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9화 (9/278)

제 9화

빌드 업을 위한 과정 (2)

“야이 새꺄. 뭘 그리 멍 때리고 있냐? 치킨 맛 없냐?”

승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념에 잠겨있다 깬 시운이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폈다.

어느새 접시에 담겨있던 많은 치킨은 반으로 양이 줄어있다.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훈을 보자 시운은 물었다.

“태훈아. 너 요즘 돈 잘 벌잖냐. 근데 왜 그렇게 입고 다니냐?”

“돈 잘 버는 것하고 옷차림하고 상관이 있나.”

태연하게 말하고는 태훈은 맥주를 한 모금 삼킨다.

시운은 아무리 태훈이 친구이지만, 얄밉고 시기하는 마음이 확 올올라왔다.

“그래도 네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는데 옷이라도 좀 좋은 거 입고 싶고 차도 한 대 사고 싶고, 로렉스 같은 시계도 휘어 감아보고 싶고 그러는 거 아니냐?”

괜스레 시운이 톤을 높였다.

태훈은 표정변화 한 번 없이 자신의 옆 허공을 바라보더니.

‘그런가.’라고 답한다.

“이해할 수 없는 놈.”

‘진심일까? 김태훈 저 녀석. 이 눈으로 한 번 읽어봐야겠군.’

태훈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바디시그널 신호를 읽었다.

‘동공 변화 없음. 얼굴의 표정 변화 없음. 거짓말이 아니야.’

그때.

승훈이 시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근데 넌 앞으로 뭐할 생각이냐?”

“음?”

“제대도 했겠다. 나이도 이제 곧 20대 중반이잖아. 이제 너도 일에 뛰어들어야 할 텐데. 뭐 해먹고 살려고?”

승훈의 물음에 시운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헌터 자격시험 준비할 거다.”

“헌터? 아니 내가 잘못 들은거냐. 헌터라고? 네가?”

승훈이 피식 웃었다.

시운은 얼굴을 찌푸리고 맥주를 한 번 들이키더니.

“이번 년도에 반드시 본다.”

“뭐? 미친 새끼 아니야. 지금이 7월이야…. 헌터 시험은 11월이고. 고작 4개월 남짓 그 어려운 시험을…”

“본다고.”

시운이 승훈의 말을 딱 자르고 답했다.

자신의 놀라운 속독 능력을 공부에 쏟아 붓는다면 승산이 없는 게임은 아니다.

현찬이 놀라 확 커진 눈으로 시운에게 눈길을 줬다.

“태훈이가 걸그룹 멤버랑 사귀는 것보다 시운이가 헌터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게 더 신기해. 되기야 하겠냐만.”

앙상한 볼살을 으적거리며 말을 마친 현찬은 다시 자신의 접시에 놓인 치킨으로 눈을 돌리며 닭 살점 한입 베어 문다.

승훈은 조소를 비치며 말했다.

“대가리에 든 지식도 없는 놈이 몇 달 공부한다고 신의 직업이라는 헌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냐, 진심으로?”

“친구가 한다잖아. 핀잔은 주지 말고 응원해주자.”

태훈이 나직이 말했다.

“끄응…. 그래도.”

시운이 말할 때는 코웃음이나 치더니 태훈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수긍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태훈의 위치는 이 정도다.

시운은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태훈을 바라보고 물었다.

“태훈아. 너 속독이란 거 들어봤냐?”

“알고 있지.”

“잘 아네…. 그럼, 한 가지 물어보자.”

시운은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고 덧붙인다.

“만약 3분 만에 책 한 권을 속독하는 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걸 공부에 응용한다면 어떨 것 같냐.”

“음…….”

태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3분 만에 책 한 권을 읽는 속독을 가졌다면 암기과목은 단숨에 마스터할걸. 갑자기 그건 왜?”

“아니야….”

승훈이 치킨을 우적거리면서 태훈에게 물었다.

“아니, 속독이란 게 그냥 책을 빨리 읽는다는 거야?”

“응. 근데 속독이라고 해 봤자 책 한 권을 3분 만에 읽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시운은 불가능이란 말을 들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

‘난 가능해.’

현찬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더니 시운에게 다시 되물었다.

“속독이 정확히 뭐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에 시운 대신 태훈이 눈을 지그시 감고 설명한다.

“활자, 책을 빠르게 읽어가는 것. 그걸 속독이라 해.”

“아아아…….”

현찬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승훈은 코웃음을 픽 치면서 맥주를 모조리 들이킨다.

“현찬이 저 새끼는 시운이보다 대가리가 빡구네. 속독은 나도 안다.”

태훈은 특유의 말투로 나직이 말한다.

“시운아, 어쨌든 이왕 결심한 거 맘 굳게 먹고 열심히 해봐.”

“……그래.”

어깨가 다시 움츠러든다.

전국의 이목을 끌고 있는 태훈의 격려에 부끄러움과 뭔가 모를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태훈은 저 정도의 위치에서도 친구들 앞에서 오만이나 객기 한 번 버린 적이 없었는데.

시운은 그냥 한 번쯤 태훈 보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하고 싶다.

‘친구들 사이에서까지 경쟁할 필요는 없는데…. 김태훈 넌 기필코 한 번이라도 따라잡고 싶다. 이번 생은 달라. 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끊임없이 회귀하는 이터널 라이퍼인 시운.

그러나 그런 그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훗날에,

태훈과 이계에서 어떤 상황과 어떤 운명으로 마주하게 될지를.

***

다음날.

시운은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일단 헌터에 관련된 책은 모조리 담는다.’

헌터학 공부에 필요한 책은 보이는 대로 모조리 꺼냈다.

책들을 모조리 담으니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 카운터에 툭 내려놨다.

“총 35만 6천원입니다.”

