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47화 (47/278)

제 47화

퀘스트는 꽃길이다 (3)

[힘의 비약을 획득하였습니다.]

힘의 비약이라고?

생소한 아이템이었다.

이런 아이템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이템을 살폈다.

[힘의 비약]

고대 무신의 힘을 액체로 압축시켜서 담은 포션.

‘힘을 올려주는 포션인가.’

쭈욱.

포션을 입에 머금었다.

맛은 쓴 이온 음료같은 맛이었다.

잠시 후,

알람이 울려왔다.

[근력 스탯이 4 상승하였습니다.]

‘근력 스탯을 올려주는 아이템이었구나.’

근력 스탯 1의 차이만으로도 스탯의 평가가 갈라지는 마당에 순수 근력 스탯 4를 올려주는 아이템은 굉장히 값진 것이었다.

경매장에 팔아도 골드를 짭짤하게 만질 수 있는 템이었다.

쭈욱-.

포션을 모조리 마시고 갈증을 해소한 시운은 케르만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직 부탁할 게 남은 표정인데.’

“케르만. 나에게 더 부탁할 일이 없나?”

시운이 물었다.

케르만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시운을 한참 바라보더니.

고개를 스르르 저었다.

“아직은 일러.”

이르다라?

시운은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아직 그 퀘스트를 수행할 레벨이 안 된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레벨이 부족하다는 뜻이야?”

“……….”

케르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알려줘도 될 텐데 알려주지 않았다.

“그 때를 만들어 오지, 뭐.”

레벨 업을 하면 그만이었다.

***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들아 그냥 떼로 다 기어나와라!”

공모자의 숲 한복판에서 소리쳤다.

넘사벽 스탯을 가진 시운에게 트롤 따위는 이제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쿵!

쿵!

시운의 도발을 들었던 것일까.

붉은 트롤들이 숲을 가로지르고 모여들었다.

녀석들은 괴성을 지르며 성난 발길질로 시운에게 다가왔다.

“투척.

휙!

“그어억.”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수리검 스킬로 일단 트롤 한 마리의 머리통을 찢어놨고,

“질주.”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폭발적으로 튀어나가 쇼트 단검의 검신으로 주위에 있던 붉은 트롤들이 닿는 즉시, 찢고, 베고, 처박았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윽.”

[상태 이상 ‘출혈’에 빠졌습니다.]

단검으로 난도질을 하다가 붉은 트롤 한 마리의 공격에 살점을 베였는데,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맹인 불괴.”

[3분간 상태 이상이 무적이 됩니다.]

-출혈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빠지직!

모여드는 붉은 트롤 한 마리의 안면에 왼주먹을 꽂아넣었다. 그리고 반대편의 몸통에 박혀있던 단검을 뺀 뒤에, 녀석의 옆구리에 고히 쑤셔넣는다.

수욱.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레벨 업을 하여 41이 되었다.

이쯤이면 퀘스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케르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으음…. 아직은 이른 듯 싶네.”

케르만은 골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될 때까지 렙업 해주지.’

오기가 발동했다.

***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레벨 업 임팩트가 떠올라 전신을 기분좋게 감싼다.

무려 한 시간 동안 공모자의 숲을 이잡듯 뒤지면서 나무만 보이면 모조리 베어버렸다.

전신이 쑤셔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다시 케르만에게 갔다.

케르만은 잠도 없는지 공모자의 숲 한 가운데에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케르만. 이제 그 퀘스트를 줄 때 안 됐나?”

케르만이 등을 돌려 시운을 바라보더니,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구만.”

시운은 속으로 미소가 그려졌다.

‘레벨 42 이상이란 조건이 붙은 퀘스트였구만. 어쨌든 빨리 줘라. 보상도 풍족하겠지. 히든 루트의 퀘스트이니까.’

케르만은 강한 시선으로 시운을 올려다보았다.

“일단 자네가 열정적인 헌터라는 것을 증명해야겠네. 무투장에 가서 50명의 인원을 격파해보게. 내 그렇다면 자네의 열정을 인정하겠네.”

[무투장의 신인][히든]

모스칼 도시의 무투장에 출입하여 용병, 헌터, 이계인 가리지 말고 50명의 인원을 격파하자.

