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6화 (16/278)

제 16화

이젠 내가 지배할 시간! (2)

‘저 녀석이… 1차, 2차 필기 시험 모두 만점 받은 녀석이라고?’

박 상무는 입을 떡 벌어뜨리며 시운을 응시했다.

그가 놀랄 것도 당연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례적으로 필기 만점을 받은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게다가 그 총명하다는 박태석도 필기 시험을 통 틀어서 세 문항의 문제를 틀렸다.

수능 만점자만 나와도 기사에 떡하니 뜨는 세상이다.

그 수능 시험과 난이도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헌터 필기시험이다.

그런 수준의 시험을 만점으로 받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박 상무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가 굉장히 좋긴 한가 보군. 허나, 헌터는 머리보다 몸과 감각으로 몬스터를 잡는 센스가 뛰어나야 한다.’

그의 시선에서 보이는 시운은,

누군가와 죽도를 서로 겨누며 대련을 펼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죽도를 쥐고 숨가쁘게 대련을 하는데…

놀라게도 시운이 죽도로 상대를 내리 꽂는 움직임이 굉장히 빨랐다.

…탁!

…탁! …타탁!!

죽도와 죽도가 부딪히는 소리!

시운은 상대의 공격을 죽도로 모두 막아내더니,

곧바로 옆으로 몸을 튼 뒤, 상대의 목에 죽도를 대각으로 내리친다!

타악- 시운의 죽도를 맞은 예비생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오…. 단순히 머리만 좋은 놈이 아니군. 혹시 검도 특기생인가?’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운이 죽도를 쥐는 자세는 사실 검도 경력자라기엔 엉성했다.

검도와 무관한 일반인 박 상무가 보기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죽도로 상대의 합을 모조리 막아내고 속공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몸놀림은 분명 예사롭지는 않았다.

펄럭!

박 상무는 곧바로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시운의 프로필을 읽어갔다.

-최종 학력 고졸.

-보증금 3천에 55만원 월세 집 거주.

-군필자.

‘고졸이라고? 저렇게 머리 좋은 녀석이?’

의아했다.

1,2차 헌터 자격시험을 만점 받을 정도의 학습력을 가진 녀석이 고졸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찬찬히 프로필을 읽어 내려가던 박 상무의 눈빛이 더욱 의아하게 변했다.

바로 운동 특기란에는 ‘없음’ 이라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박 상무는 갸우뚱 거리며 옆에 있던 이사장에게 눈을 돌렸다.

“이사장 님. 이 프로필 확실한 거 맞습니까?”

“모두 검증이 끝난 서류입니다.”

“그런데 저 친구 운동 특기란에 어떤 운동도 배운 경험이 없다고 기입되어 있는데, 움직임을 보니 전혀 그런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박 상무의 말에 이사장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 지부 협회장 님께서도 저 친구를 특별히 지켜보라고 주시하셨습니다. 만점을 받은 게 하도 놀라워서 저 친구에 대해 좀 조사를 해보니까………”

이사장은 잠시 말끝을 흐리더니 입을 뗐다.

“건장한 조폭을 단신으로 때려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세 명이나.”

“……조폭을 때려 잡았다고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박 상무가 다시 시운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가 봐도 깡마른 체형에,

요즘 젊은 여자들이나 좋아할 훈훈한 아이돌급 페이스.

게다가 몸에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운동이나 격투기 수련쪽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어보였다.

‘저런 반반하게 생긴 깡마른 멸치가 조폭 세 명을 두들겨 잡았다고? 그걸 나더러 믿으란 얘긴가.’

못 믿겠다는 눈으로 이사장을 흘기듯 바라봤다.

“못 믿으시겠지요? 나도 처음엔 안 믿었습니다. 근데 확실한 정보입니다.”

이사장이 말했다.

확실하다고?

하긴, 이사장이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그럴 리도 없다.

박 상무의 입에 회심의 미소가 천천히 감돌았다.

‘이거 어쩌면 일이 순탄히 풀릴 수도 있겠는데.’

***

“1437번. 앞으로 나오세요.”

모자를 푹 눌러쓴 교관의 말에 한 여성이 성큼성큼 걸어나온다.

잔뜩 긴장해 경직된 걸음걸이다.

“여기 가만히 서 있어요. 스캐너를 진행할 겁니다. 놀라지 마시고 눈을 감고 팔을 쫙 벌려요.”

교관의 말에 여성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팔을 좌우로 벌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삐이이익- 이계 스캐너에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빛은 점차 파란색이 되어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캐너에 연결된 기계에서 글자가 적힌 종이가 좌르르, 뽑아져 나온다.

뿜어진 빛에 반사된 그녀의 전신에는 몸속 뼈까지 모두 투영되고 있다.

바로 기본 DNA 검사를 실시하는 중이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오케이! 끝.”

교관이 스캐너를 만지는 사람에게 신호를 주자 스캐너가 픽! 하고 꺼졌다.

