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21화 (21/278)

제 21화

천세정 그녀를... (1)

무기를 집어넣고 두 주먹을 꽉 말아쥔 이유가 있었다.그것은,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초보 수련장에서 식인다람쥐를 죽였을 때 분명….’

시운이 초보 수련장의 보스 식인다람쥐와의 혈투를 벌였을 때 사실 의아한 점이 있었다.

맨주먹으로 식인다람쥐를 마구 구타했을 때,

왼손의 주먹으로는 머리통이 부서져라, 뒈져라! 후려쳐도 보스급 몬스터인 식인다람쥐에게 큰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마지막 막타에서 시운의 오른 주먹으로 식인다람쥐의 얼굴을 후려치니, 단 한 방에 식인다람쥐는 그 자리에서 땅에 턱을 처박고 허무하게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었다.

분명 식인다람쥐는 팔팔했었다.

시운의 오른 주먹을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에 시험해 볼 것은 내 오른쪽 주먹이 왼쪽보다 더 강한지다.’

시운의 오른쪽 어깨는 눈과 마찬가지로 각성한 상태.

문제는, 시운의 근력 스탯 85라는 수치가 양쪽 어깨 근력에 균등하게 해당하는 수치라는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 어깨의 근력은 그보다 높다는 것인가다.

‘분명, 내 왼쪽 주먹은 근력 85에 비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랬다.

그의 왼쪽 주먹의 한방에 초보수련장의 다람쥐들이 괴성을 지르며 요절했었기에 그것은 증명된 셈이다.

각성된 오른쪽 팔의 근력이 왼쪽 팔의 근력보다 강하다면?

앞으로의 사냥 방식과 착용 장비부터 헌터 생활까지 모든게 완전히 달라진다.

‘일단은 저 놈에게 맨주먹으로 시험을 해 보는 것이다.’

시운의 시선이 재차 대왕멧돼지의 얼굴로 옮겨졌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시운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크릉, 크아앙!”

불곰만한 대왕멧돼지가 괴성을 뿜으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거리는 진동이 대지에 울려퍼지며 그 충격에 의해 시운의 몸도 덩달아 흔들린다.

‘이놈의 약점은 이마.’

이미 초급 몬스터 백과사전을 수천, 수만 번 속독하여 웬만한 저급 몬스터들의 정보는 통달한 상태다.

대왕멧돼지가 몸을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캬아아앙!”

대왕멧돼지가 앞발로 순간 도약하여 시운의 코앞까지 거리까지 좁혀왔다.

공중에 붕 떠있는 대왕멧돼지의 벌어진 아가리 속 침이 고인 이빨이 보였다.

코앞까지 다가오니 진짜 크긴 컸다.

‘일단 왼쪽 주먹으로!’

공격 자세를 잡고 왼쪽 팔을 들어올리고 허리를 돌려 체중을 잔뜩 싣고 대왕멧돼지에게로,

“이얏!”

빠아악!

“크르앙!!”

대왕멧돼지의 이마뼈에 시운의 왼손 스트레이트는 정확히 꽂혔다!

반대편에서 돌진해오는 멧돼지의 스피드와 날아간 펀치력이 합쳐져 가중된 대미지가 적용됐다.

그래서,

가해진 대미지는 컸다.

“크르악!”

대왕멧돼지는 저만치 튕겨져 나간 채, 신음을 내뱉으며 콧김을 씩씩거렸다.

충격이 있어보였다.

몸을 지탱하는 네 다리를 부르르 떨며 대왕멧돼지가 뒤로 조금 물러났다.

시운이 쉽지 않은 상대란 걸 직감한 듯 보였다.

‘음, 정확하게 적중하긴 했는데. 놈의 생명력은 오분의 일도 줄지 않았다.’

시운은 알 수 있었다.

헌터자격시험을 준비하며 속독했던 몬스터 백과사전의 정보에 의하면,

대왕멧돼지는 생명력이 90% 이하부터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생명력이 80% 이하가 되면 혓바닥을 내민다고 기록되어 있었고,

생명력이 50% 이하가 되면, 그때서야 사람처럼 두 발로 몸을 지탱하고 일어서서, 앞발을 무기로 사용하며,

빈사상태 직전이 되면 울부짖기 시작한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지능이 낮은 단순한 몬스터였다.

‘아직 혓바닥을 드러내고 있진 않으니 체력은 80% 이상이란 뜻이지. 좋다, 이제는 오른 주먹이다.’

대왕멧돼지는 괴물처럼 포악한 성격에 체구도 엄청났지만 현재 시운에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허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굳이 이 자리에서 죽어서 고가의 아이템인 안전귀가 스크롤을 남발하면 손해였기 때문이다.

“크릉! 크릉! 크릉!”

