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17화 (17/278)

제 17화

친척님들? 사이다 가지고 왔습니다

며칠 후.시운은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외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다 왔다. 내리자, 시운아.”

시운의 아버지에는 힘이 가득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운 역시 빙그레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후미진 건물 하나가 보인다.

‘날 무시했던 친척들이 기다리고 있군.’

그들이 자신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미 시운이 헌터자격시험을 만점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은 친척들에게 이미 퍼졌을 것이다.

“들어가자.”

시운의 아버지가 말했다.

계단을 밟고서 3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려는데 그 전에 문이 열렸다.

흰 머리가 지긋한 외할머니가 문을 열어주며 이들을 반겼다.

“어이구…. 우리 시운이 왔나. 이 서방 어서 오게.”

“안녕하세요. 제가 평소에 전화 좀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다, 시운아. 어서 들어 오거라. 너희 형들하고 누나 다 있다.”

시운은 목례를 하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친척 형 태석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아, 작은 이모부 오셨어요.”

태석은 시운을 외면하고 시운의 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 잘 지내셨어요?”

시운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시운이 왔냐.”

태석의 동공이 요동치고 있었다.

대학은 언제 들어갈 것이냐며 항상 시운을 멸시하던 태석의 태도는 전과는 달랐다.

시운은 피식 웃음이 새어왔으나 일단 친척 어른들께 인사부터 건넸다.

특히나 큰 이모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시운의 인사를 받았다.

“소식은 들었다.”

원래라면 인사조차 받지 않던 큰 이모.

오늘은 달랐다.

“네.”

“어쩐 일이냐…. 난 믿기지가 않는다. 네가 헌터가 되었다니….”

“마음먹고 하니까 뭐 그렇게 어렵지도 않던데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큰 이모는 얼굴을 슬쩍 찌푸렸다.

“앉아서 형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있어라. 음식 내 올 테니….”

친척들과 마주앉았다.

그 주위로 태석과 태훈 그리고 혜원 대환이 둘러 앉아있었다.

그들은 시운에게 딱히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다.

몇 달 전만 해도 시운이 대학 못 갔다고 그 얼마나 하대했던가.

유독 명문대 생으로 재학 중인 대환은 시운의 눈길을 피하는 듯 했다.

대학생인 자신이 질시와 동경의 대상인 헌터가 된 시운보다 급이 낮아서일까.

대환은 뜬금없이 리모컨을 들고 티비를 켜 채널을 돌려가며.

“명절인데 볼게 이렇게 없냐.”라며 혼자 칭얼거렸다.

이들과 간단한 인사치레를 나누고 시운은 운을 띄웠다.

“오늘따라 다들 말씀이 없으신 듯 합니다?”

시운의 말에 태훈이 답했다.

“작은 이모한테 이야기 들었다. 믿기진 않지만, 헌터자격시험 합격했다면서.”

“감사하군요. 이게 다 형들 덕분입니다.”

시운의 말에 태훈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시운에게로 꽂힌다.

“형님들과 누님께서 저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제가 더 의지를 잡고 공부한 것 같네요.”

비아냥대는 시운의 말투에 친척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큰 이모가 떡산적과 식혜를 내왔다.

시운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 쪽을 바라봤다.

아버지는 화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어른들에게 아들자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 이번에 헌터가 되었다고.

‘내가 우리 아버지의 기를 살려드리고 있구나.’

뿌듯했다.

반면 태석은 말없이 떡산적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이들 앞에 앉았다.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하노. 너희들 우리 시운이 이번에 헌터 시험인지 뭐시기인지 합격한 거 아나?”

“알고 있습니다.”

태석이 나직이 답했다.

“그 뭐시기야. 그것도 만점으로 합격했다며? 우리 시운이 어쩜 이리 장한 게야…. 태석이하고 태훈아. 시운이 잘했다고 말이라도 좀 해라.”

“이미 고생했다고 말 했습니다.”

“형이 저보고 고생했다고 덕담하신 기억이 없습니다만.”

태석은 눈에 힘을 주고 시운을 바라봤다.

