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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3회차-8화 (8/278)

제 8화

빌드 업을 위한 과정

시운이 어렵게 입을 뗀다.

“나 헌터가 되려고.”

“뭐?”

천세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헌터? 헌터를 하겠다고?”

시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대학교를 가겠다는 거야?”

“아니. 바로 헌터 자격시험을 준비할 거야.”

“……….”

“아니, 헌터 대학교도 가지 않고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바로 준비하겠다는 거야?”

그랬다.

법대, 의대에 가는 것보다 힘든 것이 헌터대학교에 가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교육을 받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교 헌터학과를 졸업하고 헌터 자격시험을 치루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

그러나 그런 루트를 거치더라도 헌터가 되는 것은 정말 힘들다.

지원자가 1위인 직업이니 만큼 경쟁률도 워낙 세지만.

공부할 것들이 행정고시, 사법고시 보다 두 배 세 배는 많다.

하물며 시운이 바로 헌터 자격시험을 치루겠다는 것은.

솔직히 중학생이 사시를 패스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이 세상은 두 가지 세상이 있다.

헌터들만 출입할 수 있는 이계(異界).

그리고 현재 시운이 살고 있는 현계(現界).

로 나뉜다.

이계는 그 세계에서 따라야 할 교양 및 법도, 세력, 역사 등등 알아야 할 지식이 굉장히 방대하고 많다.

이 세상과는 다른 세계인 이계에서 밥벌이를 해야 할 헌터이기에. 그 세계에 대한 공부를 해야함은 당연했다.

그래서 헌터가 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만큼 힘든 대신에, 주어지는 명예와 부는 따라준다.

물론, 헌터의 랭크 차이와 스폰에 따라서 수익 창출도 천차만별 달라지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헌터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게임 속 세상처럼 다시 부활하고 하는, 그 따위 것은 없다.

그래서.

헌터가 되려면 자격 시험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위험은 감수하고 그 세계에 발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매우 강하거나, 금수저 출신의 현질 헌터들이 죽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반면, 약한 헌터들은 그 세계에서 대우 받지 못하고.

실수했다간 하급 몬스터에게 내장이 뜯긴 채, 골로 갈 수도 있다.

그게 헌터의 세상이다.

“시운아. 헌터가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줄은 아니?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고?”

“다 알고 있어.”

“공부해야 할 것들도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을 거야...”

“세정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시운은 진지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면 세정은 걱정부터 되었다.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다며 담 쌓고 지냈던 시운을 잘 아는 세정.

그런데.

지금 시운의 말투와 얼굴에 장난끼가 조금도 없었다.

‘시운이, 얘가 이제야 철이 든 걸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드르륵-

세정의 핸드폰에서 진동소리가 울렸다.

시운은 턱짓으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세정은 핸드폰을 귀에다 대고 조곤조곤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정이의 바디시그널이 회의적이야. 정말 모델 일이 고되긴 한 가 보구나.’

어느새 통화를 마친 세정은 살짝 굳은 얼굴로 말했다.

“시운아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저녁은 못 사주겠다. 다음에 꼭 사줄게. 미안.”

“급한 일이야?”

시운의 물음에 세정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알았어, 가 봐.”

“연락할게.”

세정은 다소 침울한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손을 흔들더니 현관 밖으로 나간다.

‘반드시 헌터가 될 테다. 세정이에게 번듯한 헌터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시운은 그녀와의 즐거운 대화로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그녀가 가고 나니 할 일도 없고, 무료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불러서 술이나 한 잔 할까? 보고 싶네. 녀석들….’

배터리 충전기에 꼽혀있는 잭을 풀고 핸드폰을 켰다.

띠이잉.

그리고 주소록을 이리저리 뒤적여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조승훈.

시운과는 성수 공업고등학교 동창.

개그맨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정도로 유쾌한 놈.

시간이 어느 때든 연락해서 대뜸 술을 먹자고 하면 곧바로 ‘어디서 만날까?’라고 되묻는 녀석.

