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화
히든 퀘스트 (1)
“세, 세정아.”
“으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시운은 떨리는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핀다.
그녀의 바디 시그널의 신호는…
‘나에게 호감을 느껴서 안은 게 아니야. 그냥 취한 거야. 눈 주위의 근육을 껌뻑거리는 걸로 봐서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는 거야…. 많이 힘들고 외로웠구나. 아무도 세정이에게 포옹 한번 안 해줬던 거야?’
눈을 지그시 감고 살짝 입을 벌린 채 시운을 가만히 안고 있는 세정.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세정아….’
툭.
갑자기 시운의 머리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투두둑. 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내리기 시작한 비는 소나기가 되어 길거리의 바닥을 흥건히 적시기 시작했다.
공기는 금세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비가…. 하필 이럴 때에!’
들려오는 빗소리에 시운은 곧바로 세정을 틀어 안고서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세정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부에 ‘박기사님’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치고 이십 분 정도가 흘렀을까.
커피숍 밖 창가로 밴틀리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매끄럽게 들어와 갓길에 주차했다.
‘감탄이 그냥 나오네…. 저게 세정이 기사의 차라고?’
아니나 다를까.
세정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운은 대신 전화를 받고 창가 앞으로 세워진 차가 기사의 차임을 확인했다.
기사는 밴틀리에서 우산을 펼치고 내리더니, 카페 앞으로 다가왔다.
시운은 세정을 데리고 기사가 펼친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
이런 고급 승용차를 처음 타본 시운은 신선한 느낌을 느꼈다.
시트가 엉덩이에 닿자 이렇게 푹신하고 고급질 수가 없다.
승차감이 정말 죽여줬다.
‘이래서 다들 좋은 차들을 타는 거구나….’
자신 뒤에 있는 세정은 턱을 괴고서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뜨리며 졸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까지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정.
기사가 매끄럽게 핸들을 돌리며 액셀을 밟고 차를 출발했다.
“아가씨 친구 분은 어디 거주 하십니까?”
“제 집 주소요?”
시운은 기사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기사는 내비게이션에 시운의 집 주소를 입력했다.
차창 너머로 비가 내리는 거리를 슬그머니 바라봤다.
사람들은 비를 맞기가 싫어 두 손으로 머리 위를 가리고 어디론가 급히 뛰어갔다.
몇몇은 급하게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사고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산을 펼친다.
수트 차림으로 말없이 운전하는 기사 앞으로 시운은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비가 내리면 차가 막히는 건 당연한데 , 이 차 앞으로 주행하고 있던 차들이 길을 터주고 있었다.
‘우와…. 모세의 기적….’
너무나도 편안한 외제차의 승차감에 시운은 기분 좋은 졸음이 몰려오려 했다.
‘나도 반드시 고위급 헌터가 되어 이런 차를 몰고 다닐 것이다.’
더욱 동기부여가 샘솟았다.
끼익.
어느새 시운 집 앞에 도달했다.
“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우리 세정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시운은 힐끗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댄 세정을 바라봤다.
그녀는 취기에 의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세정아 잘 들어가.”
“…….”.
그녀는 잠들어 묵묵부답.
차에서 내린 시운은 곧장 집 안으로 뛰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가 젖은 머릿결을 털어 내리며 샤워를 시작한다.
솨아아-.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 시운은 물을 몸에 적시며 아까 세정이 자신을 안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도 그녀를 잊자고 다짐했는데 그녀와 신체적 접촉이 일자마자 그렇게 커다란 설렘이 느껴질 줄이야.
‘이번 생은 그녀와 사랑할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신의 직업. 누구나 대우해주는 직업인 헌터가 되었지만, 아직 햇병아리 F랭크에 불과하다.
박태석처럼 입지있는 헌터가 되면 그때 그녀에게 다가갈 것이다.
탄탄한 능력을 갖추고 말이다.
‘그때가 되면 분명 세정이도 나를 남자로 봐 주겠지. 기다려, 세정아. 내일부터 시작이니까.’
***
쌔애앵!
불어오는 칼바람의 감촉에 상념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하바나 초원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초원의 드솟은 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휘날려 춤추고 있고,
주위엔 칼로 난자당한 몬스터의 사체들이 축 늘어져, 냄새를 맡고 찾아온 파리에게 뜯기고 있다.
‘천세정. 내가 더욱 성공해야 하는 이유.’
