로피컬 느낌의 칵테일을 마신다면 뭔가 신난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우울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손님을 보고는 아이러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마시기 시작했더니 생기라도 돌아오는 듯이 우울함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지만, 무언가 의문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에…. 그러니까 이거 이름이 뭔….가요??”
최근 들어서 기가센 손님들으 봐와서 그런지. 소심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손님을 보고 있으니 적응이 안 된다. 이런 손님도 있구나….
“피나 콜라다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버진 피나 콜라다입니다?”
“에…. 음…. 그러니까 들어 본 적은 있는데…. 맛은 괜찮네요…. 괜찮은데….”
이번 음료의 이름은 ‘피나 콜라다’ 라고 불리는 칵테일이지만, 정석적인 빌드는 아니다. ‘버진’ 이라는 단어가 붙었기에 나의 해석이 좀 들어간 레시피다.
일단 손님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심하게 고민하고 있기에 말을 거들어 주었다.
“괜찮은데…?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그…그러니까 이거 알콜향이 원래 안 느껴지는 건가요?”
“아….”
확실히 손님의 주문은 그냥 존나게 취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버진’ 이 붙은 칵테일을 줬다.
여기서 버진이란 의미는 알콜이 없는 레시피다. 정상적인 레시피라면 얼음 없이 럼을 넣고 블랜딩 하였을 것이다. 물론 생 과일도 들어가지 않는다.
럼이 빠지니까 그만큼 다른 재료를 넣어서 보충하는 느낌인 것이다.
일단 손님이 원한 레시피가 아닌 내 맘대로 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기로 하였다.
“논 알콜이라서 그런 거예요.”
“네…?”
손님은 이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왕방울 만한 눈동자가 되었는데 작은 토끼를 보는 것 같아서 귀여운 손님 같았다.
일단 설명해주고 이유를 말하는 편이 오해를 사지 않겠다 싶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논 알콜. 술 안넣었답니다?”
“왜요…?”
“음…. 내일은 평일이잖아요?”
“그렇죠…?”
“엄~청 취하면 출근 못하잖아요?”
“그런 거 상관없어요! 으아! 그냥 취하고 싶어요….”
음, 소심해 보여도 하고 싶은 행동은 하겠다는 성격 인 것일까? 그냥 취하고 싶다고 온몸으로 말을 하지만 손에 든 잔은 또 조심해서 다루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진짜 이유를 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다 짤리거나 징계 먹으면 카드값 감당 되세요…?”
“아….”
그 말 한마디에 손님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얼굴을 굳혀졌으며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던 몸짓이 멈추었다.
진짜 사회인에게 효과 직빵인 마법의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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