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화
누구보다 빠르게 (2)
‘한, 반 정도 왔나?’
어느새 던전 깊숙한 곳까지 왔음을 직감했다.
들썩, 들썩.
부스럭 거리는 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먼지가 자욱하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폐가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곰팡이가 얼마나 썩었는지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참 더럽게 사는 군. 오크들은.’
끼이익-.
폐가의 다떨어진 문이 삐거덕이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가가! 침입자인가?”
도끼를 든 채, 문을 비집고 나온 오크는 시운을 발견하자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닫았다.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시운을 발견한 오크는 순간, 놀라 몸이 경직이 되었다.
“…멧돼지?”
멧돼지는 아니었다.
비대한 멧돼지 가죽을 뒤집어 써서, 멀리서 보면 두 다리로 걷는 돌연변이 멧돼지로 착각할 만도 했으나, 멧돼지로 추정되는 것은 인간이나 사용하는 대검을 들고 있었다.
인간이었다.
“우가! 이, 인간놈이 여기까지?”
쿵쿵쿵!
오크가 몸을 뒤뚱거리며 도끼를 쳐들고 다가왔다.
족히 200kg는 나가보이는 비대한 체격에 놈의 몸은 살덩이가 아닌 근육으로 가득했다.
[오크 정예병][Lv.36]
“으갸갸갸!!”
오크가 도끼를 들고 입을 크게 벌리며 뛰어왔다.
“어서 오고.”
시운은 히죽 웃으며 놈을 반겼다.
한놈 한놈 찾아다니기 귀찮은데 제 발로 찾아오니 반가울 따름이었다.
퍼억!
“끄허억!”
시운의 미들킥을 정확히 갈비뼈에 맞은 오크는 배를 움켜쥔 채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대검을 요리조리 휘두르고 몸을 날쌔게 움직이며 현란하게 싸울 필요도 없었다.
사기적인 근력 스탯에 템의 능력치 가중 효과까지 더해진 시운의 힘으로는 발차기 한방으로 놈의 생명력을 바닥내버리기에 충분했으니까.
“커흑, 커흑….”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누워있는 주제에 용케 아직 죽지 않고 숨을 헐떡거렸다.
“다른 오크들보다 맷집이 좋은데? 내 발차기를 맞고도 숨이 붙어있는 걸 보면.”
“우, 우가아… 자, 잠깐마안…”
오크가 손을 위로 뻗으며, 잠시 스탑!의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시운의 대검이 오크의 머리통을 정확히 꽂혔다.
끼이익-
끼익-
소란 소리를 듣고, 주변의 폐가의 문이 일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낸 것은 오크들이였다.
“내 동료가!! 우가!”
“용서치 않는다, 우가!”
자신의 이웃 오크가 개죽음을 당한 모습을 보자 광분하여 달려들었다.
놈들은 비록 지능이 하등한 오크들이지만 의리가 좋기로 소문난 종족이었다.
부웅!
먼저 달려든 오크의 도끼질이 시운을 향했으나, 그 도끼는 허공만 요란하게 가를 뿐이었다.
“느려, 느려. 그 도끼질에 누가 맞겠냐?”
“이이익!”
이죽거리며 도발하는 시운의 음성이 들리자 오크는 눈을 비집어 뜨고 필사적으로 더 달려들었다.
광분한 모양이었다.
부웅!
두 번째로 날아온 도끼질은 다른 오크의 것이었다.
시운은 어깨를 틀어서 아주 가볍게 피해주었다.
온 힘을 실어 힘껏 도끼질을 한 오크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도끼가 빈 허공을 가르자 오크는 균형이 흐트러져 휘청였다.
쑤욱!
“그가가각….”
오크의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대검을 쥔 시운의 손으로 검의 날이 오크의 가슴팍에 닿은 야들한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철푸덕-
그리고,
빠악!
옆에서 합세하려던 오크 한놈의 안면을 시운의 주먹이 강타하는 소리였다.
제대로 스트레이트를 맞은 오크의 머리가 뒤로 쏠린다.
“우가! 피, 피가!”
비틀거리는 오크는 코를 움켜잡고 피를 틀어막기 바빴다.
“너희같은 근육질의 놈들도 통증은 느끼나 보구나.”
살가운 시운의 목소리.
