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자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집착한다.
잘 살았던, 못 살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난 죽으면 시간을 역행해 회귀한다.
첫 번째 인생은 놀러가는 길에 트럭사고로 절명.
그리고.
이번 두 번째 인생마저 한 여자를 짝사랑하다가 처절히 퇴짜맞고 실패했다.
지금까지 한마디로 고구마를 한입 가득 쏟아먹은 개찌질의 끝판 인생을 살았다고 보면 된다.
답이 없다.
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특히나 그토록 갈망하던 그녀가 떠나버린 인생이다.
난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은 바로 자살.
이번 생에 다시 어린 나이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쥘 것이다.
더 이상 실패하지 않고, 내가 누리고 싶은 것들을 모두 누리며 쟁취하리라.
전생처럼 개고생만 하다 또 뒈지긴 싫으니까.
수많은 경험을 안고 난 자살하기 위해 한강으로 향한다.
이건 목숨을 건 도박이란 걸 안다.
누가 보면 미친 개또라이 싸이코 새끼라고 혀를 차겠지.
내 결심은 이미 끝마친 상태다.
이제 난 새로운 3회차 인생을 꿈꾸며 앞발을 아득한 한강 앞으로 뻗는다.
… … … … … … … …
… … … … … … … ….
***
정신이 들자 눈으로 낯익은 광경이 들어왔다.
시운은 주위를 훑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성공인가.’
예상대로였다.
깨어난 곳은 그의 방.
분명히 여기가 천국은 아니고 지옥 또한 아니겠지.
조심스레 바닥에 발을 짚었다.
발꿈치로 전해져오는 또렷한 감각!
‘성공했다. 아니, 회귀했다가 맞는 표현이겠군.’
터벅터벅- 전신 거울로 걸어갔다.
‘정말이네. 스물세 살의 파릇파릇한 이 얼굴…. 좋아.’
거울을 통해 들어오는 얼굴이 신기하다.
잔주름 하나 없이 탄력적인 피부. 어린 나이답게 빛나는 눈.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음을 대변하는 까칠까칠한 짧은 머리칼.
어린 나이라 활력이 넘친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스물세 살의 나이.
한강의 대교 난간 아래로 몸을 던지기 전 솔직히 불안했다.
이대로 뒈지면 진짜 모든 것이 끝일까봐.
성공적으로 끝난 도박은 쾌락이란 희열감을 불러왔다.
그런데.
머리에서 이질적인 통증이 일었다.
신음이 툭 뱉어졌다.
관자놀이를 조이는 느낌이랄까.
“아아악!”
눈이 갑자기 미치도록 시렸다.
살면서 두통은 겪어봤다.
근데 두개골이 으깨지는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씨발.. 왜 이래? 스타트부터 뭔가 좆박은 느낌인데?’
두통과 함께 전생의 찌질했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친다.
전생.
상처를 받고 술독에 빠져 오열했던 날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겨우 숨만 쉬며 연명하던 나날들-
직업 하나 갖지 못하고 살다가 서른네 살,
자살을 해야 했던 기억들까지 오버랩되어 뇌리에 펼쳐졌다.
전생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뇌리에 아직 남아서일까.
‘이 따위 고통 금방 가라앉겠지.’
지금은 서른네 살이 아니라 스물세 살이다.
돌을 씹어 삼켜도 배출될 나이.
이번 인생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자살하는게 쉬운 줄 아냐? 씨발.
더 이상은 못 죽는다.
그러나 몇 시간이 흘러도 통증은 가실 줄 몰랐다.
주르륵.
식은땀이 눈썹 밑으로 쭉, 흘러내렸다.
초점도 잘 잡히지 않았다.
곧바로 거실로 나왔다.
텅텅 비어있는 집안.
부모는 맞벌이로 함께 직장에서 근무를 할 시각이었고, 누나 시연은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호주로 떠나고 난 뒤였다.
시운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어떤 결심으로 죽은 건데… 깨어나자마자 왜 이 지랄이냐고...’
회귀의 부작용으로 내 몸이 어떻게 된건가?