“시운아. 형하고 잠시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할까?”

“그러시죠.”

꿀릴 게 없는 시운은 태석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태석과 시운 둘만 남겨지자 태석의 표정이 완전히 변했다.

“야. 너 뭐하는 거냐?”

“무슨 말씀이시죠?”

“헌터시험 합격했다고 지금 유세라도 떠는 거냐?”

“유세떤 적 없습니다.”

태석은 허리춤을 차고 어이없어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 변호사인 거 알지? 네가 아무리 헌터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예비 헌터에 불과한 너는 나보다 급이 낮아. 그러니까 어깨에 힘주지 마라.”

“낮다고요? 형은 동생인 저를 경쟁상대로 보고 계신 겁니까.”

태석의 눈에서 이젠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저를 경쟁상대로 취급하시나 봅니다? 나보다 낮다느니 하는 말을 하시는 것을 보니.”

“너 지금 개기는 거냐.”

“피 섞인 친척들끼리 서로 경쟁해서 뭐하겠니까, 형님. 옹졸하게 굴지 마십시다. 그래도, 피 나눈 친척들인데 서로 싸워 뭐하겠습니까.”

시운이 이렇게나 당돌하게 나올 줄은 예상도 못했던 태석은 말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더 할 말 없으시면 나가보겠습니다.”

“이, 싹바가지 없는 새끼가….”

참지 못하고 결국 욕설을 퍼부은 태석. 그러나 시운은 오히려 웃었다.

주방에선 친척들이 분주하게 음식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운은 뚱하게 티비나 보고 있는 대환에게 다가갔다.

“대환이 형.”

시운의 부름에 대환은 말없이 시운에게 눈길만 주었다.

“대학교가면 캠퍼스는 재밌어요? 형도 대학 다니니까 잘 아실 거 아닙니까?”

“그건 갑자기 왜 물어?”

“이제 헌터가 된 저는 그 즐거운 대학 캠퍼스 생활도 못 누릴 테니까요.”

대환은 시운과 말을 섞기 싫다는 얼굴이다.

“좀 알려주세요.”

“다녀보면 알게 될 거다. 정 궁금하면 수능 보던지.”

“뭐하러 그러겠습니까? 저는 이제 일개 대학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직업을 갖게 됐는데.”

“……….”

대환의 바디시그널은 분노와 시기로 뒤섞여 있었기에 말이다.

시운의 시선이 움직였다.

“누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없어요?”

시운이 혜원에게 물었다.

“나 원래 말 없는데?”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는 그렇게 벌레 보시듯 말을 퍼부으시더니, 왜 지금은 말씀이 없냐 이 말입니다.”

“뭐, 뭐라고?!”

혜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시운은 그 눈빛을 우습게 바라봤다.

“이, 이게! 너… 운 좋게 헌터가 됐다고 지금 뵈는 게 없니? 어디서 막말이야!”

“누나라면 운이 좋아서 헌터자격 시험 만점 받을 수 있습니까? ”

“……….”

혜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시운의 말에 반박하진 못했다.

쿵!

방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광경을 보고 있던 태석이 참지 못하고 방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

“……….”

시운을 제외한 친척들은 굳은 표정으로 대부분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만 했다.

그동안 그들이 시운을 얼마나 깔보고 무시해왔던가.

그런 무시와 괄시를 받았던 시운이 헌터자격시험에 합격하여 세상이 인정하는 신의 직업인 헌터가 되었다니.

그래서 자신들 앞에 지금 앉아있다니?

그들은 입으로 뱉을 말이 없었다.

시운은 그런 그들의 어두운 표정을 똑바로 관찰했다.

이번 생과 전생, 그리고 그 전생에도 언제나 자신을 무시했던 이놈의 친척들.

잘 돼서 반드시 한마디 쏘아붙여 주리라 마음만 먹었었다.

‘당신들도 당해보니 어때? 남에게 자랑만 늘어놓고 무시와 하대만 일삼을 줄 아는 당신들께서 말이야.’

그의 눈으로 이질적인 광경이 들어왔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다.