그러나 오크들에게는 그 살가운 목소리가 악마처럼 들려왔다.
샤악!
다음으로 이어진 시운의 대검에 오크의 머리가 목에서 뚝, 떨어져 땅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쉬워.”
시운은 들고 있던 대검을 바라봤다.
대검에는 오크의 초록 피가 흥건히 묻어있었다.
진하고 역한 냄새의 피들이었다.
툭. 툭.
칼날을 땅에 툭툭 터치하여 피들을 털어낸다.
그러자 칼날에 묻은 피들이 날을 타고 땅 밑으로 떨어졌다.
“진동이 느껴지는데?”
그리고 시운은 고개를 들어 저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쿵쿵쿵쿵!
대지에서 진동이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크 다섯놈이 마치 한 조를 이룬 듯 좌우로 몸을 꽉 붙인 채, 정열을 갖추고 뛰어오고 있었다.
[오크 정예병][Lv.36]
[오크 정예병][Lv.35]
[오크 정예병][Lv.33]
[오크 정예병][Lv.37]
[오크 정예병][Lv.32]
“화룡의 도약.”
곧바로 날아올랐다!
쉬이이익!
“우가! 조심해.”
“뭔가 날아온단 말이다! 우가.”
빠각!
“크아악!”
번개처럼 공중에서 날아와 내리찍은 대검질에 뛰어오던 오크 하나가 영문도 모르고 나자빠진다. 놈의 육중한 몸뚱이가 크게 흔들거리며 자빠지자, 그 여파로 옆에 꽉 붙어 달려오던 오크들이 뒤엉켜서 그 자리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진다.
쿠웅! 쿠웅!
도끼를 손아귀에서 떨어뜨린 채, 넘어진 오크들의 뒷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놈들은 뒷통수에도 근육이 있네.’
망설임 없이 차례대로 오크들의 뒷통수에 대검의 날을 쑤셔박아 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까지.
마치 땅에서 머리를 삐죽, 내밀고 나온 두더지를 망치로 내리찍듯이 대검으로 놈들의 뒷통수를 하나하나 그렇게 찍어주었다.
그것들은 괴로운 비명을 지를 틈새도 없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레벨이 더 오르지 못해 자동으로 경험치를 저장합니다.
“좋아. 오늘 던전에 있는 오크들은 모두 내 먹이.”
던전 깊숙이, 더 깊숙이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도중에 튀어나오는 오크들은 가볍게 썰어주고 도륙해주면서.
어느덧 던전의 끝이 보였다.
‘문이다.’
시운의 눈으로 보인 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자신의 앞으로 긴 통로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둥그런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은 굉장히 거대했다.
‘저 문은 바로 그 문이군.’
그랬다.
이곳에 도달하는 헌터들이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문이었다.
헌터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저 문 근처에 다가가서도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다.
저 문 너머로 무지막지한 존재가 살고 있으니 말이다.
***
“이제 골 눕힐 시간이구나.”
악마같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괴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괴물의 생김새는 굉장히 투박스러웠다.
보통 오크의 세 배나 되는 덩치.
수많은 전투를 통해 생겨난 위압적인 전투근육. 그리고 그 근육들의 피부를 뚫고 벌떡 솟아난 핏줄.
잔뜩 뭉개진 얼굴의 한 괴물은 호화롭고 넓은 방의 침대에 평안히 드러누워 있었다.
헌데, 문 바깥에서 아까부터 미세한 요동소리가 울림에 심기가 불편했다.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시끄럽게 군단 말이지.”
분명 인간의 소행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용병부터 헌터까지 사냥을 목적으로 이곳 오크 전장터에 다녀가곤 한다.
그러나, 괴물은 어느정도 그 행위에 대해서 신경을 쓰진 않았다.
자신의 졸개 노릇을 하는 오크들이 인간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상관 없었다.
이미 오크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리젠되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오크들을 다시 자신의 졸개로 쓰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인간들은 자신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았다.
이곳 오크의 전장터에 가장 끝덜미에 존재하는 자신의 집으로 인간들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이곳 ‘오크의 전장터’는 레벨 30 이하의 인간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고작 레벨 30 이하의 인간이 자신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알아서 자신이 거처하는 이 방안까지는 침범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어느정도 괴물도 인간들이 이곳 전장터에서 사냥을 하는 것도 눈감아주곤 했다.
