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화
생존 서바이벌 (1)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장세준 [4500 Point]
2위 - 강혜령 [1780 Point]
3위 - 이시운 [ 455 Point]
‘어째서?’
믿기지가 않았다.
30명의 헌터 중에서 고작 3위라는 것 보다도 믿기지 않는 것은 포인트의 격차였다.
‘점수가 이 정도나 차이 난다는 건 고블린이 보다 강한 몹을 때려 잡고 있다는 거겠지.’
마음이 급해졌다.
순간. 게이트에 돌입하기 전 조무사 윤성혜가 했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이번 서바이벌 테스트에서 시운 씨에게 충분히 경쟁할만한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나에게 견줄만하단 그 괴물 둘이 저 둘이란 말인가.’
하필 둘 다 아는 사람이다.
물론 시운 혼자만 아는 사이지만.
장세준은 어느정도 예측했었다.
녀석의 템은 최소 에픽급들 이상이었으니.
그런데.
강혜령은 의외였다.
‘혹시…….’
이계에서는 현계의 순수 DNA가 그대로 스탯에 반영된다.
전생에서 강혜령은 양궁의 스페셜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집안 가족들 모두 역대급 양궁 메달리스트로 구성된 가문이었다는 것.
‘활을 쏘는 천부적인 감각을 이계로 넘어와 활용하는 건가? 그렇다면…….’
시운의 예상대로라면.
그녀는 활을 사용하는 클래스인 레인져일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고렙 몬스터를 발견해야 한다.’
급하게 걸어갔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걷다가 발길을 멈췄다.
‘이건?’
나무 한그루의 줄기에 검자국이 있었다. 예리한 시운의 눈에는 그 검자국이 헌터가 사용한 검자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리자드맨의 흔적이다.’
시운의 눈 주위로 핏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핏줄은 퍼렇게 불끈거렸다.
눈의 능력을 사용하면 나타나는 광경이었다.
‘이 검집에 베인 나무의 껍질의 선명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리자드맨은 방금 이 길을 지나갔다. 게다가 리자드맨은 한 마리가 아니야.’
***
신입생 헌터들에게 주어지는 시험 서바이벌 테스트.
이 테스트는 중요한 것이었다.
테스트를 통해 스탯 업과 명성 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력이었다.
이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다면 그 헌터의 이력에 평생 플러스 요인으로 남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중소연합 이상의 길드에 가입할 때도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넓은 던전에 진입하여 이를 악물고 포인트를 따려고 고군분투하는 헌터들의 모습은 이계의 전 지역에 생중계 되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현 한국 길드 랭킹 3위의 대형 길드로 분류되는 사신 길드의 사무실에서는 길드원 셋이 티비란 매체에 눈을 두고 있었다.
“키야…. 예쁜데?”
거북목이 되도록 얼굴을 내밀고 티비를 보던 한 헌터가 탄성을 자아냈다.
헌터 이환이였다.
이환.
사신(死神) 길드의 부마스터이자 번뇌의 검 이라는 칭호를 가진 남자였다.
전사 클랜스 부동 2위의 랭커.
뇌속성의 신속함을 검기에 결합한 완전체 최고의 딜러로 손꼽히는 자였다.
이환의 시야로 티비 속 한 여자가 들어왔다.
티비 속 여성은 던전 내부를 여전사처럼 휘저으며 활 하나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다.
“고년 참 잘 익었네. 빵빵한 엉덩이 봐. 후우…. 저기다가 한 번 그냥…… 콱. 아야!”
이환이 말을 끊은 것은 한 여성의 주먹이었다.
“으이구, 이 산적같은 자식아. 그걸 보지 말고 실력을 보라고.”
여성의 볼멘소리가 이어진다.
볼멘소리를 낸 여성은.
사신 길드의 길드원이자 성녀 라는 칭호를 가진 유하나였다.
엄청난 마력으로 최강의 힐량을 뽐낸다는 그녀는 사제 계열의 어머니같은 존재로 칭송받는 중이다.
“아오, 왜 때리고 지랄이야!”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 너처럼 사자같이 생긴 녀석도 요, 꿀밤에 맞으면 아프긴 한가보다?”
“나도 사람이라고….”