“좋습니다. 검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교관님! 어떤 가요? 제 DNA에서 특출난 부분이 있나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여성이 물었다.

하긴 그럴 것도 당연했다.

이계로 넘어가게 되면 이 DNA가 기본 능력치로 적용되어 출발선을 정할 테니까.

“궁금해도 참아요. 규칙상 지금 알려줄 수 없으니까.”

“아아~ 규칙이 그렇다면 뭐, 알겠습니다.”

여성은 아쉬운지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선다.

***

“1438번 수험생!”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운이 스캐너 앞에 선다.

“앞에 수험생이 하는 거 봤죠? 그대로 하면 돼요.”

“네.”

시운은 눈꺼풀을 감고 팔을 쭉 벌린다.

곧바로 뜨거운 느낌이 몸속에 감돈다.

몇 분 후.

“끝났습니다, 수고했어요.”

교관은 곧바로 시운의 DNA가 스캔된 종이를 뽑았다.

그리고 찬찬히 종이를 훑어내려갔다.

“………이, 이게 뭐야?!”

교관이 토끼눈이 되어 헐레벌떡 이사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

“허억! 허억! 티, 팀장님! 이걸 좀 보십시오.”

교관이 헐떡이며 장 팀장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것은 어느 수험생의 DNA 검사표 종이였다.

“뭘 그렇게 헐떡 거려? 교관이면 교관답게 여기 시험장에서는 군기가 잡힌 모습으로 있어야지! 흐트러지면 수험생들이 자네를 뭘로 보겠어?”

“아, 아니… 그게, 일, 일단은… 한 번 보십시오.”

“말을 왜 그렇게 더듬나. 이게 왜? 수험생 DNA 검사표 아닌가.”

장 팀장은 눈으로 종이를 읽어내려갔다.

“아, 아니 ……이, 이럴 수가?!”

군기를 따지던 장 팀장도 교관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1438번 수험생의 몇 가지 능력치를 보고 말이다.

그 능력치는 이랬다.

-오른쪽 삼각근 근력 DNA: 140

-오른쪽 이두근 근력 DNA: 150

-오른 어깨 회전근 근력 DNA: 170

말도 안 됐다.

일반인이라면 저 수치들이 기본 0에서 5다.

그리고 아무리 높은 범주라도 15를 넘어서지 못한다.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가 있어? 검사 오류난 것 아닌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계 스캐너는 단 한 번도 오작동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럴 물건도 아니구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랬다.

이계 스캐너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이계에서 운반된 초희귀 아이템으로,

결코 오작동을 일으킨 적도, 고장이 난 사례도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기에 오작동을 일으킬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장 팀장의 미간에 힘줄이 씰룩거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부여잡고 읽어 내려가는데.

“…뭐야 이건 또?! 이, 이게 말이 되나…….”

그는 방금보다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한 신체의 DNA 수치를 보고 말이다.

그 신체 부위는 바로?

눈이었다.

-우측 시신경 세포: 240

-좌측 시신경 세포: 265

-좌안 시력: 13.5

-우안 시력: 12.0

“………….”

“………….”

장 팀장과 교관은 한동안 입을 꾹 닫고 멍하니 종이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장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당장 협회장님께 보고해.”

***

두 달후.

“회장님.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요리사 모자에 앞치마를 두른 식모가 방문을 노크하며 공손히 말했다.

노크하는 손짓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식모가 두 손을 가지런히 배에 모으며 서 있다.

잠시 후. 방문이 끼익, 열리며 백발 머리의 한 중년이 걸어나왔다.

최고급 악어가죽으로 만든 안경테 속으로 비치는 위엄있는

중년의 눈빛에 식모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을 집어삼켰다.

그는 바로 KS 기업의 총수 천상진이었다.

그는 두 식모를 슥 훑더니 가볍게 손짓했다.

“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드십시오. 회장님.”

깍듯하게 목례를 하는 두 식모에게 눈짓 하나 주지 않은 채,

그는 부엌으로 걸어간다.

천장의 호화찬란한 샹들리에에 불이 켜지자, 그 밑으로 저마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는 수십 가지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아암~.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인가아아~.”

늘어지는 여성의 침음 소리가 난 곳으로 상진이 고개를 돌린다.

“세정아. 이제 일어났냐? 얼른 밥 먹자.”

“네에. 어제~ 과음을 좀 많이 했더니…. 아우 졸려어~”

여성은 분홍 헤어밴드를 한 채 기지개를 쭉 늘어뜨리며 식탁에 앉는다.

상진은 식탁에 앉아 꾸벅꾸벅 감기는 눈으로 숟가락을 드는 여성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우리 딸. 아빠가 열두 시 넘어서까지 술 먹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나도 이제 다 큰 성인인데요.”

“네가 스무 살이 넘었어도 내 눈에는 어린 애기다.”

“아이고오…. 아빠도, 참. 애기는 무슨…….”

상진은 배시시 웃으며 식사를 하는 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스마트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스마트폰에 시선을 박았다.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에는 정장을 차려 입은 많은 사람들이 대강당에 앉아있는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빠! 식사 중에 무슨 핸드폰이에요….”