더욱 도약해야 겠다는 다짐이 굳어졌다.
그래야 그녀를 가질 수 있으니까.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이미 하늘은 달이 떠올라 달빛을 뿜어내고 있다.
‘벌써 어두워졌군. 그러나, 아직 할 일이 있지.’
할 일은 바로 퀘스트였다.
바로, 하바나 초원의 숨겨진 히든 퀘스트.
그 퀘스트를 수행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레벨 10 이하의 헌터.
그러나, 자격 조건에 비해 상당히 까다로운 퀘스트였다.
‘그래서 히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퀘스트지.’
난이도가 있는 만큼 퀘스트의 보상도 짭짤했다.
사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한 헌터는 독보적으로 단 한명밖에 없었다.
클리어한 인물은 바로 박태석.
태석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통하여 이 숨겨진 퀘스트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일단 그 여자를 찾아야 한다.’
일단 여자를 찾아야 했다.
초록 머리에 온 몸에 생채기가 난 여자가 이 퀘스트를 선사해준다고 박태석이 말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큰 아픔을 겪고, 세상과의 단절을 하려고 멧돼지 가죽을 뒤집어쓰고 하바나 초원의 깊은 곳에 숨어 살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 남성을 찾는 것이 퀘스트의 목표였다.
남성은 사람에게 흉폭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또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이 퀘스트를 부여해 줄 여성을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찾아볼까.’
시운은 앞으로 전진하며 땅을 살폈다.
흙이 가득한 땅에는 멧돼지가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간간히 사람의 발자국도 뒤섞여 있다.
시운은 남들보다 뛰어난 두 눈으로 더욱 자세히 살폈다.
‘이거군.’
돼지들의 투박한 발자국 사이로 다른 형태의 발자국이 보였다.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땅을 밟은듯한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의 선명함을 비교해보자.’
하바나 초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신발을 신고 이곳을 지나다닌다.
그러나, 지금 찾고 있는 여성은 맨발차림으로 이곳을 걸어다닌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맨발의 발자국을 찾으면 그녀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허리를 굽혀 땅에 쭈그려 앉은 뒤에, 맨발자국을 살폈다.
“발자국이 선명할수록 땅을 밟은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이지.”
좌안, 우안 10이상의 시력을 통해 땅의 수많은 맨발자국의 선명함을 비교했다.
발자국 주위로 잔흙이 굳어있는 아주 미세함의 차이.
일반인은 절대 분별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였다, 아니, 그냥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발자국은 희미했다.
‘저쪽으로 갔군.’
시운의 눈 앞, 동쪽 방향으로 발자국이 따라 나있었는데, 점점 미세한 차이로 발자국이 그 방향으로 진하게 나있었다.
시운의 뇌리로 그녀의 이동 경로가 그려졌다.
그 경로를 따라 걸어갔다.
대왕멧돼지들은 방금 시운의 손에 처리되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걸어갔다.
잠시 후,
사람 키만한 바위 세 개가 보였다.
바위들은 서로 굳건히 딱 붙어 있었다.
‘이 바위를 끝으로 발자국이 사라졌어.’
그 말은 이 근처에 지금 그녀가 있다는 뜻이었다.
겹겹이 둘러쌓인 세 개의 바위는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바위의 표면에 무언가로 긁은 자국이 돋아나 있다.
‘설마 이 바위 밑 땅 속에 그녀가 있나?’
탕탕탕!
주먹으로 바위를 세게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
“저기요? 저기요!”
탕탕탕!
바위를 연달아 두드려보았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주변의 땅의 표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바위를 끝으로 발자국이 사라졌어. 분명 이 밑에 있다. 바위 밑으로 통로가 있는 것 같은데.’
세 개로 솟아난 바위가 어딘가로 연결되는 통로의 문 같았다.
그러면 이 바위를 열어야 할 텐데.
박태석의 유튜브에서 알려진 정보로는 여성이 신출귀몰하여 찾기가 힘들다고만 언급돼 있었고, 바위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시운은 일어선 뒤에 클레이모어를 번쩍 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이 바위를 부쉈다간.’
바위를 부술 생각으로 치켜든 클레이모어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 바위는 어딘가와 연결된 통로로 보인다.
그런데 그 통로를 대검으로 무식하게 부수고 침입한다면, 그 여성이 순수하게 퀘스트를 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바위 속 공간이 그녀가 주거하는 곳일 수도 있는데 박살을 내고 들어간다면?
