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화
여자 둘과의 비밀 던전으로.. (2)
‘여긴?’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모난 형태의 돔으로 되어있는 공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빈 공간.
‘멋대로 히든 던전으로 이동한다는 알람이 울리고….
’
그 알람과 함께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던 것.
‘여기가 히든 던전이란 말인가?’
직감적으로 이곳이 히든 던전이란 것은 바보가 아닌지라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히든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히든 던전에 입장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조건 불합격이라고?’
시운의 눈이 커졌다.
입장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라?
어쨌든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는 건가.
알람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히든 던전 ‘네개의 자연’에 입장하려면 음기가 필요합니다.]
‘음기?’
음기란 말이 낯설었다.
어쨌든 음기란 말은 여성의 기운을을 뜻했다.
반대로 양기는 남성의 기운.
‘뭐 어쩌란 거지?’
[음기가 필요합니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
그리고,
[최근 시점으로 오래 접촉했던 음의 기운을 가진 자를 강제 소환합니다.]
‘……뭐?’
생생한 알람 소리와 함께.
쿵!
“아얏!”
인기척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여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헤어밴드를 한 채 잠옷차림으로 칫솔을 입에 우겨넣은 여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음? 여기는….”
그녀는 연희였다.
‘최근에 접촉했던 음의 기운을 가진 자로 쟤가 소환된 거야?’
연희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운을 발견한다.
“어떻게 된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양치질을 하다가 소환됐는지 입에 치약 거품을 한가득 문채 멍하니 시운을 바라보고 있다.
“아놔… 이게 어떻게 된거래!!”
연희는 양치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지 얼굴을 급히 돌리고 퉤, 거품을 뱉었다.
드드드드!
뒤이어, 뒤편에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공간이 균열되면서 구멍이 만들어졌다.
‘설마? 한명 더?’
설마라는 예상은 곧 현실로 실현되었다.
쿵!
여성 한명이 또 소환되었다.
“으음?”
여성은 침음 소리를 내며 눈을 비볐다.
역시 낯익은 얼굴의 여성이다.
바로 조무사 성혜였다.
“……응? 내가 꿈을 꾸나?”
성혜는 자다가 소환 됐는지 눈꺼풀을 반쯤 감은 채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악. 입 행구지도 못했는데!”
옆편에서 연희가 촐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성혜는 눈을 완전히 떴다.
“꿈? 아닌가?”
성혜는 중얼 거리더니 머리맡에 있는 안경을 썼다.
“뭐, 뭐야? 여긴 어디? 꿈이 아니야?”
시운은 난감함과 미안함에 잠시 고개를 파묻었다.
‘하아. 나 때문에 자고 있던 여자하고 씻고 있던 여자가 동시에 여기 오게 됐네…….“
일단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
“아니! 오밤중에 왜 나를 이곳에 오게 만들어요? 양치 중이었다구.”
연희가 씩씩거린다.
“그렇다면 여긴 던전이란 건가요?”
반면 성혜는 생각보다 태연한 반응을 보인다.
[네 개의 자연이 시작됩니다.]
허공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럼 몬스터가 나오는 거야? 아! 양치 중에 이게 무슨 일이야아! 그러게 왜 스크롤은 까가지구 이런 상황을 만들어요!”
연희가 시운의 어깨를 주먹으로 톡 쳤다.
그녀가 유독 신경질을 내는 이유는,
호감있는 남자에게 화장조차 안한 맨얼굴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연희는 자꾸 맨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왜 나하고 연희 씨가 소환된 거죠?”
성혜가 물었다.
“정확한 건 모르겠어요. 최근에 접촉했던 음기의 기운을 소환한다느니 하는 말과 함께…….”
시운은 두 여자를 번갈아 보면서 미안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주위가 변하기 시작했어.”
연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빈 공간 뿐이던 주위의 배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벽이 생기기 시작했고, 벽에 횃불이 내걸리기 시작하고, 바닥에는 길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칙칙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그어어.”
