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신개념 투기력 (2)
식은땀이 쭈욱-흘러내린다.
고분고분 놈들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무식하게 칼을 휘두를 생각임이 추호도 없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에 흘러갔다.
영화 속에서 보면 주인공은 이런 암 덩어리 같은 녀석들을 단박에 제압하고 멋있게 대사 한 마디를 툭 던지는데.
하지만 시운에겐 그럴 능력은 없다.
가지고 있는 건 남들보다 아주 포괄적인 범위로 좋은 눈.
그뿐이었다.
시운이 싸움에 도가 튼 격투가가 아니고서야, 이런 거구들이 칼까지 들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어쩌지? 납치되어 감금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쥐새끼처럼 도망갈 궁리라도 하는거냐?”
갑작스레 남성 한 명이 시운의 뒷목을 콱! 낚아챘다.
단마디 신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마음이 약해졌다.
“대낮에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야, 이 새끼 태워.”
뒷목을 낚아챈 남성이 옆에 있는 남성에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시운의 허리춤을 들었다.
‘젠장할!’
여기서 소리라도 지를까.
그러나 방금 이 깡패들의 살벌한 눈빛에는 살기도 녹아있었고.
잔뜩 겁에 질린 울대에서 어떤 소리도 뱉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칠 시도를 했다간,
분명 저 칼에 찔려 출쳘로 즉사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주위엔 지나가는 사람 한명 없다.
일단 저들의 말을 잘 따르고,
말로 잘 구슬려서 차분히 기회를 엿봐야 할 것 같다.
드르르륵-
차 문이 거세게 열리고 시운을 던져놓듯 집어넣은 남성은 차 문을 쾅! 닫았다.
시운은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일단 정신부터 차려야 한다.’
부우웅- 차는 어느새 급발진을 하며 출발하고 있다.
차 안에 탑승하고 문이 닫히자 험악하던 남성들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숨 막히게 흘렀다.
“……….”
시운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운전을 하는 사내는 사이드미러로 눈을 희번덕거리며 시운을 살폈다.
위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이 놈들은 대체 뭐하는 작자들이지?’
‘살살 구슬려서 이 놈들의 비위라도 맞춰줘야 되나?’
‘혹시 잘못했다간…….’
차 안에서 수 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치는 누군가의 음성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 김상표는 사주파의 행동대장입니다. 현재 도주 중인 상태였고 그 똘마니들이 그들의 도피행각을 도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며칠 전 강동구 경찰서의 어느 경사가 한 말이었다.
‘이 자식들 설마?’
간선도로를 타고 분주히 이동하던 차량이 정차하기 시작했다.
“내려.”
옆에 있던 조폭이 손수 문을 열어주더니, 턱짓을 하며 말했다.
시운은 몸을 움츠리고 기가 죽은 채 차에서 내려 땅바닥을 밟았다.
고개를 들었다.
눈에 띄는 거라곤 드럼통 두 개.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있는 각진 각목.
흙으로 가득한 바닥에 주위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저 휑한 공터였다.
서늘한 공기가 살결에 와 닿았다.
조폭의 간부쯤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이동식 철제 의자를 깔아놓고 담담하게 담배연기를 후- 내뿜고 있다.
과묵히 있는 그에게서 비범한 기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승찬이 형님. 데려왔습니다,형님.”
시운의 뒷목을 꽉 움켜잡은 남성이 깍듯이 말했다.
그러자 묵묵히 담배를 피우던 남성이 슥 고개를 들더니 이시운을 초점 없는 눈으로 훑었다.
‘저 새끼 눈빛. 살기가 가득하다. 이 똘마니 놈들하고는 달라.’
시운은 침을 꼴딱 삼키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투욱-
담배꽁초가 남성의 손에서 툭 던져져 이등분 되어 불똥이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터벅. 터벅.
그리고 시운의 귓가에 남성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나를 강제로 데리고 온 나머지 똘마니 놈들과는 달라.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너구나.”
