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화
오늘도 활약을 독점한다 (1)
연희와 성혜는 둘의 시선이 만나 팽배해졌다.둘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맞받아칠 뿐.
시선과 시선 사이로 스파크가 튀었다.
성혜가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나이만 어려서 피부만 좋지 뭐, 키도 땅딸막한게 남자 보는 눈은 있나보네?’
반면 연희 또한 미간에 힘을 팍, 주었다.
‘으이구. 주책도 가지가지 한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여자가 한참 어린 연하남한테 눈독을 들이시고?’
그렇게 한참을 무언의 눈싸움을 하다가 정성혜가 슬며시 입을 연다.
“연희씨. 시운씨가 책을 빨리 읽는 게 굉장히 신기한가 보네요?”
성혜의 말끝은 비아냥대듯 올라갔다.
“아, 네에~ 참, 신기하네요? 그런데 조무사님이 더 신기해 하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요?”
역시나 연희의 말끝도 기분나쁘게 휙, 올라간다.
두 여자의 시선이 다시 맞부딪혀 타올랐다.
철썩! 철썩! 철썩! -탁.
위이잉.
-지혜 지수가 1 올랐습니다.
“끝났다.”
마지막 30권 째의 책을 툭, 덮었는데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서 고개를 들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몰려있었어?’
속독에 매진하느라 사람들이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방금 속독한 거 맞죠?”
“삼천 페이지의 책 삼십 권을 몇 분 만에 읽은 거야?”
“내가 시간을 재봤는데, 20분도 지나지 않았어.”
“진짜?”
사람들은 모두 입을 스르르, 벌리고 시운을 마냥 신기하단 듯 바라보고 있다.
그중에는 용병도 있고, 헌터도 있고, 이계인도 있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놀랄 만도 했다.
아니 놀랄 만도 했다가 아니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책 30권을 일독하고 지능 30을 찍으려면?
최소 몇 달이라는 시간을 의자에 엉덩이를 박고 허리가 부서져라 읽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앳된 남자가 20분도 채 안 되어, 30권을 마스터 했으니. 이런 반응들은 당연했다.
턱.
어느 여성이 시운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저기, 나도 지혜 올려야 하거든요? 속독하는 비법 쬐끔만 알려줘요~ 내 자리로 같이 가서……응?”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가봐야 할 때가 있어서.”
“저기 형씨. 잠깐 이야기 좀 해요. 내가 한 달동안 여기서 책만 보느라 눈알 빠지겠다고.”
“속독의 비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에이~ 혼자만 알지 말고.”
사람들이 시운을 채근했다.
“시운 씨?”
정신없는 와중에 시운은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던전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성혜의 얼굴이 보였다.
“조무사님도 여기 계셨네요.”
“네, 방금 시운 씨가 책 읽는 거 보고 있었어요.”
성혜는 말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책 읽는 걸 보고 계셨다고요?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시운은 민망해하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옆에는 정연희가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반가! 우리 며칠 만에 보네요? 오늘도 나하고 인사만 하고 휙, 사라져 버릴거죠?”
연희는 퉁명스레 물었다.
“조무사님 뿐만 아니라 연희씨도 있었구나. 뭐, 차라도 한잔 같이 하면 되죠.”
‘차라도 한잔’이라는 말에 연희의 얼굴이 스르르, 환해진다.
반면 성혜의 얼굴은 쎄하게 굳어져 입술만 삐죽 튀어나왔다.
“능력치창 오픈.”
시운이 말하자, 능력치 상태창이 떠오른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레벨] 37
[생명력] 610/610 [마나] 205/205
[근력] <226>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상태] 정상
[공복도] 5 [갈증도] 12 [피로감] 36
[여유 능력치] 0
‘오케이, 지혜가 30 늘어났군. 이제 최대 마나량도 꽤나 모였어. 화룡의 일참 두 번 정도는 쓸 수 있겠구나.’
쉽게 지혜 스탯을 확보하자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다.
스탯에 따라 사람의 신체 능력도 덩달아 변하는 것이었다.
“저, 저, 저길 좀 봐요!”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정적으로 가득했던 도서관의 분위기는 팍, 깨져버렸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비명을 지른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이잖아!!”
타타타탁!
사람들이 책상과 책상 사이를 가로질러 창문을 향해 뛰어갔다.
“공룡이 왜 도시에 나타난 거지?”
“여기 있다가는 위험해!”
“화이트 게이트 호출해야 해요!”
“저렇게 큰 놈은 처음 봐….”
사람들의 경악 소리를 듣고,
시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괴물이라고?’
곧바로 창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창문 밖으로 엄청나게 큰 괴수가 레프론 도시 한복판의 바닥에 배를 깔고 있었다.
네 발달린 공룡형상에 길쭉한 꼬리, 피부에는 아주 단단한 무언가가 붙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크기는 엄청났다. 무려 13미터는 족히 되보였다.
왕국 경비단들이 일제히 달려와 괴수 앞으로 무기를 겨누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가기 시작한다.
