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1화 (11/278)

제 11화

빌드 업을 위한 과정 (4)

***

셔츠가 든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은 돈은 420만원.’

이 돈으로 더 이상의 돈지랄이라는 사치는 하고 싶지 않다.

시운은 전생을 회상했다.

항상 실패 그리고 실패의 반복이었던.

악몽같은 전생을.

그때마다 부모님은 자신을 응원해주고, 뒷바라지 해주었다.

‘그런데… 난 부모님에게 속만 썩였지. 남은 돈은 모두 부모님에게 드려야 겠다.’

시운이 이번 생에서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이유.

그 중 가장 큰 하나는 바로 가족이었다.

어떻게든,

성공해서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더 이상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고, 떳떳하게 호화롭게 살게 만들고 싶다.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어흐으~”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잠을 확 쫓아버린 뒤에 시운은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책 한권을 펼쳤다.

-헌터학 원론.

‘공부 시작이다.’

철썩! 철썩! 철썩!

속독으로 빠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운의 방 안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로 가득 울려퍼졌다.

***

“수고하셨습니다!”

신임 경철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상관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우리 경철이도 오늘 수고했다. 오늘 우리 강동서가 한 건 했잖냐. 같이 고기나 먹으러 가자!”

상관 한 명이 경복을 갈아입을 채비를 하며 말했다.

“아… 어쩌죠. 제가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선약? 선약이 있었어?”

“예. 좀 중요한 선약입니다.”

“어, 뭐…. 그래, 가보도록 해.”

“넵! 그만 퇴근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경복을 입은 경찰들이 모두 사복으로 갈아입으면서 헐레벌떡 퇴근하는 경철을 힐끗 바라봤다.

경철이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급하게 서를 나가는 모습을 상관들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경철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경사님.”

“선약이 있다잖냐…….”

“뭔 약속이길래 저렇게 급하게 나가는 거지? 안색이 별론데.”

“딱 보면 모르냐? 여친 만나러 가는 거지~ 저 나이 때엔 여자 만나느라 좀 바쁠 때냐? 자, 자! 우리는 고깃집으로 이동하자고!”

“옛썰.”

터벅. 터벅. 터벅.

경찰서 밖을 나온 경철의 걸음걸이는 불안에 쫓기는 사람처럼 빨랐다.

문자메세지 한통을 받은 경철은 곧바로 경찰서 앞까지 나온 뒤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빵! 빠앙!

크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옴에 경철이 고개를 그곳으로 돌렸다.

-번쩍 -번쩍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검은색 차량의 조수석 창문이 열린다.

“타.”

차량에 탑승한 남성이 경철에게 걸걸한 육성으로 말했다.

경철은 주변을 둘러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차문을 열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철이 조수석에 탑승했다.

“경찰서 앞까지 오면 어떡해요!”

“그래서 내가 미리 문자 보냈잖아.”

운전석에 탑승한 남성의 외모는 범상치 않았다.

육중한 체구, 삭발한 머리에 셔츠 위로 뻗어있는 목선에 새겨진 문신.

딱 봐도 지하시장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여긴 내 직장 앞이라고요…….”

“닥쳐. 이 새끼야.”

“무슨 일로 온 겁니까?”

“무슨 일?”

남성은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경철의 셔츠자락을 움켜잡는다.

끄윽- 멱살을 잡힌 경철은 숨이 턱 막혔다.

곡소리가 나올 정도인 남성의 악력에 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 김경철이.”

“…….”

“다 알고 왔어. 우리 상표 형님 여기 강동구 경찰서에서 입건됐다며.”

“그, 그런데요?”

“그런데요?”

남성은 반대쪽 손으로 경철을 한 대 후려칠 모션을 취했다.

경철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명색이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량배에게 손 한 번 쓰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철은 이미 인천의 유명 조직 사주파의 행동대장 김상표와 인연이 있는 사이.

