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5화 (5/278)

제 5화

시험을 위한 길거리 여자 헌팅 (1)

속이 바싹, 타들어간다.근데 이미 예상한 일이다.

‘딱 한 번만 참자. 어머니 아버지도 계시니까.’

혼자 속으로 되뇌인 시운은.

조용히 음식들을 입 안에 넣어 우적거린다.

음식들이 씹히는 건지. 고무덩어리가 씹히는 건지.

‘우리 집에서 밥 먹는 게 이렇게 불편한 적도 참 오랜만이네.’

폭풍같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두 번째 생?

그때도 친척들은 그랬다.

서른네 살까지 계속된 실패로 빛도 보지 못한 시운을 친척들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듯 하대했다.

벌레 취급 하듯이.

그래서 시운은 친척들과 면식을 치러야 하는 명절이 그 어느 날보다 싫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시운은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었다.

날선 적이 사방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도 도통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이 서방.”

큰 이모는 묵묵히 소주만 들이 키고 있는 시운의 아버지를 불렀다.

“예.”

“시운이 교육 좀 잘 시켜. 돈 버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지금 시운이 쟤한테는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시기가 지금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도 안 나오고 뭐 먹고 살겠다고.”

쭈-욱

시운의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으로 소주 한 잔을 더 들이킨다.

“이 서방. 우리 아들 태석이하고 태형이. 그리고 혜원이, 대환이 봐봐. 얼마나 번듯해. 시운이도 자네처럼 궁핍하게 살게 할 건가?”

“그만하십시오! 시운이도 알아서 앞가림 잘 할 겁니다. 제 아들도 이제 애 아닙니다.”

“어이구… 퍽이나 잘 하겠어. 시운이 방 들어가 보니까 공부할 책은 도통 보이지도 않던데. 에휴. 이 서방. 자네가 내 동생이랑 결혼할 때 내가 반대 한 번 안했었는데… 이게 뭔가? 집에서 살림해야 할 내 동생 지금 자네와 맞벌이로 등골 빠지게 고생하고 있지 않나.”

“……….”

시운의 어머니가 껴들었다.

“아휴, 언니! 그만 좀 해. 우리 남편도 얼마나 노력하는데. 친척끼리 좋게 지내보려고 나도 애들하고 남편 데리고 온 거잖아. 언니도 그만할 때 됐잖아, 이제.”

시운의 어머니의 말에 큰 이모는 인상을 쓰며 잠시 입을 닫는다.

이시운은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어도, 아버지까지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게 참기 싫었다.

‘아버지…….’

큰 이모는 항상 시운의 집안을 무시했다.

돈이 없어 빈곤하게 지낸다는 이유 하나로.

‘가난한 게 죽을 죄라도 진 것 마냥.’

밥은 도저히 먹기 싫었지만 꾹 참았다.

혜원은 돌처럼 딱딱한 얼굴로 밥을 축내고 있는 시운을, 눈동자를 비집어 까서 보며.

“넌 밥 하나는 잘 먹는구나. 그래… 그거라도 잘 해야지. 많이 먹어라?”

“크하하하하!!”

“그래, 밥이라도 많이 먹어라, 하하하.”

혜원의 날카로운 한 마디에 사촌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 사람들이 내 친척 피붙이들 맞아?’

시운의 입술이 움직였다.

“대학은 제가 알아서 꼭 가겠습니다. 형, 누나들이 제 친척이고 저보다 어른이라면 그 답게 행동하시죠.”

“뭐? 하. 지금 너 뭐라고 했냐?”

순식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태석을 비롯한 태훈, 혜원의 성난 눈이 시운에게 향했다.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너보다 한참은 어른인 우리한테 그딴 말대답을 해? 못 배운 거 자랑하니?”

혜원의 쏘음에 시운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만 하거라!”

혜원은 그제서야 입을 닫았고.

이번에는 태형이 시운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인마. 어른들 계신 자리에서 형 누나들이 곱게 충고 해주는데 그딴 싹수 없는 말대답이 가당키나 해?”

