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이세계 헌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3)
더운 공기로 내려앉은 분수광장 앞에는 인파들이 즐비하여 있다.
“나 방금 레벨 업 하고 왔어.”
“그보다 다람쥐들 왜 이렇게 잡기 빡센거냐….”
“그러니깐! 무슨 공격을 다 피하더라, 쬐끄만 것들이….”
“수희 누나는?”
“물건은 쥐뿔도 안 나오더라. 개지랄 맞아, 진짜.”
헌터들이 지친 기색으로 대화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저렙용 나무목검을 쥐고 있다.
오늘 이계로 넘어온 초짜 헌터들이었다.
이들은 사냥을 하며 서로 친해져 친목질을 하고 있었다.
친목질도 어느정도 필요했다.
이제 막 헌터가 된 이들끼리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힘을 합쳐 파티 사냥을 하면 다람쥐를 잡는 것도 좀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포션이 없을 때나 돈이 떨어지면 급하게 빌릴 수도 있었고.
이곳 태초시티는 방금 헌터가 된 새내기 헌터들의 시작과도 같은 마을이었다.
태초에 헌터들이 처음으로 시작하는 마을.
그래서 이름도 ‘태초시티’다.
이곳의 잡화점과 장비 상점들도 모두 저렙 장비들만 판매하는 데다가 헌터전용 던전도 없어서 고렙 헌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태초시티에 머무는 헌터들 중에는 레벨 2가 넘어가는 헌터가 없었다.
방금 이계로 진입한 헌터들로 주를 이루고 있고, 지금이 헌터생활 초반이라 하더라도 금방금방 레벨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 1레벨 헌터들이 15레벨이 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빨라도 일주일은 걸렸다.
게임처럼 순식간에 레벨이 오르는 그런 단순한 세상이 아니었다.
끼익.
무기 상점에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걸어나왔다.
순간, 주위에 있던 헌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와, 저거 크기 봐….”
“쩌, 쩌는데?”
“저거 클레이모어 맞지?”
모두가 남성이 등에 쥚어쥐고 있는 무기에 감탄해 했다.
붉은 마정석이 박힌 묵직하고 큰 대검이었다.
“저런 큰 대검을 들려면 우린 멀었나?”
“한참 멀었지….”
“에휴, 낡아빠진 이 목검 벌써부터 버리고 싶네.”
“근데 저런 사람이 이 마을에 왜 있는건데?”
뭔가 의아했다.
이곳 태초시티는 고렙 헌터들이 머물 일이 없다.
모두가 저렙 헌터들뿐이었다.
그런데 저 남성은 용병도, 그렇다고 이계인도 아닌 헌터로 보였고, 고렙으로 보였다.
비록 남성의 복장은 초급자 수련복이었지만, 저런 대형 무기를 착용하려면 힘에 스탯을 집중 분배하여 최소 레벨이 30은 넘겨야 하니까.
“가서 쩔 좀 해달라고 할까?”
“해주겠냐? 우린 F랭크인데….”
“야, 야. 근데 저 사람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아, 낯이 익어.”
“맞다! 저 사람 그, 그! 그….”
무리 속에서 한 여성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남성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이잖아!”
***
[보유한 금액은 27만 골드입니다.]
‘남은 골드는 27만 골드라.’
시운은 무기 상점에서 걸어나왔다.
그의 등 뒤에는 방금 구매한 묵직한 대검이 등을 가득 덮고 있다.
[초식의 클레이모어][노멀]
붉은 마정석이 박힌 양손형 대검.
-공격력: 150
-내구력: 250/250
‘이거라면 웬만한 저렙 몹들은 한 방에 보낼 수 있겠군.’
헌터들에게 최초로 지급되는 목검이 사냥 중에 부서지는 탓에 구입한 무기였다.
이 대검은 착용 레벨 제한은 없는 대신 착용 조건이 있었다.
착용할 수 있는 조건은 힘 스탯 80이상.
현재 시운은 근력 스탯이 85에 육박하는지라 이 클레이모어를 착용할 수 있었다.