코앞으로까지 다가온 남성의 거대한 풍채.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목을 좌우로 흔드는데 우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운은 겁에 질려 하체에 서있을 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두 똘마니들의 문신과는 격이 다른 흉악한 문신으로 전신을 덧칠한 남성은 눈을 부릅떴다.
숨겨두었던 살기가 피어오르려 했다.
순간.
승찬이라는 남성의 오른 다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입체적으로 보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주 입체적이고 면밀하게 남성의 다부진 다리가 날아오고 있음이 눈에 속속들이 들어왔다.
“컥!!”
그러나 피할 수가 없었다.
남성의 다리는 그대로 시운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등골이 접히는 느낌.
끄으윽! 비명을 뱉으며 시운이 고꾸라졌다.
주위의 공기가 메마른 것 마냥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끄하아….”
두 똘마니들은 한 걸음 뒤에서 뒷짐을 쥐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아프냐?”
남성의 발놀림은 굉장히 빨랐다.
확실히 주먹 꽤나 쓰는 조직폭력배이기에 자명한 사실이겠지만, 그는 특출 났다.
양승찬.
사주파 김상표의 오른팔로 다수의 패싸움이나 싸움 꽤나 한다는 타 조직원들을 하나하나 독고다이로 작업하는 터프한 사내.
웬만한 격투기 선수보다 묵직한 그의 주먹 덕택에 조직 세계에선 실상 행동대장 상표보다 양승찬이란 이 남성을 더 위협인물로 간주했다.
‘숨이 안 쉬어져.’
그저 한 대를 맞았을 뿐인데 몰려오는 고통은 엄청나다.
태어나서 이렇게 세차게 맞아본 적은 처음.
“일어나. 좆만한 꼬마야.”
시운은 얻어맞은 옆구리를 감싸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힘겹게 땅을 짚고 일어선다.
단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몸에 혈액순환이 탁 막힌 기분.
빠악- 또 한 번의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통의 비명도 내지를 새 없이 다시 단번에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끄…아악!”
이번엔 손인지 발인지, 뭐가 날아온 지도 분간이 안 갔다.
시운의 입가에서 시뻘건 피가 질질 흘러나왔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쇠 맛.
“일어나, 이 좆만아. 우리 형님을 꼰지른 대가는 치뤄야지.”
일어서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일어서면 또 망치 같은 주먹으로 맞고 쓰러질 테고,
또 오뚜기처럼 일어서라고 남성은 윽박지를 테니까.
“우으윽……….”
시운이 몇 초간 일어서지 않고 신음만 내뱉고 있자 승찬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폭격기가 미사일을 투하하듯 그의 잔혹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빠악! 빡! 퍼억! 퍽!!
정신없이 얻어맞느라 시운의 머리칼이 마구 일렁였다.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참기 힘든 고통이 들자 시운은 필사적으로 양손을 올려 얼굴을 가로막았다.
“감히 손으로 막아? 이 씨발놈아. 야! 포상금으로 얼마나 처먹었냐? 그 처먹은 개수만큼 밟아줄게.”
승찬은 거침없이 시운의 머리통을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빠아악!!
축구공을 차듯이 온 체중을 실어 발길질을 하자 시운은 울부짖는 듯한 신음을 내뱉으며 튕겨져 나간다.
충격이 어찌나 센지 당장 기절할 것처럼 아찔아찔 했다.
그의 발길질은 일반인 수준이 아니었다.
사내는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려 끈질기게 시운의 얼굴만을 밟아댔다.
콰아악-
시운은 그가 날리는 발길질을 수차례 손으로 막아냈다.
그나마 날렵하게 손으로 막아냈기에 망정이지 누워있는 상태에서 승찬의 발길질을 그대로 맞았다면 얼굴이 그대로 함몰되었으리라.
‘끄아아...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이번 인생도 이렇게 허무하게 뒈질 순 없단 말이다….’
그 순간.
승찬의 발이 떡하니 올라왔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닿기 직전까지 그 모션이 아주 느릿하게 느껴졌다.