아주 흡족한 기색으로 말이다.

아들인 시운이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주위에 둘러앉은 시운의 큰이모를 비롯한 친척들은 기죽은 얼굴로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다.

‘항상 나 때문에 친척들 앞에서 풀죽어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친척들 앞에서 저렇게 당당한 것은 처음 본다.’

마음 한켠이 짠했다.

시운의 눈으로는 처음 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부풀어 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욱 비상하자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외할머니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차에 탔다.

친척 형들과 누나들은 뭐, 시운에게 인사조차 못했고.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이제 집에 가볼까?”

“아빠. 오늘 하루 종일 얼굴이 환하던데.”

“당연하지. 내가 우리 아들 자랑 늘어놓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구나.”

아빠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시운의 엄마는 시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시운이가 헌터시험에 합격하니까 너희 아빠가 기분이 참 좋은 가봐. 이 사람이 원래 얼마나 무뚝뚝한 사람인 지 너도 알지?”

“알지.”

“근데 네가 잘 되니까 오늘 하루 종일 실실거리며 얼마나 네 이야기를 늘어놓았는지 아니?”

“여보. 그만해, 좀.”

시운의 아버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만하긴요. 당신, 아주 실실 웃어가지고 속이 다 보이더라니까.”

시운의 아버지는 민망한지 대답도 않고 차를 몰았다.

씩 웃던 시운은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턱을 괸다.

‘엄마, 아빠. 앞으로 더 행복하게 해줄게. 이제 시작이야.’

***

인천에 위치한 이계로 향하는 게이트 앞.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하게 검문을 서고 있다.

이계로 진입하는 게이트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헌터를 비롯해 이계행 게이트의 출입증을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저 검문소를 절대 통과할 수가 없다.

수배령이 떨어진 범죄자가 도피를 위해 이계로 은신을 하려다 발각되어 즉시 사살된 적도 있었고.

소홀한 틈을 타서 이계의 몬스터가 게이트를 통해 이곳 현계로 진입하여 인천 도심 한복판까지 추격적을 벌이다 인명피해를 내고 총기에 사살된 일까지 발생했었다.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군무기로 무장한 군부대가 경비를 설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차들이 즐비하여 검문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 뒤로 차량 한 대가 미끄러지듯 정차했다.

영국의 고급외제차 롤스로이스였다.

검은 롤스로이스가 정차하자 총기를 들고 검문하던 군인들이 긴급하게 무전기를 든다.

“협회장님 오셨다. 빨리 열어드려!”

검문소를 막고 있던 바리게이트가 열리고 군인들은 절도 있게 롤스로이스를 향해 경례를 한다.

부르응-.

열린 입구로 롤스로이스가 진입한다.

롤스로이스 뒷좌석에는 비범한 인물이 턱을 괴고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헌터연맹 협회장 곽대익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조차 그를 막대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손아귀에 움켜쥔 그였다.

그는 굵직한 시가를 입에 물며, 운전기사에게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시운입니다, 협회장님.”

“이시운이라.”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좀 더 주행하자 비상등을 켜고 주차하는 차들이 보였다.

그리고 차에서 짐을 실은 캐리어 가방을 끌고 나오기 시작한다.

올해 헌터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게 잔뜩 부풀어오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있었다.

꿈의 직업이라는 헌터가 되었다는 실감이 드는 순간이리라.

젊은 20대부터 중년의 50대까지.

연령층은 꽤나 다양했다.

어느새 대익의 눈에 게이트가 들어왔다.

사람의 키의 몇 십배의 높이에 이르는 게이트는 푸른색 원형 모양의 광을 주위로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군인들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며 헌터들을 이계 게이트로 진입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협회장님. 저희 쪽 경호원들이 그 친구를 대기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 일단 세우고 그 친구 불러오게.”

“알겠습니다, 협회장님.”

끼익-

롤스로이스가 정차했다.

군간부와 남성들이 허겁지겁 롤스로이스 앞으로 뛰어온다.

그리고 뒷좌석에 탑승한 곽대익에게 90도로 인사를 건넨다.