경철을 포함하여 이곳 강동서의 강력계 형사, 그리고 서울 일대의 경찰서 형사 몇 명이 사주파에게 성 접대를 받은 이력이 있다.

성 접대뿐만이 아니라,

뇌물까지 받았고 댓가로 사주파들은 김상표의 도주 행각을 도우면서 경찰들이 상표를 추적하는 이동경로를 몰래 귀띔해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김경철은 처음에는 접대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일개 순경의 월급으로는 세상살이 풀칠하기가 힘들어 접대를 한 번 받고 유혹에 못 이겨 뇌물까지 수수하게 된 것이다.

경철은 이제 사주파의 끄나풀.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전 정보를 파악할 틈도 없이 제보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경찰들은 그 제보를 받고 급히 출동해야 했기에.

끽해야 순경의 직위에 출동하려는 경찰들을 막아 세우고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하….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오늘 형님하고 카페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어. 근데 내가 갔을 때는 이미 형님이 경찰들에게 개처럼 질질 끌려가고 있더군?”

“……….”

“그때 내 기분이 얼마나 좆같았는지 알아? 사랑하는 우리 형님이 내 눈앞에서 그런 상스러운 대접을 받으며 끌려갈 때 아우인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심정이!!”

경철은 탄식을 뱉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형님이 끌려가고 난 곧바로 주차한 차를 타고 형님을 끌고 가는 경찰차를 따라붙었지. 그곳이 향하던 곳이 이 강동구 경찰서고. 이 씨발 놈아!”

빠악!

“끄윽.”

콰지직! 남성의 주먹이 경철의 턱에 정확히 꽂히자 경철이 튕겨져 나가 창문에 머리를 처박았다.

사람을 좀 때려본 주먹이 아니었다.

묵직한 깡패의 주먹에 맞은 부위부터 머리까지 고통이 아릿하게 전해져 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가 미리 연락이라도 줬어야 하는 거 아냐? 제 아무리 순경 놈이라도 그곳의 동태 정도는 파악하고 있을 거 아냐.”

“끄으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

어느새 경철의 코에서 붉은 무언가가 스르르 흘러나오고 있다.

비참한 표정으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인상을 찡그린 경철. 이윽고 말문을 연다.

“그게……. 시민 한 새끼가 제보를 했습니다.”

“제보?”

“예. 수배전단지를 보고 우리 서에 연락을 했어요.”

“하아……. 씨발.”

남성은 치미는 부아를 추스르기 위해 담배를 물었다.

라이터가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담배가 치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그 제보한 새끼 누구야.”

“어쩌려고요?”

“어쩌긴, 씨발. 등에다가 칼이라도 꽂아야지.”

“미쳤어요? 그 시민의 신상정보를 아는 사람은 현재 우리 강동 경찰서 형사들 밖에 없어요.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가 고스란히 의심을 받게 될 거라고요!”

“닥쳐, 이 새끼야. 너 우리에게 접대받은 거 리스트에 다 있어. 한번 좆 되고 싶어?”

“잠깐만요. 나도 생각 좀 해줘요. 내 입장도.”

“네 입장? 좆까라.씹새꺄.”

경철의 머리가 어지러웠다.

‘접대를 받는 게 아니었어…….’

“그 새끼 신상정보 빨리 넘겨.”

“하, 그냥 이번만 넘어가면 안 됩니까? 제발.”

남성은 경철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한 번 더 경철을 때릴 우악스러운 시늉을 하자 경철이 떠는 입술로 말했다.

“이, 이시운이라는 사람이에요.”

“그 새끼 어디 사는지 까.”

***

대교 밑으로 보이는 칙칙한 한강물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였다.

이대로 뛰어들면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시운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를 악 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신고 있던 신발 한 켤레를 하나하나 벗었다.

“돌아가는 거야…. 지금 내 늦은 나이로는 아무 것도 시작할 수가 없어.”

겁이 난다.

저런 세찬 물결의 한강에 뛰어들면 그 아픔은 어느 정도일까.

살결이 찢어지고?