자신의 영역 안을 침범하지 않으니.
사냥을 하러 이 던전을 찾았다가, 멍청하게 이곳의 문을 열고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인간들이 몇 있긴 했다.
그런 인간들 중에 살아서 문밖을 나간 인간은 거의 없었다.
살아서 나간 인간이 몇 명쯤 있긴 했다.
괴물을 보고서 곧바로 “죄송합니다!”라고 꼬랑지를 내리고 쥐새끼처럼 바로 도망가는 인간은 살아나갈 수 있었다.
적어도, 오크의 전장터 안에서 이 괴물은 인간들에게는 여포같은 존재였다.
“하등한 인간놈들도 지들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지.”
괴물은 눈을 감으며 혼잣말을 했다.
인간이 사냥을 하든 뭘 하든 자신의 영역 안으로 침범만 하지 않으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은 오크 종족 치고는, 자비심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려는 데.
자꾸만 저 너머에서 무언가 기척 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곤두섰다.
괴물은 감았던 눈을 무섭게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이리 오너라!!”
괴물의 힘의 찬 고함소리가 울리자,
문이 덜컥! 열림과 동시에 오크 한 마리가 달려와 폴더를 접듯이 고개를 조아린다.
“우가! 부르셨습니까, 대왕님.”
“아까부터 바깥이 좀 요란스럽다?”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가!”
오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목례를 하고 방문 바깥으로 나간다.
그리고 얼마 후,
혼이 나갈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방금 자신의 명령을 받고 나간 오크의 육성이었다.
괴물은 머리맡에 놓인 도끼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도끼의 크기 또한 어마어마했다.
무려, 그 크기가 인간의 키만 했다. 도끼라고 불리우기도 어색할 정도였다.
“하등한 인간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인간이 침입했음을 직감한 듯 방문을 그대로 박차고 나갔다.
괴물의 눈으로 자신의 밑으로 쭉 펼쳐진 거대한 계단이 들어왔다.
계단은 넓이가 굉장히 거대할 뿐만 아니라, 길이도 엄청났다.
“음?”
괴물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자신의 계단 밑, 저 너머에 방금 비명을 내질렀던 오크가 팔과 가슴팍이 절단난 채 처참히 늘어져 있었다.
터벅터벅.
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언가가 보였다.
두 다리로 서 있는 멧돼지?
아니다, 멧돼지가 이곳에 있을 리는 없다.
멧돼지는 대검 하나를 들고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인간이었다.
“뭐냐? 네 놈은!”
괴물은 있는 힘껏 포효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고함 소리가 계단을 뒤흔들 정도였다.
“………….”
고함 소리를 들은 인간은 아무말도 않고 잠시동안 괴물을 응시하더니.
“아차! 깜빡한 게 있군, 다시 올게.”
인간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등을 돌리더니, 유턴하여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자신을 보고 바로 꼬랑지를 내빼는 인간을 보자 픽, 웃음이 터져나왔다.
“크하하하! 나한테 덤빌 생각을 접은 것을 보니 멍청한 놈은 아니군. 난 자비가 가득한 몸이니 한 번의 실수는 눈 감아주마.”
***
“오크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잖아?”
“젠장, 모처럼 사냥 한번 하려고 했더니만…….”
“리젠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근데 오크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죄다 쓸었다는 이야긴데…. 단체 파티 사냥이라도 다녀갔나 봐.”
남성들의 대화소리가 던전을 가득 매웠다.
남성 중 하나가 든 횃불이 화르륵! 타면서 주위의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크가 새겨진 망토를 둘러매고 있었다.
그들은 용병이였다.
수련을 위해서 이곳 던전을 찾은 것이었다.
네 명이 파티를 이루어 모처럼, 사냥에 열중하려고 이곳에 들렀건만 오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던전을 걷고 또 걸어도 오크들의 핏자국만 가득할 뿐이었다.
“쓰레받기로 싹 쓸어버리듯 오크 한 마리 안 남겼네…. 용병들이 다녀간 건가?”
“내가 태초 시티 마당발이잖냐. 동료 용병들에게 죄다 물어봤거든? 근데, 오늘 이 던전에 간다고 한 용병은 없었어!”
“설마 헌터 놈들이 다녀갔나.”
