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화
퀘스트는 꽃길이다 (2)
“엇?”
졸음이 확 달아난 경비병은 곧바로 성벽 너머로 몸을 내밀었다.
그 순간.
“수리검 투척.”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 소리와 함께,
“컥.”
번쩍! 하며 무언가가 날아와 경비병의 얼굴을 강타했다.
날카로운 것이 얼굴쭉지를 찢는 느낌.
그대로 세상이 아득해지면서 경비병은 혼절했다.
***
“오오…. 아론 경!”
“케르만. 보고 싶었소!”
아론과 케르만이 공모자의 숲에서 재회했다. 그 둘은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대화를 나누었다.
[퀘스트 ‘감옥의 포로’를 완료하였습니다.]
[드워프 ‘케르만’과의 친밀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케르만이 다가와 물었다.
“정말 그 요새라고 불리는 크레이트 성에서 구출해왔구만. 믿을 수가 없어.”
“더 시킬 일 없나?”
시운이 물었다. 물으면서도 알고 있었다.
다음 퀘스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쯤 크레이트 성은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죄수가 탈출했노라고.
“자네라면 내가 더 맡기고 싶은 일이 있지. 지금 재료가 급하게 필요하다네.”
“말해봐. 다 쓸어다 한 포대기로 갖다 주지.”
“자네가 구해다 줄 재료의 양이 좀 많은데, 믿고 말하겠네. 트롤 껍질 100개와 붉은 트롤의 뼈 50개 트롤의 코어 1개를 가져다주게.”
[퀘스트가 발동하였습니다.]
[열정의 장비][히든]
공모자의 숲에 서식하는 드워프 케르만이 장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구해달라고 한다.
재료를 구해다 주자.
트롤 껍질 (0/100)
붉은 트롤의 뼈 (0/50)
트롤의 코어 (0/1)
보상: 케르만의 선물.
시운은 곧바로 트롤 공모자의 숲 깊숙한 내부로 진입했다.
***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시운은 트롤 시체로 다가가 몸을 숙였다.
“채집.”
채집 스킬을 발동시키자 시운의 손이 분란하게 트롤의 시체의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슥- 슥-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앞으로 49개만 구하면 되는 군.’
광역 스킬 홍란의 일참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런 트롤들 쯤이야 무더기로 단번에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이 좀 불편하긴 했다.
쇼트 단검을 들고 다음 타겟으로 향했다.
“그우우욱….”
“그에에엑.”
“그어억!”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채집.”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트롤 껍질을 획득하였습니다.]
[트롤 껍질을 획득……………… ]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두 시간쯤 흘렀을까.
지겹게도 트롤들을 잡고 또 잡아서 채집을 마친 시운은 레벨이 40이 되었다.
이미 공모자의 숲은 자정이 지난 시각이 되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근처에서 사냥하는 헌터와 용병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인벤토리 창.”
인벤토리 창을 열어보니 트롤 껍질이 어느새 102개나 모여있었다.
힘든 작업이었다.
이 야밤에 두 시간이나 트롤들을 잡아대고 그 껍질을 찢는 일을 하였으니.
‘그 다음은 붉은 트롤의 뼈.’
***
-붉을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의 뼈를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의 뼈를 획득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의 뼈를 획득하였습니다.]
한 시간이 또 지났다.
붉은 트롤들을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다.
‘붉은 트롤들은 확실히 까다롭네.’
붉은 트롤들은 트롤보다 확실히 강력하긴 했다. 맹인불괴를 사용하지 않으면 시운에게 출혈이라는 상태이상을 선사했으며, 일반 트롤보다 가죽이 더 딱딱하고 성격도 더 포악했다.
“퀘스트 창.”
퀘스트 창을 열어보았다.
[열정의 장비][히든]
공모자의 숲에 서식하는 드워프 케르만이 장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구해달라고 한다.
재료를 구해다 주자.
트롤 껍질 (102/100)
붉은 트롤의 뼈 (51/50)
트롤의 코어 (0/1)
보상: 케르만의 선물.
‘트롤의 뼈도 다 모았고, 이제 남은 것은 트롤의 코어군.’
트롤의 코어는 붉은 트롤이나 트롤에게서 얻을 수가 없다.
트롤리안이라는 보스급 트롤을 잡아야 얻을 수 있었다.
‘트롤리안이 있는 곳이라면.’
일단 시운이 알기로는 공모자의 숲의 지하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모자의 숲 깊숙한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도중에 나타나 습격해오는 트롤들은 쇼트 단검으로 신명나게 베어주면서.
