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화
던전시험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3)
연희의 물음에 시운은 말없이 턱짓으로 앞으로 이동하는 벽을 가리켰다.
지켜보면 알게 될 거란 뜻이었다.
"그러게? 저 거인인지 괴물인지 하는 놈이 우리가 넘어온 통로로 넘어오면 어떡해?“
“막자! 통로를 우리가 몸으로 덮어놓자고.”
“그래요, 가만히 있기가 불안해.”
헌터들이 일어나 통로를 향해 가려는데.
태식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그럴 필요 없네.”
“그럴 필요가 없다뇨?”
“손놓고 있다가 저 놈이 넘어와서 우리 찢어죽이면 그땐 후회해도 늦는다고요, 아저씨.”
태식은 여유롭게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의 표정을 봐….”
태식은 시운을 가리켰다.
헌터들의 고개가 시운에게로 돌아갔다.
태식은 말을 이었다.
“어때? 확신에 가득찬 표정이지? 말그대로 저 친구는 우리와는 사고 방식 자체가 달라. 분명 거인의 패턴과 약점을 읽고 저리 말하는 걸게야.”
“하지만…….”
헌터 하나가 불안해하며 말끝을 흐렸다.
태식은 그에게 고개를 두어번 끄덕여주며 ‘걱정 그만하고 지켜보자’는 눈빛을 보냈다.
드드드드드!
벽은 던전의 바닥을 짓뭉개며
굉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시운은 팔짱을 끼고 앞으로 향해 가는 벽을 바라봤다.
‘거인의 몸 주위에 있던 마법진은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했었지, 이미 내 눈으로 다 파악했어.’
시운은 시력 13.0으로 마법진의 형태와 아주 미세한 움직임, 마법진과 연결된 거인의 몸 속 혈관과 근육까지도 관찰을 마친 상태였다.
‘거인의 마법진의 반경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어. 그리고 그 마법진 안으로 들어오면 거인의 목근육이 움찔거렸고, 눈근육이 자동으로 움직이더군. 결론은 마법진의 반경에 누군가가 들어오면 공격하는 패턴이었던 거야.’
‘게다가 저 거인은 죽은 몸. 분명 마법진 바깥으로 단 일센티라도 움직인 적이 없다.’
그 마법진은 사실 일반인의 눈에는 거인이 눈을 감고 있을 때만 보이고 사라졌지만,
시운의 눈에는 사라진 마법진조차 확연히 드러왔다.
‘단 한가지 이상한 건….’
의아한 점이 하나 있긴 있었다. 분명 정연희란 헌터를 구하려고 그 마법진 속으로 들어갔는데 거인이 공격을 멈추었다는 것.
그 점 하나만은 이상했다.
드드드드!
쿠웅!
어느새 거대한 벽과 거인의 몸통과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끼이이익.
거인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가 점점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인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리고,
철퍼덕!
거인의 살점이 벽과 반대쪽 던전의 끝벽에 짓뭉개져 터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끼기기긱.
벽은 거인을 완전히 뭉개버리고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
정적이 흘렀다.
숨죽여 지켜보던 헌터 하나가 반색하며 말했다.
“벽이 거인을 뭉개버렸어!”
잇따라, 다른 헌터들도.
“하아, 그럼 우린 이제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가요?”
“흐흐흐흑…….”
“엄마, 아빠 이제 영영 못 보게 되는 줄 알았어…….”
울며 기뻐하는 헌터들 사이로 연희도 한숨을 푹, 흘려버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시운을 바라봤다.
어떻게 거인이 넘어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까?
‘헌터자격시험 만점에다가 근력 스탯은 80이 넘는다질 않나… 또, 시력은 어마어마하게 좋고, 주먹으로 벽을 부숴서 우리도 구해주고 동시에 거인도 물리쳤어.’
신기한 눈으로 계속 시운을 응시했다.
시운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연희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두 눈길이 만나는 순간, 연희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휙 돌리고 딴청을 한다.
“내가 거인이 이쪽으로 오지 못한다고 했죠?”
시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 산만스런 상황에서 거인의 비밀을 알아차렸던 거에요?”
