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화
생존 서바이벌 (2)
두 켤레의 신발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위로 길게 덮은 검은 천 로브가 드러난다.
“이제 반 정도 남았냐?”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를 벗겨내며 남자가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또 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생존 서바이벌에서 떡을 치다니. 참 별에 별 놈이 다 있군.”
“발정난 개새끼인가 보지.”
“ 남자 놈도 존나게 억울하겠다. 서바이벌에서 여자의 그곳에 꽂으려는 순간 칼을 맞고 깨어나보니 아카데미. 이거 실화냐?”
두 남성들의 허리춤에는 작은 검집 두 개가 동일하게 달려있었다.
이들은 어쌔신이었다.
서바이벌에서 아군을 죽이면 벌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은 놈은 열 다섯? 열 넷? 좀만 더 작업질 하면 되겠는데.”
남자가 단검을 빼들어 날을 갈았다.
그들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목적은 바로 서바이벌 순위권 3위 내의 통과.
두 남자는 몬스터를 일체 잡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상위권의 순위를 노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암살이란 방법이었다.
헌터들을 죽이고 벌점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조리 죽인다면.
자신들은 점수가 하위권이라도 결국 끝까지 생존하였으므로 상위권으로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런 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 였다.
바로 암살 계열의 어쌔신이었기 때문.
어쌔신의 스킬 중.
은연 이라는 스킬이 있다.
은연은 밤에 특정된 시간에 한해서 자신의 육체를 60% 정도 투명하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헌터들을 기습하고 암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딱 세 놈이 걸린단 말이지.”
남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남성은 별거 아니란 눈치로 고개를 저었다.
“그 세 놈도 결국 빈틈을 타서 뒤로 다가가 칼로 푹 쑤셔버리면 그만이야. 게다가….”
“우리가 뺑이 치며 설치해둔 덫이 있으니?”
남성의 뒷말을 반대편 남성이 대신했다.
둘은 눈빛을 교환한 뒤에 다시 투명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졌다. 다음 먹잇감을 사냥하러.
“……….”
뒤편의 바위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헌터들이 사용한 은신계열의 스킬보다 한수 위의 스킬이 해제된 것이었다.
바로 은신.
“쳇…. 새끼들 좋은 타이밍을 끊어버렸네.”
남성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 남성은 바로 이시운이었다.
‘저 놈들을 놔둔 이유는.’
치사한 수를 써서 서바이벌을 통과하려는 남자들을 아웃시키지 않고 살려둔 이유가 있었다.
그 남자들이 어쩌면 쓸모가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내 눈으로는 저 놈들의 기습에 걸리질 않지.’
그랬다. 시운의 눈으로는 아무리 어둠으로 덮인 밤이라 해도 놈들의 스킬에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놈들이 백 퍼센트 몸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은연이라는 스킬을 통해 몸의 60% 정도만을 숨길 수 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빛 하나 없는 이 숲 속에서 저 정도의 숨김으로만으로 기습을 당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문제될 놈들이 아니야. 게다가….’
시운이 인기척을 듣고 이곳에 온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서바이벌의 대지를 누비다가 이상한 것들을 캐치했기 때문.
그것들은 바로 덫이었다.
그 덫들의 유무와 실체에 대해 다른 헌터들에게 물으려 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덫들은 방금 그 놈들이 깔아놓은 것이었군.’
뜻밖에 은신을 통해 중요한 것을 알아내게 된 것이었다.
‘이제 놈들에게 통수 맞을 일은 없겠지. 난 나를 알고 놈들을 아니까.’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당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쨌든.
시운은 방금 그 어둠의 자식들이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었다.
‘강혜령과 장세준을 좀 죽여라. 아니, 걔들에게 훼방이라도 좀 놓아줘라…. 머저리들아..’
그랬다. 이런 생각으로 그들을 보낸 것이었다.
시운은 곧바로 팔목의 장치를 서치하여 점수창을 띄웠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강혜령 [22800 Point]
2위 - 장세준 [21950 Point]
3위 - 이시운 [19250 Point]
‘1위와 2위가 바뀌었고?’
아직도 시운은 3위였다.
방금 흡혈새와 흡혈왕새를 잡아서 점수의 격차를 순식간에 좁혀놨다.
그러나.
아직 3위라는 것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강혜령과 장세준이 지금 자고 있는지 알아볼까.’
혜령과 세준 이 두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5분 후.
