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41화 (41/278)

제 41화

오늘도 활약을 독점한다 (2)

홍란검의 검신이 괴수의 뇌 부분을 쑤시고 있다.검신 주위로 괴수의 액체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크아앙! 괴수가 울부짖으며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시운은 검 손잡이를 두 손으로 틀어 쥐었다.

“홍란의 일참.”

***

하얀 전투 슈트를 입은 남성이 달려갔다. 그리고 같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그의 뒤를 따른다.

긴박한 표정.

“화이트 게이트가 도착했어!”

“모두 길 어서 비켜드려.”

“저깁니다.”

그가 달려오자 경비병들은 모세의 기적이 일듯이 빠르게 길을 터주었다.

“저 괴수인가.”

장 대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크기가 굉장히 살벌한 괴수. 상대하기가 여간 껄끄럽지 않을 것 같다.

“출혈이 일고 있잖아?”

장 대리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괴수는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자연스레 동공을 들어 괴수의 머리로 시선을 향했다.

“저건?”

누군가가 괴수의 머리 부분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화르르륵! 콰콰콰콰쾅!

엄청난 불길과 함께 괴수의 머리통에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괴수의 눈 두덩이에서 불길이 튀어나오면서, 괴수의 머리통부터 발끝까지 연쇄적인 폭팔이 일어나면서 괴수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괴수가 쓰러진다!”

장 대리가 외치자 경비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쿠우웅!

대지를 거대하게 흔드는 한 번의 굉음이 울렸다.

“괴수를 해치웠어.”

“저게 죽었단 말인가?”

“오 마이 갓……!”

경비들이 수근거렸다.

괴수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기다란 목을 땅에 처박고 늘어져 있었다.

“다친 사람들을 어서 이송하셔야 합니다.”

장 대리가 소리치자, 경비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 대리의 시야는 방금 그 괴수를 해치운 사람에게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저 녀석은?”

낯이 익은 녀석이었다.

거추장스러워서 입고 다니기도 창피할 것 같은 산만한 멧돼지 가죽망토를 입은……

저 녀석은?

그때 그 녀석이었다.

“그때 그놈?”

리미트리스 던전에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네 개의 성벽을 함락 시킨 그 햇병아리 헌터 말이다.

한 편, 장 대리 뒤에 있던 누군가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한석 교관이었다.

그는 마딱찮은 눈으로 시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또 저 새끼란 말이냐. 굉장히 설쳐대는군.’

터벅터벅-

장 대리가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스르르, 고개를 돌린다.

“이봐, 괜찮은가?”

장 대리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허점을 공략하니 생각보다 쉽네요.”

녀석은 웃으며 가볍게 답했다.

“……….”

장 대리는 커진 눈으로 녀석의 근처에서 죽어있는 괴수의 사체로 눈을 돌렸다.

‘이걸 단신으로 때려 잡았단 말인가.’

장 대리의 입이 스르르, 벌어졌다. 리미트리스 던전에서도 저 녀석의 활약상은 두 눈으로 보았다. 물론 그때 던전 공략의 순서는 모조리 제멋대로였지만.

‘믿기지가 않아. 이 친구 듣기로는 F급 헌터라던데. 그것도 헌터가 된지 고작 한 달 차…….’

장 대리는 멍하니 시운을 바라봤다.

시운은 괴수의 사체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다.

“자네 저번에 만났을 때 묻지 못한 게 있어.”

“뭐든 물어보십시오.”

“레벨이 도대체 몇인가.”

장 대리는 경직된 얼굴로 물었다.

“이제 37입니다. 아, 방금 괴수를 때려잡아서 1업을 했으니 38이네요.”

“뭐? ………38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고작 레벨이 38이라니. 38이란 레벨로 리미트리스 던전 때는 물론 이 괴수를 단신으로 때려잡을 수가 있나?

장 대리는 곧바로 시운에게로 손을 뻗었다.

“디렉팅.”

