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48화 (48/278)

제 48화

외전 - 신화 속 재림

“저는….”시운이 입술을 떼려던 찰나였다.

검은 로브의 두 눈이 테이블 앞에 놓인 구슬로 번쩍 이동했다.

“이, 이럴수가….”

그의 육안이 닿아있는 구슬은 투명한 본래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검게 변해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로브가 고개를 들어 두 눈을 시운과 마주했다.

‘불안해 보이잖아?’

그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서려있었다.

이윽고 그의 떨리는 입술이 움직였다.

“레딘의 별자리… 곧 이 대륙에 대재앙이 시작될게야.”

레딘의 별자리.

그 유성우가 쏟아져 이계의 또 한 번의 위기가 시작 되었음을 알려왔다.

그럼에도.

이계의 인간들 대부분은 위기의식 없이 태연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별이 알린 사실이 바로.

세상의 격변이 돌연 시작 되었다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말이다.

바로 그 시각.

이계.

포탈리안 (Potalrian).

악마의 의식에 의해 세상과 분열되어 고도의 마력 없이는 닿을 수 없는 섬이었다.

지도에서조차 표기되지 않은 곳.

사람들의 말에 오르내리는 환상의 섬(島)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항해 중 보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곳을 알고 있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곳에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이들의 허상과 환상이란 허물에 상상으로 자리한 포탈리안.

그곳에서.

하나의 의식. 그러니까 세상을 뒤흔들 격변의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섬 중앙에 장대하게 펼쳐진 제단.

그리고 제단 위. 감겨진 눈의 아크 드래곤이 제물이 되어 있었다.

아크 드래곤(Ark Dragon).

이카루스 대륙의 창조주의 환수였다는 용. 생명을 창조하는 힘을 가진 괴수로 알려져 있다.

아크 드래곤의 사체로 검은 사제들의 시선이 모였다.

잠시 후,

마력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의 사체 가죽이 검은 열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감은 눈의 아크 드래곤의 안면 피부가 찢겨지며 타오르더니 불길은 점점 진화하여 드래곤의 머리를 태우고 순서대로 몸통을 앗아간다.

살점이 타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피어난 짙은 연기는 제단 주위를 가득 매웠다.

주위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워졌고,

몸이 들썩일 정도로 강한 지진과 함께 제단의 웅대한 마석들이 균열되기 시작했다.

지지지직-.

“그 분이 곧 깨어나신다.”

한 사제가 나지막히 말했다.

지켜보던 사제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더욱 엄숙해졌다.

‘드디어…!’

‘오오…. 세상을 뒤바꿀 그분이 깨어나시는 건가.’

‘이 세상은 선이란 것에 썩어빠졌어. 어서 깨어나셔서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그분의 부활과 함께 다시 악으로.’

의식을 지켜보던 사제들의 안광에서 빛이 뿜어졌다.

제단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의식을 지켜보던 사내의 입꼬리가 비틀어 올라갔다.

‘이로서 흑마법사의 두 번째 재림이 시작된 것인가.’

그는 김유한이었다.

前 헌터 랭킹 3위 출신의 랭커.

폭렬의 어쌔신이란 칭호를 가졌던 유망주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헌터연합에 반하고 블랙 헌터의 길에 들어선 남자였다.

김유한의 눈이 제단의 공중으로 움직였다.

공중을 가득 뒤덮은 연기는 악마의 형상으로 변하여 포탈리안 섬 주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썩어빠진 이 세상에서 인간의 탈을 쓴 벌레 새끼들을 마음껏 죽일 수 있게 해준다라….’

흥미로웠다.

저 존재가 깨어나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다.

그래서 택했다.

곧 깨어날 악마같은 그 존재의 개가 되겠노라고.

‘어서 세상에 나타나라. 고대의 흑마법사여. 마음 놓고 살인을 맛볼 수 있는 세상을 나에게 선사해라.’

김유한. 그의 손이 떨려왔다.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 그것들을 도륙내도록 인도할 존재의 재림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

“끄아아- 드디어 점심 시간이다.”