'무기는 꼭 있어야 한다.'
무기는 사실상 헌터에겐 필수였다.
레벨이 15가 되면 최초로 1차 전직을 하고 직업을 획득할 수 있다.
1차 전직 직업의 종류는 인기 직업인 전사부터 격투가, 사제, 궁수, 도적 비인기 직업인 암살자, 광전사 거기다가 히든 클래스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레벨 15가 되어 직업을 얻을 때는 전직 조건이 있다.
바로 던전 탐사 테스트를 거쳐서 통과해야 했다.
던전 탐사 테스트란?
이제 막 레벨 15가 된 헌터들에게 최초로 주어지는 시험.
헌터협회에서 주최되는 것으로 헌터들이 팀플로 한 조를 이루어, 지정되는 헌터전용 던전을 탐사하고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헌터가 헌터전용 던전을 도는 것은 당연하다.
헌터전용 던전에서 획득하는 광범위한 종류의 물건들을 현계에 운반하여 경매로 넘기는 행위를 하며,
헌터는 본격적으로 수입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헌터들은 헌터 랭크의 등급업을 하려면 헌터전용 던전을 클리어하며 업적을 쌓아야 한다.
헌터와 헌터전용 던전은 이렇 듯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탐사 테스트는 헌터들을 이러한 헌터전용 던전에 적응 시키려는 목적의 테스트였다.
‘탐사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쓸만한 무기가 있어야지. 이 클레이모어가 제격이야.’
시운은 미리 그 테스트를 염두해 두고 무기를 구입한 것이었다.
시운이 한 시간만에 달성한 레벨은 6.
곧 15레벨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남들은 전직에 필요한 조건인 레벨 15를 달성하는 데에 일주일에서 많게는 이주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시운은 3일이면 달성할 자신이 있었다.
‘내 눈과 어깨라면 누구보다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레벨 업이 먼저야.’
그랬다.
지금은 무엇보다 렙 업에 열중할 때다.
레벨 6에 걸맞는 사냥터 하바나 초원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려는데.
“안녕하세요.”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시운은 상념을 떨치고 앞을 바라봤다.
자주색 단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한 여성이 상냥하게 웃고 있다.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헌터자격시험 만점 받은 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머쓱한 태도로 시운이 답했다.
옆에서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복을 걸친 헌터들이 분수를 뿜어내는 사자 모양의 석상 주위에 모여앉아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다들 날 희한하게 쳐다보네. 바디시그널을….’
굳이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모두 신기하단 눈빛이었고, 그 눈빛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목검이 아닌 대검을 차고 있으니 부럽고 의아하단 눈길이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시운은 다시 자신의 앞의 여성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녀는 할 말이 있다는 얼굴이었다.
“근데… 무슨 할말이라도?”
“하하, 딴 건 아니구 그냥 만나면 한 번 인사하고 싶었어요. 저도 뉴스 봤거든요. 사실 만점을 받은 분이 나타났다고 했을 때 굉장히 놀랐었거든요….”
“아, 예….”
멋쩍었다.
뭐, 헌터자격시험 만점으로 인해 뉴스 대문짝에 실리긴 했다.
그리고 이계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헌터들도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이유로 말을 거니 머쓱하긴 했다.
“사냥하러 가시는 가봐요?”
“네.”
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치레만 하고 가면 될 텐데 여성은 시운과 계속 대화하고 싶단 눈치였다.
여성 헌터의 얼굴은 예뻤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한눈 팔 여유는 없다.
시운의 눈으로 그녀의 모습이 섬세하게 보였다.
‘도복 왼쪽 가슴 부분이 흔들거리고 있는 거 보니, 심장이 뛰고 있군. 그리고 동공은 크게 열려있는 상태. 나한테 호감이 있군.’
관찰하는 시운에게 셀쭉거리며 여성이 말했다.
“그렇구나~ 저어, 지금 착용하고 계신 무기는 클레이모어 인가요?”
“네, 보시다시피.”