장 대리가 외치자 장 대리의 손에서 빛이 피어나면서 자신의 앞에 상태창이 하나 떠올랐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레벨] 38 [명성] 5 [범죄도] 0

[생명력] 610/610 [마나] 205/205

[근력] <226>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상태] 정상

[공복도] 8 [갈증도] 21 [피로감] 42

[여유 능력치] 3

‘이럴 리가 있나……!’

장 대리의 눈이 커졌다.

상태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38이란 레벨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높은 근력 스탯과……

무엇보다 놀란 것은 클래스가 맹인이란 것이다.

“자네 클래스가 맹인이 확실한거야?”

디렉팅의 결과가 오류인 듯 해서 확인차 물었다.

그러자 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맹인 맞습니다.”

“맹인인데, 어떻게……”

장 대리의 시선은 시운의 눈으로 옮겨갔다. 녀석은 멀쩡하게 눈을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너, 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정체가 뭐냐고.”

질문을 던지는 장 대리의 목소리는 마치 유령에게 질문하듯 떨리고 있었다.

***

“거대 괴물이 움직이질 않아.”

대도서관의 창문 너머로 숨죽여 구경하던 연희가 외쳤다.

성혜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방금 봤즈?”

“저 남자가 홀로 저 괴물을 때려잡았다니까?”

“현란하더라. 어쩐지 책을 그렇게 읽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었는데.”

도서관 내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수군거리고 있다.

연희는 한 남자와 대화를 하고 있는 시운을 빤히 바라봤다.

‘정말 무모할 정도로 대단하잖아.’

저 남자는 헌터가 되기 전부터 뉴스에 보도되면서 화려하게 헌터로 데뷔했다. 놀라운 것은 …… 다른 사람들은 목검을 들고 다닐 때 저 남자는 대검을 들고 다녔고, 잘못된 루트로 인해 이상한 던전에 떨어졌을 때도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모두를 구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는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의 책을 외계인처럼 빠르게 읽어버리더니 괴수가 나타나자.

‘무려 3층 높이의 도서관 창문에서 뛰어내려가서 ….’

괴수를 멋지게 때려 잡은 것.

실로 F급 헌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치 이시운이 연희의 눈에는 지금 슈퍼맨 정도로 보이고 있었다.

“뭐랄까? 참.”

연희는 자신의 옆에서 흘러나오는 혼잣말에 고개를 돌렸다.

성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시운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자가 또?’

순간 연희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조무사님?”

“왜?”

“혹시나, 아… 그러니까 아주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연희는 싸늘하게 성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남자는 이제 스물세 살이에요. 혹시 서른 줄을 넘기신 조무사 님께서 저 남자를 헌터 그 이상의 감정으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뭐? 무슨 헛소리야!”

성혜의 얼굴이 순간 달아올랐다. 누가봐도 티가 날 정도로.

“조무사님?”

연희는 팔짱을 끼고 발꿈치를 까딱거리며 삐딱한 자세로 성혜를 노려봤다.

성혜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고 연희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너야말로 시운 씨에게 호감이 있는 거 아니야? 맞지? 다 티가 나던데, 뭐.”

“뭐요? 뭐라는 거에요?!”

연희도 순간 눈이 커지며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맞잖아? 아니라고 하진 못하겠죠? 여자는 여자가 보면 안다고, 연희씨.”

“참나. 무슨 소리를……. ”

그리고 정적.

“………….”

“………….”

두 여자는 더는 말이 없었다.

여자들은 밥 한 번 먹어보지 못한 남자 하나를 두고 소리없는 질투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

<화이트 게이트 부장실.>

문이 덜컥- 열렸다.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서류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린다.

자신 앞으로 다소 씩씩대는 표정으로 들어온 것은 이한석 교관이었다.

급해 보였다.

“노크도 없이 무슨 일인가?”

부장이 물었다.

“부장님, 잠시 저와 이야기 좀 하시죠.”

***

딸깍-

김이 모락 피어나는 머그잔 두 개가 테이블 위에 얹여졌다.

