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6화 (6/278)

제 6화

시험을 위한 길거리 여자 헌팅 (2)

시운은 당당하게 걸어갔다.그녀에게.

“저…….”

“네?!”

그녀가 필요이상으로 화들짝! 놀랐다.

시운은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죄송한데, 그쪽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요. 혹시, 방금 저랑 눈이 마주쳤던 거 기억나세요?”

“네? 아, 아닌데요.”

그녀는 배시시 웃고 있으면서도 슬쩍 팅기는 것 같았다.

시운의 눈에는 이 여성이 띠고 있는 미소가 긍정이란 것이 대번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네요.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그리고 먼 거리도 아니었고…… 기억나는데 안 난다고 지금 잡아떼는 거죠?”

시운의 능청맞음에 여성은 결국 폭소를 터뜨렸다.

‘남자 한두 번 만나본 외모가 아니야. 게다가 부끄러움도 별로 안 타는 반응이다. 바로 승부를 보도록 할까.’

이시운은 씩 미소를 지었다.

“지금 웃고 계신 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되죠? 보통 모르는 사람이 대뜸 말 거는데 웃어주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아....”

그녀가 침음을 흘리면서도 나쁘지 않다는 표정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커피 한 잔 사고 싶은데. 혹시 시간되세요?”

“아... 커피요?”

“약속이라도 있으신가?”

“아, 아니요. 약속은 없는데….”

여성이 몸을 살짝 꼬면서 시선을 땅에다가 내리고 웃고 있었다.

긍정적인 바디시그널.

게임은 이미 끝났다.

그것도 너무 빠르게.

“딱히 약속 없으시면 대화 좀 나눴으면 해요.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저기 저 쪽에 카페 하나 보이네요. 저하고 달달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남는 시간이나 좀 축낼까요?”

“저어…… 그쪽이 사시는 거에요?”

“당연하죠!”

이시운은 주먹을 꽉 쥐고 어퍼컷이라도 날리는 세레모니를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성이 넘어와서 기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바디시그널을 이용해 타인의 마음을 완벽히 간파했다는 사실에 흡족한 것이었다.

천재가 된 기분.

“음…….”

잠시 그녀가 고민하듯 침음을 흘리다가.

틴트가 묻어있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여성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운은 곧바로 그녀를 이곳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으로 데려갔다.

“뭐 드실래요?”

시운이 물었다.

“저 카라멜 마끼야또로.”

“달달한 거 좋아하시는 구나.”

“네, 뭐.”

시운은 지갑을 꺼내어 커피 값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하고 있자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처음 본 여성에게 작업을 걸어 이렇게 곧바로 대화로 직면한 경험은 시운에게 있어선 처음이었다.

작업이 아니라 실험이 목적이지만.

“그나저나 어디 사세요?”

방금까지는 민망한 듯 말이 별로 없던 여성이 어느새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적극적으로 물었다.

“서대문구 살아요. 이 근처죠.”

“아…. 그러시구나.”

“그쪽은?”

“저는 여기서 좀 먼데…….”

“어디요?”

“대치동이요.”

시운은 그녀의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물고 상념에 잠긴다.

‘대치동이면 강남…. 좋은 데 사네.’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그 커피를 들고 와 그녀 앞에 자상히 놓아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잔에서 기분 좋은 단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운은 무슨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저 나이 많은데.”

“몇 살이신데요?”

“스물일곱 살이요.”

“그게 뭐가 많은 나이에요?”

지금 현재 시운의 나이보다 네 살이나 많은 나이지만, 스물일곱 살이란 나이는 시운에겐 그저 어린 나이에 불과했다.

두 번째 생에서만 서른네 살까지 살아본 인생이다.

결국 끝은 쓴맛을 보고야 말았지만…….

뭐, 어쨌든.

“여자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면 뭐, 적진 않은 나이죠.”

“아직 서른 살도 안 됐으면서. 한창 팔팔할 나이에 그 무슨 망언인가요?”

시운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에겐 시운의 이 말은 사탕발린 달콤한 칭찬이었으리라.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쪽은 몇 살인데요?”

