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아니, 의사 양반 내 눈이?! (1)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시신경이 어떻다고?시운은 급하게 되묻는다.
“그러니까, 제 시신경에 크게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게 참… 설명 드리기가….”
“수술이라도 해야 합니까?”
“아니요. 시신경은 현대 의학으로는 수술할 수가 없는 부위입니다.”
‘수술도 할 수가 없다니. 뭐 어쩌란 말이야?’
이번 생도 물 건너 가버린 건가.
다리가 떨려왔다.
의사는 말한다.
“일단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대학병원 급 규모의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보세요.”
“설마… 실명이라도 되는 건가요?”
“아직 정확히 이렇다고 판단하기가 뭐합니다.”
애매한 대답.
시운은 잔뜩 굳은 얼굴로 병원에서 나온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인생이 찾아오면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고 했는데.
시작부터 커다란 걸림돌이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
며칠 뒤.
대학병원 앞.
넓은 병원 본관을 가로질러 안과로 간 그는,
삼십 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안과전문의 김성철 교수와 대면하게 되었다.
끼익.
진료실에 들어온 시운을 스윽 훑던 김성철 교수가 물었다.
“눈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저희 병원으로 한 번 가보라는 말씀을 듣고 오셨다구요?”
“네. 눈이 계속 이유없이 아픕니다. 일단 여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셔서...”
“잠시만요.”
***
검사 후,
교수가 의아하단 듯 입을 열었다.
“어떻게 시신경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으음…. 두 번이나 검사를 했는데도…….”
의사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몇 번 긁적였다.
“실명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게 너무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상한 건지 알아듣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시운 님의 시신경 세포의 모습이 너무도 기이합니다.”
“…….”
시운은 말문이 턱 막혔다.
“눈이 많이 아프세요?”
“지금 일상생활도 못하고 미치겠습니다, 진짜.”
“음… 아무래도 MRI하고 CT촬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뇌에 문제가 있는지의 여부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뇌요?”
“이시운 님의 시신경 도면을 촬영한 사진 상을 보고 말씀드리는 건데… 이 시신경 사진으로만 판단하기에는…….”
“그래서 문제가 어떻다는 겁니까? 말씀을 똑바로 해주세요!”
빙 둘러대지 말고 확답을 듣고 싶은 시운.
답답한 마음만 계속 들었다.
이렇다, 아니다 말을 똑바로 해 줘야 할 거 아닌가!
의사는 시운의 시신경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무래도 MRI 검사부터….”
‘하아. MRI? 그거 돈 몇 십만 원 깨지는 검사잖아.’
어려운 형편 때문에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는 처지.
시운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체크카드에 잔액을 모두 털어 모든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성철에게 갔다.
그는 검사결과 차트를 보더니.
“뇌에는 이상이 없군요. 인공눈물을 처방해 드릴 테니 써 보시고 일단 눈에 휴식을 취해 보세요. 그리고 또 아프면 다시 들려주세요.”
“……….”
의사는 시원찮은 답변을 늘어놓았다.
답변을 듣고, 병원에서 허무하게 걸어 나오는 길.
“검사비만 46만원…. 근데 결과는 아무이상 없음. 씨발. 욕 나오네….”
눈을 질끈 감았다. 크나 큰 회의감이 엄습했다.
‘만약 그 때 로또만 들어맞았어도….’
시운은 그날을 떠올렸다.
전생.
헌터시험의 계속된 실패로,
밥 대신 소주만 목구멍에 들이붓던 두 번째 인생의 어느 날.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또!
시운은 첫 번째 생에서 유난히도 로또라는 매력에 빠져있었다.
매일 로또나 사는 로또광이었던 탓에 회귀하고도 특정 회차의 로또 당첨 번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로또 회 차는 413회.’
413회 로또 추첨식은 지금부터 1개월 후 방영될 예정.
술에 절어서 시야가 뒤틀리는 와중에도 시운은, 눈을 크게 떴다.
‘헌터가 되는 건 실패 했어도 로또로 인생 뒤집는다. 앞으로 한 달이야….’
첫 번째 인생에서 기억한 로또 번호를 이번 두 번째 인생에서 맞춘다는 것이었다.
‘로또만 되면 뭐부터 할까? 일단 쎄끈한 외제차 한 대 뽑고... 부모님 집 하나 사 드리고, 40평짜리 집으로 이사가서 맘 편히 존나게 행복하게 사는 거야!’
이렇게 희망고문을 하며 기다렸다.
413회차 당첨금은 자그마치 40억!
그리고 한 달 후.
대망의 413회 로또추첨 생방송이 방영되는 날.
‘바로 오늘이다!’
출력한 로또용지를 손에 꽉 쥐고 생방송을 시청했다.
고개를 내려 자신이 추첨한 로또 번호를 슥 보았다.
2.9.15.23.34.40
“2,9,15,23,34,40. 반드시 뜬다! 인생 한방이야….”
당첨만 되면 옷이라도 벗고 거리에서 춤도 출 수 있었다.
-자 대망의 로또 413회. 그 첫 번째 공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로또의 추첨 볼을 뽑던 남성의 손에 숫자가 적힌 공이 들려있다.
- 첫 번째 숫자는 2입니다.
“그렇지!!”
숫자가 맞아떨어지자 그 자리에 일어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벅차오른다.