얼어붙는 고통까지 들겠지. 그러나 지금 이렇게 사는 고통에 비하면 잠깐이야.

그리고 반드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물세 살의 그 나이로 말이다.

대교의 난관에 한쪽 다리를 걸쳤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차 한 대가 급하게 정차했다.

차의 문이 열리고 남성이 뛰쳐나오더니 시운에게로 달려왔다.

“저기요! 거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시운은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뒤를 돌아봤다.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는 차들이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순간.

‘나라고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진 않았어.’

어느 남성이 달려왔다.

자살을 방관하지 않고 말리려고 애를 쓰는 남성의 손길을 뿌리쳤다.

“비키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기요!!”

시운은 아찔한 높이로 이어진 대교 위에서 다시금 밑을 바라본다.

분명 이번에도 죽으면 다시 인생은 희귀할 것이다. 전생에도 그랬으니까.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죽는 그 순간의 두려움과 고통을 감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쇠 난간에 붙여놓은 엉덩이를 떼려는 순간, 남성이 필사적으로 시운의 허리춤을 껴안았다.

“저기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생명은 소중한 겁니다.”

“마음은 알겠는데……. 비켜요!”

“저기요, 선생님!”

쉽사리 놔주질 않는다.

“비키라고!!”

마포대교를 과속으로 질주하던 차들이 느리게 주행하며 운전석 창문을 열고 이 광경을 경악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삶을 등지려는 서른네 살 한 청년의 행동이 안쓰러워 자신도 시운의 자살을 막으려고 급하게 비상등을 켜고서 차를 정차한 뒤에 시운을 말리고 있는 사내를 거들었다.

그중에는 핸드폰을 치켜들고 경찰에 신고하는 여성도 보였다.

“안 돼요!”

“비키라고.”

“다들 이 분 좀 말려 봐요!”

“비키라고!! 니들이 뭘 알어, 새끼들아.”

남성 세 명이 어느새 시운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자 난간에서 시운의 몸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시운은 눈을 착 감고서 마지막으로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가 시야가 뒤틀리는 순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추락하는 이질적인 느낌에 시운은 감았던 눈을 떴다.

차가운 한강물이 점점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철퍼덕-!!!

머리부터 고꾸라져 떨어졌다.

제일 먼저 눈에 수압이 가해지는 충격.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 안에 차디 찬 한강물이 눈알을 후려치는 통증이란?

너무나도 아팠다.

눈을 뜨고 바라본 한강물 속은 어둠 그 자체였다.

“크아아악!!”

눈을 떠보니 방안이었다.

꿈이었다.

시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훔치고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이었지만 분명 두 번째 생의 마지막 그 순간이었다.

‘왜 하필 그 순간이 다시 꿈으로 재현된 것일까……. 윽! 눈이 또 아파.’

바로 그 고통이었다.

시운이 희귀하자마자 겪었던 그 격한 통증 말이다.

수많은 빛이 눈 안에 들어오고, 눈부심에 눈을 억지로 질끈, 감았다.

눈을 뜨려니 눈물샘에서 눈물이 마구 터져 나와 눈앞을 적시기 시작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아윽!!”

두 눈을 잡고 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고통은 가실 줄을 몰랐다.

갑자기 왜 또 이 통증이 찾아온 것일까?

이제 막 풀리려는 세 번째 인생에 다시 고난이라도 닥친 것일까.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진다. 심호흡 하는 거야.’

병원에서 처방받은 인공눈물을 찾으려고 방안을 뒤적였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뜨고 눈 안에 인공눈물을 넣어보았다.

“아아악!!”

눈에 염산이 닿은듯한 미친 통증 때문에 당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미친 듯이 세수를 하며 눈 안에 들어갔던 안약을 씻어내려 발악을 했다.

“아으으윽…….”

두통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고 정신이 이내 혼미해졌다.

“아아…….”

이대로 뒈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몸을 움직이려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 손을 애써 뻗어서 시운의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향해 뻗어보았다.

손이 닿질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