괴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였다.
시운은 곧바로 전투복으로 환복했다.
“일단 사과는 나중에 할게요. 모두 장비 다 착용해요!”
시운은 홍란검을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찰캉!
척!
‘매지션과 힐러라.’
시운은 성혜와 연희가 장비를 착용한 것을 훑었다.
성혜야 사제 클래스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연희는 완드와 H로브, 마법사의 망토를 둘러맨 것을 보고 매지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 공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네 개의 속성 중 하나인 화(火)의 열정 던전에 입장되었습니다.]
‘화라고? 불의 던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던전의 이름은 네 개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불 말고도 세 개의 속성의 던전을 더 클리어해야 한단 뜻인가.
갑자기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펼쳐진 통로 쪽에서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소환된다.
“그어어….”
“그윽.”
모두 스켈레톤 이었다.
“으아.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만 좀 징징거려, 연희 씨!”
“징징 안 되게 생겼어요, 내가?”
연희와 성혜가 투닥거렸다.
“일단 뒤로 물러나요! 저것들은 내가 처리할게요, 홍란의 일참.”
화르르륵!
뜨거운 불길이 피어나 통로를 확 덮었다.
“으앗!”
“꺅!”
솟아난 불길을 보자 연희와 성혜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자신의 온 몸을 감쌌다.
스스스스-
불길로 인한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연기가 걷히자, 스켈레톤들이 보인다. 그런데 녀석들은 멀쩡히 서있었다.
‘불이 안 먹힌다? 설마.’
이곳은 불의 던전이라 화염 계열의 마법은 먹히지 않는 것일까.
스켈레톤들의 몸에서 불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열정은 불과 같습니다. 불은 만들어지면 뜨겁게 타오르는 물질입니다. 불이 열정을 모두 삼키기 전에 던전을 클리어하세요.]
알람이 울린 후,
[00: 29: 59]
허공에 타이머가 생성되었다.
‘타이머? 제한 시간이 30분이란 말인가.’
“온다! 조심해요, 시운 씨.”
성혜가 소리쳤다.
뼈밖에 없는 스켈레톤들이 뼈마디를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부웅!
“그아악!”
“그에엑.”
“그으으으으.”
시운의 검질 일합에 스켈레톤 세 마리의 뼈가 그 자리에서 으스러졌다.
부웅! 부우웅!
연이어 휘두르는 홍란검에 스켈레톤들의 뼈가 차례차례 으깨졌다.
“파이어 볼트!”
연희가 뒤편에서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녀의 완드에서 불꽃의 구체가 피어올라 스켈레톤을 향해 직격으로 날아갔으나 스켈레톤은 멀쩡했다.
“불 계열의 마법은 안 통해요!”
시운은 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넵, 알겠어요.”
부웅! 부우웅!
“그엑!”
“그으으으…….”
해골의 뼈가 연이어 분해되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레저 실드.”
성혜의 완드에서 빛이 피어나 시운의 몸으로 향한다.
그리고 시운의 멧돼지 가죽망토에 둘러졌다.
방어력을 상승시켜주는 마법이었다.
빠가각!
“그에엑…….”
시운의 검질 일격에 스켈레톤의 뼈마디가 으깨졌다.
“질주.”
시운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곧바로 그들의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일참.”
검에서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기면서 스켈레톤의 갈비뼈를 가른다.
“카운터 일격.”
느린 해골전사의 검을 피한 후, 카운터 일격을 꽂아 넣은 시운.
곧바로 홍란검의 검신이 스켈레톤의 등을 꿰뚫었다.
“그에에엑! 그엑.”
스켈레톤은 몇 번 발작하더니 고개를 푹, 떨군다.
차악!
스켈레톤 몸통에 박힌 검을 빼낸 뒤에 가차없이 앞으로 검을 휘둘렀다.
부웅! 부우웅!