“지미럴! 헌터 새끼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야.”
“개자식들…. 우리보다 편하게 강해지는 것들이 독식을 해?”
용병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헌터들을 시샘하고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병들은 각자 레벨을 가지고 있고, 전투와 사냥을 통해 레벨을 상승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용병은 헌터들처럼 레벨 업을 하게 되면 여유 능력치를 선사받지 못했다.
그 덕분에, 헌터들처럼 자기의 입맛대로, 올리고 싶은 능력치 스탯을 올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레벨 업을 하는 동안 몬스터를 때려잡고 그 몬스터를 때려잡으면서 몸을 스스로 단련시켜 강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용병들은, 헌터들처럼 전직 시스템을 통하여 스킬을 획득하지도 못했고, 뼈빠지게 용병 일을 하면서 값비싼 스킬북을 사서 직접 스킬을 익혀야 했다.
헌터와 용병의 격차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헌터들이 등장한 이유로 용병들의 일거리 또한 줄어들고 있었다.
용병들의 주 임무는 몬스터 소탕, 국가간의 전쟁 개입, 사설 방식으로 돈을 받고 각종 임무 수행 등이다. 이를 통하여 수익을 창출하여 먹고 살고 있었지만 헌터들이 나타난 이후로 역사가 바뀌었다.
용병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구세주처럼 나타난 헌터들은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래서 용병들의 태반이 헌터들을 시기하곤 했다.
“기분도 꿀꿀한데 눈에 띄는 헌터 한놈 보이면 그냥 줘 패버릴까?”
“아서라, 그러다가 역관광 당하면 개망신이야.”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던전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뭐야? 뭔데?”
용병 하나의 혼잣말에 다른 용병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저길 봐….”
혼잣말을 하던 용병이 검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일제히 그 용병이 가리킨 곳으로 다른 용병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은 아니었다.
인간일 리는 없었다.
인간이라면 이 앞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던전에서 횃불이나, 주위를 밝히는 마법 구체 또는 조명이라도 들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어둠 속에 있던 무언가는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멧돼지다!”
“뭐? 무슨.. 멧돼지가 어떻게 이곳에 있냐구?”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은 의아하게도 멧돼지였다. 두 발로 걷는 멧돼지.
“돌연변이일까?”
“뭐든 좆도 상관이 없잖아. 오크도 없는데 저거라도 잡아서 뭐라도 건져야지.”
“어? 근데.. 저 멧돼지 무기를 들고 있는 것 같아.”
“뭣?”
“저런 돌연변이도 세상에 존재한단 말이야? 일단 다들 긴장하고!”
용병들은 긴장을 머금은 채, 무기를 겨누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용병이 들고 있던 활활! 타오르는 횃불의 사정거리 안까지 멧돼지놈이 다가오자 놈의 형태가 자세히 보였다.
“내가 앞장 설게, 힐 준비 됐지?”
전사 클래스의 용병이 힐러 용병보고 각오한 얼굴로 물었다.
힐러는 고개를 힘차게 한번 끄덕였다.
그때였다.
“저기?”
멧돼지의 입근육이 움직이면서 놈의 입 밖으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니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괴물이 아닙니다.”
멧돼지. 그러니까 멧돼지인지 돌연변이인지 어쨌든 멧돼지 등가죽을 둘러쓴 주제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요즘 돌연변이는 지능이 높군? 사람인 척도 할 줄 알고.”
법사 클래스의 용병이 기가 차단 듯 말했다.
저 놈은 인간일 리가 없다.
분명, 조명 하나 없이 저 칠흑같은 던전에서 걸어왔다.
인간의 시력으로는 불빛 없이는 빛 하나 없는 이 던전에서 사냥은커녕, 걸어다니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아이스 볼트.”
법사 용병의 입에서 작지만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치잉!
뾰족한 칼모양의 얼음 구체가 생성되어 멧돼지인지 돌연변이인지 어쨌든 저 놈에게 날아갔다.
쌔애앵!빠가강!
“어라?”
법사 용병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주특기인 아이스 볼트가 잘 날아가다가 저 멧돼지놈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그 전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불발?”
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 있던 전사 용병이 가소롭단 듯 픽, 웃었다.