‘조승훈 이 새끼. 오랜만에 한 번 보고 싶네……. 전생에서는 이놈이 멀쩡한 직장을 다니다가 느닷없이 퇴사하고 개그맨 공채시험을 보겠다면서 부랴부랴 날뛰다가 완전히 인생 쫑 났었지.’

승훈에게 냉큼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대신에 컬러링이 귀로 들려온다.

녀석과 매치가 잘 될 정도로 리듬감이 넘치고 신나는 음악이었다.

- 여보세요.

다소 둔탁한 목소리로 승훈이 전화를 받았다.

“승훈아, 나다. 시운이.”

- 새끼. 오랜만에 전화했네.

“목소리가 푹 잠겨있다? 자고 있었냐.”

- 어어… 자고 있었지이. 후아암.

하품이 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술 한 잔 할래? 간만에.”

그리고 들려오는 승훈의 대답은.

- 어디서 만날까?

“푸하하하!!”

역시나.

시운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 갑자기 왜 웃어, 새꺄.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승훈의 ‘어디서 만날까?’ 라는 대답에 시운은 박장대소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사람 특유의 성격은 어디 안가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 헌터 시험 공부하느라 한동안 친구들도 못 볼텐데 지금 실컷 봐둬야지.’

***

번화가의 한산한 어느 치킨 집.

시운은 고개를 훑어 주변을 둘러본다.

테이블 위에는,

갓 튀긴 치킨과 싱싱한 치킨 무, 생맥 500cc 네 잔.

그리고 냅킨 위에 얹힌 포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고등학교 동창내기 친구들이 맥주잔 손잡이에 손을 걸치고, 치킨을 입으로 아득아득 뜯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

조승훈과 이현찬, 김태훈이 그 옆에 앉아 있다.

남들을 웃기는 재미로 사는 승훈.

깡마른 체구에 큰 키, 매일 투덜거리는 것이 일상인 현찬.

그리고 왜소하지만 깊이 있는 눈매에 은은하게 잘생긴 느낌을 풍겨내는 태훈.

시운은 유독 수수하게 옷을 차려입은 태훈이라는 친구의 얼굴에 눈이 멈췄다.

김태훈.

시운과 같은 공업고등학교 출신.

비범함으로 가득한 놈이다.

‘이 녀석을 보면 떠올릴 게 참 많지.’

초등학교, 중학교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태훈은 인문계를 가도 될 법하지만, 의아하게 시운과 같은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실업계의 특별전형이라도 노렸던 것일까?

아니었다.

시운의 뇌리에 고등학교 때의 풋풋한 그 때가 떠올랐다.

***

교복을 입은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던 태훈..

시운은 물어볼 것이 있어 다가갔다.

“태훈아. 나 예전부터 너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너 정도면 인문계로 진학해도 전교 1등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굳이 최하위급 수준인 우리 학교로 온 거야?”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을 때.

태훈은 너무도 태연하게 답했다.

“그냥 내가 오고 싶어서.”

이상한 대답.

아니, 시운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대답.

‘더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가 없군.’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태훈의 눈빛의 태훈은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항상 말을 내뱉을 때마다 무게감이 있고 이상한 매력이 있는 녀석.

‘사실 태훈아, 네가 질투스럽다.’

말수도 적은 녀석인데 반 여자애들은 모두 태훈이 좋다고 난리였다.

신비한 매력?

시운은 한때 태훈이 일부러 신비주의인 척 하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친해지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김태훈 이 녀석은 컨셉이 아니었어.’

그리고.

그와 친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전교 1등의 자리를 꿰찬 최우수 장학생이던 김태훈.

선생들과 교장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때.

태훈은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만다.

당시 모든 선생들은 물론 시운도 이러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체 이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단을 내리고야 만 걸까?’

시운은 학교를 마치고 교복도 채 갈아입지 않고 태훈의 집을 찾아갔다.

쾅쾅!!