유하나와 이환은 서로를 보며 으르렁! 거리다가 다시 티비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봤어?”
이환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번 신입생 꼬마 중에 야무진 게 하나 들어왔네.”
유하나는 반달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티비 속 여성은 마치 기관총을 연사하듯이 화살통에서 활을 꺼내어 보스 몬스터에게 쉬질 않고 쏴대고 있었다.
팟!
팟!
팟!
팟!
“오메……. 한발도 빗나가는 법이 없네.”
이환이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티비 속 여성이 다루는 활에서 벗어난 화살은 정확하게 몬스터의 정수리, 정수리, 눈에 연달아 족족 꽂혔다.
크아아아악!
“오, 저걸 벌써 잡았어?”
티비 속에서 흘러나오는 보스의 절규와 함께 몬스터는 얼굴에 수십 발의 화살이 꽂힌 채 던전의 바닥으로 넘어간다.
짝! 짝! 짝!
이환이 기립해서 박수갈채를 보낸다.
“쟤 이름이 강혜령이란다. 눈독 들이고 있다가 스카웃 하자.”
“스카웃? 그냥 예뻐서 같은 사무실에 있고 싶은 게 아니고?”
유하나는 팔짱을 끼고 이환을 쏘아본다. 그러자 이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만 뱉는다.
“저 신입 레벨이 대체 몇인지 궁금하네. 움직이는 속도 보면 민첩성이 보통이 아니야….
거기다가 저 활 쏘는 감각……. 캬~ 이번에 레인져 랭커 하나 나오겠네.”
이환의 감탄 소리에 뒤에서 조용히 티비를 응시하던 남성의 입이 열린다.
“그 프로게이머놈은 아직 안 나왔나?”
남성은 다른 녀석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티비의 화면이 전환되면서 남성 한명의 모습이 티비 스크린으로 비춰졌다.
“나왔네. 그 프로게이머. 근데 난 남자는 별로 안 내키는데….”
이환이 말했다.
티비 속에 등장한 남성이 말없이 몬스터들에게로 걸어간다.
남성을 발견한 몬스터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이빨을 드러내고 뛰어든다.
차아아악!
순간 티비 화면이 번쩍인다.
“이야……. 쫌 하는데?”
이환은 귀엽다는 듯 말했다.
빛이 한 번 번쩍이던 화면은 이윽고 선명한 던전 내부를 비춘다.
남성의 주위로 몬스터들이 서있다.
눈을 뜬 채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빙결에 걸린 것이었다.
콰자장! 티비 속 남성은 지팡이로 여유롭게 완드를 휘두르자 얼음이 깨지면서 몬스터들이 얼음 파편이 되어 땅에 쏟아졌다.
“블리자드였네…. 근데 F급 헌터가 사용한 블리자드 치고 뭔가 다르지 않았어?”
“난 남자는 관심 없다니까. 저 새끼 말고 아까 그 강혜령 언제 또 나오냐….”
“으휴! 미친 노옴….”
유하나는 이환을 노려본다. 그 뒤로 조용히 티비에 눈을 두던 남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올해 매지션 클래스를 씹어먹을 놈이 하나 나왔군.”
바로 그 시각.
철갑 길드 회의실 안에서도 서바이벌 테스트가 티비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철갑 길드.
최고의 탱킹과 방대한 체력을 가진 클래스로 이루어진 중소 길드.
중소급에 속하는 길드지만 그들이 발휘하는 실적은 웬만한 대형 길드를 넘을 정도였다.
“쟤가 걔야? 만점으로 통과했다던? 그 천재?”
길드원 하나의 눈이 커졌다.
옆에 있던 길드원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티비 속에는 불길이 번쩍! 번쩍! 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대지를 삼킬 듯한 불길이 잦아들자 남성의 모습이 서서히 화면에 드러났다.
열기를 뿜어내는 검 하나를 쥔 남성의 얼굴은 하얬고 다소 앳돼보였다.
“그 빡빡한 헌터시험을 만점으로 패스한 걸 보면 머리 좋은 건 인정하겠는데. 헌터 일 하면서 아이큐가 전투에 큰 상관이 있냐?”
“분명 이점을 발휘하겠지. 근데 쟤가 진짜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뭔데?”