건물 안 모니터만 시선을 박고 있던 회사원의 남성이 기지개를 쭉 피며 말했다.

그 반가운 말에 모든 사람들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다.

“벌써 점심시간이야?”

여 사원이 반색하며 시계를 힐끗 본다.

“오늘 메뉴는 뭘로 할까나?”

“김치찌개 어떻습니까, 과장님?”

“김치찌개? 어제 술 진탕 마시고 오늘 해장겸 먹어서 또 먹기는 물리다. 다른 거 추천해봐.”

“에이…. 과장님 한 번만 더 드시면 안 되요?”

“억울하면 네가 과장하든가.”

“치잇. 과장니임!”

애교스런 여 사원의 앙탈이 이어진다.

평범한 회사 안.

월급에 매달려 몸을 굴리는 회사원들의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 메뉴는 회덮밥으로! 회덮밥 ………어라?”

머리가 반쯤 빠진 대머리 과장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방금 땅이 흔들렸어. 지진인가? 다들 느꼈어?”

과장의 말에 사원들이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지진이에요? 뉴스에 그런 속보 일절 없었는데….”

“과장님 아직 술 덜 깨셨나 보다!”

그러나, 과장은 심각하게 말했다.

“아니야. 분명 땅이 흔들렸다고.”

과장은 굳은 얼굴로 자신이 신은 구두에 시선을 박았다. 분명 자신의 구두가 바닥과 함께 흔들림을 분명 느꼈는데.

“어, 어어? 흐, 흔들린다!”

한 사원이 자신의 앞 자리에 모니터가 떨리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이윽고.

“어머!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

“진짜 지진인가봐!”

“빨리 폰으로 뉴스 채널 들어가봐.”

건물 안이 흔들리고 있었다.

드드드드드!

흔들림의 규모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뉴스 채널에는 지진에 대한 기사가 하나도 없는데!”

겁을 집어먹은 사원들은 곧장 겉옷을 챙겼다. 당장이라도 건물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였다.

그때였다.

우르르! 콰콰콰쾅!

건물을 뒤흔드는 청천벽력의 굉음이 울렸다.

눈이 왕망울만해진 사원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휴, 깜짝이야!”

“무, 무슨 소리였어요? 방금?”

“천둥 소리 아니였나요?”

“설마요. 밖에 비 안 오는데….”

“이런 마른 하늘에?”

오늘 일기 예보에는 분명 비 소식이 없었다. 물론 일기 예보는 항상 빗나가는 게 일쑤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방금까지 날씨는 굉장히 화창했다.

모든 사원들의 시선이 창가로 빗발쳤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데요?”

그때였다.

“저, 저, 저, 저길…… 봐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던 한 사원이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게 뭐야?”

“설마 번개 치는 거야? 아니, 아닌데…….”

그들의 눈으로 맞은편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주위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벼락? 번개? 분명 아니었다.

“꺄, 꺄아아아악!!”

여 사원이 경악의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왜 그래요? 김 대리.”

“거기 말고 저길 보시라구요, 저쪽.”

비명을 쏟아낸 사람은 다리를 떨며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뒤이어,

모든 사원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지진이 아니었다.

맞은편 5층짜리 건물 위로 하늘이 뭉개지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 소용돌이처럼 빨려드는 형상으로 변하더니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현실에선 절대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UFO?”

침묵하며 지켜보던 사원들 중 하나의 혼잣말에 모두가 하나둘씩 창가로 몰려들었다.

“방금 지진이 그럼 저것때문이었단 거에요?”

“유튜브! 저거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날 거에요.”

“진짜 UFO인가봐…. 회사에서 UFO를 보게 될 줄이야.”

“어머…….”

누군가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그 광경을 찍기 시작했다. 그 건물들 근처의 건물 창문마다 일제히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그 광경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문제의 그 건물 안.

“……….”

눈꺼풀의 작은 틈으로 빛이 들어왔다. 아주 환한 빛이.