성공 조건: (0 / 50) 격파.

제한 시간: 24시간 이내.

보상: 퀘스트 ‘아픔이 있는 장비’ 수행 가능.

‘50명이나 격파를 하란말인가?’

무투장에 사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모스칼 도시 내부에 있는 무투장은 레벨 50 이하의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하다.

‘레벨 50 이하의 사람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

시운의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레 그려졌다.

***

어느새 해는 밝아서 모스칼 도시의 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열정 스탯이 3인 시운은 하루종일 트롤잡이를 해도 피로도가 누적되었다는 알람을 받지 않았다.

신기했다.

툭.

시운이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원형 모양의 홀 건물이 보였다. 인테리어는 현대식 건물에 가까웠다.

‘들어가 볼까.’

문 쪽으로 가는데 누군가가 손으로 앞을 막아섰다.

“이곳은 제한 레벨이 50 이하입니다.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디렉팅.”

관리인은 시운의 레벨을 확인한 뒤,

“안전귀가 스크롤도 챙기셨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

“스트라이크.”

“파이널 펀치!”

“도망가지 말고 들어와요. 어딜 가려고?”

“겨우 그 정도에 쓰러집니까?”

무투장 안으로 들어가니 한창 시끄러웠다.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헌터와 용병이 뒤섞여서 마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일종의 실전 감각을 익히는 곳이었다.

상대를 죽이고 소량의 경험치를 보상받는 곳이기도 하다.

밖에서 시비가 붙은 사람은 당당하게 이곳에서 한판 뜨기도 한다.

가령 지인들과 친목질을 하면서 무더기로 몰려다니며 더티 플레이를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 무투장은 초보 무투장의 개념에 속하기 때문에 아레나 랭킹 시스템과 같은 개념은 없었다. 또한, 죽더라도 안전귀가 스크롤을 사용할 수 있어서 언제든 마을에서 안전히 부활할 수 있었다.

시운의 눈으로 헌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웠다.

“저기 저 사람 장비 봐봐.”

“오, 무기에서 불이 나는데? 에픽급 이상인 것 같아.”

“에픽급? 그러면 저 놈부터 죽여야지.”

활을 든 헌터 한 명이 소리쳤다.

그 소리가 들리고,

쌔애앵!

곧바로 시운에게로 활이 날아왔다.

차앙!

홍란검을 깔짝이자 화살은 맥없이 타서 바닥에 툭, 떨어진다.

“화살을 쳐냈어? 야, 뭣들 해? 다굴 놓자!”

“저 사람 무기가 우리들하곤 급이 달라.”

수많은 헌터들의 시선은 시운에게로 가있었다.

씩.

시운이 웃었다.

“웃어?”

“이봐요, 쪼개긴 왜 쪼개요? 여기서 맞아도 실제로 맞은 것처럼 통증 느껴지는 거 모르나?”

확실히 격전을 벌이고 있는 무투장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격앙적이었다.

곧바로 대검을 든 전사 하나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무기 멋진데? 어디, 얼마나 센지 보자고?”

뒤이어, 전사와 지인으로 보이는 헌터들이 시운에게 원거리 공격을 감행한다.

“홍란의 일참.”

시운이 나직이 속삭였다.

화르르륵!

“어?”

“피, 피해!”

콰아아앙!!

폭발의 열기는 순식간에 홀 안을 뒤덮었다.

-헌터 박종민을 처치하였습니다.

-헌터 김해나를 처치하였습니다.

-헌터 정태운을 처치하였습니다.

-헌터 박용규를 처치하였습니다.

-헌터 강준을 처치하였습니다.

-용병 하요스를 처치하였습니다.

-용병 메이를 처치하였습니다.

-용병 제노스를 처치하였습니다.

폭발의 열기가 가시자,

시운에게 스킬 한방을 거하게 맞은 헌터들은 자리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타서 몰골이 안 보일 정도로.

그들의 몸은 이내 홀 안에서 사라졌다. 안전귀가 스크롤이 발동된 것이었다.

“오호라. 한 방에 여덞 명 킬이라?”

시운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저 헌터 엄청나….”

“방금 스킬 봤냐?”

“저 사람은 건들지 않는 게 답이야.”