“쯧쯧, 그러게 마나 훈련 좀 빼먹지 말고 하랬잖아, 내가…. 불발이 뭐냐?”
전사는 자신이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 윙크를 하고서 멧돼지놈에게 달려갔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완전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난, 사람이라니까…”
멧돼지놈이 용케 사람인 척 한다.
그러나 놈의 약은 술수에 불가하다. 전사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돌연변이 놈이 인간인 척 한다고 우리가 속을 줄 알고?’
전사는 하체에 힘을 주었다.
그의 하체가 근육으로 부풀어 올랐다.
“블레이징 어택.”
이윽고 전사는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원심력의 힘을 실은 검을 멧돼지놈의 머리통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파강!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
그런데…….
“어?”
눈 앞에 세상이 한바퀴 돌았다.
쿠웅.
“끅!”
순식간에 전사는 멧돼지놈으로부터 5미터나 떨어진 곳에 엉덩방아를 찧은 후였다.
“끄아아….”
검을 쥔 팔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렸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크흑. 저 돌연변이놈….”
자신의 검과 저 멧돼지놈의 검이 맞부딪혔을 때, 생전 처음 느껴보는 힘의 압박을 느꼈었다.
“씨팔.”
전사의 입에서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용병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저 돌연변이놈에게 멋지게 스킬 한방을 먹여주고! 내가 용병으로서 충분히 성장했단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전사는 분함에 검을 다시 움켜쥐고 일어섰다.
힐러가 달려와 전사의 등을 어루만졌다.
“힐.”
그러자 힐러의 손에서 녹색의 원형 구체가 생성되어 전사의 등 주위로 은은하게 퍼져갔다.
“괜찮아?”
힐러가 물었다.
“끄덕 없다고.”
멧돼지놈이 들고 있던 대검을 내려놓더니, 소매를 싹 걷기 시작했다.
“나는 몬스터가 아니고 인간이라고요. 자, 봐봐요.”
멧돼지놈은 보란 듯이 털가죽의 소매가 걷힌 팔을 내밀고 휘휘, 흔들었다.
확실히 인간의 피부가 맞긴 맞았다.
“정말 사람의 팔이잖아?”
지켜보던 법사가 완드를 잠시 내려놓았다.
반면, 전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기세였다.
“인간이든 돌연변이 새끼든! 날 개쪽을 주었으니 용서란 없다!”
다시 한 번 비장함을 다지고 놈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이번엔 반드시 놈의 머리통이든 팔이든 뭐 하나는 절단 내리라.
난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용병이니까.
뒤에서 그녀가 날 지켜보고 있다.
멧돼지놈은 다시 달려가는 전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쳇, 말이 안 통하는 군. 화룡의 도약.”
부우웅-
전사의 눈 앞에서 놈이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놀란 전사는 경직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머리칼이 바람에 강하게 휘날리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들었다.
놈의 신발의 밑창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그놈이 태연히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들기조차 힘든 무게의 대검을 들고.
“?”
차악.
뒤편에서 발바닥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전사가 등을 돌려 뒤를 돌아다 보았을 때.
이미 놈은 새처럼 뛰어올라 십미터가 넘는 거리까지 날아가 착지한 후 였다.
“날았어?”
“빠르다….”
힐러와 궁수가 감탄에 탄성을 자아내고 있을 때.
놈은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좀 바빠서, 이만.”
타타탁!그러더니, 던전 저 너머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대검 하나를 들고 멧돼지털을 휘날리며 뛰어가는 놈의 뒷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뛰어가는 그 속도가 자신들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사람 맞는 거지?”
“분명 맞아……. 그보다 대체 민첩성이 몇이야? 어떻게 저런 녀석이 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는 거지?”
***
“여긴가.”
시운은 태초시티의 장비강화점 앞에 도착했다.
물론, 대왕멧돼지의 가죽옷과 대검을 인벤토리에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탕탕!
망치질 소리와 쇠를 달구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풍겨오는 연기의 냄새는 목구멍이 콱, 박힐 정도로 진했다.
“계십니까?”
시운이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서오시오, 헌터님.”
누군가가 시운을 반겼다.
대장장이였다.
각진 사각턱에 턱수염이 목끝까지 내려온 대장장이가 상의를 훌러덩 벗고 망치질을 하다가 시운을 보고 인위적인 미소를 보냈다.
