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34화 (34/278)

제 34화

천세정과의 데일리? (2)

“다른 분 알아보세요! 저 쪽에 예쁜 여성분들 많을 거예요.”

그러나 남성은 끈질기게 말을 또 붙인다.

“여기서 운동하시는 분들 중에 제일 예쁘신 것 같아요.”

“하아….”

한숨이 흘러나온다.

여자가 싫은 눈치를 주면 알아차리고 갈 것이지.

왜 자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덜컥.

세정은 아예 헤드셋을 귀에다가 꽂아버렸다.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든 음악이나 들을 심정으로.

“저기요.”

다시.

“………저기요?”

남성이 계속해서 뭐라고 말을 거는데 세정은 대꾸도 안했다.

얼마 후 남성도 포기했는지 일어났다.

세정을 쏘아보면서,

“재수 없네.”라고 말하고 저리로 뛰어가 버린다.

밤이 되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살결에 기분 좋게 스쳐갔다.

“읏차.”

몸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운동으로 땀을 쫙 빼니 받았던 스트레스의 일부분이 날아간 느낌이다.

‘아 맞다…. 시운이 오늘 이계에서 넘어오기로 했지? 한 번 볼까.’

천세정은 시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

“우리 시운이 벌써 다 먹었어? 밥 한공기 더 줄까?”

어머니가 따사롭게 물어왔다.

“꺼억. 배불러.”

시운은 배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아버지는 시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대견한 짜식. 헌터 일 힘들진 않아?”

“아휴~ 하나도 안 힘들어.”

시운이 씩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잘 먹었어. 하아~ 진짜 오랜만에 집밥 먹으니까 너무 좋네.”

그리고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의 엄마와 아빠는 자신의 아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자랑스런 내 아들놈!’

‘공부 일년도 안하고 헌터시험 만점받은 아이는 우리 아들 밖에 없을거야.’

그들이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흐뭇함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시운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의 눈으로 비좁은 자신의 방 이곳저곳이 들어왔다.

‘휴우, 이런 좁은 집에 월세로 계속 살수는 없는 노릇이지. 빨리 돈 벌어서 어머니, 아버지 집 한 채 사드리는 거야.’

오늘 현계로 넘어와서 부모님을 만났다.

오랜만에 집밥도 먹고 같이 대화도 나누면서도 어두운 안색을 애써 숨기던 부모님의 얼굴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시운은 부모님의 걱정을 알고 있었다.

‘우리 누나 유학 유지 비용부터 아버지가 예전에 보증 잘못 서서 쌓인 빚더미들을 얼른 갚아야 할 텐데….’

부모님이 진정으로 웃게 해주고 싶다.

전생이나, 그 전전생이나 부모님 눈에서 피눈물만 흘리게 하지 않았던가.

‘아직 F랭크 헌터.’

F랭크 헌터 시운은 아직 돈을 만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헌터로서 수입을 좀 만지려면 개인의 능력에 갈리긴 하지만, 최소 C랭크는 되어야 했다.

‘빨리 승급해야지.’

헌터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인 직업이지만……

누군가가 직업을 묻는다면?

F랭크 헌터라는 명함을 내밀기엔 손이 민망했다.

그러나, 시운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흘려낸다.

누구보다 좋은 스타트로 개꿀을 빨며 사냥을 누리고 있으니까.

‘지금 내 렙업 속도로…’

미치게 강해지고 열렙을 하고 명성을 쌓으면 A랭크라는 자리까지 내년이면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드르륵!

진동 소리에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집었다.

-천세정.

“……세정이?”

설렜다. 안 그래도 연락 한번 하려 했는데.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시운의 말투 끝이 기분좋게 올라간다.

-시운아, 어디야?

“나 집이야. 집에 와서 부모님하고 식사 했어. 집밥먹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그래엤어~?

세정은 시운이 귀엽다는 듯 말꼬리를 앙증맞게 올린다.

“안 바쁘면 얼굴이나 보자.”

시운이 말했다.

사실 말속에는 당당함이 섞여있었다. 전생의 찌질한 백수 시절에야 세정이에게 만나자고 하기 창피했지, 지금은 당당하다.

비록 F랭크 헌터라도 존중받는 직업인 헌터니까.

“네가 그말 안 했어도 누나가 보자고 했을거야. 나와~ “

***

강남의 커피숍.

세정과 시운이 마주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세정의 카라멜 마끼야또, 시운의 카푸치노가 은은한 향을 내고 있다.

“대박인 거 보여줄까?”

시운이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세정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핸드폰 액정을 보더니,

“으아!! 이 징그운 헐크 시체 같은 건 뭐야?”

얼굴을 잔뜩찡그리며 물었다.

핸드폰 액정 속에는 편안하게 죽어있는 오크대왕의 시체가 비춰지고 있었다.