헌터 몇 명이 수군거리더니 슬그머니 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시운을 보는 눈은 마치 맹수를 맞닥뜨린 초식 동물의 눈이었다.

“미안한데, 내가 깨야할 퀘스트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서 죽어도 부활할 수 있잖아요?”

시운이 그들에게 흘리듯 말했다.

그와 동시에!

“화룡의 도약.”

무섭게 위로 뛰어올랐다!

“날았어.”

“씨발. 우리 쪽으로 오고 있잖아?”

“멀티 샷!”

차앙. 차앙!

날아오르는 화살들을 모조리 쳐내며 하강하여 땅에 착치한 즉시, 헌터 한 명의 가슴팍을 베었다.

“컥.”

헌터가 숨빠지는 허무한 신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헌터 정연민을 처치하였습니다.

단 일격이었다.

‘8명째.’

화륵!

“아아아악! 뜨거워.”

“화상 입었잖아. 뭐하냐고! 힐 좀 줘봐!”

홍란검 반경에 놓여있던 나머지 헌터들의 몸에 불이 붙자 헌터들은 몸을 팔딱거렸다.

샤샥!

“윽?”

헌터 한 명이 신음을 뱉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다.

-헌터 장원빈을 처치하였습니다.

“일참.”

푸슉.

“으아악….”

쿵.

-헌터 장연아를 처치하였습니다.

“싱거운데.”

시운은 홍란검을 휙휙 휘두르며 독백했다.

너무 쉬웠다.

레벨 50이하의 인원만 모일 수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이곳에서 시운은 단연 여포였다.

어느새 무투장에 있던 대부분의 인원들은 시운을 경계하며 시운에게서 멀어진 상태였다.

“다 죽여볼까?”

시운의 눈이 빛났다.

“질주.”

곧바로 홀 중앙을 미친 듯이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

두 남자가 검격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의 빠른 공격에 반대편 남자는 배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끄으윽.”

찰캉!

검을 검집에 넣은 남자의 눈은 강인했다.

‘반드시 그 놈을 다시 만나 요절내버리고 말 테야.’

남자의 다짐은 굳건해 보였다.

얼마 전 오크의 전장터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자신을 개패듯이 팼던 그 멧돼지 가죽놈을 생각하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입술을 비집어 씹으면서 남자는 눈을 힘주어 떴다.

그 남자는 용병 데른이었다.

‘그 놈과는 반드시 만나게 돼 있다.’

그때보다 한층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당장에라도 그놈을 만난다면 그때의 복수를 되갚아주리라!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꺄아아악!”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데른은 눈을 움직였다. 여성 헌터가 검을 맞고 배를 감싸쥐고 쓰러지고 있었다.

뒤이어,

“으헉.”

“그, 그만 따라오라고요!”

“여긴 그냥 연습용 무투장이야! 그렇게 악의적으로 할 필요 없잖아?”

“아아악!”

들려오는 헌터들의 비명.

한 남자가 헌터들을 미친 듯이 쫓아가며 도륙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칼에 맞은 헌터들은 나무가 쓰러지듯 우습게 픽픽 쓰러졌다.

그런데.

저 남자 낯이 익다.

낯이 익어도 너무 익단 말이다.

‘대검을 쓰고 휘두르는 게….’

데른은 남자의 움직임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분명 그 놈과 겹친다. 멧돼지가죽을 둘러썼었던 그놈.

근데 저 남자는 멧돼지망토는 착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왠지 검을 다루는 움직임과 스킬이 일치했다.

그놈이 맞는지 확인해봐야 했다.

“풍속의 망토!”

데른의 망토가 펄럭였다.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타타탁!

데른은 말이 질주하듯 그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기척 소리를 듣고 남자가 데른에게 시선을 주었다.

“혹시 오크의 전장터에서 사냥했던 그 놈 맞나?”

데른이 물었다.

확신한 것은 아니지만 저 남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안다. 그 놈이 맞는지를.

“응? 넌 그때 그 용병?”

목소리도 말투도 일치한다.

그 녀석이다.

순간 데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잘 만났다, 이 개자식아.’

곧 만나게 될 거라고 믿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이야.

데른은 곧바로 대검을 겨누어 쥐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치욕의 복수를 할 날이 오게 된 것이었다.

‘나에겐 비장의 스킬이 있다고.’