남성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빛이라 그런지 굉장히 따가웠다.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천장. 천장이 보였다.

누워있던 남성은 눈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낯선? 아니, 처음보는 형식의 인테리어로 되어있는 방이 이질적으로 들어왔다.

곧장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다리를 짚었다.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남자는 방 안의 거울에 멈춰섰다.

‘이게 나란 말인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아주 앳된 남자의 눈이 반사된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입고 있던 상의를 걷어올렸다.

‘없다.’

분명 있어야할 진한 흉터가 보이질 않았다.

깨끗한 맨살의 상체.

그 붉은 머리의 검신에게 입었던 상처가 보이질 않았다.

돌아온 것이었다. 아니, 깨어난 것이었다.

남자는 거울을 한참을 바라봤다.

싱싱한 날것의 육체다.

비린내조차 가시지 않은 어린 남자의 몸으로 깨어난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남자의 입꼬리가 악귀처럼 비틀어 올라갔다.

‘어린 놈의 육체로 깨어났구나.’

만족스러웠다.

손가락을 오므려서 쥐어보았다. 마력을 끌어올리려 하자 단전에 힘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형편없는 약골이군.’

수천 세기만에 다시 세상을 맞이한 소감이란 감격적이었다.

실감 또한 나질 않았다.

‘이곳은 이계가 아니란 말인가.’

눈으로 주위를 요모조모 관찰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무한한 기억들이 떠올라 입력되었다.

‘……지금 이 기억들은 이 약골 놈의 생에 기억이로군.’

끼익. 방문이 열렸다. 열린 틈으로 한 여자가 얼굴을 들이민다.

“김유빈. 아픈 건 괜찮아? 오늘 학교 2시 전까지는 가야 돼.”

“김유빈?”

남자는 의아하게 반문했다.

그것을 본 여성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직도 아픈가 보구나.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오늘은 꼭 결석하지 말고 오라고 하셨어.”

“……….”

“어서 옷 갈아입고 학교 가자. 엄마가 데려다줄게.”

***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 안.

교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학생들의 시선이 주목됐다.

“이제 오는 구나. 어서 와서 앉아.”

선생이 말했다.

“나보고 어디에 앉으란 말이냐?”

“김유빈! 너 선생님한테 방금 반말한 거야?”

여 선생이 눈을 비집어 뜨고 유빈을 쏘아봤다.

“말이 헛나왔소. 어디에 앉으란 말입니까.”

유빈의 말에 지켜보던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선생까지 의아해했다.

오늘따라 쟤가 왜 저러나 하는.

“어디에 앉긴 네 자리에 앉아야지! 얘가 오늘 아프다더니 정신을 못 차리네.”

“……….”

김유빈이 책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은 그런 유빈을 마뜩찮은 시선으로 응시하더니 이내 수업을 진행했다.

“야, 야 김유빈. 가져왔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유빈은 옆을 바라봤다. 퉁퉁한 볼살에 까진 티가 나는 남학생이 기대감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돈 가져왔냐고 묻잖아, 병신아.”

학생은 선생 눈치를 살피면서 유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유빈이 말했다.

“닥치고 저 여자가 하는 말이나 들어라.”

“……뭐, 뭐?”

남학생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아니. 방금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평소에 괴롭힘이나 당하며 할말도 못하는 그 김유빈이 맞나 싶었다.

“너 오늘 머리 아프다더니 맛이 완전히 갔냐?”

유빈은 남학생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

“야. 야? 대답 쳐 안하냐?”

남학생이 유빈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쳤다.

그러자 김유빈이 고개를 돌려 남학생을 바라봤다.

“………허, 허억!”

남학생이 깜짝 놀라 신음을 내뱉었다. 살귀처럼 일그러진 김유빈의 얼굴을 보고.

심장이 뱃속까지 철렁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알던 김유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다.

“홍정훈! 너 수업 중에 유빈이랑 자꾸 떠들거니?”

여선생이 회초리를 교탁에 탁! 내리치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수업에 집중해. 딴청 피우지 말고 알겠어?”