“충고와 말씀은 한 번이면 감사한데 이건 매우 도가 지나칩니다.”

“뭐, 뭐라고?”

이번에는 태석이 눈을 부라리며 되묻자.

시운은 그대로 일어났다.

“식사는 다 했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태형이 쏘아봤다.

“시건방진 자식. 어른들 식사 아직 안 끝난 거 몰라? 그보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

“이게 대답이 없어?”

태형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마저 식사하십시오.”

“못 배워먹은 자식이 말도 정말 안 듣네.”

시운은 어금니를 콰득, 깨문다. 그러면서 뒤돌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분통한 마음을 숨기고 그저 소주로 묵묵히 버티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 왈칵 목이 메여왔다.

뜨거운 눈물이 눈을 비집고 흘러나올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그때였다.

“시운아! 넌 먼저 들어가서 맘 편히 쉬거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한 섞인 아버지의 목소리는 귓가에 너무나 슬프게 들려왔다.

자식이 더는 수모를 당하는 것을 못 보겠는지 말 없이 소주만 들이키는 그였다.

‘아버지. 우리 집안이 더는 무시 받지 않게 내가 일어날게요. 이번 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거니까.’

눈물이 눈알을 비집고 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까지 보이면 친척들에게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단 생각에 꾹 참았다.

시운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뒤통수로 가슴을 에는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힌다.

“이시운, 쟤도 참 어지간하다.”

“방금 눈 째고 나한테 대드는 거 봤지?”

“답이 없어, 쟨.”

덜컥.

방문을 닫아버린 시운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내가 대학 안 갔다고, 지금 하는 일이 없는 백수라고 저 사람들에피해라도 줬나? 친척이란 인간들이! 우리 집이 기울 때 돈 한푼 안 보태주던 놈들이.’

시운은 가정사에 참 사연이 많았다. 그저 대학을 가기 싫다고 안간 모지리가 아니었건만.

당장에 이불을 얼굴 위까지 덮었다.

눈물이 흐르려는 걸 애써 참는다.

자신의 모욕 정도는 분명 참을 수 있는 시운이었으나.

큰 이모가 자신의 앞에서까지 아버지까지 이렇게 큰 모욕과 수치심을 줄 줄은 몰랐다.

“나 차나 바꿀까봐. 포르쉐 말고 무난하게 밴츠로 바꿀까? 뚜껑 열리는 건 추워서 못 타겠더라구, 이제.”

방문 너머로 낄낄, 웃는 사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반드시 성공하고 만다. 아버지와 내가 당한 모욕. 내가 성공하고 나서 톡톡히 되돌려 줄게. 아버지… 조금만 기다려 줘요. 나… 할 수 있으니까.’

내년 안에 반드시 되갚아주리라.

당한 만큼의 곱절로 찍어 눌러주리라.

아랫 입술을 콱 깨물었다.

띡!

갑자기 티비가 저절로 켜졌다.

시운이 침대에 누으며 등으로 리모컨 버튼을 건드린 듯 했다.

-여기가 바로! SS급 헌터 박태석 씨의 집입니다. 와! 호화저택이 따로 없네요?

-나름 검소하게 살고 있습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티비에 시선을 박았다.

티비 속에서는 유명한 SS급 헌터 박태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수영장과 스파가 딸린 대형 저택에 이어, 그가 보유한 삐까번쩍한 슈퍼카들이 즐비한 채 화면에 나오고 있다.

SS급 헌터 박태석.

우리나라 최초로 SS급 헌터의 자리에 오른 그는.

이미 웬만한 탑 배우들보다 더욱 유명했다.

게다가 보유한 재산만 몇 천억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 대기업 스폰서들도 줄을 설 정도이며, 사회에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기업이라 불리울 정도.

게다가 개인 경호원만 다섯 명은 끼고 다닐 정도다.

그는 화면 속에 나와 웃으며 명품 영국차 롤스로이스에 오른다.