데른이 그 남자를 향해 대검을 겨누었다.

“그때 날 그렇게 패고 내가 복수할거란 생각은 안 했냐.”

“딱히.”

“안 했다고?”

“너같은 녀석들은 한 번 호되게 당하면 복수할 엄두도 못 내지 않나.”

남자는 태연스럽게, 아주 태연스럽게 말해왔다.

데른은 어금니를 꽉 씹었다.

난 그날 후로 밤에 잠을 편히 못 잤는데.

‘넌 무투장에서 나한테 맞고, 마을 밖으로 귀환 당하면 그때 진짜 죽는거다.’

데른은 자신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 무투장에서 무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스킬까지 습득한 상태.

‘이제 사용해볼까?’

데른이 남자를 노려보는 동안 남자는 멍한 눈으로 데른을 응시하고 있었다.

긴장은 전혀 안 된다는 눈빛.

그 눈빛이 더욱 자존심을 긁어 화를 치밀어오르게 했다.

‘건방진 새끼. 감히 방어조차 안 하고 있어? 아주 좆되게 해줄게. 이 스킬로.’

그때였다.

데른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

“석화술.”

데른의 얼굴에 악마의 미소가 번진다.

‘걸려들었다!’

예상대로 녀석의 발끝부터 다리 위까지가 돌처럼 굳어가고 있다.

그게 석화술이었다.

‘절대로 풀지 못할거다.’

레벨 50 이하만 출입할 수 있는 이곳 무투장에서 석화술은 거의 무적과도 같은 스킬이었다.

50이하의 헌터나 용병들에게는 석화술을 해제할 수 있는 스킬이 보통 없다고 보면 된다.

“………….”

녀석이 말이 없다.

어느새 녀석의 쇄골 부분까지 하얀 돌로 가득 덮여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 어떠냐? 못 움직이겠지? 답답해 뒈지시겄지?”

“………….”

녀석은 말없이 데른을 노려보았다. 복수를 위해 그동안 밤잠을 설친 것만 생각하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그런 개망신을 준 그 놈이 내 앞에 있다.

“마무리는 어떻게 요리해줄까? 대가리를 잘라서 그 고통을 맛보게 해줄까.”

데른은 혀를 내밀고 낼름거렸다. 헌터 녀석은 멍하니 데른을 바라만 볼 뿐. 할 수 있는게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못 움직이니까.

“큭큭큭. 이제 그대로 되갚아 줄 시간이다. 참고로 네가 마을 밖으로 귀환되면 쫓아가서 또 죽여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데른의 검이 녀석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검신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잘 가라. 블레이징 어택.”

데른의 검신에서 파아란 오라가 강력하게 피어올랐다. 그렇다. 이제 오크의 전장터에서 나에게 주먹찜질을 시전했던 저 놈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일 시간이다!

그 순간. 녀석의 안광이 진해졌다.

그리고 녀석의 입술이 살포시 움직였다.

“맹인불괴.”

“소용 없다. 이거나 처먹………욱?”

컥.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시야가 마구 뒤틀린다. 지금 이 상황은 그때와 같은 상황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석화술을 걸었는데.’

마구 흔들리는 시야로 녀석이 흐릿하게 보이고 있다. 녀석은 놀랍게도 움직이고 있었다.

“끄억-”

오른쪽 가슴에서 뜨거운, 그러니까 너무나 뜨거운 느낌이 일었다. 몸이 불타는 기분. 처절하게 몸이 떨려왔다.

의식이 흐려졌다.

위를 통해 입밖으로 무언가가 쏟아져 나갔다.

[사망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안전귀가 스크롤을 사용하여 근처 마을로 강제 귀환됩니다………]

‘뭐, 뭐 이 씨팔?’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번만 세 번째로 일어나고 있었다.

***

숲 한 가운데에서 케르만은 불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 활력 가득하게 보였던 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불안해 보였다.

시운은 케르만에게 다가갔다.

케르만은 시운의 기척에도 하늘에 고개를 고정한 채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시운의 망막으로 케르만의 동공이 비쳤다. 케르만. 그의 동공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케르만?”

“아, 왔는가?”

시운이 바로 옆에서 이름을 불렀을때야 케르만이 시운을 반겼다.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시운이 물었다.

