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2화 (12/278)

제 12화

신개념 투기력 (1)

“시운아!!”

누군가의 부름소리에 눈을 슬며시 떴다.

시운의 엄마였다.

살며시 눈을 뜨자 엄마가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방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잠을 자고 있으니 시운의 엄마가 그를 깨운 것이었다.

“왜 바닥에서 이러고 있어?”

“끄으으.”

눈을 부비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분명 공부를 하고 잠들었었다.

그리고,

아침에 그 해괴망측한 꿈을 꾸고 깨어났다가 견딜 수 없는 아픔에 기절하다시피 눈을 감았고 일어났는데.

“엄마. 지금 몇 시야?”

“지금 오후 8시야. 너 설마 아직까지 자고 있었던 거니?”

“여덟 시라고?”

대체 얼마나 기절을 했던 것일까 머릿속으로 셈을 해보았다.

오전 9시쯤에 깨어나 기절했으니 약 11시간.

눈에서 일던 그 저린 고통은 말끔히 씻어나간 듯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야가 다른 때보다 무언가 선명한 느낌이다.

기분 탓일까.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엄마가 저녁 해줄게.”

“응.”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우리 아들 혹시 아파?”

“아니…….”

“엄마가 오랜만에 네가 좋아하는 제육볶음 해줄게. 잠깐만 기다려. 엄마도 지금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는 길이야.

시운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고 찬물로 얼굴을 세안했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뭐지?’

자신의 형상이 빗대어 비춰지는 시운의 거울은 실로 신기했다.

시야가 확연히 선명해진 느낌이랄까.

눈과 코, 그리고 얼굴의 모공의 개수.

눈썹의 털 가닥까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보이는 것이었다.

‘뭔가 바뀌었어. 방금 그 통증과 함께. 원래도 내 눈은 일반인과 달랐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시력이 나쁜 환자들이 라식 수술을 하고 세상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시운은 급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실에는 고기가 지글지글- 볶아지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

곧바로 시운은 집 밖으로 나왔다.

오후 여덟 시.

이미 해는 저물어져 밤하늘은 컴컴해져 있었고 둥근 달이 떠올라 있다.

이시운은 동네의 야경을 이리저리 살피고서야 뭐가 달라졌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놀랍게도……

몇 백 미터나 떨어져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과 표정, 옷의 가슴 위에 새겨진 작은 글씨마저 보여 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의 가로수와 달빛만으로 시야가 트이는 밤인데도 모든 게 보였다.

마치 지금이 낮인 것처럼.

‘방금 그 통증과 관련이 있다.’

시운은 동네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다시금 자신의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훑어보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한 느낌과 함께 등줄기로 뱀처럼 땀이 흘러내렸다.

둥그런 달을 쳐다보았는데 달의 크레이터가 눈에 보였고, 그 분화구 속의 무언가까지 입체적으로 보이는 느낌에.

지구와 달의 거리는?

무려 384,000km.

이건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달의 분화구가 내 집 옥상에서 보인단 말인가.’

놀랍다고 표현하기도 모자랄 만큼 놀라운 순간.

주위의 구름 속 분자까지 또렷히 보였다.

우주 망원경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이 느낌.

‘꿈이 아니야. 현실, 현실이라고.’

심지어는 저 멀리 솟아있는 뒷산을 보는데,

이 야밤에도 불구하고 먼 뒷산의 꼭대기의 나무 한 그루까지 눈에 읽혔다.

그리고.

그 나무에 뻗어있는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뭇잎의 개수까지 보이는 상황.

판타지가 따로 없었다.

‘이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난 죽으면 언제나 회귀해. 그런 마당에 이런 건 나에게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도….’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봤다.

아득히 빛나는 별.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다.

집 옥상에서 우주의 경치를 이렇게 체험할 수가 있다니….

멍하니 야경을 응시하다가 시운은 집 안으로 돌아왔다.

거실의 식탁에는 시운의 엄마와 아버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막 회사에서 퇴근하여 와이셔츠조차 벗지 않은 시운의 아버지가 힐끗 뒤를 돌아 시운을 보며 웃었다.

“시운아. 아빠 왔다.”

“아빠, 어서와. 회사에서 일하고 오느라 힘들었지?”

시운은 평소에는 한 적도 없는 살가운 한 마디를 던졌다.