길드원이 궁금한 눈초리로 반문한다.
“시력이 10을 넘는데.”
“뭐라고?”
“좌우 시력이 10을 넘는데 나도 전해 들었어.”
그 말에 티비를 보던 길드원 하나가 실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그걸 말이라고 하냐?”
“진짜야, 인마.”
“진짜라고? 근데 뭐 어쩔거냐? 눈까리 좋아봤자 헌터 일 하는데 아무 쓸모도 없을텐데.”
가소롭다는 듯 웃은 헌터는 티비 속 남성을 계속 바라본다.
“쟤는 확실히 유니크 급 아이템을 착용한 걸로 봐서 렙업은 잘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쟤가 이번 신입생의 히든 카드 셋 중 하나라며…. 템빨 좋은거 말고는 뭐 특출난 게 없어보이는데?”
남성의 조소 섞인 물음에 다른 헌터가 답했다.
“화이트 게이트에 근무하는 부장한테 들은건데. 협회장이 가장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놈이 저 놈이야.”
“뭐?”
“진짜?”
그 말에 건물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몇초라는 시간을 휘감았다.
“안 됐군….”
“제 2의 김유한 꼴 나겠네.”
***
“카운터 일격.”
크아악!
홍란검의 검신이 리자드맨의 가슴팍을 그어냈다. 그을린 가슴팍의 살점이 벌어지고 리자드맨의 피가 쏟아져 내린다.
‘확실히 물속성의 몬스터라 불속성 홍란검의 대미지가 잘 안 박히네.’
곧바로 쇼트 단검으로 변경했다.
샤샥!
단검이 두 번 번쩍이자.
리자드맨의 뱃가죽에 내장이 튀어나온다.
샥!
크아아악!
샤샥!
크에에엑!
쿵! 쿵! 쿵!
리자드맨 세 마리가 가죽이 걸레짝이 된 채 주저앉는다.
“휴…….”
시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자드맨의 사체들이 즐비하게 땅을 매우고 있다. 그 뒤로는 작은 호수가 미세하게 파동을 일으키며 물결치고 있다.
‘리자드맨을 다 잡은건가.’
몬스터가 더는 보이질 않는다.
곧바로 실시간 순위창을 띄웠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장세준 [13800 Point]
2위 - 강혜령 [6750 Point]
3위 - 이시운 [6570 Point]
순위는 변하지 않고 있다.
강혜령은 어느정도 따라잡았으나. 장세준이라는 저 녀석은 사기적으로 포인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저 놈 대체 뭘 잡고 있는 거야?’
얼굴이 찌푸려졌다.
새로고침을 클릭하여 순위 집계를 실시간 갱신시켰다.
1위- 장세준 [14500 Point]
장세준의 포인트가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르는 포인트의 수치가 의아할 정도로 높았다.
‘이대로 있다간 1등은 물 건너간다.’
어느새 하늘은 까만득한 밤이 도래한 상태다.
서바이벌 경쟁을 치룬 지 10시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38시간.
1위와의 격차를 최대한 좁혀야 한다.
‘일단.’
스킬창을 띄웠다. 그리고 한 스킬 목록에 눈이 멈췄다.
[맹인의 소리][Lv.1]
맹인의 신체기관 중 청각의 감각을 140% 상승시킵니다.
‘140 퍼센트라.’
청각의 기능이 140%가 되면 귀가 어떠할까.
시험해 볼 것이 있었다.
“맹인의 소리.”
시운의 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주 작은. 그러니까 평소에 들을 수 없던 작은 소리들이 점차 들려왔다.
먼 발치에 떨어진 호수의 물결 소리-
개구리가 뛰어다니는 소리-
저 먼 곳의 산 협곡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
‘들린다.’
마치 청각과민증에 걸린 것처럼 귀가 열리니 오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들 속에 사람의 발자국 소리로 보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발자국 소리를 쫓아 걸어오자 세 명으로 한 조를 이뤄 파티 플레이를 하던 헌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시운은 세준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그를 보았냐고 물었고 산쪽으로 향한 것을 보았단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산이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활한 대지. 그리고 주위로 여섯 개의 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 녀석이 저 여섯 개의 산 중에 한곳에 있단 말인가.’