건넴과 동시에 차문을 열어주며 대익을 에스코트 했다.

“어서오십시오, 협회장님.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익은 고개를 한번 까닥이고선 차에서 내린 뒤, 주위를 둘러본다.

잠시 후,

우락부락한 덩치의 정장 차림 남성 세 명이 한 남성을 데리고 급하게 걸어왔다.

그들은 곽대익을 보자마자 폴더인사를 건네왔다.

“반갑습니다, 협회장님.”

목례를 마친 남성들이 곧바로 다리를 척, 벌리고 뒷짐을 쥐며 자세를 고쳤다.

대익은 그들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평범한 키에 새하얀 피부. 앳된 얼굴의 남성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안녕하세요.”

그는 긴장을 집어삼킨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왔다.

“자네가 이시운이라는 친구인가.”

“…네. 처음 뵙겠습니다, 협회장님.”

“자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대익은 흥미롭게 시운을 위아래로 훑었다.

안 그래도 대익은 시운을 한번 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아니 외국 그 어디에서도 전무하다던 헌터자격시험 모든 영역의 만점자.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건 그의 비정상적인 DNA 신체수치였다.

다른 헌터생들보다 비약적으로 높은 오른쪽 어깨의 근력 수치.

그리고 좌안, 우안의 시력이 10을 넘는 경이로운 수치까지.

‘…겉으론 그냥 평범한 청년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

게이트 앞으로 대기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운에게로 쏠렸다.

일반인은 말한마디 나누기 어렵다는 협회장과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운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저 청년은 재벌 아들인가? 대체 누군데 협회장하고 저렇게 일대일로 대화를 하는 거지?’

‘……아! 쟤가 걔구나. 시험 만점으로 통과한.’

‘저 사람이 그 뉴스에 나왔던! 이시운이라는 합격생?!“

‘부럽다. 만점으로 패스하니까 협회장도 초장부터 눈독을 들이는 구나. 앞길 창창하겠네~’

‘가시나들한테 인기 많게 생겼네. 곱상한게….’

사람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그들 태반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

게이트가 내려다 보이는 고층 건물의 고급진 테라스.

그곳에서 대익과 시운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다.

대익은 타들어가는 시가를 재떨이에 툭, 털었다.

“그러면 자네 언제부터 시력이 그렇게 좋았는가?”

“……으음, 올해부터입니다.”

“올해부터라고?”

대익이 놀라 되물었다.

아무래도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바로 시운의 시력 수치였다.

좌안 13.0 우안 12.5 라는 경악스러운 시력.

과거 소년기 시절부터 멀리보는 시력훈련을 하며 눈을 키운 몽골인들은 시력이 3.0이라고 전해져왔다.

그들은 양떼와 같은 가축을 기르며 들짐승들로부터 자신의 가축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러한 시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 몽골인의 놀라운 시력덕택에 그들은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며 요긴하게 사냥할 수 있었고,

다른 동족들도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경이로운 몽골인의 시력이 3.0이라 전해진다.

그런데…

그것의 무려 네 배는 좋은 시력을 가졌다니 그 사실을 수긍하기가 사실상 힘들었다.

“그러면 어릴 적부터 시력이 좋았던 게 아니라 올해부터 눈이 갑자기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이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흐음.”

대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에둘러 대답하는 듯한 시운을 보고 말이다.

그러나 시운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대익은 알고 있었다.

대익은 이미 이 사실을 직원에게 보고 받았었을 때, 믿기지가 않아 암흑의 루트로 시운의 병원 진단기록과 그의 자세한 신상정보를 모두 확인했었다.

‘흐음. 그렇다면.’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대익이 시운에게.

“…그럼 자네, 혹시 저기 게이트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보이는가?”

대익은 게이트 방향쪽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여기서 족히 3km는 넘어보이는 거리였다.

일반 시력을 가진 대익의 눈에는 그곳에 위치한 사람의 형상조차 희미하게 보였다.

시운은 그쪽으로 고개를 슬쩍 돌린 뒤 흔쾌히 대답했다.

“보입니다.”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테스트 하나 해봐도 되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