순간 전생에서 대교에 몸을 내던진 그 순간이 떠오른다.
칠흑 같은 그 한강 물이 엄청난 압력으로 몸과 맞닥뜨렸을 때의 그 통증이란….
그 기억을 떠올리자 눈이 더욱! 아파왔다.
“아악.”
눈을 지압했다.
테이블로 다가가 손을 뻗어 더듬거리며 겨우 지갑을 집었다.
‘안 되겠다, 이거.’
병원을 가야겠다.
급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다가 잠시 멈춰 섰다.
너무도 오랜만이라, 이 아픈 와중에도 낯선 집안 환경들을 촘촘히 둘러보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헌터에 대한 책들, 헌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게임팩들이 놓여있다.
‘정말 이때는 막연한 꿈이었지. 헌터가…….’
자신은 이룰 수 없는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 헌터라는 직업이었다.
헌터가 너무나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막연한 꿈이었지.
반가운 방안을 둘러보다 문득 첫 번째 인생이 막을 내렸던 날이 떠올랐다.
결코 잊을 수가 없는 날.
‘그날이 8월 중순 즈음이었나?’
***
무더위를 식히러 떠난 친구들과의 피서길.
시운은 싱그러운 바다와 비키니 여성들로 가득할 해운대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아 씨…. 오늘따라 차 드럽게 막히네.”
“빨리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냐. 시운아?”
시운의 친구 승훈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당연하지. 어휴. 예상은 했지만 너무 막히네….”
“참고 기다려 새꺄. 우리가 오늘 대의를 치르러 가는데 이깟 차 쯤 막힌다고 투덜거리냐?”
“쩝.”
“그나저나 시운아, 우린 너만 믿는다. 비키니녀들을 꼬실 사람은 우리 중에 너 밖에 없어. 이 새끼들 와꾸 봐라… 되겠냐?”
승훈이 친구들의 얼굴을 슥 훑더니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어느새 침체된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뚫리네. 밟아보자.”
시운이 미소를 띠며 액셀을 밟았다.
빵! 빠아앙-!
갑작스런 크락션 소리.
급격하게 차선을 이탈하고 시운의 차량을 향해 돌진해오는 화물차 한 대.
헤드라이트의 번쩍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콰앙!
그리고 이어진 대형충돌 사고.
시야가 뒤틀렸고 등골이 아스라지는 통증과 함께 눈이 감겨왔다.
이것이 첫 번째 생의 마지막 순간.
“아악!”
또다시 신음이 비집고 나왔다.
십이지장이 뒤틀렸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더욱 두통이 일었다.
견딜 수 없는 통증.
그냥 드러누워버렸다.
잠시 호흡을 고르면서 좀 쉬자 고통이 흐릿해진다.
“휴우….”
그 사고와 함께 젊은 생은 허망하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으로 돌아왔던 것.
그것도 갓 군대에서 제대한 시점으로!
그러나 학력은 고졸.
흙수저 출신인 시운은 돈을 벌고 싶었다.
변호사, 판사, 의사보다 세상에서 대우해주는 헌터.
헌터가 되고 싶었다.
미치도록.
애달토록.
‘옛날부터 헌터를 동경해왔어. 할 수 있다. 반드시 난 헌터가 될 테다.’
법대, 의대 보다도 치열하다는 헌터 자격시험.
합격하기 위해 몇 년간 혼신을 다 쏟아부었다.
정말 노력했다.
그녀를 얻기 위해서는 당당한 직업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결과는…
1차 필기에서 불합격.
포기않고 계속 도전했으나 같은 결과.
‘죽어라 노력했는데…….’
평범한 직업은 싫었다.
그런 월급쟁이의 푼돈으로는 빚더미인 우리 가족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헌터가 되어 망해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다.
너무나도.
그러나.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에 시운은 좌절하고 2년간을 술독에 살았다.
어느새 나이는 스물여덞.
“시운아. 엄마가 너 때문에 너무 힘들어. 제발 사람답게 살아.”
“…….”
오열하는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시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번째 인생마저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
세상 누구나 동경하는 직업인 헌터.