“네, 네…….”

남학생은 선생 말을 듣는 척 하다가 다시 김유빈을 바라보았다.

“야, 김유빈. 너 오늘 왜 그러냐?”

“………….”

유빈은 시선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있다.

“하, 새끼. 오늘 아프다더만 진짜 대가리가 어떻게 됐나 보네. 너 수업 끝나고 보자.”

남학생은 가소롭단 듯이 유빈을 위아래로 훑었다.

***

‘이곳에선 이딴 쓸모없는 숫자 장난이나 배우는 군.’

유빈은 교탁 앞 칠판에서 수리 수업을 진행하는 여선생에 눈을 두고 있었다.

여선생의 눈이 곧 유빈과 마주쳤다.

“김유빈. 너 이번 기말고사도 수리 성적도 꼴찌였지?”

여선생이 물었다.

아이들 앞에서 유빈을 창피 주기 위함이었으리라.

“낄낄낄.”

“푸하하. 꼴~찌.”

학생 몇몇이 비웃었다.

“………….”

“선생님이 묻는데 왜 대답이 없어?”

여선생이 톤을 올려 물었다.

“………….”

유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

뒤이어 선생의 말이 쏟아졌다.

“창피한 줄은 아나보구나? 대답이 없는 거 보니. 김유빈! 이 공식 풀어봐, 어서.”

탁!

여선생은 칠판에 적힌 공식을 몽둥이 끝으로 가리켰다.

“f(x)의 값은 1이다.”

유빈이 귀찮스레 던진 대답에 선생의 눈이 커졌다.

“오오…. 김유빈?”

“1 맞아?”

“김유빈 아프다더니 집에서 공부 좀 했나 보네?”

학생들이 수근거렸다.

놀랄 만도 했다.

함수 문제는 커녕 구구단도 겨우 외울 줄 알던 게 김유빈이었으니까.

여선생은 살짝 놀란 눈으로 유빈에게 물었다.

“유빈이 너 컨닝한 거 아니지? 어떻게 1이 나왔는지 설명해봐.”

아무래도 못 믿겠는지 여선생은 공식을 설명하라 채근했다.

선생을 바라보는 김유빈의 안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유빈의 입술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교만한 암컷의 년아. 날 가르치려 들지마라.”

순간 교실 안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휩싸는 정적감.

분노한 여선생의 턱이 씰룩였다. 그녀의 목부터 턱끝까지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쿵!

쿵!

쿵!

쿵!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지나가고.

어느새 유빈 앞에 여선생이 다가와있었다.

분노도 분노지만 너무 놀란 여선생의 얼굴은 떨리고 있었다.

“너, 너… 방금 뭐라고 말했어?”

반면 학생들은 숨죽이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유빈.. 진짜 미쳤나봐.’

‘저 찐따같은 녀석이 학교 짤릴려고 그러나?’

‘쟤 오늘 대체 왜 저런대?’

김유빈은 눈을 비집어뜨고 묵묵히 여선생을 올려다봤다.

“너 방금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냐고!!”

“귀찮군.”

“…뭐?”

김유빈은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을 꺼내들어 여선생의 얼굴 앞으로 뻗었다.

“너 지금 이게 뭐하는 행동이야?!!”

여선생이 든 몽둥이가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몽둥이가 유빈을 내리칠 기세였다.

트러블 없이 맨들맨들한 유빈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리고, 픽!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마나줄기가 피어올라 여선생에게로 향했다.

여선생의 눈과 코, 귀구멍으로 검은 마나줄기가 들어가 그녀의 기억을 소거시켰다.

“으음? 내가 왜 여기있지?”

여선생은 초점이 나간 눈으로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다가,

“아 내가 수업 중 이였었나? 요즘 건망증이 심해서…. 자, 자 다들 수업 이어갈게요, 집중.”

머리를 긁적이며 여선생은 등을 돌려 분필을 잡고 칠판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이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고개를 파묻거나 바로 자리에서 엉덩이를 뗐다.

“김유빈 오늘 확실히 이상하지 않냐?”