시운은 그가 보내온 미소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까칠하기로 소문난 대장장이로 알고 있는데.’
시운의 생각대로였다.
앞에 있는 대장장이는 태초시티에서 까탈스럽고 까칠하기로 소문난 대장장이였다.
특히, 하급 헌터들이 찾아오면 그냥 꺼지란 말과 함께 육감적인 자신의 근육질의 몸을 들이밀고 위협적으로 쫓아내기도 해서 헌터들이 이곳을 찾을 때면 가슴을 조리는 경우가 많았다.
‘내 명성 수치 덕분이군.’
아마도 NPC 대장장이가 시운을 하대하지 않고 그나마 인사치레라도 한 것은 시운의 명성 수치가 작용한 결과이리라.
“장비를 강화하시게?”
대장장이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고 손을 툭툭 털며 물어왔다.
불에 쇠담금질을 꽤나 한 듯 그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당신의 아드님의 복수를 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시운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대장장이의 얼굴이 쎄하게 굳었다.
“복수?”
대장장이의 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받치는 모양이다.
시운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퀘스트를 하나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 퀘스트는 오크 대왕을 죽이고 그 수급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시운이 오크의 전장터의 끝판왕 오크 대왕을 마주하고 그 오크 대왕을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퀘스트의 발동이 걸리고 그 덩치가 산만한 놈을 잡아야 보상도 만질 수 있는 것이지.’
그랬다.
이 퀘스트는 먼저 대장장이에게 의뢰를 하고 오크 대왕을 처리해야 순조롭게 퀘스트의 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대장장이는 늘어진 눈빛으로 시운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오크 대왕을 죽여주겠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대장장이는 시운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 젊은 친구는.’
시운은 현재 태초 시티에 존재하는 헌터 치고는 유명한 헌터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햇병아리들 사이에서나 이름있는 헌터였다.
게다가 그가 입고 있는 차림새는 초급자들이나 걸치는 하얀 도복에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얼굴을 봐도 전혀….’
대장장이는 시운이 탐탁치 않았다.
그의 외모 또한 강인한 헌터의 인상이기 보다는 그냥 마른 몸매에 여자들이나 잘 건드리고 다닐 반반한 계집 느낌의 얼굴이었으니.
“흐음.”
대장장이가 턱을 굈다.
시운은 그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걱정하지 마시고, 맡겨만 주시죠. 당신의 아드님의 원한을 내가 풀어드리겠습니다.”
“으음….”
시운의 너무나도 단호하고 자신감있는 음성. 그리고 그의 두려움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찬 눈빛.
그것을 보고 점차 대장장이의 마음이 움직였다.
‘아무도 오크 대왕을 죽여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 번 맡겨볼까?’
대장장이는 생각을 떨치고 말했다.
“헌터님을 믿어보도록 하죠. 오크 대왕 그 처죽일 놈의 수급을 가져다 주세요. 보상은 서운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퀘스트의 발동이 걸린 것이었다.
[대장장이의 원한][퀘스트]
오년 전, 태초 시티의 대장장이 그리온의 아들이 오크 전장터의 보스 오크 대왕에게 살해당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리온은 슬픔에 잠겨 폐인 생활을 했다. 아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유망한 헌터들과 용병들에게 오크 대왕을 죽여줄 것을 부탁했으나, 번번히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는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자신의 아들의 복수를 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그리온을 위해 오크 대왕을 처리하고 그 수급을 가져다 주도록 하자.
성공 조건: 오크 대왕의 수급(0/1)
실패 조건: 다른 이의 손에 의해 오크 대왕의 죽음 또는 오크 대왕의 도주.
실패 패널티: 대장장이 그리온과의 관계가 로 하락.
태초 시티의 강화점 사용 불가.
보상: 고급 강화 스크롤 x3
시운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보상이 아주 짭짤하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퀘스트는 사실 불가능에 거의 근접하다고 볼 수 있는 퀘스트였다.
오크의 전장터에 입장할 수 있는 조건은 레벨 30 이하.
반면, 오크 대왕의 레벨은 50에 육박한다.
그래서 태초 시티의 헌터들은 이 퀘스트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퀘스트는 라는 퀘스트에 속한다.
오크 대왕은 죽으면 리젠되지 않는 희귀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그럼, 가볼까?”