남성이 신은 신발의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을 감고도 그릴 정도로 익숙해 질만큼 밟히고 또 밟혔다.
오로지 얼굴만을.
“교묘하게 얼굴만 가로 막네? 그래도 얼굴은 다치기 싫은가 봐? 남자새끼가 계집애마냥 생겨가지고. 어차피 넌 오늘 뒈져. 그냥 막지말고 맞아.”
콰-직
“끄아아악!!”
시운의 오른쪽 어깨가 승찬의 발 뒤꿈치에 의해 정확히 가격되었다.
팔이 부서지는 느낌. 동시에 어깨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크윽. 이 고통… 전생에 겪었던 그 고통과 똑같잖아.’
시운을 개 패듯이 패고 나자 속이 좀 후련했는지 승찬은 폭행을 멈췄다.
“후우….”
그리고 팔에 허리춤을 툭, 차더니 길게 심호흡을 내뱉는다.
격렬한 몸놀림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휙 쓸어 넘긴 양승찬은 곤죽이 된 시운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었다.
“맞으니까 정신이 좀 들지? 네가 잘못했다는 걸 이제야 알겠지.”
“……….”
“어이구 이 새끼 봐라. 기특하게도 내 발길질을 그렇게 맞고도 기절을 안 했어? 이 새끼 은근히 터프하네?”
“그… 그만 하십시오. 제발.”
시운이 울면서 애원했다.
“그만은 무슨, 이제 시작인데.”
승찬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곤시운의 머리칼을 콱 움켜 잡는다.
“윽.”
시운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파서 신음만 내뱉는 것뿐.
머리칼을 잡힌 채 강제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리고 승찬의 주먹이 번개같이 날아왔다.
순간.
시운의 어깨에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깨를 둘러싼 세포 조직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느껴지면서.
빠악!
소름끼치도록 둔탁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승찬에게서 난 소리였다.
양승찬이 몸을 비틀거리더니 뒤로 휙 나자빠졌다.
‘……?’
시운은 비틀거리는 승찬을 바라봤다.
‘뭐지? 분명 내 오른팔이 제멋대로 움직였어.’
“형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똘마니 두 명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달려왔다.
승찬은 다리를 휘청거리다가 일어서더니 똘마니들에게 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 이 새끼 봐라? 지금 나 쳤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눈 깜짝할 새에 승찬의 얼굴이 뒤로 쏠렸기 때문.
승찬의 오른쪽 눈덩이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일로와봐.”
승찬이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눈을 크게 뜨고서 달려왔다.
어금니를 꽉 깨문 승찬의 턱이 눈에 들어왔다.
‘온다!’
부-웅
승찬의 오른 훅이 바람소리를 내며 시운의 얼굴에 꽂힌다. 그러나 웬일로 시운은 멀쩡히 서있다.
“이걸 피해?”
부아가 치민 승찬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죽일듯이 달려든다.
순간 이시운의 오른쪽 어깨가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시운의 오른 주먹이 멋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승찬의 면상을 향해.
빠아악!
코뼈가 정확히 분질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아아악….”
쿵-!!
“혀, 형님!!”
시운이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났을 때엔 이미 양승찬은 흙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상태였다.
‘설마.’
시운은 멍한 시선 뒤에서 거친 육성이 들려왔다.
“이… 이, 개 좆만한 것이! 감히 우리 형님을!”
광분한 두 덩치가 살덩어리를 흔들며 동시에 뛰어왔다.
마치 멧돼지 두 마리가 이성을 잃고 먹이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같았다.
그리고.
솥뚜껑만한 주먹이 시운을 향해 마구잡이로 날아온다.
그러나.
이미 놈들의 움직임은 다 보이고 있다.
주먹질은 시운에게 닿지 못하고 빈 허공만 방정맞게 두드렸다.
번뜩!
이시운은 두려움을 망각하고 눈을 떴다.
‘오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삼생(三生)에 걸쳐 받은 내 스트레스, 오늘 니들에게 다 풀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