다시 포인트 창을 띄웠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강혜령 [22800 Point]
2위 - 장세준 [21950 Point]
3위 - 이시운 [19250 Point]
‘점수는 바뀌지 않았군. 그렇다면 휴식을 취하고 있단거야.’
그랬다. 5분이 지나도 포인트가 하나도 상승하지 않은 것을 보고서 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은.’
해야할 게 있었다.
***
어둠이 완전히 드러앉은 숲.
그 숲은 조용했다.
조용한 숲 주위로 투박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점을 씹어먹는 소리였다.
“별미네, 별미. 맛있네. 입에서 녹는다, 녹아.”
시운의 손에는 나무 꼬챙이에 고정된 익은 고기가 들려있었다.
바로 흡혈왕새의 고기였다.
‘일명 왕새 닭꼬치.’
나무꼬챙이는 나무를 채집하여 꼬챙이로 사용했고, 아까 수집한 흡혈왕새의 살점을 꼬챙이에 꽂아넣은 뒤.
홍란검의 화염의 열기 효과로 불을 지피고 그 불에 고기를 익혔다.
맛은 일반 닭고기와 비슷했다.
‘다 먹었다.’
배가 불러왔다.
흡혈왕새는 살점이 아주 넉넉해서 먹고나니 허기졌던 배가 탄탄해진 느낌이었다.
‘피로도도 회복했고.’
닭꼬치를 먹으며 충분히 휴식하여 누적된 피로도도 낮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아직 아침은 아니고 새벽 3시 쯤 된 것 같다.
‘졸린데….’
사실 눈이 감겨왔으나.
쉴 수는 없었다.
점수의 격차를 확실히 좁혀놔야 했기 때문이다.
‘아까 장세준이 산으로 갔다고 했지.’
어느 헌터 무리를 발견한 뒤에 그들로부터 장세준에 대한 행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어느 산 쪽을 향해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운도 산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이 근방의 숲이나 호수 근처에 서식하는 몬스터로는 고득점을 노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
한국 지부 헌터협회 회의실.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서바이벌 중인 헌터들의 모습이 생중계 되고 있다.
누구는 몬스터를 잡고 있고.
누구는 잠을 자고 있으며.
누군가는 길을 헤매고 있다.
“흠…….”
작고 굵은 한숨소리가 흘러나오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숨소리 하나만으로 모든 이들의 입을 닫게 만들 수 있는 남자의 숨소리였으니.
그는 바로 곽대익이었다.
굵은 시가를 집은 그의 두툼한 손바닥이 꿈틀거렸다.
“………….”
그 외에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모두가 그의 눈치를 살피느라 입을 닫고 있었다.
“재미가 없군.”
대익은 신경질적으로 시가의 재를 툭툭 튕기며 말했다.
그의 단마디에 스크린에 눈을 두던 임직원들의 얼굴이 경직된다.
“저……. 협회장님. 그래도 올해에 대단하다고 할 만한 인물이 셋이나 나온 것은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정적을 깬 목소리는 본부장 임진혁의 것이었다.
진혁은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행? 다행인 거 맞나?”
대익이 진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혁의 미소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그렇지 않습니까? 헌터 시스템을 잘 이용하는 신입생 헌터가 셋이나 나왔으니.”
본부장이라는 꽤 높은 자리에 일임하고 있는 진혁도 사실 대익에게는 찍소리 못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직장 상사와 하사의 관계를 떠나서 협회장 곽대익의 권력은 독보적이었으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활에 능통한 헌터. 그리고 마법에 능통한 헌터와 힘이 비약적으로 강한 헌터까지.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까요?”
김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어쨌건 협회장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똥이든 무슨 똥이든 뭐가 날아와 자신들에게 튈지 모르니.
자신들이 임원급 인사라 해도 대익 앞에서는 그저 수하에 불과했다.
대익은 늘어진 눈빛으로 턱을 괸채 스크린에만 눈을 뒀다.
스크린에는 헌터 이시운이 풀숲을 헤치고 분주히 걸어가는 광경이 그려지고 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대익의 얼굴이 건조해진다.
아마도 자기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질 않고 있어서인 듯 하다.
“졸릴정도로 지루하군.”
“그 말씀은?”
“보상을 추가 해야겠어.”
“보상이요? 그렇다면 B조에만 보상을 추가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놀라 되묻는 김 이사의 시선은 곧.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대익의 그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크흠!”
김 이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기침을 한다.
이번에 본부장이 껴들었다.