시운은 지갑을 열고 체크카드를 빼낸 뒤 결제한다.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무거운 책들을 두 손으로 낑낑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햇빛이 쨍쨍하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상큼하게 느껴진다.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몇 달간 처박혀서 공부만 해야 되는 군.’

시내의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커피숍이 보였다.

카페로 들어간 뒤에 커피를 시키고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한잔 달달하게 마시면서 생각도 좀 정리해야지…….’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한삼키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일반인과는 다른 눈으로 보는 세상은 신선했다.

휙휙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단번에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입을 닫고 거리를 걷고 있지만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고 있는 사람.

남녀가 어색하게 걷고 있지만 서로 설렘을 느끼고 묘하게 썸을 타고 있는 사람들.

무표정으로 거닐고 있어도 요즘 좋은 일이 있어 행복이 얼굴에 써 있는 사람까지.

시운은 마치 자신이 초능력자라도 된 기분이 든다.

‘참 신기해……. 어쩌다가 이런 재주를 얻게 되가지고.’

스읍.

다시금 커피 한 모금 들이킨다.

전생에는 그토록 좌절하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인생이었고.

또다시 공부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지만, 전과는 다르다.

이 초자연적인 눈이라면….

그러다 문득 천세정의 얼굴이 머릿속에 아련히 떠오른다.

‘내가 헌터가 된다면 그녀를 안을 수 있을까.’

시운은 잠시 어느 누군가에게 눈이 멈췄다.

카페 안으로 드문드문 걸어오는 남성에게로.

검은색 챙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고, 어깨가 넓고 체격이 튼실한 남성이었다.

남성의 손에는 검은 서류가방이 들려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성은 카페 안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이상하게 주위를 의식했다.

분명 저 남성의 모습은 낯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나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인데…….’

시운은 눈을 부릅뜨고서 그의 행동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남성은 카페 안으로 들어가 종업원과 눈도 마주치기 않고 땅만을 보며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이 보인다.

소심한 성격의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의 행동은 굉장히 수상했다.

‘저 사람, 분명 어디서 봤어...’

남성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주변을 의식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

드디어 생각났다.

어제 담배를 사러 잠시 동네 편의점에 들렀다 나오려던 순간!

편의점의 문짝에 붙어있던 사진 속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 전단지 속에는 흉측한 인상의 남성들 삼십여 명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용의자 공개수배 전단지였다.

시운이 아닌 일반 사람이었다면 전단지를 힐끗 봤어도 그 많은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을 열며 전단지를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초이다.

그 1초란 시간동안 시운은 특별한 눈으로 그 모든 것들을 무의식 스캔한 것.

‘그때…… 수배지에 적혀있던 내용들을 떠올려보자.’

시운의 뇌리 속에 그 공개수배 전단지가 입체적으로 떠오른다.

전단지에 나열된 많은 남성들 중에 한 사람의 얼굴이 확대되어 떠오르고, 그 밑으로 기입된 내용들이 뇌리 속으로 펼쳐진다.

[인적사항]

김상표 (나이 31세)

신장 180cm에 건장한 체격. 오른쪽 눈 밑에 커다란 점 하나가 있음. 손바닥이 넓적하고 큼.

사건 개요

`12.06.14

경기도 백석동의 한 유흥업소에서 술집여성 한 명을 살해 후 도주.

신고 포상금: 500만 원

‘분명해! 게다가 신고 포상금이 무려 500만원이다.’

꽁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방금 사놓은 커피도 내팽겨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하자. 살인한 놈이야...’

시운은 대놓고 그에게 접근하면 그가 알아차릴 수도 있고, 행여나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조심스레 일행을 찾는 척 두리번거리면서 그를 살폈다.

검은색 쫄티를 입고 있는 남성은 남들에게 위압감을 조성할 정도로 튼튼한 골격을 가지고 있었다.

잘못해서 시비가 붙었다간 한 방에 골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살결에는 위용이 가득 담긴 잉어 문신들이 더욱 위화감을 준다.

‘문신? 확실히 일반인은 아니야. 하지만 아직 정확하지 않아. 눈 밑에 점이 있는 것을 확인해야 해.’

모자를 쓴 남성은 쉽사리 고개를 들지 않는지라 그의 눈가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성이 주문한 커피가 나와서 일어선 순간.

그의 얼굴이 시운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하게도 그의 눈 밑에 커다란 흑점이 나있었다.

그것도 확실히 오른쪽 눈에.

‘저놈이다! 확실해!’

이시운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그 남성을 바라보다가 그 남성과 시운의 눈이 슬쩍 마주쳤다.

‘…!’

순간 심장이 벌떡, 가라앉는 느낌에 저절로 고개를 피했다.

사람을 죽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느낌은 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

오금이 저려 등골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설마 눈치 까지는 않았겠지?’

이마에서 식은땀이 쭈욱, 흘렀다.

그러나 침착하게 행동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시운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연기를 했다.

“어~? 형식아. 어디야? 아무리 찾아봐도 너 안 보여. 이 카페가 아닌가?”

사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시운을 몇 초간 바라보다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시운은 그가 알아차리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카페 밖으로 황급히 나왔다.

‘빨리 신고하자.’

그리고 들고 있던 핸드폰의 다이얼에 ‘112’를 빠르게 입력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손가락이 떨려왔다.

시운은, 왼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거기 경찰서죠. 여기 용의자수배 전단지에서 본 인상착의와 동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테라스에 앉아 조마조마하게 경찰을 기다렸다.

살인범과 눈을 마주쳤던 방금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살벌함! 그 자체.

자꾸만 침이 꿀꺽 하고 삼켜진다.

‘하, 저놈이 커피를 다 먹기 전에 경찰이 와야 할 텐데.’

그때였다.

놀란 시운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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