“확실히 이렇게 어두운데 트롤들 면상이 확 나타나면 귀신 본 느낌이란 말이야.”
사냥을 하면서도 느꼈다. 솔플의 장점은 경험치와 아이템을 독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가끔은 파티를 맺고 사냥을 하는 게 심심하지 않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시운의 시선으로 계단이 들어왔다.
‘저곳이다.’
계단 양 옆에는 괴물 형상의 석상 두 개가 있었고, 그 계단 밑은 굉장히 어두운 지하도로 이어져 있었다.
***
[공모자의 지하도.]
뚝뚝-
천장에서 종유석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분위기는 음산함 그 자체였으며 일반인이라면 어두워서 앞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 같았다.
“음산하기 짝이 없네.”
시운의 혼잣말 소리가 울려서 지하도에 메아리가 되어 퍼지니 잠시 후, 무언가가 기척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시운의 육성을 들은 것이었다.
“크에에.”
몬스터의 머리 위로 창이 떠올랐다.
[검은 트롤 Lv. 60]
‘검은 트롤?’
시운은 자신을 향해 뒤뚱뒤뚱 다가오는 몬스터를 자세히 바라봤다.
지금껏 상대해왔던 트롤보다 크고, 놈의 나무로 된 팔과 다리가 시커맸다. 게다가 쏘아보는 눈도 그 어느 트롤보다 살기가 가득했다.
‘그래봤자 트롤이 트롤이지. 그런데 여긴 숲이 아니잖아?’
주위를 슬쩍 둘러본 시운은 비릿하게 웃었다.
곧바로 쇼트 단검을 허리춤에 집어넣고 홍란검을 꺼내들었다.
홍란검을 손에 쥐자 홍란검에서 피어나오는 불꽃에 의해 어두운 지하도가 환하게 밝혀졌다.
“여긴 숲이 아닌 지하도니까 좀 태워먹어도 되겠지?”
검은 트롤이 팔을 쭉 뻗으며 시운을 향해 선방을 날려왔다.
화르르륵!
“그으으윽!”
그러나 홍란검을 슬쩍 휘두르자 녀석의 몸은 그대로 불타기 시작했다.
활활활!
“그으으어어-”
한없이 불타고 있는 자신의 몸을 보자 발악을 하는 검은 트롤은 불을 끄기 위해 전신을 마구 뒤뚱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녀석의 나무가죽들이 화염에 휩쌓이면서 잿더미로 변해 땅에 흩뿌려졌다.
-검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목 속성의 트롤한테는 이 홍란검이 아주 제격이군? 그냥 녹네, 녹아.’
나무를 사정없이 태우는 쾌감이란 아주 짜릿했다.
뒤이어,
지하도 저 너머에서 시뻘건 눈들이 보였다. 그 눈들은 시운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다.
검은 트롤들의 눈이었다.
“그래, 어서 와라, 어서와.”
시운은 홍란검을 뒤춤에 들고 검은 트롤들 앞까지 돌진했다.
“홍란의 일참.”
화르르륵!
콰아앙!
***
-검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검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검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검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탄내 죽이는데.‘
어느새 코는 검은 트롤 껍데기가 타들어간 냄새가 가득 찔러왔다. 지하도는 이미 불길에 의해 종유석 뿐만 아니라 벽과 바닥이 시커멓게 타들어가 그을려져 있었다.
목 속성에 최적인 유니크급 무기와 높은 근력, 외계인 같은 눈을 지닌 시운은 자신보다 레벨이 한참 높은 트롤들을 개미잡듯 잡고 있었다. 동급 레벨의 타 헌터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억, 그어억!”
[검은 트롤전사 Lv. 65]
이번엔 조금 다른 생김새의 녀석이 다가왔다. 달려오는 속도도 방금 전 검은 트롤보다 빨랐고 손에는 투팍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래봤자, 트롤은 트롤.”
홍란검을 두어 번 휘둘러 주었다.
홍란검의 열기 효과에 의해 반경 안에 들어온 검은 트롤전사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
녀석은 불길에 녹아 괴상한 단말마의 신음을 내며 잿더미가 되어 땅에 쏟아졌다.
-검은 트롤 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
‘이쯤 됐으면 놈이 나올 때가 됐는데?’
빛 한줌없고 고약한 냄새만 가득한 지하도를 삼십 분간을 걸었다.
천장에서 무언가 툭, 떨어져 땅을 발발 뛰어다녔다. 지하도에 사는 쥐들이었다.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앞쪽에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동을 하지 않고 자고 있다가 깬 듯 했다.