슬슬 배도 고파왔고.
갈증도 느껴졌다.
열정 스탯을 좀 찍어놨는데도 불구하고 피로감이 느껴지고 있다.
인벤토리에서 샌드위치와 물을 꺼낸 뒤 입에 쑤셔넣듯 넣었다.
‘음식이 바닥났다.’
사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챙겨온 음식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서바이벌에 지급된 음식은 총 샌드위치 한 개. 생수 한통이다.
단순히 몬스터만 잡는 것이 아니라 48시간 동안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서바이벌 보다 생존 서바이벌이란 명칭에 가까운 것이었다.
‘음식이 부족하다.’
샌드위치 하나와 물 한모금으로 갈증도와 포만감 수치를 확연히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때였다.
-헌터 최초 탈락자가 발생 하였습니다.
허공의 밤하늘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음성 소리가 들려왔다.
‘탈락자? 몬스터에게 죽은 헌터가 발생했다는 건가.’
그런데.
-헌터 두 번째 탈락자 발생!
-헌터 세 번째 탈락자 발생!
-헌터 네 번째 탈락자 발생!
‘뭐야? 갑자기 네명?’
알람은 계속 이어졌다.
-헌터 열 번재 탈락자 발생!
갑작스런 아웃자가 열 명이나 속출하다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알람은 한 번 더 이어졌다.
-서바이벌 난이도가 상승합니다.
‘무언가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저것은?’
쏟아지는 그것들을 본 순간.
등에 소름이 감돌았다
하늘에서 떨어진다.
많은 것들이.
‘저것들은….’
새였다. 새는 새인데 부리가 굉장히 날카롭고 덩치는 가히 코끼리만한 새다.
새들의 눈에는 배고픔과 살기가 가득 서려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눈은 시운에게로 집중 돼 있다.
새들이 날개를 젖히고 시운에게로 급하강 한다.
타겟은 이시운.
‘새자식들. 그래, 올 테면 와봐라.’
이런 상황 익숙하다. 이계에 진입하면서 얼마나 놀랍고 황당한 상황을 많이 겪었는가.
‘당황해서 얼 타고 있을 시간에 선방이든 회피든 뭐든 날려주는 게 답이지.’
헌터가 돼서 절실히 깨달은 게 있다.
버거운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에 놀라워 하고 있을 시간에 움직이는 게 차선이라는 걸.
그게 회피든 상황 분석이든, 선방이든 말이다.
파시시식-
쾅!
땅과 거대한 것이 부딪혀 굉음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그곳에는 땅속에 목을 깊게 쳐박은 채 날개를 부르르 떨며 새가 죽어가고 있었다.
빈 땅을 처 박은 것이었다.
‘니들이 아무리 빨라봤자 내 눈은 니들보다 더 빠르다.’
시운은 이미 날렵하게 피한 직후였다.
키에에엑!
기엑!
사방에서 새들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타탁!
시운이 뛰었다.
뛰는 시운 주위로 새들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윽고.
새 두 마리의 눈빛이 변하더니 시운을 향해 급하강한다.
마치 타겟을 발견하고 추락하는 자살 폭탄 ‘카미가제’ 같았다.
“홍란의 일참.”
시운의 입술이 움직인 직 후.
홍란검의 검신이 달아오르더니 오라를 뿜어낸다. 그 오라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불구덩이를 만들어 낸다.
화르르륵!
꿰에엑!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끼엑!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꿰에에엑!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꾸아아아악!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크에에엑!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파드드득!
하늘에서 새들이 떨어진다.
통구이가 된 새들이었다.
쿵!
쿵!
쿵!
‘저거 피하는 것도 일이군.’
새들을 처치했는데 죽은 새들의 시체가 눈 쏟아지듯 떨어지는 것을 피하는 것도 일이었다.
쾅!
시운 앞으로 통구이가 된 흡혈새가 떨어져 땅에 처박았다.
처박힌 흡혈새는 목이 ‘ㄱ’자로 꺽인 채 숨을 벌떡 거렸다.
‘편안하게 눈 감게 해줘야지.’
푸슉.
-흡혈새를 처치하였습니다.
주위로 흡혈새의 몸에서 떨어진 깃털이 무수히 날아다닌다.