“헌터 합격증 수여식 본다. 이번에 대단한 놈이 하나 나왔거든.”

“그래요?”

여성은 별 관심없다는 듯 답하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입안에 있는 반찬을 씹었다.

그때였다.

-자! 이번에 헌터 합격증을 수여받을 수험생은 바로 그 분입니다.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사람이죠! 이번 헌터 자격시험에서 무려 필기와 실기 모든 영역을 만점으로 패스한 바로 그 유망주!

‘나왔군.’

순간 천상진의 눈이 빛났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연설을 하던 남성이 마이크를 쥔 채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1438번 수험생 이시운 씨입니다!!

딸그락!

순간 상진의 맞은 편에서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시운?!”

놀라 눈꼬리가 올라간 여성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휙, 낚아챘다.

“세정아 왜 그러냐?”

상진의 물음에도 대답 없이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면 속에는 말끔한 셔츠차림의 한 남성이 유유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점차 클로즈업 되었다.

스마트폰에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응시하던 그녀는 벌어진 자신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 마, 마, …말도 안돼.”

바로 그 시각.

홍대의 어느 바(BAR).

승훈과 태훈, 현찬이 외제 맥주병을 손에 쥐고 한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 밖에 바에 있던 손님 모두가 한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 시선들이 일제히 향한 곳은 바에 설치된 티비 스크린 화면이었다.

화면에는 합격증을 수여받고 있는 의연한 표정의 한 남성이 비춰지고 있다.

번쩍! 번쩍!

그리고 그 남성에게로 일제히 플래쉬 세례가 터져나왔다.

“헐, 이번 헌터 시험 만점 받았다는 애지?”

“…와! 잘생겼는데?”

“당장 아이돌 데뷔해도 되겠네. 얼굴도 진짜 멀쩡해.”

“...남자애가 뭐 저렇게 피부가 뽀얗지? 부럽네.”

“쟤는 아이큐가 대체 몇이야? 아인슈타인 급인가?”

“1차, 2차, 3차 시험 … 올 만점이래.”

“대박. 플래쉬 터지는 것 봐! 기자들이 엄청 찍어댄다. 기사거리 하나 제대로 물은거지.”

“혹시 뭐 컨닝이나 무슨 수법을 쓴 거 아닐까? 저 헌터 시험을 만점 받는 게 진짜 가능해? 가능하다고?”

스크린 화면을 보며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특히 여자 손님들은 잔뜩 호감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 뒤에 앉아있던 승훈과 현찬은 넋이 반쯤 빠진 표정으로… 아니, 그냥 영혼이 완전히 나간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 … 이거 실화냐?”

승훈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승훈 옆에 앉아있던 현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아닐거야. 동명이인일…거야. 저 새끼가 어떻게 내 불알친구 이시운이란 말이냐?”

승훈과 현찬은 이 소식을 이미 한달 전 시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헌터 자격시험을 만점으로 패스했다며 자신의 소식을 전한 시운에게 되려 헛소리 하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대꾸했었다.

“태훈아.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승훈이 물었다.

“나도 아직 완전히 믿기지는 않아. 근데 저 화면에 나오는 만점자가 우리 시운이가 맞다.”

이들의 반응이 이러한 것도 당연했다.

이들이 기억 속의 시운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공부에는 취미도,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항상 반에서 꼴찌란 성적을 전담하던 친구.

수업 시간에 아프다고 잔꾀를 부려서 조퇴증을 끊고 피시방을 갔었고,

책을 보면 일분만에 게임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나 늘어놓던 녀석.

… …수능 시험을 보기 하루 전 날에도, 술을 먹고 피시방을 가 당차게 게임을 즐기던 녀석이 바로 이시운이었다.

그런 시운이 수능, 아니 수능보다 어렵다는 사법고시. 그 사법고시보다도 난이도가 높은 헌터 자격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했다니 안 믿는게 당연했다.

“이건 꿈일거야. 아니,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맞아.”

승훈이 고개를 꺽어 맥주를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어찌됐던 간에 우리 시운이가 지금 정식적으로 헌터가 된 순간이니, 기쁜 마음으로 건배 한 번 하자!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태훈이 웃으며 맥주병을 들자 승훈이 테이블을 쾅! 쳤다.

“하아! 이게 말이 되냐고오오…. 저 게으른 새끼가 어떻게 변호사, 판검사 위인 신의 직업 헌터가 될 수 있는 거냐고!”

시기질투가 잔뜩 담긴 승훈의 푸념을 무시한 채 태훈은 시운을 바라봤다.

스크린 화면 속 시운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축하를 받으며 멋쩍게 웃고 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때.

태훈의 뇌리로 작년에 했던 시운의 음성이 스쳐지나갔다.

-태훈아. 만약 3분 만에 책 한 권을 속독하는 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걸 공부에 응용한다면 어떨 것 같냐.

‘……설마 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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