“저요? 저 서른네 살… 아, 아니. 스물세 살이요.”

순간 자신의 나이를 착각하고 전생의 나이를 말할 뻔 했다.

시운은 속으로 ‘정신 좀 차리자’고 되 뇌였다.

“어머, 뭐에요? 자기 나이도 몰라요? 그나저나 스물세 살이면…… 킥, 애기네.”

“애기요?”

스물일곱 살 여성이 자신에게 애기라고 말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희귀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총 합치면 36년이건만.

시운이 삼시세끼를 먹은 날이 이 여성보다 무려 9년이나 많다.

“하하하하. 애기라니…….”

웃음만 나온다.

“애기죠. 애기. 스물세 살이면 좋을 때네요. 부럽다아~”

여성은 정말 부러운 듯 턱을 슬쩍 괴고서 말했다.

그러더니 김이 피어나는 카라멜 마끼야또를 들이키면서 기분 좋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맛있다.”

달달한 카페인이 몸에 녹아들자 그녀의 얼굴에 또 한 번 화색이 번졌다.

처음에는 다소 폐쇄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지만, 맑고 순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예쁘게 보였다.

“하는 일이 어떻게 돼요? 직장인?”

“아… 저는 지금 취업준비 하고 있어요. 그쪽은 대학생인가요? 스물세 살이면 학교 다닐 나이겠네.”

“아……. 저 고졸이에요.”

“아.”

순간 여성의 표정이 회의적으로 변했다.

시운이 고졸이라는 사실에 다소 실망한 낯빛이었다.

학력이란 것이 대체 뭐기에 인사부 면접관도 아닌 처음만난 이성이 얼굴을 구긴단 말인가.

시운의 속이 씁쓸하게 타들어갔다.

“취업준비 하느라 힘들겠네요.”

“뭐, 그렇죠…….”

“대학교는 졸업 하신 거예요?”

“당연하죠! 4년제 나왔어요.”

시운은 ‘당연’이라는 단어가 거슬리게 느껴졌다.

그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

‘형편에 따라서 대학교 못 갈수도 있는 거 아닌가? 당연하다니. 음….’

어쨌든 시운은 이 여성과 잡담을 나누며 조금씩 어색한 사이를 허물어갔다.

어느 정도 서로 친해지자 서로 통성명까지 하게 됐고, 자신을 이지현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서로 말을 놓자고 말했다.

“누나라고 불러. 서로 편하게 말 놓으면 되는 거지, 뭐.”

“누나라……. 그래. 누나라고 부를게.”

“누나라고 안 부르려던 것처럼 말한다? 시운아, 너. 그럼 누나보고 야 라고 하려 했니?”

“그건 아니야.”

“그래, 그래. 스물세 살 애기면 4년은 더 산 누나한테 당연히 누나라고 불러야지.”

그녀의 가소로움에 얼굴이 살짝 구겨지려 했으나 애써 웃으며 표정관리를 했다.

‘내가 너보다 9년은 더 살았다, 이것아.’

대화가 길어질수록 지현은 시운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고 끼를 부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조금 더 애교스럽게 바꾸기도 했고, 시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적극적으로 웃어주며 자연스레 시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스킨십까지 시도했다.

그녀는 시운의 손 위로 갑작스레 손을 포개고 시운의 손을 간질이듯 했다.

지현의 집게손가락이 시운의 손등을 살살 비빌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일었다.

‘적극적이네. 근데 정말 오랜만에 여자와 스킨십을 해보는 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운의 뇌리를 살짝 어지럽히는 성적인 욕망도 동시에 들었다.

지현은 예쁘장한 얼굴로 리액션을 취해주며 대화를 주도했다.

그러던 중에.

드르륵-

“음? 진동소리가 울린 것 같은데. 누나 핸드폰 전화 온 거 아니야?”

“아, 아니야…….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지현은 자신의 가방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했다.

시운의 눈에 불안정한 그녀의 모습이 선명히 들어왔다.