“완전 다른 애 같아.”

몇몇은 유빈을 흘겨보며 수근거렸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유빈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마나를 아주 소량만 사용했는데도 몸이 피곤하다. 정말 약한 놈의 신체를 얻은게야.’

못마땅스러웠다.

다시 세상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은 감격스럽지만 이왕이면 마나를 버틸 수 있을 강한 남자의 신체를 얻었으면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빠악!

“야.”

홍정훈이 유빈의 머리통을 손으로 가격하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유빈을 내려다보았다.

정훈의 눈매는 분노가 가득했다.

“아까 했던 거 다시 해봐.”

정훈은 허리를 숙여 씩 웃으며 유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유빈의 눈이 스르르 움직여 정훈을 향했다.

“다시 해보라고! 개새꺄.”

정훈이 주먹을 쥐고 유빈을 향해 내리쳤다.

내리쳤는데.

“커허헉!”

쓰러진 것은 정훈이였다.

.

.

.

.

교무실 안.

정훈은 병원으로 실려간 상태였고 정훈의 어머니가 유빈의 어머니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다.

“당신 애 교육 똑바로 안 시켜?!”

“죄, 죄송합니다….”

“어디! 요즘 세상에 폭력을 휘두르게 애를 키우고 있어. 우리 아들 잘못되면 어쩔거야! 당신이 책임질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을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유빈의 어머니는 어쩔 줄 모르며 고개만 계속 숙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대꾸할 처지가 아니었으니.

유빈은 말없이 정훈의 어머니를 쳐다본다.

“이게 ,우리 아들 때려놓고 죄송하단 말도 없이 뭘 그렇게 쳐다봐? 야! 너 소년원 가고 싶어?”

유빈이 피식 웃었다.

순간 유빈 어머니와 정훈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정훈 어머니는 밀려오는 혈압에 뒷목을 잡았다.

“아, 이 이 이…… 당돌한 놈이? 방금 너 웃은거야? 웃은거냐고.”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우리 아들이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정말 죄송합니다. 김유빈! 뭐해!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 어서 사과 드리지 않고!”

유빈은 정훈의 어머니에게 손을 뻗은 뒤에 손가락을 튕겼다.

“너 뭐, 뭐하는 거야!”

유빈 어머니는 당혹스러움에 유빈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항상 말도 없고 소극적이고 부끄러움 많았던 아들이 오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유빈 어머니. 괜찮아요. 아이들끼리 서로 치고받을 수도 있죠.”

“………네?”

정훈 어머니의 말에 유빈 어머니의 눈이 커졌다.

울그락불그락 거리던 정훈 어머니의 얼굴은 어느새 미소가 번져있었다.

“이번 일은 좋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희 애도 평소에 애들 때리고 다니는 아이인데요, 뭐.”

“아, 그, 그래주시겠어요? 그래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지만.”

갑작스런 의외의 반응에 유빈 어머니는 벙쪄있다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폴더 접듯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정훈이 병원비하고 입원비는 제가 꼭……”

“아이구, 아니에요. 우리 정훈이가 맞을 짓 했겠죠. 맨날 애들만 때리고 다니다가 인과응보 제대로 당한 꼴이죠, 뭐.”

“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돈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우리 정훈이가 먼저 잘못을 제공했을 거에요. 좋게 이쯤에서 마무리 하시죠.”

정훈 어머니는 사람좋은 미소를 남기고 교무실에서 나갔다.

유빈 어머니는 멍하니 교무실 문만 바라봤다.

***

방 안의 컴퓨터 앞에 앉은 유빈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은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정말 형편없는 신체군.’

홍정훈이란 핏덩어리 애송이의 갈비뼈에 주먹질을 한 번 해줬을 뿐인데, 그 여파로 뼈가 시리고 손이 저려왔다.

게다가 소량의 마나만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술법을 행하는 ‘기억 소거’와 ‘생각 컨트롤’을 사용했을 뿐인데도 몸이 피곤하고 무력해짐이 느껴졌다.