키에엑!
‘서쪽 방향에서 또 한 마리.’
부웅!
꿰에에에엑….
검에 날개가죽이 찢긴 흡혈새는 꺽인 날개 덕분에 옆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화염의 열기 효과로 놈의 몸통에 불이 붙는다.
활활!
꿰엑!
놈은 뱃가죽이 타들어가자 살고 싶다며 성한 날개 한쪽만 파닥 거리며 발광한다.
터벅터벅.
시운은 그리로 걸어간다.
그리고.
푸슉.
꿱!
놈의 숨통을 끊는다.
곧바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흡혈새 다섯 마리가 공중에서 마구 빙빙 돌고 있다.
‘왜 더 공격해오지 않는 거지?’
겁을 먹은 건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흡혈새 다섯 마리는 하늘을 비상하면서도 시운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끼릉!
끼르릉!
놈들이 으르렁 거린다.
아직 기가 꺽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저 놈은?’
시운의 눈이 커졌다.
시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흡혈새 다섯 마리가 돌고 있는 한 중앙으로 날아가 그들의 품에 합류했다.
‘크다.’
방금 합류한 놈은 다른 놈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컸다.
정말 드래곤 못지 않은 크기의 새.
게다가 놈의 피부에는 철갑이 덮인 깃털이 온 몸을 뒤덮고 있었다.
‘우두머리인가.’
그때였다.
우두머리놈 근처를 빙빙 돌던 흡혈새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날아갔다.
우두머리놈을 피하는 것 같았다.
‘뭐지?’
크아아앙!
우두머리놈이 아가리를 벌린다.
‘설마….’
시운의 예리한 눈으로 놈의 아가리 속에서 공력 형태의 구체가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브레스다!’
예상과 동시에.
파파파파파!!
우두머리놈의 아가리에서 거대한 브레스가 시운을 뒤덮었다.
“화룡의 도약!”
파파파파팡!
브레스는 시운 주위에 있던 나무와 바위, 흡혈새들의 사체 등 모든 것을 태워가기 시작했다.
활활!
“큭….”
도약하여 하강 중인 시운은 숨빠지는 신음을 툭 뱉었다.
왼팔의 소매를 걷었다.
브레스에 쓸려나간 왼팔은 살점이 한웅큼 떨어져나가 피를 쏟아내는 중이었다.
-화상 상태에 돌입하였습니다.
착!
지상에 착지한 시운은.
‘맹인불괴.’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크르릉? 크르릉?
브레스로 한바탕 숲을 흔들어놓은 우두머리놈이 하늘을 기웃거리며 시운을 찾는 눈치였다.
“은신.”
시운의 전신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투명 상태가 되었다.
“휴우….”
아무래도 저 놈은 웬만한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놈 같다.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한다고 하더니. 너무 비약적으로 상승한 느낌이었다.
‘홍란의 일참 쿨타임을 기다려야 해….’
시운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우두머리놈에 눈을 떼지 않았다.
휘익!
휘익!
놈은 빠르게 하강하여 육중한 날개로 숲을 헤집고 나무들을 마구 뽑아내기 시작한다.
‘날 찾으려고 발악을 하는 군.’
은신 상태인 채로 일어났다.
그리고 걸었다.
최대한 저 놈과 떨어져야 했다.
쾅! 쾅!
크라라라랑!
시운이 보이지 않자,
놈은 성이 난 것 같았다.
빠지직!
놈은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놈은 발톱으로 땅을 내리찍어 바위를 부쉈다.
그리고 바닥을 다리로 마구 긁고 걷어차고 찍었다.
놈의 큰 다리에 숲의 모든 것들이 쓸려나가 버린다.
크라라랑!
다시 포효한다.
‘됐다.’
홍란의 일참의 쿨타임이 끝났다.
곧바로.
“꿀꺽!”
체력 포션을 마셨다.
“꿀꺽!”
그 다음은 마나 포션.
포션에 입을 대자 시운의 몸이 은신 상태에서 자동으로 해제 되었다.
전투 상태에 돌입하거나 회복이 가해지면 은신은 자동으로 풀리는 개념이었다.
“투척.”
까아악!
날아간 수리검은 정확하게 놈의 오른 눈에 꽂혔다!