-이 차는 얼마 전에 지름신이 돋아서 구입한 찬데요. 생각보다 승차감이 좋더라고요.

-이런 차를 단지 지름신이 돋아서 바로 사셨다고요?

-네, 티비에서 누가 이 차를 타고 나오는 거에요? 그것 보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죠.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이 차를... 태석 씨는 정말 태연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역시 사회에서 제일 인정해주는 직업인 헌터라 다르네요.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저, 태석 씨.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인데요, 태석 씨는 연봉이 얼마에요? 비밀인가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달에 이런 차 몇 대 뽑고 좀 여남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우와……. 이 차만 해도 족히 5억은 될 텐데. 역시 SS급 헌터 다우시네요.

태석에 시선을 두던 시운의 눈빛이 빛났다.

‘그래, 헌터. 이번 생에선 나도 저 헌터가 되는 거야. 전생은 도전했다가 병신같이 실패했지만. 이번 생은 될 수 있어. 왜냐? 나는 남들에겐 없는 능력이 있으니까.’

시운은 눈을 질끈 감고 비장한 각오로 오늘 서점에서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렸다.

책에 빼곡하게 서술되어 있던 그 많은 내용들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닌다.

‘떠올라. 오늘 서점에서 읽었던 모든 내용들이!’

찬란한 미래를 꿈꾼다.

이시운.

헌터 그 꿈에 다시 한 번 도전한다!

이번 세 번째 생은 결코 찌질하게 살지 않으리라.

***

며칠 후.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에 절로 눈이 떠졌다.

책상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며칠간 속독 연습에 사용한 책이 펼쳐져 있다.

‘아침인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AM. 10시 15분.

떡진 머리를 긁적이다가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세정과 재회했을 때 서점에서 사들고 온 책.

시운은 바디시그널에 대한 이론을 다룬 책에 유독 흥미가 갔다.

바디시그널.

사람이 어떠한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에 따른 반응을 무의식적으로 신체적 반응을 통해 나타내는 신호.

‘습득하면 내 눈으로 과연 실전에 활용할 수 있을까? 일단 이 눈으로 이게 가능한지 실험해봐야 겠어.’

만약에.

이것을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다면?

정말 시운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가 상당히 커지는 셈이다.

일단 책을 펼쳐들었다.

방대한 분량의 페이지.

철썩-철썩-

종이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오케이! 다 읽었다!’

5분 만에 속독.

그러나 시운은 다시 한 번 책을 펼쳤다.

외울 내용이 많아 복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동안에 시운은.

무려 열 번이나 반복해서 이 책을 완독했다.

반복 끝에 책의 내용은 머릿속에 탄탄히 새겨지게 되었다.

일반인이라면, 수많은 이 책을 제대로 보고 다 외우려면 최소 이 주일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걸렸다.

‘나는 단순히 속독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아무리 눈에 방대한 글을 담고 담아도 눈이 피로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복습의 효과로 이 책 안의 내용들을 완벽히 뇌 안에 담게 되었다. 바디 시그널.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이론이야….’

바디시그널.

사람이 입으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시운이 시간을 투자해 빠듯한 이 이론을 습득 하려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 지식을 통해서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서였다.

만약 일반인이라면?

이 모든 이론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관심법처럼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러나 시운은 다르다.

며칠 전 병원을 나오면서 느꼈던 그 희한한 경험 이후로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통찰력을 가진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걸 깨우쳤기에.

‘지식은 얻었다. 이제 경험을 쌓는 일만 남았어. 그렇다면… 실전으로 넘어가 볼까나?’

바디 시그널의 이론을 통해 정말로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를 읽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실전으로?

헌터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이 눈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 확실히 파악하고 싶었다.

이 눈으로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시운의 모든 생활에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공부는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실험을 해야 했다.

외출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평소에 그가 즐겨 입던 후줄근하고 편한 스타일의 옷은 마다하고 세련되고 말끔한 스타일의 옷을 쫙 빼입었다.

‘오늘 하루는 멋지게 간다.’