“그에엑.”
“그에에에엑…….”
스켈레톤들의 뼈마디가 연달아 박살나기 시작한다.
어느새 남은 스켈레톤은 다섯 마리.
“엄청 나….”
연희가 감탄했다.
“연희 씨. 가만 있지만 말고 지원 해요!”
“알았다구요. 나, 참.”
‘어라? 이놈들이?’
남아있는 스켈레톤 다섯 마리가 뒤로 물러나더니 뼈만 앙상한 손을 시운에게로 뻗었다.
화르륵! 화륵!
스켈레톤들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나 시운을 향해 쏟아졌다.
다섯 마리의 손에서 미사일처럼 불꽃이 연속으로 발사되어 시운의 몸에 터진다.
‘원거리 마법도 쓰네. 허나.’
시운은 끄덕없었다.
이미 홍란검과 화룡의 반지로 인해 화염저항률이 50%를 넘어서기 때문이었다.
화르륵! 화륵!
“그으으?”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고개를 갸웃 거리는 스켈레톤들.
“니들만 불에 강한게 아니라고.”
부웅-빠지지직!
“그에에엑.”
“그엑.”
스켈레톤 두 마리의 뼈마디가 시원하게 아작났다.
***
펼쳐진 통로를 향해 모두가 뛰고 있다.
뛰어가면서 고개를 들어 타이머를 바라봤다.
[00: 18: 27]
‘18분 남았다. 빨리 이 던전을 클리어 해야 해.’
쌔애앵!
앞쪽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화룡의 도약.”
시운이 곧바로 뛰어올라 전방에서 활을 쏘아대는 해골궁수 세 마리의 뼈를 그대로 아작낸다.
“아이스 블래스트!”
연희의 완드에서 얼음 구체가 좌우 두 마리의 스켈레톤 명치와 어깨를 강타했다.
“그윽!”
“그으으….”
아이스 블래스트를 맞고 얼어서 경직된 스켈레톤을 향해 성혜가 지팡이를 붕, 휘두르자 얼어붙은 해골들의 뼈마디가 분해된다.
“몬스터들이 끝이 없어.”
성혜가 중얼거렸다. 통로 저 너머와 좌우 그리고 뒤편까지 스켈레톤들이 마구 뛰어오고 있었다.
차앙!
시운의 홍란검이 스켈레톤의 검 세 개를 맞받아 쳐낸다.
곧바로 스켈레톤 한 마리의 복부를 걷어차서 부숴뜨리고,
주위에 있던 스켈레톤들의 검질로 부서냈다.
“내가 길을 열테니까 계속 따라와요!”
시운이 뒤를 보며 소리침에 성혜와 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상 상태에 빠졌습니다.]
“크윽.”
“괜찮아요? 시운 씨?”
시운의 신음을 들은 성혜가 힐을 시전한다.
“파이어볼을 하도 맞았더니 좀 데였는데, 괜찮아요.”
곧바로 시운은 맹인불괴를 시전했다.
상태 이상을 지워주고 특정 시간동안 상태 이상 무적이 되는 맹인불괴로 인해 화상은 말끔히 지워졌다.
타타타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펼쳐진 통로를 향해 뛰어갔다.
***
‘저건?’
눈썹이 휘날리게 뛰고 있는 시운 앞으로 바리게이트가 보였다.
탄탄하게 설치된 바리게이트 뒤로 해골 궁수들이 활을 겨누고 있다.
곧 저 화살들이 쏟아지리라.
“활이 날아옵니다! 다들 조심해요!”
시운이 소리치기가 무섭게 화살들은 빗발쳤다.
타앙! 탕!
날아오는 화살들을 검으로 마구 쳐내며 앞으로 달려갔다.
“질주.”
타타타타탁!
시운의 다리에서 오라가 피어나면서 속도가 빨라졌다.