연희는 놀란 눈으로 시운에게 물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우이! 자네 아니었으면 나는…… 겨우 환갑잔치도 못 해보고 관에 들어갈 뻔 했어.”
“헌터님, 이름이 뭐에요? 나중에 꼭 사례할게요.”
“덕분에 현계에 있는 우리 딸 상은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됐어요, 진짜 어떻게 고맙단 말을 해야 할지…….”
“아깐, 의심해서 미안했어요.”
어느새 헌터들은 시운 주위로 다가와 감사함을 표하고 있었다.
시운은 겸손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탐사시험은 팀플이죠.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시운은 고개를 돌려 조무사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녀는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죄책감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시운이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쓸어준다.
“조무사님.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거인은 조무사님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잖아요? 나라도 그랬을 거에요. 이곳의 던전으로 게이트 좌표를 생성한 사람의 잘못이지, 조무사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고개를 파묻고 있던 조무사의 턱에서 눈물이 쭉, 흘러내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오랜만에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
떨리는 남자의 육성이 시운의 귓가에 들려왔다.
굉장히 중후한 목소리였다.
“………?”
시운은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누가 또 있는 거냐?
아니었다.
소리의 출처는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방금 그 소리 못 들었어요?”
시운이 연희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요?”
시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다들 안도와 기쁨에 잠겨있었다. 하기야, 방금 그 소리를 들었다면 이들도 반응했겠지.
무리해서 환청이 들린 걸 거야.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이 …………
***
덜컥!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그러자, 회의실에 있던 임직원 모두가 벌떡! 일어나 정중히 목례를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에 긴장이 서려있었다.
남자 하나의 등장에 회의실은 순식간에 위압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들어온 남자는 협회장 곽대익이었다. 대익은 그들의 인사에도 오직 한곳에 시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그리고 그 앞에 멈춰섰다.
“혀……혀, 협회장님.”
기겁한 기색의 남자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울상을 짓는다.
빠악!
“아악.”
“신음 소리도 내지말고. 입 틀어막아.”
대익의 말에 남자는 입을 틀어막았다.
대익은 반대손으로 남자의 뒷통수를 거세게 후려쳤고, 입을 억지로 틀어쥔 채 넘어간 남자의 머리통을 향해 발을 들었다.
빠악! 빡!
구두굽으로 사정없이 남자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끄, 끄허억……”
남자의 틀어막힌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어머!!’
‘곽대익 성질 알면서 어떻게 저런 실수를 했대…….’
‘큰일났네 이제.’
‘어우, 아프겠다…….’
‘어휴, 살벌해, 협회장 눈이 완전 돌아갔네.’
지켜보던 임직원들은 말리기는커녕 그 광경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내리고 살벌한 소리만을 내듣고 있다.
“대가리 들어.”
남자는 떨며 다 터진 얼굴을 들었다. 곽대익이 살기의 눈으로 자신을 내리깔아보고 있다.
“사, 살려 주,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말이 되나?”
대익이 물었다.
“죄송합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묻고 개미기어가듯 답했다.
빠악!
“끄윽.”
“고개 들라 안 했냐.”
“아, 아아, 예……예…….”
고개도 못 든채 그 소리를 지켜보던 여성 직원 하나가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물이 튀어나오려 했다.
대익은 철저한 인물이었다.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아량을 베풀었고, 실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촌철살인으로 쏘아대고 짓뭉개기로 유명한 인사였다. 게다가 가진 권력으로 협회의 비리와 사건들이 세상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기가막히게 막는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몇 년간 한국지부의 협회장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협회에 큰 사고가 터졌다.
교관 하나가 전 날에 술을 먹고 만취 상태에서 탐사시험의 좌표를 잘못 찍어 두 명의 사망자와 한 명의 중상 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
대익은 참을 수가 없었다.
“………….”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입가에서 피를 떨어뜨리며 고개만 숙이고 있는 김상운 교관에게 대익이 말했다.
“어이, 제 정신이야?”
“죄, 죄송합니다…….”
할 말은 죄송하단 사과 뿐이었다.
“나한테 죄송할 일은 아예 없게 해줘야지.”
“혀, 혀, 협회장니임!!”
상운이 대익의 바짓가랑이를 감쌌다.
덜컥.
