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화
히든 퀘스트 (5)
파파파팍!
연쇄되는 파열음이 들림과 동시에.
데드 크라잉을 시전하며 눈에 퍼런 불을 켠 채,
디하르트를 향해 검을 내리 꽂으며, 위협적으로 하강하던 경비부장의 몸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단 번에 저 경비부장 놈이?’
시운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경비부장의 육신은 갈갈이 찢긴 채,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그가 착용하고 있던 갑옷은 아주 잘게 토막돼 작은 파편이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디하르트의 입에서 무리함이 잔뜩 담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 힘이 풀리자, 그의 손에서 스피어가 툭,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방금 경비부장의 멀쩡한 몸이 공기의 형태와 같아진 시간은 단 1초도 안 되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방금 그 참격을 캐치해내지 못했을 테지만, 시운은 자신의 눈으로 그 참격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던 방금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패왕일참이라고 했나.’
방금 전.
디하르트가 스킬의 시동어를 입밖으로 내뱉자, 그의 몸 주위로 공기의 변화가 생기며, 폭풍이 요동쳤었다.
…그리고,
디하르트는 번개같이 스피어를 쥐어 잡았고, 그의 몸 주위로 파란색의 선들이 검선을 그리며 펼쳐졌었다.
디하르트는 그 파란 색의 검선을 따라, 스피어를 긋고, 베고, 휘두르고, 내리찍으며 번개같이 스피어질을 했다. 그와 동시에 경비부장의 몸뚱이는 그 스피어의 날에 갈기갈기 찢겨졌었다.
‘스피어질을 하고 난 직후, 디하르트의 스피어에서 사람의 형상이 보였었어.’
그랬다.
디하르트가 스피어질을 마치고 난 후, 포효하는 사람의 형상이 보였었다
.
그 형상의 정체는, 바로!
예전 대륙을 악마같이 휘젔던 명실상부 최고의 검신이자, 패왕 데른하르트의 얼굴이었다.
‘완전 죽여주는 기술이었다…. 역시 발카스 대륙의 근위대장 다운 면모였어.’
발카스 대륙의 황제를 최전방에서 경호하던 존재, 디하르트.
그는 발카스 대륙의 빛과도 같은 든든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던 과거가 있었지만,
이제 억울한 누명으로 처절히 바스라진 그는, 발카스 대륙의 병사들에게 무엇보다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되버린 순간이었다!
시운이 감탄에 젖어 넋을 놓고 있을 때.
디하르트가 고개를 들고 스피어를 다시 땅에서 뽑아들며! 다가왔다.
척!
디하르트는 스피어의날을 시운의 목에 정확하게 겨누었다.
“자, 잠시만요.”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순간, 시운의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스피어의 날이 일센티만 더 시운의 목으로 향한다면, 시운의 목덜미 살점은 피칠갑이 되리라.
‘예상은 했다.’
시운은 경직된 채, 꼼짝 않고 있으면서도 예상했다는 눈치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뇌리에 박태석의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디하르트는 무조건! 헌터인 당신에게 스피어를 목에 딱, 겨누는 타이밍이 올 겁니다. 그때, 그를 설득해야 합니다. 단, 조건이 있지요. 그가 스피어를 겨누는 타이밍이 오기 전에, 디하르트에게 당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지 않고, 그 스피어를 겨누는 타이밍이 온다면? 그 자리에서 죽으시는 게 답입니다. 방법이 없어요….
‘이미, 인간적인 면모는 앞서 보여주었지. 내가 목숨을 걸고 디하르트를 지켰으니, 정확하게 보여준 샘이지.’
뒤이어, 생각이 이어졌다.
‘지금이 그 타이밍이란 말이군.’
스피어를 겨누는 그 타이밍!
‘박태석이 또 다음으로 말한 것이….’
머리를 더듬어, 그 공략의 내용을 짜내듯 떠올렸다.
태석의 음성이 뇌리에 떠올랐다.