마치 용으로 살다가 토끼의 몸속으로 빙의한 느낌이랄까.

‘이런 몸뚱아리로 예전의 내 마력을 되찾으려면 수많은 시간이 걸리겠군.’

예전.

그러니까 이 자가 말하는 예전이란 몇 천년도 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두 개의 다른 세상도 이어버릴 정도로 왕성한 마력을 지녔었으니까.

‘이게 키보드라는 거군.’

남자는 유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억을 토대로 키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을 그 위로 올렸다.

손 마디마디가 저절로 움직여 키보드의 자판을 수놓는다.

타타타탁.

키보드가 두드려지는 소리-

‘이계로 갈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한다.’

그에게는 반드시 이계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잠시 후,

모니터 화면 속으로 글자들이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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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년 지식 In 질문 제목: 이계로 가는 방법은? <내공 100>

답변 작성자 태양신

답변: 이계로 가는 방법이라면 하나 밖에 없죠. 헌터가 되셔서 가시는 수 밖에는. 채택 해 주시고 내공 백 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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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글 속에는 헌터라는 것이 되어야 이계로 갈 수 있단다..

‘인터넷이라. 미래의 인간들이 꽤 흥미로운 걸 개발해냈군.’

유빈의 기억을 이용하여 인터넷을 사용하며 헌터를 검색했다.

헌터에 대한 방대한 글들이 주르르, 모니터에 떠올랐다.

‘습득.’

그 글들은 유빈의 머릿속에 모조리 입력되었다.

이 또한 술법의 종류였다.

헌터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시험을 치루며 그 시험을 통과해야 이계로 향할 수 있다는 정보를 습득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이 이계로 넘어가려면?

‘적어도 일년 가까이 남았군.’

이곳 세상에서 인간들에게 치러지는 헌터자격시험. 그 자격시험이 열리는 날은 앞으로 약 10개월 쯤 후다.

‘다른 묘안을….’

인터넷을 들여다 보았다.

인터넷 속에는,

헌터가 돼야 게이트를 통해 이계로 출입이 가능하고 그 외에는 불가하다는 글만 있을 뿐이었다.

‘게이트라.’

그에게 게이트란 아주 익숙한 단어였다. 어떻게 보면 그의 손에 의해 게이트란 것이 생겼으니까.

게이트를 검색하자 사진 몇 장이 떠올랐다.

그 사진 속에는,

게이트 앞을 중무장한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이 핏덩어리 육체로 저것들을 뚫기는 고될게야.’

그의 눈가에 수심이 서렸다. 지금은 19살 꼬맹이의 신체를 가졌을 뿐이었다.

이 몸으로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뚫어버리고 이계로 진입하기엔 무리였다.

‘그렇다면 이 몸께서 직접 헌터란 것이 돼 주어야겠구나.’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공모자의 숲.

나무들이 바람에 의해 휘날리고 있다.

그 사이로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가 시선을 땅에 두고 턱을 긁고 있다.

잔뜩 고심에 박힌 얼굴이다.

‘설마 그 친구가 어둠의 상인에게서 정보를 습득해온다면….’

사실 케르만은 그를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그’퀘스트를 수행할 자격을 가늠해보는 것.

일부러 어둠의 상인이 있는 거처를 알려주질 않았었다. 그의 통찰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일반인이 어둠의 상인을 마음먹고 찾아내려면 최소한 일 주일은 걸린다.’

어둠의 상인은 그 정도로 신출귀몰한 자였다.

‘24시간 안에 과연….’

그 녀석에게는 제한 시간을 주었다. 바로 24시간. 24시간 내에 그 퀘스트를 완료 해 온다면….

“음?”

시선을 두고 있던 땅이 누군가의 그림자로 스르르 덮여진 것이 보였다.

케르만은 파묻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녀석.’

그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피부에 여자처럼 곱게 생긴 F랭크의 헌터 녀석.

녀석은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설마?

급한 성미의 케르만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물었다.

“검은 상인에게서 그 정보를 입수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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