퀘스트 대신 싸대기가 날아올 수 있는 노릇이었다.
‘이걸 열 수 있을 텐데…. 그 방법을 찾아보자.’
두 손으로 바위에 갖다대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눌러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힘껏 바위를 밀어도 보았으나 바위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끄응…. 힘으로는 열리지 않네. 터치 방식으로 열리지도 않고.”
손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바위 표면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 바위는 손으로 여는 것이 아니야.’
확신할 수 있었다.
바위 표면에 지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바위를 열 수 있는 스위치가 있지 않을까?
시운은 바위 주위의 땅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마지막 발자국이 있는 곳을 살피면 되겠군. 스위치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발자국이 멈춘 곳에서 스위치를 눌렀으니, 그 발자국에 있는 곳에서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스위치가 있을거야.’
옆으로 몇 걸음 이동했다.
‘여긴데….’
시운은 발자국이 멈춘 곳에 서서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이리저리 훑었다.
팔을 이리저리 뻗어 땅의 흙을 파헤치다가.
‘이건 뭐지?’
흙 속에 어느 문양의 일부 형태가 보였다.
문양을 가리고 있는 흙을 손으로 걷어냈다.
그러자 네모난 형태의 쇠판에 그려진 사자 문양이 보였다.
“이걸 누르면?”
손으로 쇠판을 꽉 눌렀다.
“……….”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것도 스위치가 아닌가? 아니… 분명 손으로 여는 방식은 아니야. 지문이 묻어있질 않아.’
조그만 쇠판 위에 그려진 사자 문양을 보았다.
문양 속에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다.
사자의 눈이 몸통에 비해 비약적으로 컸다. 그리고 그 눈에는 정확하게 반지 하나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딱 반지를 넣을 수 있는 크기인데. 여기에 반지를 넣으면 반응하는 건가? 아! 잠깐.’
“인벤토리창 오픈!”
인벤토리가 열렸다.
시운은 좀 전에 대왕멧돼지를 잡고 획득한 사자문양의 반지를 꺼냈다.
[사자문양의 반지][노멀]
멧돼지의 뼈로 만들어진 수제의 반지.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내구력: 5/5
‘능력치 상승 효과가 없는 쓰레기 반지. 이 반지의 이름이 사자 문양이야, 어쩌면 이것을 넣으면 열릴 수도 있겠어.’
시운은 그 반지를 사자 문양의 눈 속 공간에 집어넣었다.
놀랍게도 반지의 크기와 공간의 크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철컥.
그러자, 그림 속 사자의 눈에서 빨간 빛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단순히 그림에 불과했던 사자가 네 발로 뛰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움직이는 영상 같았다.
카카카카캉!
“됐나?”
땅이 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땅이 요동치면서 그와 동시에 바위 세 개가 흔들렸다.
‘이거였군!’
동시에 세 개의 바위가 마치 꽃이 피어나는 꽃잎처럼 휘어지기 시작했다.
뚜두둑!
바위가 소리를 내며 쇳창이 휘어지듯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운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끼이이익!
바위의 틈새에서 흙먼지가 떨어지더니, 시운에게 들어가라는 듯 공간을 열어주었다.
공간 사이에는 지하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자태를 드러냈다.
‘역시!’
떼가 잔뜩 묻은 계단의 표면에는 사람이 맨발로 밟은듯한 발자국이 계단마다 묻어있었다.
‘그녀의 발자국이다.’
계단에 발을 딛고 내려가려는데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 여자… 굉장히 거칠다고 들었는데.’
그랬다.
퀘스트를 부여해주는 초록 장발의 여성은 굉장히 거칠고, 성격이 불같다고 박태석이 유튜브에서 설명했었다.
게다가 들짐승같은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대로 낫을 들고 무작정 달려드니 조심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던 태석의 말도 생각났다.
‘들어가기 고민 되는데, 이거.’
그때였다.
“게, 누구냐!!!!”
“…허억!”
시운이 깜짝 놀라 작은 신음을 흘렸다.
“육시럴, 누가 남의 대문을 멋대로 처 열어!!!!”
계단 저 밑에서 연달아 들려오는 육성소리는,
귀신같이 소름끼쳤고, 목소리의 크기 또한 계단의 먼지가 튕겨져 나갈 정도로 컸다.
게다가 목소리에 담긴 기백 하나로 시운의 오금이 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