이미 아버지의 표정에 다 쓰여있었다.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는 오늘 일이 고됐음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힘들기는 인마. 어서 앉아라. 같이 밥 먹자…. 오늘은 제육볶음이네. 우리 시운이가 좋아하는?”

시운은 아버지의 순간적인 표정을 단번에 읽어버렸다.

평소보다 더욱 면밀해진 눈 덕분에.

아버지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식사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이시운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눈가에 그렁거리는 아주 미세한 눈물의 양.

시운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려 했으나 애써 참았다.

오늘의 제육볶음은 그 어느 음식보다 맛있었다.

그 맛이란? 표현하자면,

쫄깃쫄깃하고 적당히 매콤하면서, 무엇보다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달까.

“잘 먹었습니다.”

“그래, 우리 아들 많이 먹었냐.”

아버지가 물었다.

“응…. 아빠도 얼른 씻고 자.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짜식. 평소에 안 하던 말을 하고 그래? 갑자기 우리 시운이가 어른스러워졌다?”

“앞으로 잘할게.”

시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버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시운은 멋쩍어 곧바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 눈이 얼마만큼 더 발달한 것일까?’

시운은 창문을 열고 상체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펼쳐진 동네의 풍경을 살폈다.

역시나 놀라웠다.

일반인이라면 보이지도 않을 거리에 있는 사람의 표정, 눈동자가 좌우로 몇 번이나 움직이는지 조차 보였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경이롭다.

이 단어 외엔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이런 눈을 가진 시운은 이 눈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득이 되는 건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시신경의 발달로 사람들의 수백 가지 표정을 단 몇 초도 되지 않아 읽을 정도인데,

거기다가 빛이 한줌 없는 야밤에도 모든 걸 투시할 수 있게 됐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눈이야.’

그러다가 문득 시운에게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아찔히 파고들었다.

‘이것들은 모두 연관성이 있다!’

‘아까 꾸었던 그 꿈에서 힌트를 얻었지.’

‘두 번째 생에서 대교를 뛰어내려 한강물에 몸이 부닥치던 순간. 눈 안으로 가장 먼저 그 한강물이 쏟아져 들어왔었지.’

‘그리고 그때 눈알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리고 후생인 이 세 번째 인생에서 눈이 능력으로 발현 되었지. 이건…….’

시운은 조심스레 추론을 해보았다.

다음 생으로 희귀하기 바로 직전의 순간!

가장 크게 가해진 압력을 받은 신체가 다음 생에 연계되어 이상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런거였나. 만약 그렇다면… 첫 번째 생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다쳤던 부위도 서서히 각성이 되는 건 아닐까.’

시운은 눈을 감고 무겁게 상념에 잠겼다.

‘그래. 그건 그거고. 일단 지금, 나는 해야할 일이 있다.’

상념을 떨쳐내고 곧바로 책상 앞에 앉은 뒤 책꽂이에 꽂아놓은 헌터학원론을 꺼낸 뒤에, 책을 펼쳤다.

과연 더 놀라워진 눈을 공부에 활용할 수 있을까?

책을 펼쳐들자.

놀랍게도 한 페이지의 모든 글씨가 1초도 안 되어 눈에 박혔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뇌로 전달됐다.

철썩- 철썩-

몇 페이지를 넘겼다.

“…어?!”

시운이 놀라 탄성을 뱉었다.

방금 넘겼던 페이지의 전체 내용이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페이지의 모든 내용이 이미지가되어 기억났다.

며칠 전과 같은 단순한 속독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능력이 발달한 것일까?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던 시운은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다 기억나. 모두 다….’

놀라웠다. 보았던 책의 페이지가 이미지화 되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

단순히 기억력이 발달한 것과는 달랐다.

‘눈이 바뀐 이후로, 학습 효과까지 극대화 되었다.’

그때였다.

팟!

갑자기 눈 앞의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그리고.

점차 시야가 흐려졌다.

“뭐지?”

초점이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아까처럼 사물들이 생생하게 보이지 않았다.

‘다시 원래대로 눈이 돌아온 건가?’

어제의 시점으로 눈이 돌아온 듯 했다.

신기하고 의아했다.

‘어쩌면, 달의 크레이터까지 볼 수 있었던 방금 그 눈이, 지금 내 눈에서 최고조로 발달한 단계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 눈도 여기서 더 개안될 수도 있다는 것 일수도.’