대왕멧돼지가 콧구멍을 잔뜩 씰룩이더니, 머리근육을 좌우로 세게 꺽었다. 대왕멧돼지의 목근육이 뻐득!뻐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놈은 이제 백 퍼센트의 전력으로 덤빌 눈빛이었다.

‘간다.’

처벅처벅. 시운이 다가갔다.

“크아아앙!!”

그러자 대왕멧돼지가 땅을 벅벅 긁더니,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한다.

“크릉?”

대왕멧돼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기가 포효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꽁무늬를 빼기 바빴는데 태연하게 걸어오는 시운을 보자 당황하다가…

부웅-

퍼억!

“꾸웩!”

시운의 오른 훅이 허공을 가르고 대왕멧돼지의 정수리에 꽂혔다! 대왕멧돼지는 고개가 꺽여 땅바닥에 자빠진 채,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혓바닥을 입 밖으로 늘어뜨리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끼잉! 끼이잉! 끼이이이잉!”

울기 시작했다.

마치 맹수를 맞닥뜨린 개처럼.

시운이 조금씩 다가가자 뒷걸음질을 살살 치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울기 시작했다.

오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방금 전까지 흉폭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개장수에게 끌려가는 개처럼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역시 그랬군.’

시운의 눈빛이 번쩍였다.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왼쪽 주먹으로 대왕멧돼지의 머리통을 가격했을 때 놈의 반응을 토대로 추측하여 생명력의 10% 정도 타격을 입힌 것으로 추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곧바로 오른 주먹을 적중시키자 놈은 생명력이 1% 이하 빈사상태가 되면 보이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에,

오른 주먹으로 놈에게 가한 대미지는 추측적으로 89% 정도.

확실히 시운의 오른 주먹은 왼쪽 주먹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하단 것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흡족했다.

오른팔이 근력 스탯 85를 훌쩍 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헌터생활을 더욱 요긴하게 할 수 있었기에.

시운이 환하게 웃었다.

“테스트는 끝났다, 이제 그만 죽자, 오너라.”

찰캉!

인벤토리에서 클레이모어를 꺼냈다.

묵직한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들자 대왕멧돼지의 눈이 번뜩 커지며 더욱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깨에에에엥!!”

놈은 고개를 허공으로 쳐들고 더욱 크게 울었다.

잠시 후,

쿵쿵! 쿵쿵쿵쿵! 쿵쿵쿵쿵!!

지진이 난 것처럼 주변 대지가 흔들렸다.

풀숲이 빠르게 헤쳐지는 소리, 바위가 무언가에 밟혀 깨지는 소리, 무언가에 부딪혀 나무가 부서져내리는 소리가 동시에 섞여 들렸다.

“쳇.”

시운은 미간을 찡그렸다.

대왕멧돼지는 포악하지만 한 가지 본능적인 버릇이 있었다.

빈사상태가 되면 울부짖는 것. 그 이유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 울부짖어 주위 자신의 동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인 것이었다.

쿵쾅쿵쾅쿵쾅쿵쿵!

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크아앙!”

“크랑!”

“크르르릉!”

대왕멧돼지의 도움 신호가 하바나 초원을 가득 매우자 동족 대왕멧돼지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드러냈다.

‘귀찮게 됐군.’

주위를 훑었다.

어느새 꼬랑지를 말고 피를 질질 쏟아내며 낑낑거리던 대왕멧돼지들 뒤로, 열다섯 마리나 되는 대왕멧돼지들이 몰려있었다.

햇살에 비친 놈들의 그림자가 시운 주위를 가득 덮을 정도였다.

“크라아앙!!”

“카아앙!”

대왕멧돼지들이 자신의 친구의 몰골을 보더니 으르렁 거리며 시운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쿵쿵쿵!

대왕멧돼지들은 좌우로 흝어지더니, 움직이며 시운 주위로 둥그렇게 모였다.

시운이 줄행랑을 치지 못하도록 도주 경로를 완전히 틀어막은 것이었다.

내 친구를 이 꼴로 만든 너는 이 자리에서 절대 못 빠져나가고 반드시 뒈진다! 라는 기세였다.

시운은 곧바로 클레이모어를 잡은 채, 손목을 꺽은 뒤 칼날 방향을 대왕멧돼지의 직선으로 가게 만들었다.

“한번에 덤벼라!”

시운은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무언가를 보여줄 생각이다.

"크라아앙!!“

“크앙!!!!”

“카아앙!!”

시운을 둘러싼 대왕멧돼지들이 한꺼번에 시운에게 돌진해왔다.

열다섯 마리나 되는 멧돼지들이 일제히 달려드니 먼지가 자욱히 일었다.

슈우욱!

달려오던 대왕멧돼지들이 앞발에 힘을 준 뒤에, 펄쩍! 공중으로 도약하여 시운을 향해 날아온다.