쌔애앵! 쌔앵!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 걷어내고, 맞아가며 바리게이트를 향해 시운은 무식하게 돌진했다.
“화룡의 도약.”
빠지지직!
도약하여 중력의 힘을 더한 검질로 목재로 된 바리게이트를 완전히 아작냈다.
“그에에엑.”
“그아아악!”
해골 궁수들의 바로 앞으로 시운이 접근하자 궁수들은 맥을 못추고 죽어갔다. 확실히 활이 무기라 그런지 궁수들은 접근전에서 약했다.
해골들의 뼈마디가 몸통과 분리되어 바닥에 뒹구르고 또 뒹구른다.
‘저 놈은?’
시운 앞에 방금과는 다른 스켈레톤이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로 글씨가 떠올랐다.
[Lv. 70 해골 석궁수병]
“크아아아!”
놈이 포효했다.
저 놈이 보스인가?
확실히 다른 녀석들에 비해 뼈가 단단해 보였고, 들고 있는 활도 석궁이었으며, 화살의 크기는 사람의 허벅지만했다.
‘저거 한 대 맞으면 위험하겠는데?’
쐐애앵!
정조준하고 발사한 거대한 화살이 시운에게로 날아왔으나 그 화살의 움직임을 눈으로 캐치하고 어깨를 틀어 피해냈다.
“끄아아악.”
그런데 뒤편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시운이 고개를 돌렸을 때, 복부에 화살을 관통당한 연희가 바닥에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떨고 있었다.
“연희씨!!”
성혜가 곧바로 뛰어가서 힐을 시전했다.
“아악! 쿨럭.”
연희의 입에서 묽은 피가 쏟아졌다.
‘제길, 저 공격은 정연희한테는 치명적이었군.’
레벨이 70이나 되는 보스급 몬스터의 공격을 고작 레벨 20의 연희가 버텨내긴 힘들었다.
“히, 힐이 안 들어…….”
성혜가 안절부절했다. 이미 연희는 극심한 출혈 상태에 빠져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크악.”
순간 눈 앞이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희에게 정신이 팔려있다가 놈의 화살에 가슴팍을 맞은 것이었다
.
“끄우욱.”
허리가 완전히 꺽여버렸다.
가슴팍을 대포로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이 놈. 강한데?’
시운은 겨우 일어났다.
부웅! 일어남과 동시에 내지른 검을 해골석궁수병은 민첩하게 피해냈다.
움직임도 빨랐다.
[타이머가 3분 남았습니다.]
‘3분 밖에 안 남았다고?’
“연희 씨!! 정신 좀 차려봐. 눈 감으면 안 돼!!”
성혜가 떨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연희가 위험해.’
언제나 뽀얗던 연희의 얼굴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늘 생기넘치던 그녀의 눈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 앞이 아득해져 왔다.
타이머는 어느새 2분 56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시간 안에 반드시 클리어해야 한다.
긴박한 상황!
던전을 빨리 클리어 해야 연희가 살 수 있다.
또한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고.
‘나 때문에 사람들을 죽게 할 수는 없다. 피로도만 줄일 수 있다면 해볼만 하다.’
“그으으으.”
해골석궁수병의 아가리가 좌우로 일그러졌다.
놈은 이 상황을 즐기듯 웃고 있는 듯 했다.
부웅!
시운의 검질을 석궁수병이 가볍게 피해냈다.
-피로도가 누적되었습니다.
‘아아…. 제기랄.’
사실 평소 상태라면 어렵지 않게 석궁수를 제압할 수 있었는데, 20분이 넘는 시간을 몬스터를 잡으랴, 쉬지 않고 뛰랴 반복했기 때문에 스태미너가 바닥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검질 한방, 한방이 느렸다.
[00: 01: 59]
‘이제 2분도 채 안 남았다….’
시운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연희의 의식이 거의 나간 듯 보였고 그녀의 몸에서 피는 위험한 수준 이상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전 스크롤을 발동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안전 스크롤까지 발동을 못 한다고?’