“이건 보스 몬스터. 내가 잡은거고.”

시운은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보스 몬스터?”

여전히 찡그린 얼굴로 세정이 폰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런 괴물 처음 보지? 이 몬스터가 말이야. 근데 이 몬스터를 잡은 최초 유일무이한 사람이 있어. 그게 누군지 알아?”

시운의 물음에 세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의 눈빛으로 ‘그게 누군데?’ 라고 물었다.

“그게 바로 나야.”

“뭐?”

세정은 믿기지 않은 얼굴을 보였다.

“안 믿기지? 이걸 보여주면 믿을 거야.”

시운은 액정을 손으로 스르르, 넘겨 다음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와! ……이게 너야?”

사진 속에는 시운이 무거운 대검을 한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브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시운 뒤로는 오크 대왕이 개거품을 물고 늘어져 있었다.

세정은 시운의 핸드폰을 뺏어들어 사진 속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진짜 시운이 너 맞아? 맞네? 진짜네?!”

시운은 씩 웃었다.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근데 그 세계에서는 이런 무기로 괴물들을 잡고 그래?”

세정이 검지 손가락으로 사진 속 대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대검 뿐만 아니라, 활, 철퇴, 창, 지팡이 등등등, 종류는 엄청 나.”

“완전 판타지가 따로 없네~”

시운은 다음 사진을 보여주었다.

“요것은, 내가 이번에 맞춘 장비.”

“어머, 되게 화려하다.”

세정은 사진 속 시운의 화룡의 홍란검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턱을 괴고 머리를 바짝 붙인 채 사진을 관찰하는 세정이 참 귀여웠다.

“너 헌터가 된지 한달도 안 됐잖아. 근데 이런 장비들도 가지고 다녀?”

“그게 말이지. 내가 처음부터……… ……… ……… ……… ……….”

시운은 우쭐한 기색으로 지자랑을 늘어놓는다.

세정은 그런 시운의 볼을 톡톡 어루만진다.

지자랑을 하는 시운이 귀엽게 느껴졌나보다.

“에구, 귀여운 짜식. 걱정되는 게 있어. 그 세상에서는 괴물들한테 죽을 수도 있다며?”

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난 안 죽어.”

“야! 어떻게 걱정이 안 되냐? 친구가 괴물들하고 막 싸우면서 돈 버는 직업을 가지게 됐는데.”

세정은 커피 안의 빨대를 휘휘, 저으며 볼을 부풀어 올린다.

“만약 죽으면 조문 와 줄거지?”

팍!

“아아!”

시운이 신음을 흘리며 세정에게 얻어맞은 어깨를 감싸쥔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말이 씨가 된다고, 멍청아.”

“알았어, 알았어. 근데 걱정은 하지마. 난 죽을 일은 없으니까.”

“어쨌든 되게 신기하다. 그리고 너 대단해. 헌터가 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험악하게 생긴 괴물들을 때려잡구 다니고, 비싸보이는 무기도 들고 다니고.”

시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녀의 칭찬은 언제들어도 달달하니까.

“어서오세요, 카페벤에 입니다!”

알바생의 인사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누군가가 시운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머, 여긴 어떻게 알구 오셨어요?”

세정의 놀란 목소리에 시운은 고개를 들었다.

수트 차림에 검은색 가방을 든 남자가 시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남성이 시운의 옆에 앉는다.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냐니깐요.”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그보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 시운도 피하지 않고 시선을 부딪혔다.

“이시운 씨? 잠시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저희 기업에서 이시운 씨를 쓰고 싶다는 말입니다.”

남성이 말했다.

시운은 가만히 이야기를 다 듣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아직 스폰 계약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남성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테이블 밑에 있던 가방에 손을 뻗었다.

탁.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은 검은 가방이었다.

남성은 곧바로 가방을 열었다.

덜컥- 소리와 함께 열린 가방에는 5만원 권 지폐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대충 보아도 몇 천단위는 되어 보였다.

“상무 님! 뭐하시는 거에요!”

세정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 외침 소리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테이블로 집중된다.

남성은 눈을 감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아가씨. 지금 회장님 사정은 잘 아시잖습니까? 잠시만 계시죠, 잠시만요.”

“그게 아니고오! 멋대로 제 위치나 알아내서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이건 경우가 아니니까 그렇죠!”

씩씩 거리며 팔을 허리춤에 올린 세정. 그러나 남성은 세정에게 관심을 끄고, 시운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

시운은 말이 없었다.

남성은 결정타를 날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입을 연다.

“자그마치 5천입니다. 우리와 전속 스폰 관계를 맺는 계약을 하시면 계약금으로 바로 드리도록 하지요. 그리고 또, 시운 씨의 성과에 따라 3개월 마다 인센티브를 지급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남성이 말을 덧붙인다.