은은한 커피향이 피어올라 실내를 휘저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경리가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부장은 눈길 없이 손을 한 번 휘, 젓는 신호를 보내자 경리는 서류를 가슴에 움켜쥐고, 꽉 끼는 스커트의 엉덩이를 나풀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부장님.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한석은 안면근육을 씰룩 거리며, 힘주어 말하는 반면 부장은 두툼한 손으로 머그잔을 집어들어 한모금 마시며 여유롭게 커피의 향을 음미하고 있다.

“부장님…!”

툭.

부장은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한석을 바라보았다.

“이시운 그 신입이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당연하지 말입니다! 녀석은 고작 F급입니다. 그런 놈이 멋대로 마을에 열린 던전에 들어가 휘젓지 않나, 또…”

한석은 말하면서도 턱근육이 씰룩거렸다. 그때 그 일이 생각나서였다.

리미트리스 던전에서 그에게 수모를 당한 일.

아직도 분이 풀리질 않는다. 고작 F급 나부랭이 녀석에게 화이트 게이트의 일원인 자기가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이!

“큭큭.”

부장이 여유롭게 웃었다.

한석은 그런 부장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입을 연다.

“부장님. 웃으실 때가 아닙니다! 그런 녀석이 설쳐대도록 놔둘 참이십니까?”

한석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손을 주먹으로 말아쥐며 힘을 꽉 주었다.

그 여파로 테이블이 덜덜, 떨려왔다.

“처벌이라도 하란 말인가? 나대지 못하도록?”

“그 녀석은 교관인 저한테도 몹쓸 소리를 했단 말입니다. 아시잖습니까? 헌터는 계급 사회라는 거!”

“놔둘 것이야.”

한석의 눈이 분노로 커졌다.

“놔두다니요?”

“협회장이 그 녀석을 주시하고 있네.”

빠직.

한석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협회장님이 예뻐라 하니 그냥 F급 따위의 놈이 제멋대로 활개를 쳐도 눈 감자 이 말씀입니까?”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요?”

“협회장이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 뭔 줄 모르는가.”

한석의 구겨진 얼굴이 조금씩 펴진다.

“…….”

한석은 부장의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그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부장은 곧 입을 열었다.

“의미를 모르겠는가?”

“말씀 해주십시오.”

부장은 답답하단 눈초리로 한석을 바라본다.

“협회장이 눈독을 들이면 모 아니면 도라네. 협회장의 사냥개가 되거나 토사구팽으로 개처럼 쓰이고 잡아먹히거나.”

부장은 말을 마치고 한번 비릿하게 웃었다.

한석의 표정도 서서히 누그러지더니 반색하기 시작한다.

“그 말씀은?”

“자네도 알잖나? 협회장, 그가 눈독 들였던 인물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

부장이 말을 마치자 한석의 얼굴은 이내 싸늘한 미소가 번져 걸려있었다.

그런 것이었나.

***

“자자자, 나와주세요!”

“모든 길목을 일시 통제합니다, 협조 바랍니다.”

헤르빈 도시 일대는 경비병들의 통제가 시작된 중이었다.

괴수에 의해 무너진 건물과 괴수에 의해 세상을 등진 사체들을 처리하는 복구작업을 진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작 괴수 한 마리에 의해 난장판이 된 도시는 어느새 밤이 되어 달빛에 의해 거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시운은 분주히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

<초급 검술 수련장.>

시운의 눈 앞으로 무성히 깔린 잔디밭 위로 허수아비 열 개가 팔을 벌린 채 나란히 서있다.

“하앗! 하앗!”

사람 한 명이 기합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목검 하나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허수아비를 내리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내리치며 검술을 수련하는 훈련장이었다.

터벅터벅 툭.

시운은 허수아비 앞에 바로 섰다.

‘어디 보자. 수련전용 목검을 인벤토리에서…….’

타악!

[수련전용 목검][일반]

검술 수련장에 사용되는 목검.

무게가 굉장히 가볍다.

공격력: -999

내구도: 8000/8000

-수련전용 목검을 장착하였습니다.

홍란검만 들고 다니다가 목검을 드니 검을 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럼 한 번 시작해 볼까? 그 작업을…….”

목검을 허수아비의 머리에 겨누었다.

이제 맹인이란 클래스를 가진 시운은 이곳에서 해야 할 하나의 작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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