그렇게 된다면 연희가 이곳에서 죽으면 진짜로 죽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시운 자신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스태미너가 바닥나 잔뜩 지친 몸을 일으켰다.
-피로도가 누적되었습니다.
-피로도가 누적되었습니다.
짜증나는 알람 소리가 연달아 귓가를 때려온다.
몸이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움직여지고 있다.
“그르, 그르르.”
석궁수는 해괴망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치 도발하는 듯이.
그리고 활을 시운에게로 겨누었다.
파지지직!!
“그으아아!!”
뒤편에서 날아온 번개의 구체를 얻어맞아 석궁수가 제자리에서 발작을 했다.
“시운 씨 나도 도울게.”
“조무사님! 이 놈은 내가 처리할께요. 날 믿고 정연희 씨를 계속 치료해줘요. 절대 죽게 내버려두면 안 돼요.”
“그치만 이대로 있다간 타이머가 끝나서 모두가 죽어.”
“날 믿어봐요.”
시운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자 성혜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연희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파아아악!
통로의 좌측 우측에 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벽이 허물어지자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흐르는 용암이 보였다.
“요, 용암?”
용암은 당장이라도 튈 기새로 매섭게 흐르고 있었다.
‘저 타이머가 지나면 저 용암들이 쏟아진다.’
쌔애앵!
화살이 또 한발 날아왔다.
눈으로 그 화살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보였다.
‘피, 피해야 돼에……크억.’
-피로도가 누적되었습니다.
누적된 피로도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시운은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휘청였다.
“크악.”
왼쪽 다리를 꿰뚫은 화살을 손으로 뽑아냈다. 왼쪽 다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있었다.
이 위기를 탈출할 묘안을 생각해내야 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로도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래. 열정.’
시운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레벨] 38
[생명력] 615/615 [마나] 208/208
[근력] <226>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열정] 0
[상태] 정상
[공복도] 38 [갈증도] 44 [피로감] 100
[여유 능력치] 3
눈 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스탯: 열정
[설명] 무언가 하나에 꽂혀서 열정적인 힘을 발휘한 당신에게 주어진 스탯입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피로도가 쉽게 상승하지 않습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특정 계열의 NPC에게서 얻을 수 있는 호감도,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방법이 없어, 올려보는 수 밖에.’
시운은 곧바로 열정에 잔여 스탯을 3 투자했다.
그러자,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레벨] 38
[생명력] 615/615 [마나] 208/208
[근력] <226>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38 [갈증도] 44 [피로감] 89
[여유 능력치] 0
‘피로도가 줄어들었다!’
놀랍게도 피로도는 줄어있었다.
“시운 씨!! 이제 40초 남았어요, 어서요.”
성혜가 소리를 지를 무렵 또 화살이 날아왔다.
“읏차.”
몸이 가뿐하게 움직여진다.
고개를 돌려 화살을 피해낸 시운은 살기를 띤 미소를 지으며 석궁수병에게 다가간다.
“이리와라. 40초 안에 죽여줄게, 질주.”
타타타타!!
질주 스킬을 사용하며 돌진하다가 또 한 번 날아온 화살을 허리를 굽혀 피하고,
“카운터 일격.”
카운터 일격을 발동시켰다.
놈의 쇄골뼈에 그대로 검신을 쑤셔박자,
“그르아아!”
놈이 비틀거렸다.
시운의 예리한 눈으로 석궁수병의 명치 사이에 초록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저건 코어다. 저 코어를 무너뜨리면 이 놈은 쉽게 죽는다.’
놈이 발작을 하며 시운을 밀어내려 힘을 썼다.
-카운터 일격 효과로 석궁수병이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맹인의 참격.”
시운의 검신이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검신은 정확히 석궁수병의 명치에 있는 코어를 꿰뚫었다.
푸욱.
“그으으으윽!!”