그 헌터라는 꿈은 자신에겐 꿈이 아닌, 이룰 수 없는 망상이었다.
‘가족을 봐서라도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도전하자.’
그렇게 도전하게 된 건?
7급 행정직 공무원.
학력에 제한 없이 치를 수 있는 시험이 바로 공무원 시험.
‘이제 내게는 이 길밖에 없다.’
다시금 의지를 다잡고 공부했다.
그러나 3년, 4년이 지나 나이 서른 줄이 넘어서 필기시험은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항상 떨어졌다.
죽어라 열심히 했는데…….
씨발. 안 될 놈은 다시 태어나도 안 되는 거구나.
그렇게 서른네 살 해.
마지막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스치는 절실한 생각.
그 극단적인 생각은 곧 결심이 되었다.
그 결심은 바로 자살.
불안감을 떠안고 향한 반포대교.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제발!’
시운은 눈물겨운 마음으로 대교 밑 세찬 강물에 몸을 날렸다.
새로운 생을 위해 목숨을 건 도박!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인생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금같은 세 번째 인생인데.
이상하게 아파오는 이 눈.
“미치겠네….”
두통은 멎었는데 눈이 미치도록 아프다.
곧바로 집을 튀어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안 대기실.
“이시운 님. 들어오세요.”
시운은 간호사의 안내에 의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시운 씨? 어떻게 오셨죠?”
의사가 안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눈이 너무 쓰라리고 아파서 왔습니다…….”
착!
의사는 시운의 눈 이곳저곳을 불빛으로 비추며 살펴보았다.
“일단 검사 몇 가지만 받아봅시다.”
***
“음…. 어디 봅시다.”
의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검사결과가 나온 차트를 읽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
“선생님. 심각한 건 아니겠죠?”
“잠시만요. 차트를 좀 보구요.”
차분히 가라앉은 의사의 육성에 시운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의사는 검사결과 차트를 훑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뭐지? 이럴 리가 없는데….”
의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럴 리가 없다니?’
의사는 자꾸만 시운의 검사 결과를 담은 차트를 만지작거렸다.
“저… 이시운 씨.”
시운을 부르는 의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럴 리가. 도저히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검사를 받아야겠습니다.”
“네?”
의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확실한 검사를 위해 다시 검사를 받으라는 의사.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아랑곳 않고 심각한 얼굴로 차트만 들여다 보고 있는 의사.
‘정말 그렇게 심각한 건가?’
의사에게 빨리 결과를 말해 달라 재촉하고 싶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이번만 세 번째 인생이다.
또다시 대교 밑으로 몸을 던질 용기란 없다.
실명이니 뭐니 그런 말이 의사의 입에서 튀어나온다면 난 좆 되는 거다.
제발.
그의 입이 떨어지기만 간절히 기다렸다.
침묵을 깨고 의사가 말했다.
“저… 이걸 보시겠어요?”
차악.
의사는 차트 두 개를 시운이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내밀어 주었다.
“오른쪽에 있는 차트는 정상인의 시신경 모습이고, 왼쪽에 있는 차트가 바로 이시운 님의 시신경 모습입니다.”
시운은 두 차트를 번갈아보았다.
‘두 개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지? 왼쪽이 내 시신경이라고?’
오른쪽 차트의 시신경은 좌우의 대칭이 맞고 적당한 크기였다.
그러나… 왼쪽 차트의 시신경 모습은 너무나 이상했다.
‘내 시신경은 오른쪽에 비해 굉장히 비대칭적이야. 게다가 펌핑된 근육처럼 부풀어 올라있어…….’
의학 지식이 전혀 없는 시운이 보기에도 너무 이상했다.
의사가 왜 그렇게 의아해했는지 알만도 했다.
이유가 뭔지 궁금해 급하게 물었다.
“왜 이런 겁니까? 제 눈이 실명이라던지 뭐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죠?”
“아, 그게……”
의사의 목소리는 매우 떨렸다.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의사의 닫힌 입술이 어렵게 열렸다.
“...제가 수십 년간 의사 일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 봅니다. 아니 외국 어느 논문에서도 이런 형태의 시신경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씨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의사 양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