문이 세게 열림과 동시에 검은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
“………….”
임직원들은 숨죽이며 그 남자들을 바라본다. 들어온 남자들은 대익 앞에서 절도 있게 서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이 놈 데려가.”
대익이 말하자, 남성들이 상운에게 다가가 그의 팔과 다리를 감쌌다.
“알겠습니다!”
“혀, 혀, 협회장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아아……”
***
시운이 도착한 곳은 태초 시티보다 두 배 가량은 큰 도시 레프론이였다.
도시라고 표현하기에는 사실상 작지만 좁은 태초 시티에 있다가 이곳에 발을 디디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는 태초 마을보다 조금더 현대식스러웠다.
툭.
시운은 걸음을 멈췄다.
“저 말씀 좀 물을게요.”
시운이 지나가던 상인을 붙잡고 말했다.
“여쭤보시오.”
“맹인 직업소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맹인 직업소라고?”
시운을 바라보는 상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럴만도 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거기는 뭐하러 가실라구?”
“맹인 클래스로 전직하려고 갑니다.”
“하? 이 사람 미쳤네, 미쳤어.”
상인은 고개를 내둘렀다. 그리고 시운을 위아래로 내리훑으며, 미친놈 보듯 봤다.
“정신차려! 이 사람아. 많고 많은 클래스 중에 왜! 술 먹었어? 젊은 양반이…….”
“어딘지 알려주십시오.”
“예끼! 난 모르겠소.”
상인은 짐을 쌓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그러자 시운은 상인의 팔뚝을 탁, 잡았다.
“알려주시면 사례금은 챙겨 드리겠습니다.”
“사례금?”
찌푸려진 상인의 얼굴이 점차 누그러진다.
“크흠……. 나중에 나한테 원망 말기요?”
***
끼이익.
문이 열리자 문 위의 먼지가 머리로 우수수, 떨어진다.
‘윽……악취가.’
썩은 냄새가 코끝을 가득 찔러왔다. 공기가 굉장히 탁했고, 섬뜩한 음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기가 장난이 아니군, 귀신이 사는 집 같아.’
내부는 썰렁함 그 자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 맹인 직업소를 찾는 헌터는 근 몇 년간 단 한 명도 없었다.
맹인은 히든 직업에 속한다.
그러나 비주류, 중에 아주 최악의 비주류에 속하는 직업이다.
맹인은 헌터는 물론이고 인생을 말아먹으려는 심보가 아닌 이상 들리면 안 되는 곳이었다.
맹인으로 전직하려면 그것을 바쳐야 하니까.
이계역사상 맹인으로 전직한 사례는 딱 세 번이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우울증으로 자살했고,
한 명은 행방불명이 되었다.
‘나라면 맹인이 될 수 있다.’
이미 판단을 마친 상태다.
더는 망설일 필요조차 없다.
시운은 안내 데스크를 향해 다가갔다.
“거, 누구요?”
안대를 한 여성이 신경질 조로 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정식으로 전직한다고 오는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인 맹인 직업소가 궁금해서 얼굴만 들이밀고 가버린다던지, 잡상인이 와서 음식이나 사라고 구걸한다던지가 전부였다.
거의 폐업 위기에 처한 직업소나 다름이 없었다.
톡, 톡.
여성은 지팡이를 땅에 짚고 시운에게 다가왔다.
눈에 안대를 칭칭 감고도 시운이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을 보니 대단했다.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누구냐고 물었잖아요? 명분없이 왔으면 각오해야 할 거고.”
여성의 지팡이에서 살기의 마나가 피어올랐다.
시운은 순간 움찔해서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 맹인으로 전직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맹인으로 전직을 하고 싶다고?”
여성은 눈도 보이지않는 주제에 고개를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며 시운을 훑어본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는 알고 왔나?”
“그렇습니다.”
“정말 결정을 마쳤는가?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여성은 재차 묻고 있었다.
“이미 결정은 끝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따라와요.”
망설임없이 호탕하게 답하는 시운의 목소리를 듣고 여성은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맹인으로 전직하는 직업소.
신체의 하나를 내놓는 대가로 전직을 하는 곳이었으니까.
너무나 중요한 신체 부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