‘왼쪽 가슴을 덮고 있고 있던 셔츠자락이 점점 또렷이 나풀거리기 시작한다. 즉, 심장박동수가 늘었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동공 또한 흔들리고 있고, 왼쪽 이마의 땀샘에 땀이 맺히려 하고 있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거야.’

매의 눈으로 그녀를 훑은 시운은 계속해서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말했다.

“계속 오네. 그러지 말고 받아. 난 괜찮으니까…….”

지현은 시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주섬주섬 거리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을 생각은 않고 핸드폰을 터치하여 통화 차단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닌가.

“왜 안 받아?”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누구 전화이길래?”

“응…… 아빠.”

아빠의 전화라고?

시운은 다시금 그녀를 훑었다.

그녀는.

필요이상으로 입 주변을 훑고.

머리카락을 만지는 등 딴청을 피우는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손마디를 부자연스레 까닥거리는 것도 느껴졌다.

‘안 받아도 되는 전화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 꼭 피해야 하는 전화군.’

남자친구한테 전화라도 온 걸까.

시운에겐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시운이 지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의심으로 가득해있었다.

“우리 나갈까…? 술 한 잔 하는 거 어때. 나 저녁 안 먹었거든.”

“방금 그 전화. 아빠가 아니지?”

“뭐?”

그녀가 흠칫 했다.

“아빠에게 전화 온 게 아니잖아.”

“아니… 맞는데?”

“그렇다면 아빠 전화를 왜 피해?”

“아니. 자꾸 일찍 들어오라고 난리를 치니까……. 원래 우리 아빠 성격이 좀 이렇거든. 내가 아무래도 딸이기도 하고, 여자이다 보니까 통금 시간에 엄격해.”

나름 변명을 능수능란하게 둘러대는 지현이었지만, 그녀의 신체에서 나타나는 불안정한 바디 시그널은 온전히 시운의 눈에 포착되고 있었다.

‘일단 추론은 접어두고. 더 지켜볼까나.’

드르륵! 드르르륵!

계속해서 울려대는 그녀의 핸드폰 진동 소리.

시운은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눈을 크게 떴다.

순간!

그녀가 두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느리게 흘러가는 순간.

‘보인다!’

시운과 같은 계열의 핸드폰을 쓰고 있는 지현인지라 자신의 핸드폰의 획이나 자음 모음을 입력하는 조판 방식이 같았다.

지현의 손마디가 폰을 두드리는 것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 순간.

시운은 자신의 핸드폰을 펼쳐들어 자신의 폰 조판 입력판을 확인했다.

동시에 자신의 핸드폰 조판들을 빠르게 훑고 그녀가 움직이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보인다. 내 핸드폰 조판 입력방식과 같으니, 무슨 내용을 입력하는지가 보이는 군.’

그녀의 핸드폰 액정화면을 보지도 않고도 손놀림만으로 무슨 내용의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는지 시운은 캐치하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그녀가 입력한 자음과 모음 획을 합쳐 머릿속에 그려봤다.

[자기야 나 지금 강의 받고 있어. 정말 바빠서 그래. 어제 그 일 때문에 화난 거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거 알자나!! 바부야ㅡㅡ]

그녀가 핸드폰 터치로 입력한 내용은 이랬다.

“누나…. 남자친구 있구나.”

“어?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남자친구가 있으면 네가 여기 오자고 했을 때 왔겠냐.”

시운은 더는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자신의 놀라운 눈으로 증거를 확인하였으니.

“그만 일어나볼게. 남자친구 전화나 받아.”

“뭐?!”

시운은 냉랭한 음성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등을 돌리려는 순간 그녀가 팔을 낚아챘다.

“야! 어디가?”

“놔봐. 남친 있는 여자 건들고 싶지 않아서.”

“하…. 어이가 없네. 갑자기 뭔 소린데?”

“누나를 먼저 꼬드긴 건 나지만, 남자친구가 있으면 그런 유혹도 뿌리치고 그 사람에게 다하는 게 의무 아닌가.”

시운은 담담히 말하고서 유유히 커피숍에서 나왔다.

그때 뒤에서 힐이 거칠게 지면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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