‘맹인의 참격은 출혈 효과가 있는 적에게 더 큰 대미지를 선사하지, 잘 가라.’
놈은 그륵,그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으로 명치를 꿰뚫은 검신을 감쌌다.
그러자,
“그으아아아!!”
코어가 금이 가고 결국 박살이 나버리자, 석궁수병의 육체는 그 자리에서 분해되어 공중으로 사라졌다.
[00: 00: 07]
거친 용암이 점점 시운에게로 튀기 시작했다.
-화(火) 열정의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됐다!’
7초를 남겨두고 어부지리로 클리어할 수 있었다.
불굴의 노가다 작업으로 허수아비 노가다를 하지 않았더라면 열정이란 스탯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운은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회귀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테고,
나머지 두 여성들은 이 자리에서 개죽음을 당했으리라.
***
“허, 허어엇!”
연희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일어났다.
여기가 천국인가?
설마 난 죽은 건 아니겠지?
“괜찮아?”
옆에 있던 성혜가 물어왔다.
“하아, 나 죽은 거 아니죠?”
“다행히도 시운 씨가 던전 클리어 해냈어.”
“진짜요?”
연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시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바닥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이시운 씨는 잘못된 거 아니죠?!”
걱정된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시운 씨는 괜찮아, 잠시 자고 있는 거야. 피로도가 쌓였다고 해서…….”
“휴우. 간 떨어지는 줄.”
정연희는 자신의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칼을 정리하면서 성혜를 바라봤다.
“고마워요.”
“뭐가?”
“내가 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을 텐데. 조무사님은 내 곁에서 날 계속 치료해줬잖아요.”
연희는 성혜와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그러자 성혜가 웃었다.
“푸하하하, 고맙긴. 별게 다 고맙다?”
“그치만.”
연희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저 남자를 허락한다는 뜻은 아닌 거 알죠?”
따콩.
“아얏.”
성혜는 웃으며 꿀밤을 먹였고, 연희는 머리를 감싸쥐고 웃었다.
“곧 다른 속성의 던전이 시작될 거야.”
“다른 속성의 던전이요?”
그때였다.
주위의 공간이 다시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배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산뜻한 숲의 내음이 느껴졌다.
“시, 시작된 건가?”
“시운 씨!!”
성혜는 곧바로 시운을 흔들어 깨웠다. 시운은 눈을 부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다음 던전이 시작됐어요! 어서 정신차리고 일어나요.”
“아아…….”
[목(木) 보호의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괴수들로부터 신비한 나무의 뿌리를 끝까지 지켜주세요.]
***
“온다!”
시운과 연희 성혜가 전투 준비를 한 채 한 곳을 바라봤다.
이 곳은 광활한 숲이다.
저 숲 너머로 어마어마한 녀석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로 트롤떼였다.
숫자만 무려 몇백 마리는 되는 듯 보였다.
“이걸 지키면 되는 건가?”
시운은 뒤를 돌아보았다.
뒤편에는 발카스 대륙을 상징하는 2500년 된 희귀나무 초나수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쿵!
쿵!
쿵!
쿵!
트롤들이 대지를 마구 짓밟으며 다가옴에 엄청난 진동이 연달아 울려퍼졌다.
“시운 씨. 저걸 다 해치울 수 있을까?”
성혜가 걱정스런 마음에 묻자,
“나한테 맡겨요. 목속성인 트롤은 나한테는 무엇보다 땡큐니까.”
곧바로 화룡의 도약을 사용하여 트롤들을 마중나갔다.
굳이 놈들이 코앞까지 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홍란의 일참!!”
화르르르륵!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
“후아……. 후아…….”
시운은 홍란검을 붙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주위의 숲은 온통 불바다로 변해 활활 타고 있었다.
그 많던 트롤들은 어느새 한줌의 잿더미가 되어 바람에 날아간 상태였다.