쿠우웅!
드드드드드.
“으아악!”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흔들림이 일었다.
쿵! 쿵!
건물이 크게 흔들렸으며, 대도서관의 천장에 달린 조명이 떨어져 빠지직! 바닥에 깨졌다.
창문 너머로 괴수는 왕국 경비단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격들은 먹히질 않았고, 커다란 두 팔로 레프론 도시의 건물들을 휘젓고 있었다.
괴수의 손길 한번에 건물 하나가 균열을 일으키고 와르르, 무너졌다.
“도망가야 돼.”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비상구, 비상구를 향해 갑시다, 다들!”
대도서관의 사람들은 모두 혼란스러워 하며 건물 밖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앗, 이게 무슨 일이래?”
연희는 당황해하며 성혜를 바라봤다. 그리고 급하게 물었다.
“조무사님. 저렇게 생긴 괴수는 처음 보는데 강력한 놈인가요?”
불안한 기색이 서려있는 성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저런 괴수는 처음 봐요. 헌터 던전에서 출몰한 놈 같아요. 일단 모두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아요.”
그때였다.
시운의 귓가로 알람 소리가 울려왔다.
[히든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도시에 나타난 괴수][히든]
레프론 도시에 괴수가 나타났다. 레프론 도시는 아비규환 상태가 되었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당장 저 괴수를 처치하자.
성공 조건: 괴수 처치 (0/1)
실패 조건: 다른 이의 손에 의한 괴수의 죽음 또는 괴수의 탈주.
실패 패널티: 레프론 도시의 평판이 <무시>로 하락.
보상: 히든 던전으로 가는 스크롤 획득.
실패 패널티가 어마어마했다.
도시의 평판이 무시로 하락하면, 장비점, 잡화점, 등을 이용하지 못한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게 되며 잘못했다간 경비단에게 쫓겨나게 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히든 퀘스트의 발동은 곧 좋은 보상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퀘스트를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로 처리되어, 레프론에서의 평판이 바닥나, 사람이 아닌 개 취급을 당할 것이 뻔했다.
지금 괴수와 싸울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결국 말만 히든 퀘스트지 닥치고 수행하란 것이었다.
일단 저 괴수는 지금까지 상대해 온 몬스터하곤 차원이 달라보였다.
‘가 보자. 인벤토리창!’
찰캉!
-홍란의 화룡검을 장착하였습니다.
슈욱!
-멧돼지의 가죽망토를 장착하였습니다.
“어머?”
“엇?”
처음보는 시운의 화려한 무기에 성혜와 연희는 탄성을 흘렸다.
타타타타! 와장창!
“이시운 씨!!”
“이, 이봐요오오오오!! 여긴 3층이라고!!”
연희와 성혜가 시운을 향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땐 이미 시운은 3층의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상태였다.
***
크우어어어어-
괴수가 포효를 내질렀다.
괴수의 아가리에서 흘러나온 풍력에 경비단의 몸이 휘청거렸다.
“놈의 몸에 칼이나 스킬이 안 박힙니다.”
경비병 하나가 창을 겨눈 채 다급하게 말했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화이트 게이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경비부장이 칼과 방패를 쥐고, 고개를 들어 괴수를 바라봤다.
괴수의 머리 크기가 거의 작은 건물 하나만했다.
실로 대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슈웅!
“경비부장님!”
쿵!
“으아아악!”
바로 옆에 있던 경비병이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자신의 앞에 괴수의 발이 무언가를 찍어버린 것이었다. 괴수의 발이 올라가자 괴수의 발밑으로 경비부장의 토막난 시체가 너덜너덜 붙어있다.
“부장님!!”
“너무 강력해.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겠어.”
도시의 건물들이 하나둘씩 무너져가고 있다. 레프론의 자랑거리인 호수광장은 핏빛 지옥으로 뭉개져있었다. 게다가 불까지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상황.
도시의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쿵!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경비병들의 시선이 쏠렸다.
“저건?”
한 남성이 어느 건물에서 뛰어내려 착지한 상태였다.
남성은 불이 피어오르는 무기와 멧돼지 가죽을 둘러쓴 채, 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헌터인가?”
“뭐야, 저 멧돼지는?”
샤샥!경비병들이 쏜 화살이 괴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괴수의 등껍질에 박히지도 않고 등껍질에 닿자마자 그대로 튕겨져 나가버린다.
“놈의 가죽은 못 뚫겠어….”
“그 건물에서 떨어지란 말이다!”
“사, 살려주세요! 으허헉.”
괴수의 팔이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건물들이 잇따라 하나씩 무너져 내려 대지를 뒤흔들었다.
***
‘저 녀석은.’
시운은 마구 날뛰는 괴수를 관찰했다.
괴수는 분명 공격을 받을 때 등과 배, 그리고 팔, 다리까지 모든 가죽부분에 다이아몬드가 튀어나와 가죽을 감싸서 보호하고 있다.
‘얼마나 단단한지 볼까?’
“화룡의 도약!”