-자! 그 타이밍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팁을 드리겠습니다.
그를 말로 설득해야 하는데요.
디하르트는 딱 여섯 가지의 단어에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 여섯 가지 단어는 이겁니다.
‘용기’ ‘충성’ ‘용서’ ‘발카스’ ‘신뢰’ ‘명예’.
박태석의 공략은 완벽했다.
태석 또한 이 퀘스트를 딱 한 번 완료 했을텐데 마치 여러 번 공략을 한 듯 꿰고 있는 점은 시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 그 완전 공략 또한 비밀이 있을 터.
'어쨌든.'
시운이 태석의 음성을 떠올리는 동안, 디하르트는 가만히 시운을 노려보고 있다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넌, 누구냐?”
“저는 헌터입니다.”
“헌터?”
디하르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시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디하르트, 그의 얼굴부터 전신은, 방금 사투를 벌인 경비병들의 핏물로 가득했다.
“그 멧돼지의 탈은 왜 쓰고 있는 것이냐?”
“저는 일개 F급 헌터입니다. 당신을 돕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비병들에게 제 얼굴을 숨겨야 했습니다. 제 얼굴이 저놈들이 소속된 국가에 알려진다면, 제 헌터 생활은 끝이기 때문입니다.”
“F급 헌터라고?”
아무 표정이 없던 디하르트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조금 놀랐다는 것을 표정으로 살짝 드러낸 것이다.
디하르트가 놀랄 만도 했다.
F급 헌터라면 최하위급의 초보 헌터가 아니던가.
그런 헌터가 이십여 명이나 되는 저 경비병들과 단신으로, 저렇게 용기있게 맞설 수가 있다니.
그러면서도, 디하르트는 시운의 목덜미에 들이댄 스피어를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시운은 생각했다.
‘용기, 충성, 용서, 발카스, 명예, 신뢰라고 했지? 그 단어들을 활용해 보는 거다.’
“……….”
디하르트는 말없이 눈에 힘을 주어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운은 자신의 목을 겨눈 스피어를 힐끗, 훑다가 그 스피어의 날에 목이 베이지 않도록 몸을 살짝 옆으로 뺐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발카스’ 대륙의 멋진 근위대장이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비록 악인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손아귀에 쥔 모든 ‘명예’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저는 당신의 그 아픈 사연을 알고, 내 목숨을 걸고 당신을 도운 겁니다.”
시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디하르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시운은 다시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당신은 ‘용기’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황제께서도 당신을 많이 사랑하셨겠지요. 그러나, 지금 현 상황에 있어서 자신을 외면해버린 황제가 미우실만도 할 겁니다, 뭐, 어쩌겠어요?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그것을 돌이킬 수도 없을 텐데….”
디하르트. 그의 눈빛이 분명 흔들렸고, 더욱 격해지기 시작했다.
“…‘충성’을 다하여 발카스란 국가와 황제를 보필한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F급이라는 햇병아리 헌터이지만 죽음을 무릎쓴 ‘용기!’를 가지고 당신을 도왔던 겁니다.”
말을 맞히고.
시운은 자신보다 한 뼘은 큰, 디하르트의 얼굴을 다시 훑었다.
살기와 악(惡)으로 악귀같았던 그의 얼굴이 점차 누그러지고 있었다.
그의 눈시울은 이미 뜨거워져 있었고.
‘마지막 단어 하나가 신뢰. 빨리 문장을 생각해서 말하자.’
잠시 후,
시운은 모든 걸 끝내겠다는 눈으로 디하르트를 바라보며.
“…당신이, 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미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저는 약한 몸으로 일면식조차 없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한몸 바쳐 싸웠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끄윽.”
디하르트.
청룡근위대장이자 폭렬의 야차라 불리우던 그.
그가 어깨를 떤다.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도, 결국 인간이었던 것이다.
뚝-. 뚝-.