“클레이모어를 장착하려면 레벨이 높아야 하지 않나요?”
“레벨 제한은 없고, 근력이 높아야 하죠.”
“아하! 제가 근력에 스탯을 분배하고 있거든요. 그런 대검을 들려면 근력을 얼만큼 분배해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시운이 그녀의 말을 끊고 물었다.
스릉!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시운은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무거울 것 같은데 한 번 들어볼게요오… 으아앗!!”
콰당! 그녀가 클레이모어의 손잡이를 쥐자마자 클레이모어를 땅에 떨어뜨렸다.
여성은 커진 눈으로 떨어뜨린 대검을 바라봤다.
“어머! 떨어뜨려서 죄송해요. 망가지진 않았나? 휴, 진짜 무겁네요. 혹시 근력 스탯이 몇이세요?”
시운은 히죽 웃으며 땅에 처박힌 클레이모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85요.”
“………네에?!”
“저는 바빠서 이만. 수고하세요.”
“네? 아아….”
시운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걸어갔다.
여성은 벙찐 얼굴로 시운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하바나 초원.
사방에서 꿀꿀-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생멧돼지들이 리젠되어 초원을 누비고 있다.
“능력치창 오픈.”
시운이 외치자.
그의 앞에 능력치 데이터베이스의 스캔창이 떠올랐다.
[클래스] 無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5 [범죄] 0
[레벨] 6
[생명력] 90/90 [마나] 30/30
[근력] 85 [민첩] 10 [체력] 10
[지능] 9 [지혜] 8
[상태] 정상
[공복도] 6 [갈증도] 7 [피로감] 12
[여유 능력치] 15
‘음, 사냥하기 전에 일단 여유 능력치 스탯을 분배하자.’
시운은 고민없이 여유능력치 15를 모두 체력에 투자하였다.
체력 스탯이 10에서 25가 되니 생명력이 급격히 늘어났다.
체력에 스탯을 모두 투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헌터는 한 번 죽으면 영영 되살아나지 못한다.
아무리 체력이 1%이하 빈사상태가 되면 마을로 귀환되는 안전 스크롤이 있다고 해도 헌터는 생명력이 높아야 한다.
몬스터 던전과 마을 외에 헌터전용 던전에서는 안전 스크롤을 사용할 수가 없다.
만약, 게이트 던전에서 죽는다면? 진짜 저 세상으로 이사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헌터들은 초반 저렙 때는 체력을 꾸준히 찍어놓는다.
그게 추세이기도 하고, 일반적이기도 했다.
헌터는 컴퓨터속 게임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안전이 최우선시 돼야 했다.
‘좋아, 이제 멧돼지들 좀 잡아볼까?’
갈색의 멧돼지들이 땅바닥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고 있다.
멧돼지들의 머리 위로 창이 떠올랐다.
[Lv.6 야생 멧돼지.]
[Lv.7 뿔 멧돼지.]
스릉! 시운이 클레이모어를 뽑아들었다.
처벅처벅. 야생멧돼지 한 마리에게로 다가갔다.
“크릉?”
인기척을 들은 야생멧돼지는 고개를 돌리더니 씩씩거리며 앞발을 바닥에 긁었다.
클레이모어를 쥐고 겨눈 뒤.
부웅! 빠악.
“꾸에에에엑-.”
짜릿하게 전해지는 손맛!
야생멧돼지는 동공이 까뒤집어진 채, 피가 뒤섞인 혓바닥을 내밀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35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돼지고기를 한 개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손맛 죽이는데? 일단 한 마리.”
다음 타겟으로 걸어갔다.
부웅!
“꾸에에에엑!”
[28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에에엑!”
“꽤애애액!!”
“꾸에에에엑…….”
연달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방. 한방. 일격을 쏟을 때마다 야생멧돼지들은 맥없이 죽어갔다.
어느새.
시운의 주위로 야생멧돼지, 뿔멧돼지 가릴 것 없이 사체가 쌓여있다.