현관문을 두드리자 평소보다 초췌한 몰골로 태훈이 시운을 맞았다.

“왔냐.”

“아니…. 야이 새끼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자퇴 말이야.”

“일단 들어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와보는 태훈의 집.

태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생전 처음 보는 장비들.

모니터는 켜져 있는 채 화려한 비트를 풍기며 방안의 분위기를 수놓고 있었다.

얼떨떨한 시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곤 태훈에게 물었다.

“뭐냐? 이것들이 다….”

“음악 장비들이야.”

“아니. 지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너 왜 자퇴서 낸 거냐? 미쳤냐, 새꺄?!”

시운은 나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태훈은 시운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입술을 움직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하고 싶은 일? 그것 때문에 자퇴를 하겠다는 거냐?”

“그래.”

“이 새끼가 미쳤나!”

이시운은 태훈에게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주위에 설치된 방음 인테리어, 원형 모양의 녹음 장비, 그리고 사치스런 스피커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네가 하고 싶은 것이라서 자퇴하고 이렇게 한심스럽게 굴고 있는 거냐’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 치민 마음속에는 항상 태훈을 질투해왔던 시기심도 들어있었다.

공부도 설렁설렁하면서 전교 1등에,

여자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을 가진 녀석.

한마디로 뭘 해도 잘하고, 뭘 해도 관심받는 놈.

“한 대 쥐어박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자. 담임 선생님이 아직 자퇴서 수리하지 않으셨을 거야.”

태훈은 고개를 슬며시 저었다.

결국 시운은 태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다. 이딴 거 집어치워고 말 들어라, 친구야.”

그리고 오른손을 올려들어 주먹을 쥔 채 씩씩거렸다.

한 대 후려치리라는 제스처로.

“내 걱정 해 준 건 고마운데 이건 내 선택이다. 더 설교할 생각이면 돌아가라.”

너무도 단호했다.

그 후로 태훈은 학교에 영원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더욱 놀랍고 살 떨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은,

누가 들어도 알 법한 대형 소속사의 유명 가수가 음악 장르 1위 차트에 올랐다는 소식.

그 노래의 작곡, 작사가 김태훈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줄줄이 음악 차트 상위권에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진입시켰다.

그 중의 한 노래가,

‘애(哀)’라는 무거운 제목의 노래.

가슴을 뒤흔드는 명품 발라드.

음반 저작권료만으로 1억 이상의 연봉을 쓸어 담기 시작한 태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상했다.

‘그런데 더 의아한 건.’

태훈은 차 한 대 사지 않고 사치스러운 돈지랄 한 번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그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어깨에 힘 한 번 준 적 없다.

그 이후로 유명 걸그룹 멤버 중 하나와 열애까지 하면서 태훈은 스물세 살의 어린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린다.

이것이 현재 시운의 세 번째 인생에서의 태훈의 이야기.

전생의 김태훈에 대한 스토리?

역시 같다.

두 번째 인생을 살았던 시운이 공무원 시험에 전전긍긍할 시점에,

탑 여배우들의 태훈을 향한 수많은 대시.

그리고 태훈은 대한민국 탑 여배우와 스캔들을 터뜨렸고,

음악 프로그램을 프로듀싱하는 책임자 자리까지 오르며,

작곡가 수입 랭킹 1위 반열에 오르고 만다.

이게 두 번째 태훈의 인생의 스토리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태훈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시운은 이런 태훈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씁쓸함을 만끽했었다.

‘씁쓸하다. 전생이든 후생이든 될 놈은 뭘 해도 되는 구나.’

될놈될 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김태훈은 딱 이 말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끊임없는 삶인 이터널 라이프를 살면서 시운은 이 김태훈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쓴 좌절감을 맛봤었다.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나처럼 안 될 놈은 몇 번의 인생이 이어져도 똑같은 건 아닐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생만큼은 다를 것이다. 난 비현실적인 능력을 손에 쥐었기 때문에.’

그때였다.

따가운 볼멘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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