[괴수들을 물리치고 초나수를 지켜내었습니다. 목(木) 보호의 던전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
“이만 뒈져라.”
시운은 그대로 홍란검의 검신을 로브 모자를 뒤집어 쓴 여성에게 쑤셔박았다.
쑤욱.
“크욱.”
여성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툭, 떨어뜨리고 턱을 떨었다.
“내…… 내가 이런 어린 놈에게 이 꼴을 당하다니.”
“마지막 유언이냐? 어서 죽어. 그래봤자 넌 던전의 방해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차악.
검신을 빼내자 여성은 바닥에 턱을 쿵! 박고선 눈을 감았다.
[4써클 마법사 레나를 처치하였습니다. 뇌()의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였습니다.]
***
[마지막 던전. 물(水) 정화의 던전을 시작합니다.]
주위의 배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넓은 잔디가 바닥에 펼쳐진다. 그리고 하늘에는 맑은 구름이 생겨서 떠다녔고, 펼쳐진 잔디 너머로 초원이 펼쳐졌다.
실로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이번 던전은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연희가 말했다.
시운도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몬스터가 생성되지도 않았고, 이곳의 배경이 투박한 몬스터 던전 또한 아니었으니 말이다.
뒤이어 양 몇 마리가 저 편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정화의 던전이라.’
시운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냥 경치 좋은 초원일 뿐이었다.
‘마지막 던전은 쉬어가는 던전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원래 뭐든 마지막이 가장 어려운 법. 방심하지 말자.’
타타타탁.
저 멀리서 아이가 하나 뛰어왔다.
검은 머리에 10살정도 되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안녕하세요~?”
아이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웠는지 성혜와 연희는 웃으며 그 아이를 보며 손을 흔든다.
“제 양이 없어졌어요! 혹시 제 양을 보셨나요?”
아이가 연희와 성혜 시운을 한번씩 번갈아보며 물었다.
“아니, 못 봤는데.”
성혜가 답했다.
“그러면 제 양을 찾아주세요! 제 양은 꼬리가 다른 양과 다른 분홍색이에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성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시운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히든 던전의 마지막이 고작 아이의 양을 찾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불의 던전부터 목의 던전, 그리고 번개의 던전까지 모두 하나같이 쉬운 던전이 없었다.
하나같이 힘들고 빡센 던전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던전에 와서 이런 초딩들도 깰 수 있을 것 같은 양을 찾는 퀘스트를 선사해준다라? 영 말이 되질 않았다.
“제 양이 어딨을까요~?”
남자 아이는 씩, 웃으며 성혜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
아이와 시운 일행은 한참을 초원을 돌아다니며 양을 찾았다.
그러나, 아이가 말하는 양은 보이질 않았다.
“내 양이 없잖아! 히잉.”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울지마, 울지마. 누나들이 찾아줄게.”
연희가 아이를 품에 안으며 토닥인다.
“근데 시운 씨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 마지막 던전이면 가장 어려워야 하는 게 정상인데 몬스터도 하나 없고…….”
“그러게요.”
“형들! 누나들! 저희 집에서 식사해요! 양을 찾으려면 배가 불러야 하잖아요~”
아이가 말했다.
“식사? 여기 집이 있니?”
“네, 있어요!”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시운은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의문스러운 저 아이. 아이의 바디시그널을 읽어보았다.
‘이럴 수가? 바디시그널이 아예 읽히질 않아.’
이상했다.
바디시그널은 사람의 속마음을 백 퍼센트 꿰뚫는 마법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표현에 솔직하고 큰 제스처를 취하며 바디시그널을 더욱 캐치하기 쉽게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시운은 남자 아이의 모습을 예리한 눈으로 정확하게 관찰했다.
머리칼부터 피부, 전신, 그리고 혈관의 움직임과 ………말을 하며 움직이는 아이의 안면근육의 형태까지.
순간 시운의 눈이 번뜩였다.
‘아, 알았다. 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