“방금 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졌다네.”

케르만은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는 현계에서는 별똥별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좋다고 구경도 가고 소원도 빌던데. 여긴 다른 개념인가?”

케르만이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었다.

“아니, 그런 개념이 아닐세…. 방금 떨어졌던 별은 발카스 대륙을 구원하고 죽은 검신의 별자리였어.”

“검신의 별자리?”

반문하는 시운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이들의 대화 속에 언급되는 검신의 별자리는 이계의 고대 검신. 레딘의 별자리를 뜻한다. 세상의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나타나 악에서 세상을 구원했었던 영웅 레딘.

그가 술법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던 그 날.

그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빛이 튀어나와 하늘로 뻗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뻗어간 그 빛은 하늘 위로 계속 뻗어가 우주의 별이 되었고 한다. 그래서 이계 사람들은 그 별을 레딘의 별자리라고 이름 지었다.

그 별자리는 이계에 초재앙이 나타날 때마다 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라도 하듯 별을 떨어뜨렸다.

레딘은 세상을 위해 혈전을 벌이다 죽고,

밤하늘의 별이 돼서조차도 이계를 걱정하고 있다는 구슬픈 이야기는 이계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고 내렸다.

시운 또한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레딘의 별자리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시운이 물었다.

“방금 레딘의 별자리가 떨어졌다는데 그 별자리가 떨어지고 난 후마다 정말 이계에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별은 거짓말을 안 한다네. 걱정은 되지만 어차피 일은 막을 수 없이 일어날 것인데 뭐 어쩌겠는가.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이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곧 일어날 게야, 아주 큰 일이.”

케르만은 수심이 서린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케르만은 상념을 떨쳐내고 시운에게 물었다.

“무투장에는 다녀왔는가?”

“오십 명 모두 잡았다.”

“자네, 벌써 오십 명을 상대하고 왔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고작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케르만은 반신반의 하며 기록을 확인했다.

[무투장의 신인][히든]

모스칼 도시의 무투장에 출입하여 용병, 헌터, 이계인 가리지 말고 50명의 인원을 격파하자.

성공 조건: (50 / 50) 격파.

제한 시간: 24시간 이내.

보상: 퀘스트 ‘아픔이 있는 장비’ 수행 가능.

[퀘스트 ‘무투장의 신인’을 완료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짧은 시간에 오십 명을 격파했군.”

케르만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어느새 케르만은 시운을 늠름한 헌터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운은 케르만이 어서 다음 퀘스트를 내려주길 바랬다.

이번 퀘스트는 보상이 없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기 때문이다.

‘보상 없는 퀘스트는 아무리 연계 퀘스트라도 똥 싸고 뒤 안 닦은 기분이란 말야.’

말 없이 케르만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좋네…. 자네의 열정은 증명 되었네. 다음으로 자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어.”

“말해봐.”

“모스칼의 검은 상인을 만나서 레이몬드 백작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게.”

“그것만 알아오면 되나?”

“단 조건이 있네. 검은 상인은 정보를 파는 인물이야. 그래서 도박을 통해서 정보를 얻어야 하네. 할 수 있겠는가 모르겠군.”

“도박?”

도박이란 단어가 이질적으로 들렸다.

순간. 알람이 울려왔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아픔이 있는 장비-1][히든]

모스칼 지역의 검은 상인을 만나서 레이몬드 백작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자.

레이몬드 백작에 대한 정보 (0/1)

보상: 케르만과의 친밀도 상승.

제한 시간: 24시간 이내.

‘아픔이 있는 장비-2’ 수행 가능.

실패 또는 거절시 패널티: 케르만과의 친밀도 하락.

일단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도박이란 말이 자꾸 걸린다.

“꼭 도박을 해서 정보를 따와야 한다는 말이지?”

“가보면 알것이네.”

“잠깐만. 더 알려줄 수 없어?”

“……….”

케르만은 더는 알려주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일단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시운은 곧바로 공모자의 숲을 나와 모스칼로 향했다.

***

“실례합니다, 이곳에 검은 상인이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시운은 지나가는 경비병을 붙잡고 물었다. 경비병은 완봉된 투구의 덮개를 열고 얼굴을 내비추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다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구 붙잡고 물었다.