시뻘건 핏물로 가득한 그의 얼굴에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려 핏물과 뒤섞인다.
그리고 그 눈물이 동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잠시 후,
디하르트가 오른 팔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운을 위협하려고 겨눈 스피어를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디하르트의 스피어가 시운의 목에서 점점 멀어진다.
‘…오케이, 됐다.’
시운은 속으로 외쳤다.
디하르트는 태평양 같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다가 입을 열었다.
“……나보고, 어디로 함께 가자는 말이냐?”
“엘리아 님께요.”
“엘리아?”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가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을 꼭 데려오라고요.”
디하르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시운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구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디하르트의 나긋한 음성을 들은 순간, 시운은 속으로 쾌락을 느꼈다.
드디어 이번 퀘스트 ‘엘리아의 눈물’의 성공을 맞이하는 셈이었다!
목숨을 건 퀘스트.
‘이렇게 고되고, 힘들 줄은 몰랐다. 도중에 충돌 퀘스트라는 이벤트가 펼쳐지는 바람에….’
시운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오시죠. 아아, 잠깐만요!”
다급한 시운의 외침 소리가 흘러가고 1분 정도가 지났을까.
시운은 쓰러진 경비병에게 다가가 무언가 바삐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시운은 디하르트를 보며 씩, 웃었다.
“갈 땐 가더라도, 챙길 건 챙겨야죠!”
시운의 얼굴에는 스산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엘리아!”
“디하르트 님!! 내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당신을 애타게 보고싶어 했는지 알아요?”
“미안하네, 당신을 지키려면 내가 당신의 곁에서 없어져야 했어.”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이 못난 사람아.”
엘리아는 디하르트의 거대한 어깨에 안긴 채, 한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시운은 그들의 뒤에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기 좋군.’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충돌 퀘스트라는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엘리아의 눈물’ 퀘스트를 져버리고, ‘반역자의 추적’이라는 퀘를 선택할 걸 그랬나.
그 때! 그 퀘스트를 완료하자고 마음 먹었더라면?
입이 떡, 벌어질 듯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헌터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명성 수치 또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진실을 외면하고, 양심을 팔아서 그런 보상을 획득하고 싶진 않아.’
그 ‘반역자의 추적’ 이라는 국가퀘스트를 수행하고 보상을 받았다면 좋았을까.
정답은 ‘더욱 찝찝했을 것’ 이다.
시운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그들의 감격적인 재회를 지켜보고 있을 때.
맑은 음성이 귓가를 간드러지게 때려온다.
[‘엘리아의 눈물-3’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엘리아와의 관계가 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시운의 몸이 연달아 파랗게 빛나며, 이펙트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느새 시운의 레벨은 14가 되어있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헌터님, 너무나 감사해요. 이건 제 선물이에요.”
엘리아는 시운의 앞에 다가와서 무언가를 슬며시, 내밀었다.
‘……이것은?’
그녀의 손 위에는 예상했던 아이템과는 다른 아이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태석의 공략에서는, 보상 아이템의 모양이 저것이 아니었는데?’
좀 이상했다.
이번, 충돌 퀘스트의 이벤트의 영향으로 인해 퀘스트의 전개가 조금 달라졌긴 했다.
예상치 못한 경비병들의 침입으로, 퀘스트의 난이도도 더욱 어렵긴 했었다.
‘같은 퀘스트라도 전개 내용 뿐만 아니라, 보상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건가?’
“빨리 받아주세요! 제 성의랍니다.”
엘리아는 자신의 손이 민망한지 귀엽게 다그치며, 말해왔다.
‘일단 받아보고, 저 물건이 뭔지 확인해 보자…. 상자 같은데?’
시운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녀가 건네는 물품을 건네받았다.
[엘리아의 귀중품 ‘유니크급 랜덤 장신구 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뭐? 유니크?! 유니크급 랜덤 장신구 상자라고?!’
시운의 눈은 놀란 채 그대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