놈의 동공에서 피가 철철! 솟아나왔다.
그러자.
놈은 미친 듯이 날개를 파득! 파득! 거렸다. 꽤나 아픈 모양이었다.
그 여파로 흙더미와 바위들이 뽑아져 나가 주위로 튕겨져 나간다.
“여기다!”
시운이 친절하게 손을 들고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크아아앙!
놈은 다리를 흔들며 시운에게 뛰어왔다. 살육에 젖은 눈빛으로.
놈의 투박한 면상이 점점 크게 보인다. 가까워진 것.
“홍란의 일참.”
화르르르륵!
불길은 놈의 육체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까악!
까마귀 같은 소리를 내며 놈이 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며 그 바람은 자신의 몸통에 붙은 불을 옅게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불을 끄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이미 시운은 놈의 시야에서 벗어난 뒤편에서 놈에게 뛰어가는 중이었다.
“화룡의 도약!”
부웅!
탁!
놈의 등에 성공적으로 착지했다.
곧바로.
푸슉!
검신을 놈의 척추에 꽂아넣었다. 검 손잡이로 야들야들한 살점이 찢기는 감촉의 손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놈의 강철같은 가죽은 이미 불길로 인해 내구력을 다 한 상태라 가죽은 손쉽게 찢어졌다.
키에에에엑!
놈이 괴로움에 새된 비명을 늘어지게 뱉는다.
찌지직!
꽂아넣은 검신이 점점 밑으로 내려간다. 검신은 놈의 척추에서 어느새 배까지 쭉- 내려왔다.
‘됐다.’
열린 놈의 뱃가죽 사이로 내장이 쏟아져 바닥을 적셨다.
화염의 열기 효과까지 더해져 놈의 몸속이 익어가기 시작했다.
키엑! 키엑!
놈이 발악한다.
그러나 소용없다.
이미 놈의 등과 뱃가죽을 완전히 찢어놨기 때문이다.
놈의 벌어진 살점에서 핏물이 툭툭 튀어올랐고 그 살점 속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채로 백숙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키에에에엑!
놈은 이제 포효가 아닌 울음을 터뜨린 듯 했다.
활활!
놈의 몸속에 타들어가는 불길이 거세지고.
그 불길은 놈의 내장부터 오장육부를 달궈서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했다.
카아앙!
놈은 유언같은 마지막 괴성을 내지르고.
툭.
머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흡혈왕새를 처치하였습니다.
“이제 다른 놈들은 더 없는 건가?”
하늘에는 흡혈새가 더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당하자 위기를 느끼고 도망간 듯 보인다.
타들어가는 우두머리놈에게 다가갔다.
-쇼트 단검을 장착하였습니다.
“도축.”
시운의 손에 들린 단검이 우두머리 새의 몸을 찢기 시작했다.
찢고 살점을 분해해서 덩어리를 뽑아낸다.
툭툭.
-흡혈왕새 고기를 획득하였습니다.
-흡혈왕새 고기를 획득하였습니다.
도축 스킬을 통해 식량을 비축해야 했다.
이미 포만감은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게다가 피로도도 축적된 상태.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곧바로 맹인의 소리를 사용했다.
사그락! 사그락!
나뭇잎을 밟는 사람의 발소리와.
-여기 쯤인가?
-어두우니까 불안해…….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남성과 여성이 속삭이는 소리였다.
‘한 번 가볼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었다.
***
생존식 서바이벌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 소대륙의 초원을 누비는 헌터들은 대부분 불안이란 감정이 눈에 서려있었다.
칙칙한 밤이다.
배도 고파왔고, 눈도 감겨오는데.괴물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시야까지 확보가 되지 않으니 그럴만 했다.
“이곳에서 눈이라도 좀 붙여야겠어.”
대검을 등에 맨 남성 헌터가 말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여성 헌터는 그의 어깨에 기댄다.
“무서워…. 갑자기 누가 휙! 하고 나타날 것 같단 말이야…. 힝!”
여성은 입을 삐죽 내밀며 남자의 어깨춤에서 아양을 떨었다.