“실례합니다, 검은 상인이 이곳 모스칼에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글쎄요. 검은 상인이 뭐지?”

곰같은 체구의 용병 하나가 지나간다.

그에게로 얼굴을 들이밀고 냅다 물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곳에 검은 상인이 있다는데 혹시 아십니까?”

“잘 모르겠소. 그게 뭐요?”

“아…….”

모스칼 주민들 대부분이 모른다는 눈치였다.

‘분명 케르만이 검은 상인이 모스칼 지역에 있다고 했는데.’

이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잡화점이나 장비점에 죽치고 장사만 하는 판매원들한테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겠지.’

곧바로 잡화점부터 들렸다.

“검은 상인? 들어는 봤는데 워낙 신출귀몰한 사람이라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네요.”

그 다음으로 무기 상점에 들렸다.

“모릅니다. 무기 살 거 아니면 나가시오!”

그 다음으로 여관에 들려보았다.

“상인은 아는데 검은 상인? 그게 뭣이요?”

“………….”

다 모른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모스칼을 직접 뒤져서라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

한 시간을 헤맸다.

검은 상인의 위치를 안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게다가 검은 상인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을 구석구석 둘러보았으나 그런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끄으. 골 아픈 퀘스트를 주었군.’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찾아야 하나.

아니, 오늘 찾지 못하면 내일 찾을 수 있단 법도 없다.

게다가 제한 시간이 걸린 퀘스트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음 퀘스트도 없다.

게다가 이 퀘스트는,

히든 퀘스트.

반드시 수행해서 보상을 타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도박을 통해 정보를 파는 상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상인에게서 도박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도박이란 것은 엄염한 위법 행위로 모스칼 도시 한복판에서 했다간 근위대에게 검문을 당하고 제재를 받는다.

‘도박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겠지. 도박장을 찾아봐야겠군.’

광장 한복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하나 훑었다.

평범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평범한 사람은 도박에 대해 관심도 없을거야. 딱 티가 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걸어가는 사람의 얼굴과 입은 옷, 그리고 표정 속에 섞인 바디시그널을 살폈다.

바디시그널에 ‘초조함, 중독’ 이라는 신호가 붙은 사람이 도박장으로 향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참을 사람들을 훑어봤다.

그때였다.

‘……!’

시운 앞으로 한 사람이 지나갔다.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의 사내였다.

턱수염 밑으로 막걸 리가 촘촘히 묻어있는 사내의 걸음걸이는 매우 초조해보였다.

‘술취한 사람이 저렇게 급하게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를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그의 주름진 손바닥에 무언가가 자국이 묻어있었다. 그것은 화투의 표면 자국이었다. 그 자국은 손가락 마디마디 모두 묻어있었다.

‘찾았다!’

확신이 들었다. 저 사람은 도박꾼이라는 것을.

흙더미 속에서 진주라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운은 곧장 그를 미행했다.

***

‘술이 저리 취했는데도 잘도 걸어가는군.’

술취한 남성은 어깨를 마구 흔들릴 정도로 균형을 못 잡으면서도 어디론가 홀린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그는 모스칼 도시의 끝의 골목으로 우회했다.

그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골목의 끝에 허름하고 후미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이 건물이 도박장인가?’

술취한 남성은 건물이 보이자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쫓았다.

***

시운의 눈으로 건물의 벽이 들어왔다.

인테리어조차 하지 않아 벽지가 다 뜯어나간 벽이 음산하게 느껴졌다.

터벅. 터벅.

사내는 팔자 걸음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 통로가 펼쳐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 통로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의 사람들이었다.

“씨이팔, 씨팔, 씨이팔!!”

욕짓거리를 흘리며 살기를 띠고 걸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세상을 잃은 듯한 허무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아마도 도박을 통해 돈을 탕진한 사람일 것이다.

통로를 통해 많은 방이 보였다.

술 취한 사람을 따라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을 저지하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다섯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애워쌓고 있었다.

‘여긴가?’

그 틈으로 걸어갔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범상치 않은 외모의 늙은 남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앞 판자 위에는 종이컵 세 개가 보였다.

검은 로브의 사내 앞에 앉은 남성이 물었다.

“차원의 호수의 괴물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까?”