시운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차악!
괴수의 다리 부분에 착지했다.
크르응!
괴수가 으르렁거렸다.
시운은 그대로 홍란검을 괴수의 다리살을 향해 찔러넣었다.
탕!
‘역시.’
홍란검이 가죽을 찢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괴수는 시운이 다리에 달라붙어 있던 상관하지 않고 레프론 도시의 건물들을 마구 부서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운은 곧바로 홍란검을 칼집에 밀어넣고 두 손으로 암벽을 타듯 괴수의 몸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괴수는 엄청나게 컸다.
괴수의 몸통에 들러붙은 시운이 먼지만하게 보일 정도였다.
슈우웅- 파앙!
“으앗.”
시운의 바로 위로 불꽃 구체가 날아와 괴수의 몸에 부딪혀 터졌다. 작은 불꽃이 시운의 손에 튀었다. 경비병들이 괴수를 향해 공격하는 것까지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연달아 화살과 검술 스킬의 구체들이 괴수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크아아아앙!!
괴수가 몸부림치며, 긴 꼬리를 그대로 휘둘렀다.
파아아앙!
“끄아아악!”
“아아악!”
괴수의 꼬리가 휩쓸고 간 자리는 박살나버린 바닥과 시체가 되어버린 경비병들로 즐비했다.
시운은 괴수가 몸을 마구 움직이는 탓에 매달려있기가 힘들었다.
천천히 집중하고, 괴수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다리를 지나, 괴수의 등 부분까지 기어올랐다.
‘한 번 더.’
시운이 홍란검을 빼들고 곧바로 등살을 내리찍었다. 근육이 가장 적은 살 부분에 찔러넣었다.
콰장!
그러나, 검이 닿기도 전에 다이아몬드 껍질이 등에서 튀어나와 홍란검을 튕겨냈다.
크아아앙!
괴수는 이제야 시운을 발견하고 시운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질주.”
타타타타!
시운은 질주 스킬을 이용해 괴수의 공격을 피하고 등 위를 뛰어 괴수의 경추까지 안착했다.
‘화룡의 일참 스킬을 사용한다면….’
주위는 아마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특히나 괴수의 등과 레프론 도시의 바닥까지는 아주 가까워서 불길이 번지기 딱이었다.
‘분명 허점이 있을 거야.’
또 다시 괴수의 손이 날아왔다. 어찌나 큰지 시운의 몸 전체가 그림자에 가려질 정도였다.
탁!
그러나 괴수는 너무 컸고, 움직임은 둔했다.
잽싸게 피한 뒤에,
“카운터 일격.”
괴수의 공격을 피하고 카운터 형식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스킬을 시전했다.
홍란검의 검신이 1/5 가량 괴수의 몸에 쑤셔박혔다.
‘오호라. 박혔다?’
괴수의 살점이 벌어지자 역한 비린내가 쏟아졌다.
그리고, 괴수가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질주.”
시운은 곧바로 괴수의 어깨까지 뛰어올랐다.
괴수의 어깨까지 올라오니 지상이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기겁을 하면서 대치 중인 경비병들이 괴수에 타있는 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수가 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가리를 벌떡! 벌렸다.
‘무언가 날아온다.’
크아아아앙!!
괴물의 아가리에서 어마어마한 바람이 튀어나왔다.
바람은 괴수의 아가리에서 튀어나와 대지를 휩쓸고 건물 두 채를 무너뜨렸다.
크르으응?
괴수는 두 눈을 움직여 시운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시운은 이미 화룡의 도약으로 괴수의 머리 위까지 상승하여 하강하는 중이였다.
‘그래, 알겠다. 놈의 다이아몬드 보호막은 카운터 형식의 공격에는 반응을 못하는 거야. 그래서 홍란검 검신이 놈의 등을 뚫을 수 있었던 거고. 방금 놈의 브레스 공격도 피했으니, 카운터 일격을 발동시킬 수 있다!’
휘이잉!
머리칼을 휘날리며 괴수의 머리를 향해 하강하는 시운은 홍란검의 날을 괴수 쪽으로 향하게 하고 꽉 말아쥐었다.
“카운터 일격!”
쑤-욱.
시운의 검은 괴수의 머리통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역시나 놈의 보호막은 카운터에 반응하지 못하는 군.’
그랬다.
아무래도 괴수가 공격을 하고 난 후부터 일정시간은 반응을 못 하는 듯 했다.
크아아아아아앙!!
괴수는 쇳내나는 괴성을 쏘아내며 머리를 더욱 흔들었다.
시운의 홍란검 검신의 반이 괴수의 머릿속을 파고든 상태였다.
-카운터 일격으로 인해 괴수가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괴수의 머리와 등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괴수는 멈추지 않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시운은 떨어지지 않게 홍란검의 손잡이를 꽉 붙들어 잡았다.
‘좋아, 내 홍란검의 검신은 놈의 머리통 속에 박혀있고? 이 상태로 그것을 쓴다면 놈에게 제대로 먹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