시운은 지체할 것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오크의 전장터로.
***
“쿠우울..”
오크 대왕은 금장식으로 된 예단 이불을 목까지 덮고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그의 양옆 어깨에는 머리를 기른 여자 오크들이 그의 가슴팍에 사뿐히 기대어 잠에 빠져있다.
뭐, 여자 오크라고는 해도 머리카락만 길 뿐, 생김새는 남자 오크와 다를 게 없었지만.
콰앙!
벼락이 치는 소리에 오크 대왕이 눈을 부스스 떴다.
“무슨 소리야! 감히, 이 몸이 자는데 누가 이런 소리를 내었어?”
유독 잠에 예민한 오크 대왕의 얼굴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잠을 방해하는 놈은 여자 오크라도 그 자리에서 목을 따버리는 폭군이었다.
“대왕아! 몸을 일으켜 좀 나와 보라니까.”
문 너머로 어떤 개자식이 귀가 따갑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네가 누구든, 넌 뒈졌어. 죽여서 온 몸을 핏덩이 그 자체로 갈아마셔주마.”
성욕, 식욕을 충족하는 재미로 사는 오크 대왕이었지만 그에게 가장 행복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꿀같은 잠.
그런 잠을 방해하는 놈은 그게 누구라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죽이더라도 그냥은 안 죽일 것이다. 반쯤 죽여놓고 묶어놓은 뒤 사지를 천천히 찢어버리고! 산 채로 뜯어 먹어주겠다.
오크 대왕의 얼굴이 악귀로 변했다.
살캉!
두 도끼를 양손에 들고 방문을 열고 나가자.
자신의 발 밑 계단 아래로 인간 하나가 서있었다.
아까 그 놈이었다.
“으드득! 으득!”
굳이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저 인간놈의 살점에 도끼날을 처박아주고! 놈이 울부짖는 얼굴을 빨리 보고 싶을 뿐이었다.
“이봐, 대왕.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 근데 니 목을 오늘 가져가야 해서 말이지.”
인간놈은 용케 뚫린 주둥아리라고 말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오크 대왕의 동공이 위로 더욱 올라가 도끼눈이 되었다.
오크 대왕은 아주 길쭉한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분노의 발걸음으로 쿵쿵! 찧으며 내려갔다.
놈을 어찌 죽이면 잔인하게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이러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거북이 마냥 내려와서 언제 여기까지 내려올래? 내가 그냥 올라가 줄게.”
“넌 도망가도 소용 없다. 끝까지 쫓아가 토막을 내 줄 터이니…….”
대왕 오크가 이빨을 꽉 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턱근육이 찢어질 듯 튀어나오고 있다.
“그럼 올라간다?”
인간놈이 주제넘게 지껄였다.
살캉!
대왕 오크는 쌍도끼를 양손에 쥐고 손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어서 올라와라. 네 살점을 골씹고 뜯어 씹고 또 씹어줄 테니….”
“화룡의 도약.”
인간놈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그런데.
오크 대왕의 눈에는, 족히 십오 미터의 내리막길 계단에 서 있던 인간놈의 형태가 점점 크게 보였다.
날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쥐새끼 같은 인간놈이! 날 줄도 알……컥?”
머리가 쪼개지는 느낌!
오크 대왕의 시야가 이등분 되더니, 뒤틀린 하늘 그리고 별이 보였다.
“……어, 어어?”
철푸덕!
그리고 자신의 눈으로 계단의 바닥의 형상이 들어왔다.
“ㅁ....”
입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숨도 쉬어지질 않았다.
머리통이 쪼개질 듯이 아프다. 몸에 힘조차 들어가질 않았다. 이내 세상의 모든 것이 시뻘겋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몸이 정녕 당한 것이란 말인가?’
“커흑.”
가슴속 깊은 곳에서 목구멍으로 피가 솟구쳐 나왔다.
“오크 대왕님!”
“괘, 괜찮으시온지요, 대왕님. 정신을 차려보시……”
뒤에서 자신의 첩 오크들이 경악을 담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방정맞게 뛰어오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그렇게 향년 45세.
무력 하나로 오크들의 왕으로 군림하여 오크의 전장터에서 누구 부럽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힘 하나로 살아온 오크 대왕의 생이 허무하게 마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