옷맵시를 이리저리 다듬고, 거울에 비춰진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느끼한 얼굴이 아닌, 은은하고 조화로운 이목구비.

그리고 하얀 피부란 무기를 가진 시운의 외모는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갑작스레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용모를 단장한 뒤에 지갑을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그가 도착한 곳은 신촌의 한 번화가.

직장인의 퇴근 시간이 되자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시운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주로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여성들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놀라웠다.

무려 몇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눈.

‘바디 시그널을 시험해보기엔 헌팅이 딱이지! 왜냐? 여자에게 말을 걸고, 여성이 즉각적으로 보이는 바디 시그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캐치한다. 그리고 내가 대시해 보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내가 내린 답이 정말 들어맞는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헌팅을 위해 시운은 오늘 이토록 꾸미고 나온 것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길가를 걸었다.

핫팬츠에 골반이 예쁜 여성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온다.

‘타겟 발견.’

시운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갔다.

창피함이란 일절도 없다는 듯이.

“저기요… 죄송한데.”

“네?”

시운은 말을 걸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면서 단 순간에 그녀의 신체적 반응과 표정 변화를 살폈다.

놀랍게도 그녀의 미세한 표정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커지지 않은 동공. 보이지 않는 신체 근육의 움직임. 게다가 이 여성의 심장박동수의 변화도 없어. 심장이 존재하는 왼쪽 가슴에 작은 출렁임도 없으니까…. 처음 보는 남성이 다짜고짜 말을 걸었는데도 신체적 반응이 미미해. 즉 이 여성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게 결론이야. 맞는지 확인해 볼까?’

시운은 생각을 마치고 물었다.

“아… 뜬금없이 이렇게 말을 걸어서 죄송한데요. 제가 원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거는 타입은 아닌데 멀리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그쪽에게 관심이 있어서.”

시운이 당차게 말을 이어갔으나 여성은 콧방귀를 끼는 표정으로 시운의 말을 채 다 듣지도 않았다.

“아 됐거든요. 바빠서요.”

여성은 오른손을 들며 더 이상 말을 걸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도도하게 가던 길을 걸어갔다.

수치스럽고 다소 창피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뿌듯함이 밀려왔다.

오히려 자신이 여성의 생각을 바디시그널 이론을 응용해 맞췄다는 생각에 들뜨려 했다.

‘좋아, 내가 맞았어! 그러나 한 번의 시도만으로는 이게 확실하다고 장담하지 못해.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 수도 있으니까…….’

해는 저물고 어느새 거리는 칠흑의 밤이 도래하고 있다.

신촌의 거리를 수놓는 가게의 간판들의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시운은 잠시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섰다.

“팔리아멘트 라이트 하나 주세요.”

“네, 4500원입니다.”

알바생이 쥐어주는 담배를 건네받는 도중 판매대 옆에 쌓여있는 로또 용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운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세상이 같은 패턴으로만 흘러간다면 로또 몇 개만 머리에 달달 외우고 회귀하면 쉽게 부자가 될 텐데……. 아쉽군.’

편의점에서 나왔다.

탁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시운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순간 시운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던 한 여성이 보인다.

그녀는 시운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오호라.’

레드와인 빛결의 튀는 머리색.

그리고 목선 옆에 새겨진 타투.

가슴골과 배꼽이 확연히 노출된 셔츠를 입고 있는 여성의 외모가 썩 괜찮게 느껴졌다.

시운은 방금 찰나의 순간을 뇌리에 떠올렸다.

‘저 여자…. 나와 눈이 마주칠 때 흔들렸던 동공, 동시에 올라간 입 꼬리. 게다가 옆머리를 귀 쪽으로 쓸어 넘겼어.’

‘여성이 호감 가는 이성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목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고 책에 서술되어 있었지. 그래서 머리를 뒤로 넘기는 버릇을 나타낸다. 저 여자는 나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민망해서 고개를 돌린 게 아니야.’

과연 저 여자가 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올까?

일단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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