시운은 하체를 움직이며 허리를 순간! 비틀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몸을 빙빙 돌며 클레이모어를 꽉 쥐고 휘둘렀다.

마치, 게임 속 바바리안이 휠 윈드를 돌 듯이.

샤아악! 샤악!

“끄에엑!”

“끼엑!”

순간! 주위로 역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시운이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몸을 회전할 때마다 대왕멧돼지들은 썰려 나가떨어졌다.

“끼에에엑….”

“꾸웩!”

“꿰에엑.”

이어지는 멱따는 소리와 함께.

쿠웅! 쿠웅! 쿵! 쿵!

어느새.

대왕멧돼지들이 거대한 몸통을 힘없이 바닥에 처박고 죽어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부웅! 부웅!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시운에게 들린 칼날이 개미떼처럼 달려오던 대왕멧돼지의 머릿가죽, 등가죽, 다리가죽 살결을 거침없이 찢고 또 찢었다.

***

“후우! 후우!”

시운은 숨을 몰아쉬었다.

역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주위에는 겁 없이 달려들던 멧돼지 떼들이 시체가 된 채 고기처럼 늘어져 있다.

시운의 클레이모어에서 핏물이 흥건히 묻어 땅에 톡톡, 떨어지고 있다.

“깨애애앵…. 깨앵!”

“이제 네가 아무리 짖어도 널 커버쳐주러 와줄 친구들은 없다.”

시운은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남은 대왕멧돼지는 하나.

그 한 마리는 바로 시운의 맨주먹을 얻어맞고 친구들을 호출한 그녀석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대왕멧돼지는 낑낑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대왕멧돼지의 다리로 무언가가 타고 흘러 내려와 땅을 적셨다.

지린내가 풍겨왔다.

“오줌을 지렸구나? 흐흐. 무섭긴 한가보네. 니가 날 피곤하게 만들었으니 그 댓가는 이거야.”

“끼잉,끼이잉!”

대왕멧돼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살려달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기야, 겁을 먹을 만도 했다.

자신의 덩치만 봐도 웬만한 인간들은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쁜데,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사람녀석은 겁조차 먹지도 않는다.

게다가 자기가 부른 덩치의 친구들을 저 커다란 대검을 빙빙 돌리고, 쑤시며 베고 찢으며, 그냥 … 고기 도살하듯, 도살을 해 버렸으니.

“깨애앵!”

대왕멧돼지는 도망갈 의욕도 놓은 채,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고 깽깽 거리다가…

푸슉!

“끄웨에…엑.”

“마지막 한 마리까지 끝.”

시운은 대왕멧돼지의 두개골을 관통시켜 턱끝까지 박힌 클레이모어를 다시 빼내었다.

슈욱! 칼날을 빼내들자 멧돼지 머리의 뚫려있는 구멍 속에서 피가 하늘위로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휴우.”

어느새 시운의 등뒤로 황혼이 비치고 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48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대왕멧돼지의 머릿뼈를 획득하였습니다.]

[사자문양의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시운의 귀에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전신으로 파란 빛이 번쩍였다.

레벨 업 이팩트였다.

“능력치창 오픈.”

[클래스] 無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5 [범죄] 0

[레벨] 10

[생명력] 280/280 [마나] 45/45

[근력] 85 [민첩] 10 [체력] 25

[지능] 9 [지혜] 8

[상태] 정상

[공복도] 9 [갈증도] 14 [피로감] 23

[여유 능력치] 9

‘벌써 레벨이 10이군.’

시운의 레벨 업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헌터가 레벨 1부터 10까지 달성하는 데 소요되는 평균적인 시간은 최소 일주일이었다.

그러나 시운은 하루도 안 되어 레벨을 10까지 달성한 것이었다.

사냥이 너무나 쉬웠다.

신입 헌터는 초반부터 개고생을 면할 수 없는데.

이 환생해서 얻어진 눈과 어깨로 인해 시운은 꿀을 빨고 있는 셈이었다.

‘이 속도라면 S급 랭크 헌터가 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니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아직 F급 랭크 라는 말단의 헌터이지만,

벌써부터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차…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좋은 집…

원래는 꿈도 못 꿨던 유럽 여행…

주렁주렁 손에 든 고급 쇼핑팩들…

고가의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가질 수 없던 그녀와…

시운의 머리 위로 부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일상들이 스쳐지나갔다.

언제나 무시당했던 삶.

실패와 슬픔만 얼룩졌던 비참했던 인생들…

이젠 그 모든 것들을 뒤집어버릴 열쇠를 손에 쥐었단 느낌이 일고 있었다.

‘… … 아직 헌터생활 극초반이지만.’

빨리 성공하고 싶다.

그래서 진정으로 가족들을 웃게 해주고 싶다.

그들을 편하고 대우받게 살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천세정.’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떠올랐다.

언제나 나 따위는 가질 수도 탐낼 수도 없는 사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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