몇 십 억이란 일확천금을 한 순간에 얻게 되는 기분이란?
내가 그 황홀함을 만끽하게 되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곧이어 티비 화면에서 두 번째 추첨 볼을 뽑은 남성이 공을 보여주며 말했다.
- 두 번째 숫자는 40입니다.
“예쓰! 예쓰! 그래, 40이라는 숫자 분명하게 있다. 그래. 일등 확정이야. 일등 확정이라고!!”
이제는 혼잣말까지 터져 나왔다.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제 고생이란 없다! 돈만 있음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그런데…….
- 세 번째 숫자는 27입니다.
“뭐?!”
생소한 숫자 ……27.
시운은 캔맥주 옆에 놓여있는 로또용지를 내려다보았다.
‘27이라니. 잠깐만, 잘못 들은 건가? 없어. 내 로또 번호에 27이란 번호는…….’
-네 번째 숫자는 17입니다.
“뭐, 뭐라고?”
연속으로 빗나가는 로또 추첨번호.
순간 자신이 앉아있는 집이 땅으로 확 꺼지는 느낌이 일었다.
그렇게 멍하니 티비 화면을 주시하길 얼마 지나지 않았을까.
-이것으로 413회 대망의 로또 추첨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들……
“……….”
추첨방송이 끝났고, 멍하니 로또용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탈감과 함께 눈물이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머리털을 쥐어짜내며,
당첨 번호를 기억해내어 그 번호를 메모하고 애타게 긴 시간을 기다렸는데.
이런 간절한 기다림 끝에 알아낸 중대한 사실 하나.
전생과 후생은 상황과 사건이 다르게 전개되어 평행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즉, 복권 번호 하나 달랑 외우고 다음 생으로 회귀해 떼돈을 벌어 편히 살만큼 만만한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식 또한 마찬가지.
이것이 특별하지만 쉽지 않은 시운의 삶.
***
암울한 기억을 떠올리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제기랄!”
화가 나는 마음에 시운은 길가에 놓여있는 빈 깡통을 발로 후려 찼다.
쩔그렁!
깡통은 찌그러지는 소리를 내며 시운의 발치에서 몇 미터 날아가 뒹굴었다.
눈은 여전히 쿡쿡 쑤셔왔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순간 머리가 핑글 돌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눈이 크게 뜨여진다.
‘어?!’
이질적인 느낌.
전신이 순식간에 이완되면서 모든 피가 머리로 쏠렸다.
그리고.
주위를 걸어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게 보였다.
그들의 표정, 움직임, 옷차림들이 아주 세세하게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지?’
살면서 이런 순간이 한 번씩은 있다.
갑자기 세상 모든 것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시현상 겪을 때.
지하철을 분주하게 걸어가는 앞사람의 어깨 흔들림,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여성의 눈꼬리와 입모양의 모습.
모든 게 아주 디테일하게 눈에 들어온다.
‘뭐지…?’
그 여성과의 거리는?
무려 몇 십 미터였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스마트 폰을 만지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주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매끈한 종아리가 꿈지럭거리는 형태가 자세하게 느껴졌다.
‘현미경으로 사람의 살 속을 내다보는 기분이야!’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함.
팟!
마치 섬광탄이 터진 듯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윽!”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뜨자.
느리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뭐였지?’
기분 탓인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너무도 희한한 경험.
단 십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희미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여성의 다리 근육까지 어떻게 눈에 보였단 말인가.
순간 시운의 뇌리에 아까 그 의사의 육성이 나지막이 스쳐갔다.
- 이시운 님의 시신경 세포의 모습이 비약적으로 발달된 것 마냥 너무도 기이합니다.
‘설마 방금 그 증상과 관련이라도 있는 걸까.’
이윽고 지겨운 통증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잘 잡히지 않던 초점도 잡히는 듯 했고, 흐릿하던 시야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 괜찮아 지는 건가? 내가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
시운은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핸드폰 액정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글씨가 눈에 잘 들어온다.’
며칠 간, 눈이 아파서 아무 것도 못했는데 이제는 그 답답함이 풀리는 기분이다.
핸드폰을 통해 DMB로 TV채널 이곳저곳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야구중계가 흘러나오는 채널에 눈을 멈추게 되었다.
삼성과 롯데 전.
스코어는 3-1으로 삼성이 앞서가고 있다.
파란색 모자의 투수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투구를 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맞은 편,
롯데 타자는 한 방의 역전 기회를 노리는 눈빛이 역력하다.
이윽고 투수의 손에서 야구공이 떠나가는 순간.
시운의 뇌리에 한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홈런.’
탕!!
야구공이 맑은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올랐다.
-호, 홈런! 그것도 만루 홈런입니다! 양선환 선수의 배트에 맞은 공이 하늘 위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야!
중계를 하던 해설위원들이 흥분하며 떠들어댔다.
홈런이었다.
야구공은 호쾌하게 관중석 너머로 날아갔고, 홈런을 히트시킨 타자는 함박웃음을 띠며 1,2,3루를 휘젓기 시작했다.
시운은 자신이 홈런을 예측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지? 분명 공이 방망이에 맞기도 전에 투수와 타자의 움직임이 세세히 보였어. 그리고 홈런까지 맞추었어.’
그렇다면 이건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