‘저 놈이군!’
시운의 눈이 빛났다.
드드드득.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움직이자 놈의 몸에서 뼈마디가 우둑 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크아아아!]
힘이 가득찬 포효 소리를 듣자 단번에 이놈이 지하도의 보스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어선 놈의 크기는 지하도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다 덮을 정도로 거대했다.
“좀 많이 큰데?”
살짝 긴장이 되었다.
생각보다 커도 많이 컸기 때문에.
“크르르르르….”
칠흑의 지하도 속에서 창 하나가 놈의 머리 위로 스윽 떠올랐다.
[Lv. 70 트롤리안.]
트롤리안의 몸통에는 나뭇가지들이 무성했다. 저 나뭇가지들이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머리통에 돋아난 거대한 나뭇잎에는 하수도에 서식하는 벌레들이 가득 있었다.
‘저 놈의 몸에서 코어를 빼내려면 홍란검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랬다. 홍란검을 이용하면 녀석을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녀석이 잿더미로 변해버리면 채집을 통해 사채에서 코어를 꺼내올 수가 없었다.
곧바로 허리춤에서 쇼트 단검을 꺼내었다.
휙,
쇼트 단검을 말아 쥐었을 때는 이미 트롤리안의 거대한 발바닥이 시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꽤나 질긴 놈이네.”
시운의 얼굴에 긁힌 생채기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것이 놈의 몸통에 돋아난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계속해서 공격 해온다는 것이었다.
그 나뭇가지들을 짧은 단검으로 모조리 베고, 잘라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녀석의 나뭇가지가 고무줄처럼 늘어나 시운의 얼굴까지 도달했다.
허리를 돌려 잽싸게 피한 뒤.
“투척!”
수리검 투척 스킬을 사용했다.
수리검 하나가 시운의 품에서 날아가 트롤리안의 이마에 턱! 박혔다.
“질주.”
타타타타!
그 틈을 이용해 낮은 자세로 빠르게 달려갔다.
샤악! 샥!
앞을 가로막는 나무 줄기를 베어내고,
“일참!”
시운이 쥔 단검에서 스파크가 팍! 튀기며 트롤리안의 뱃가죽을 쑤셨다.
우직!
트롤리안은 괴성을 질러내며 입에서 이상한 액체를 질질 흘려냈다.
놈이 괴로워할 틈도 주고 싶지 않았다.
단검의 검신을 녀석의 눈 부분에 꽂아넣고 그대로 힘을 주어 밑으로 긁어내렸다.
[크아아아!!]
놈이 신명나는 비명을 쏟아냈다.
밑으로 긁어내리자 녀석의 눈부터 턱, 목과 가슴팍의 껍질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트롤리안의 몸통을 애워싸던 딱딱한 가죽들이 벗겨지자, 트롤리안의 몸속에 있던 코어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운은 트롤리안의 명치에 박힌 코어 옆으로 단검을 쑤셔박았다.
단검날이 녀석의 몸통에 박히는 손맛이 썩 좋았다.
[쿠에에에에-]
더는 움직일 힘 조차 없는 트롤리안의 마지막 괴성과 함께.
시운은 코어 주위의 가죽을 도려내서 공간을 만든 뒤에 반대손으로 코어를 빼내었다.
[트롤의 코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쿵!
코어가 몸밖으로 배출되자 마자 거대한 트롤리안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트롤리안을 처치하였습니다.
“됐다. 나이스.”
***
“벌써 가져왔는가? 정말 빠르군, 빨라.”
케르만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 야밤에 칼춤 좀 췄지.”
시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케르만에게 재료들을 건넸다.
트롤 껍질 (102/100)
붉은 트롤의 뼈 (51/50)
트롤의 코어 (1/1)
[퀘스트 ‘열정의 장비’를 완료하였습니다.]
“놀라워. 이 빠른 시간 안에 이것들을 다 구해오다니….”
케르만은 두 손으로 한가득 쥔 트롤들의 재료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리고 시운을 슬쩍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근데 자넨 잠도 없는가?”
시운은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너야말로 잠도 없이 공모자의 숲에서 하루종일 깨있으니 그렇게 키가 안컸지.’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 것을 간신히 눌렀다.
케르만이 품에서 무언가를 시운에게 건넸다.
“야밤에 재료를 구해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이건 내 선물이네.”
[케르만의 선물을 획득하였습니다.]
물건을 건네받은 시운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