생존 서바이벌이 벌어지는 광경에서도 동물의 본능을 지닌 사람이라는 존재였기에 이들은 또 하나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
남성은 손을 들어 여성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가냘픈 어깨를 더듬으며 손을 점점 내려 그녀의 갈비뼈를 스치고 그녀의 허리를 휘감는다.
“아앙! 여기서는 안 된다니까 응큼한 자식아!”
여자가 몸을 흔든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 손은 점점 움직여 그녀의 사제 로브의 단추를 하나하나 벗겼다.
“이러다가 누가 보면 어쩔라고? 나 걸레라고 소문나면 책임질거야?”
“어둡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뭐 어때?”
“그래도…….”
이미 남자는 주변에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후였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방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여성 또한 남자의 손길이 싫지는 않은지 저항은 없었다.
단추가 모두 벗겨지자 여성의 로브가 좌우로 벗겨지고. 그 틈으로 하얀 브라우스가 드러난다.
“읏!”
여성은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의 손길은 이미 브라우스 속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남자의 손길로 여성의 젖가슴 맨살의 감촉이 전해져 온다.
“아아…….”
여자가 달콤한 음을 흘린다. 여자의 미간이 좁혀지고 동공이 스르르 위로 올라간 그 모습은 색기가 은근 베여있었다.
“만질만은 하네? 야, B컵 정도 되나.”
“아, 몰라……. 그런 거 묻지마.”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르며 남자는 상체를 내밀어 여자에게 다가갔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친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슬쩍 돌려 시선을 피하면서 다리를 슬쩍 벌린다. 벌어진 다리 틈으로 남성은 천천히 상체를 끼워넣는다.
남자의 두 팔에 벌린 채 들려진 여성의 두 다리.
하늘로 솟은 여성의 다리 위의 신발이 벗겨질 듯 덜렁거렸다.
“부, 부끄러.”
“더 부끄럽게 해줄게. 싫은 척 빼지마. 너도 좋아서 젖었잖아? 그냥 맘 편히 몸 맡겨라.”
“……….”
남자는 음흉한 눈빛으로 여자의 기대감을 팽창시킨 뒤. 자신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리자.
남성의 탄력적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커진거 봐..”
여성은 다리를 피고 일어나 남자의 품에 앉는다.
그녀의 엉덩이 살결 속에 묻힌 채 솟은 그의 남성이 점점 밀려 들어가자 그녀는 남자의 등을 휘감는다.
그리고 여성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든다. 들린 고개 밑으로 예쁜 목선이 드러나자 남자는 그 목선에 얼굴을 흠칫! 파묻는다.
그런데.
“컥-.”
“왜 그래? 오빠? 뭔데?”
자신의 위에서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는 남성을 보자 여자는 당황한 눈치였다.
흥분해서 내는 신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성의 입에서 묽은 핏물이 쏟아졌다.
뚝!
그 핏물이 여성의 얼굴에 떨어져 묻었다. 얼굴에 죽어가는 이의 피가 닿는 감촉이 너무 섬뜩했다.
“오, 오빠!!!”
그리고 이어진 것은.
“으아아아악!”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푸슉!
여자 위에 올라탄 남자의 등을 꿰뚫은 검신이 뽑히는 소리였다.
푸슉!
다시 남자의 등에 칼이 꽂혔다.
“쿠억….”
남자의 동공이 위로 올라가면서 고개를 푹 떨군다.
“오빠!!!”
남자 밑에 깔린 여자는 벌리고 있던 두 다리를 오므린 뒤 그 다리를 힘껏 뻗어 남자를 밀어냈다.
그리고 황급히 일어나려는 찰나에.
“크억….”
여성의 묵직한 신음이 뒤이어졌다.
“어, 어떻게…. 이게 무슨...”
여성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야밤이라 해도 기척 소리도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근데 배가 찢어지는 느낌이 일었고.
찢어지는 뱃속으로 무언가가 해집는 느낌이 뒤이어졌다.
“으으윽….”
여성은 힘없이 땅에 엉덩방아를 찧고 늘어지더니 팔을 바닥에 휙 떨구며 쓰러졌다.
-열한 번째 탈락자 발생!
-열두 번째 탈락자 발생!
“씨발 웃겨 죽겠네….”
쓰러진 남자와 여자의 시체에서 비릿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분명 아웃된 커플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