이곳 하바나 초원의 멧돼지들은 멧집이 좋아 여간해선 죽지 않는 몬스터로 알려졌지만 시운에게는 그 멧집이 통하질 않았다.
시운이 클레이모어로 내리치는 일격이 어찌나 강력한지 둔기로 얻어맞은 소리와 함께 멧돼지들은 두개골이 빠개진 채 죽기 바빴다.
부웅! 빠악-.
“꿰에에엑-.”
울부짖는 단말마의 비명.
“크르으응!!”
“크릉!”
멧돼지들은 자신의 동족이 자꾸 죽어나가자 무리를 지어 달려들었다.
육중한 갈색 살덩이를 흔들며 멧돼지들이 돌진해왔다.
‘그래, 귀찮은데 한 번에 와라. 한꺼번에 죽여줄게.’
무식하게 뛰어오는 멧돼지 떼에 의해 주위로 먼지가 휘날렸다.
부웅!
시운이 휘두르는 클레이모어의 칼날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번쩍일 때마다.
“꾸에에엑-.”
“꽤애액.”
힘차게 달려들던 멧돼지들은 힘없이 죽어갔다.
“꽤애애액!”
정신없이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시운의 앞에는 멀쩡히 걸어다니는 멧돼지 한 마리 보이질 않는다.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늘어져 있다.
“후우….”
[레벨이 올랐습니다.]
시운의 주위로 파란 구체가 터지며 레벨 업 임팩트를 뿜어냈다.
‘너무 쉬운데?’
더 이상 사냥할 멧돼지가 없다.
시운은 초원의 안 쪽으로 더욱 걸어갔다.
잡초가 무성한 풀숲을 계속 걸어가니 코코넛이 주렁주렁달린 나무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바닥에 돋아난 바위들 사이로 벌레들이 윙윙 거리며 기어다니고 있다.
그때.
“크르으응….”
아까보다 더욱 성난 소리가 들려온다.
시운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사람의 키만한 높이의 풀들이 좌우로 파도처럼 흔들렸다.
그 풀들 사이를 헤집고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방금 멧돼지들과는 다른 거대한 무언가가.
“크르으아아아.”
쿵쿵 거리는 소음을 내며 걸어오는 무언가는 확실히 방금 멧돼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다.
‘…저 놈은?’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멧돼지였다.
그런데… 커도 너무 컸다.
곰만한 체구에 움직일 때마다 전신에 핏줄을 불끈거리며 걸어나온 멧돼지는 대왕멧돼지였다.
대왕멧돼지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멧돼지의 그림자에 시운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컸다.
“카아아아앙!”
대왕멧돼지는 악어주둥이만한 아가리를 벌리며 괴성을 뿜어냈다.
[Lv. 15 대왕멧돼지.]
‘…심각하게 크다.’
시운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
자신이 강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자신의 앞에 있는 대왕멧돼지는 실로 커도 너무 컸기 때문이다.
고개를 꺽어들어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크르앙, 크아아앙!”
콧구멍을 들썩이며 대왕멧돼지가 시운을 노려봤다.
대왕멧돼지의 눈은 흰자위 검은자위도 없었고 온통 시뻘갰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일었다.
오싹했다.
‘좀 쫄리긴 하네. 저런 놈을 상대하긴 첨이니….’
그랬다.
게임을 하다가 게임상에서도 갑자기 막강한 보스몹이 번쩍! 등장하면 순간 긴장이 된다.
하물며 시운의 앞에 등장한 것은 게임상의 몬스터가 아니라 진짜 거대한 몬스터였다.
긴장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다.
대왕멧돼지는 목을 이리저리 꺽으며 몸을 풀고 있다.
‘니가 내 동족들 요란하게 죽이며 여기까지 왔냐? 뒈질 준비 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후, 긴장 풀고.”
일단은 당장에 시험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인벤토리창 오픈.”
철컹!
곧바로 클레이모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시운은 무기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맨주먹으로 저 무식한 대왕멧돼지를 상대할 심산이었다.
그의 눈이 비장해졌다.
‘이번 기회에 그것을 시험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