이유 없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리는 없다.

분명 몸이 시운에게 뜻이 담긴 신호를 보낸 것일 터였다.

일주일이 흘렀다.

일찍 기상한 시운은 곧바로 책상에 앉고 컴퓨터를 부팅시킨다.

일주일 동안 공부에 매진한 결과가 궁금했다.

‘전 회에 있었던 헌터 자격시험 기출문제를 다운 받아야겠어.’

컴퓨터를 통해 기출문제를 다운 받았다.

그리고 모니터를 훑으며 펜 하나를 들고 문제를 풀며 답을 공책에 작성했다.

서걱. 서걱.

펜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다 풀었다.’

560문항의 문제를 푼 시간은 고작 30분.

문제를 푼 자신도 신기했다.

‘이거, 다 내가 푼 거 맞나?’

답안지를 꺼내들고 답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운이 작성한 답이 연속으로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다 맞고 있잖아.’

푼 문제의 답과 답안지를 모두 비교한 결과.

시운의 입이 슬며시 벌어진다.

‘틀린 문제는 고작 다섯 문항이다, 다섯 문항.’

-헌터학 역사

-헌터학 법도

-헌터 성장학론

세 개의 영역 모두.

표준 점수 4% 내에 속하는 1등급 수준의 결과였다.

일주일의 기적.

머리를 감싸 쥐고 고작, 일주일 노력했는데.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줄이야.

전생에 몇 년을 틀어박혀 공부만 했던 암담한 날들은 이제 안녕이다.

‘이젠 됐어! 됐다고….’

자신은 절대 될 수도, 되리라는 믿음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직업. 헌터.

그 헌터에 거의 다가선 순간이었다.

순간.

전생부터 현생까지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뇌리에 하나씩 스쳐갔다.

‘큰 이모, 태석이 형. 그리고 나머지 친척들. 내가 헌터가 되면 구겨질 당신들의 얼굴을 벌써부터 보고 싶군.’

숨도 고를 겸 갑자기 니코틴이 당겨왔다.

마침 담배 곽에는 담배가 한 개비도 없다.

‘에휴~ 나가서 사와야 되나? 귀찮은데.’

며칠간 공부만 하느라 머리도 못 감았는데.

모자 하나를 푸욱, 눌러쓰고 동네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팔리아멘트 라이트 하나요.”

“4500원입니다.”

시운은 주섬주섬 담배를 챙긴 뒤에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뒤적거린 뒤 꺼내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달칵- 그가 뱉은 뿌연 담배 연기가 공중에 흩뿌려졌다.

'몇 달 후면 난 헌터가 된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헌터가.'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담배를 피면서 집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려 했다.

끼이익.

‘…?’

묵묵히 담배를 피고 있던 시운 앞에 스타렉스 한 대가 급하게 멈춰 섰다.

드르륵-

차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승합차에서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린다.

그리고,

시운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지? 이 남자들은?

느낌이 싸했다.

그런데.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남성 중 한 명이 시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

위압감이 감돌았다.

“어이, 네가 이시운이냐?”

“그런데요. 어떻게 절 아시는지.”

당황한 시운이 말을 크게 더듬거렸다.

그런데 남성 두 명이 몸을 움직여 시운을 감싸기 시작했다.

‘대체 뭐하는 녀석들이야?’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곳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비좁은 골목.

주위로 보이는 동네 사람은 하필 한 명도 없었다.

하필 이런 대낮에!

“얀마. 너 각오 좀 해야 할거다.”

“무슨 말씀입니까? 누구신데요.”

“일단 이야기 좀 하자. 저기 우리가 끌고 온 차가 보이지? 일단 타.”

“대체 누구시냔 말입니다?”

“일단 조용히 타라. 그게 좋을거다.”

“왜 타야합니까? 대뜸 나타나서 차에 타라는 사람들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죠?”

그러자 남성 한 명이 자켓에서 무언가를 슬쩍 꺼내들었다.

스릉- 반짝이며 빛을 내는 그것은 다름 아닌 식칼.

눈이 휘둥그레진 시운은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두 번 말 안 한다. 확 뱃때지에 쑤셔벌라. 닥치고 타.”

젠장할 상황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뭐하는 놈들인진 모르겠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반드시 있다. 정신부터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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