“또한, 매 2년마다 지급되는 계약금이 배로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시운 씨 하기 나름입니다.”

남성의 입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절대 거절 못하리라. 이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니까라고.

그러나, 곧 떨어진 시운의 한마디는 남성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괜찮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네? 사양하겠다고요?”

남성의 눈이 커졌다.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니 가질 않는다.

남성은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린다.

“이시운 씨. 당신은 F랭크 헌터입니다. F랭크의 헌터에게 이 정도의 금액을 주고 계약을 맺자는 다른 기업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돈은 상관없습니다.”

단호한 시운의 한마디에 남성은 더욱 얼굴을 붉혔고, 세정은 눈을 크게 떴다.

‘시운이가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 봐. 그보다….’

세정의 시선은 뚜껑이 열린 가방 속 돈다발로 움직였다.

‘저런 큰돈부터 냅다 들이밀고 제안을 할 정도라고? 우리 시운이가 헌터 쪽에서 그렇게 대단한 아이인가?’

세정의 시선은 다시 시운에게로 옮겨져 고정되었다.

“여기까지 저를 찾아주신 건 감사하나,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남성은 시운의 소매를 잡고 당겼다.

“후우…. 이거, 꽉 막힌 청년이시네. 가만히 내 이야기 좀 들어봐요.”

남성은 답답하단 듯 졸라맨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자, 들어봐요. F랭크 헌터에게 스폰 하자고 하는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기나 할 것 같습니까? 거기다가 계약금을 이 정도나 던져 준다는데, 뭘 망설입니까.”

“죄송합니다.”

시운은 가볍게 목례했다.

“우리 아가씨하고 친구 사이 아닙니까? 이 계약은 사실 우리 아가씨의 부탁입니다.”

순간 시운의 동공이 요동쳤다.

“뭐, 뭐, 뭐? 저기 상무 님? 잠시 저 좀 보실까요?”

남성은 세정의 반응은 아랑곳 않고 시운의 얼굴에 눈이 머무르고 있었다.

“불편하군요. 사양하겠단 의향을 거듭 말씀드리는 데도. 설령 세정이의 부탁이라도 계약 안 합니다, 저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잠깐만. 이 기회를 놓친 거 후회 안 할 자신 있나?”

남성이 앉아보라고 손짓했지만.

시운은 일어선 채, 남성에게 목례를 하고 세정에게 눈인사를 한 후 카페 밖을 나선다.

“잠시만!”

남성은 곧바로 돈다발이 든 가방을 손에 감고 시운을 쫓아나갔다.

“………….”

세정은 이 광경을 넋놓고 보고 있었다.

방금 이시운은 뭔가 자신이 알던 이시운하곤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박 상무님이 내 부탁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시운은 여태껏 세정의 부탁을 단 한차례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작은 부탁부터 큰 부탁까지 무엇이든간에.

남성의 부탁이란 말은 계약을 꾀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고민없이 대차게 거절했던 시운의 모습이 세정의 머리로 떠올랐다.

‘방금 뭔가 달라보였어, 시운이가.’

***

다음 날.

이계 태초시티 헌터 아카데미.

수많은 인파들이 아카데미 건물 안에 가득했다.

모두 최초 헌터던전탐사 시험을 치룰 헌터들이였다.

“…………여기까지 연설을 끝냅니다, 설명은 모두 끝났어요. 본인과 같은 조가 된 헌터끼리 모여보세요.”

교관이 말을 마치자,

“2층이야. 명단표를 보고 가야 돼.”

“더럽게 복잡해. F조는 또 어디야?”

“근데 탐사시험 말이야..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많은 인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자주색 머리칼을 휘날리며 걷고 있는 여성 헌터는 설레고 있었다.

-정연희.

그녀의 가슴께에 달린 명찰이다.

‘저번에 그 사람하고 내가 같은 조라니.’

태초 시티 앞에서 만났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대검을 자신에게 건네주면서 들어보라고 하더니, 자기가 근력이 85라는 말을 남기고 휙, 사라진 그 남자를 말이다.

그때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뭔가 이유 모르게 끌렸다고나 할까?

게다가,

‘헌터자격시험 만점.’

여성은 무엇보다 헌터자격시험을 만점받았다는 그 남자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어떤 머리를 가졌길래 그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했단 말인지!

여성은 살면서 공부라면 단연 1등을 놓친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는 자기보다 능력적으로 뛰어난 사람만 보면 동경과 동시에 호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시운에게 무언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4F

4층 계단의 큼지막한 복도를 걷다가 문 앞에 멈춰섰다.

‘여긴가.’

팻말이 보였다.

끼익.

문이 열리자, 일곱 명의 헌터가 자신을 힐끗, 쳐다봤다.

‘앗?’

그 중에 단연 확,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헌터자격시험 만점에 자신이 근력 스탯 85이라 말하던 그 남자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