“B급. 20만 골드.”

검은 로브는 낮은 음성으로 답했다.

시운이 검은 로브 앞으로 불쑥 다가가 말했다.

“혹시 당신이 검은 상인입니까?”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게.”

“……….”

시운은 뻘쭘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일단 맞는 것 같다. 단호한 음성부터 생김새까지 검은 상인이 유력하다.

***

“1번.”

“1번?”

검은 로브가 1번 자리에 있는 종이컵을 연다. 그러나 종이컵 안은 비어있다.

“아아아악!!”

맞은 편에 앉은 사내가 머리털을 감싸쥐고 고개를 떨군다. 고개를 떨군 사내는 입술을 비집어 씹으며 턱을 떨었다.

“더 하겠는가?”

“아아, 이, 이번 판은 물려주면 안 됩니까? 쓰면 안 되는 돈을 썼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릴!”

검은 로브가 고개를 들고 맞은 편의 사내를 쏘아보았다.

“………으으 알겠소. 가면 될 거 아니요!”

자세히 보니 검은 로브의 왼쪽 눈동자가 없었다. 그냥 보아도 소름이 돋는 눈인데 저렇게 쏘아보니 진상들은 그냥 해결되는 모양이었다.

***

“자네 할 건가?”

어느새 시운의 차례가 다가왔다.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로브의 앞으로 앉았다.

“하는 방법은 아는가?”

검은 로브가 물어왔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하는 광경을 다 보았기에 방법을 숙지한 상태였다. 도박을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검은 로브에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말하고,

검은 로브는 그 가격의 값어치에 대한 가격을 매긴다. 그리고 제시한 가격만큼의 골드를 받고,

종이컵 세 개 중 하나에 학 모양의 화투를 넣는다. 그리고 종이컵 세 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화투가 담긴 종이컵을 찾아내면 정보를 얻는 것이었고 못 찾으면 쌩돈만 날리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내 눈으로는 이 까짓거 다 보인다.’

방금 도박을 한 사람들은 모두 화투가 든 종이컵을 맞추지 못해 절규했었다. 그러나 시운은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원하는 정보를 말하보게.”

“레이몬드 백작에 대한 정보를 원합니다.”

“S급. 50만 골드.”

“50만 골드나 한단 말이요?!”

시운의 눈이 커졌다. 50만 골드라니. 아무리 S급 정보라도 단가가 너무 센 거 아닌가.

“할 텐가. 말 텐가.”

고민이 되었다.

50만 골드는 F랭크 시운에겐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나.’

이 퀘스트는 연계된 히든 퀘스트다. 결국 보상은 50만 골드보다 더 값어치 있는 보상이 떨어질 것이다.

“하겠습니다.”

시운은 인벤토리에서 50만 골드를 꺼내어 검은 로브에게 내밀었다. 금화가 우수수 떨어져 검은 로브의 손에 담긴다.

검은 로브는 금화를 빠르게 세어보고서 손을 옆으로 뻗어 둥글게 말려있는 스크롤을 꺼내쥐었다.

스크롤은 빨간색 끈으로 묶여있었다.

“여기에 레이몬드 백작의 정보가 들어있네. 자네가 성공하면 이걸 줄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알지?”

“시작하시죠.”

검은 로브는 화투를 시운에게 내밀어 보여주더니 종이컵 세 개 중에 하나에 넣었다.

시운은 그 화투가 들어간 종이컵에 눈을 떼지 않는다. 눈 한번 깜빡이는 것조차 참고 있는 중이다.

‘암만 빠르게 섞어봐라. 내 눈을 속일 수 있는지.’

“시작하겠네.”

샥샥샥샥!

순간.

엄청난 속도로 종이컵들이 검은 로브의 손에 의해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종이컵을 섞은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손을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넋놓고 놓칠 수 밖에 없는 속도였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다.’

S급 정보가 담긴 판이라 그런지 검은 로브는 필사적인 손놀림으로 종이컵들을 섞고 또 섞었다.

탁!

종이컵을 움직이는 손놀림이 멈추었다. 시운의 눈으로 종이컵 하나와 멈춘 검은 로브의 탄력없이 쭈글쭈글한 손만이 시선에 들어오고 있었다.

“다 됐네. 이제 하나를 선택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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