“어떤 보상을 추가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B조에만 보상을 올린다면 다른 조에게는 불공평한 일이 될……”
본부장이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대익이 아랫입술을 이빨로 씹고 있었다. 그 광경에 말을 더 이을 수는 없었다. 그건 그의 버릇이다.
화를 감추기 위해. 또는 화가 어느정도 솟았을 때 본능적으로 행하는 버릇.
“협회장님. 그럴 바에는 모든 조에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공평하게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보좌간 유민수가 껴들었다.
대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시운. 저 친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욕적이지 않아.”
대익의 말에 모든 임원들의 눈이 스크린으로 돌아간다.
뒤이어 대익이 말을 잇는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저 친구. 저 친구의 짐승같은 면을 보고 싶어. 그런 면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방법은 하나지.”
임원들의 모든 눈이 다시 대익의 입술로 향해 꽂혔다.
“바로 추가 보상. 이봐, 유 보좌관.”
“네, 협회장님.”
“B조에 목소리 띄워. 1등에게는 추가 보상으로 특성 카드를 준다고.”
“아, 안 됩니다! 협회장님.”
“협회장님…….”
눈치만 보던 임원들이 용케 반대했다. 이미 협회장의 오른팔인 보좌관은 명령을 수행하러 회의실 밖으로 나간 상태.
임원들의 입이 하나씩 터져나왔다.
“특성카드 보상은 너무 과합니다.”
“특성카드를 저 조에만 쥐어준다면 다른 조에서 반발이 일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 해 보시는 게….”
콰앙!
회의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 대익은 방금 자신에게 따졌던 임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번갈아보면서 바라봐 주었다.
“………….”
“크, 크흠….”
모든 임원들이 턱을 떨며 시선을 피한다.
묵직해진 공기. 모두가 더는 말이 없었다.
대익은 목을 꽉 움켜쥔 넥타이를 풀어해치며 조용히 입술을 움직였다.
“세상 참 좋아졌구만. 니들이 나한테 핏대 세우는 광경도 벌어지고?”
임원들은 시선을 땅에 내리꽂은 채 가만히 있었다.
입술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말, 아니 험담이나 욕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고개를 돌린 대익의 눈은 다시 스크린 속으로 향했다.
“가만히 지켜보자고. 재밌는 광경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
‘이곳은….’
시운은 산을 오르고 또 올라왔다.
도중에 나타난 식물형 몬스터들을 때려 잡으면서.
그의 앞에 동굴이 하나 보였다.
날것 그대로의 동굴이었다.
동굴의 입구 저 너머는 시운의 눈으로도 뭐가 있는지 모를만큼 아득하고 캄캄했다.
“열정적인 헌터이구만….”
어두운 저편의 말소리에 시운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런 정적을 확 깨버린 차분한 목소리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육성은 노쇄한 노인의 것이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어둠 저편에서 천천히 노인이 자태를 드러냈다.
구부러진 허리에. 안경을 쓴 평범한 노인이었다.
“내 다른 헌터도 보았지만 자네는 열정이 남달라보여.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열정이 남달라보여.
이 말 속에서 시운은 알 수 있었다.
‘다른 헌터들은 없는 내 열정 스탯을 3 올려놨기 때문이야. 열정 스탯은 특정 계열의 NPC에게서 퀘스트나 친밀도를 얻게 해주는 히든 스탯이니까.’
그러나 의아한 점도 있었다.
이곳은 생존 서바이벌을 벌이는 곳인데 NPC도 존재한단 말인가.
그런 말은 들어보질 못했다.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노인은 사람좋은 미소를 보이면서 물어왔다.
“보상이 뭡니까?”
시운이 물었다.
물어야 했다.
포인트를 획득하기 바쁜 와중에 얻는 것 없이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내 부탁은…….”
노인의 말을 잘라버린 것은 허공에서 울려퍼지는 안내 소리였다.
-자, B조 헌터. 모든 헌터들에게 안내 해드립니다. 잠시 추가된 룰을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추가된 룰?”
시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인도 말을 멈춘 채 소리가 나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B조에서 서바이벌을 1등으로 통과한 단 한 사람에게 스탯업 보상과 명성 뿐만 아니라 히든 특성카드까지 추가보상으로 주어집니다.
“뭐, 뭐? 히든 특성카드?!”
시운의 눈이 더욱 커졌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안내 목소리는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헌터 분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 고득점 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히든 특성카드를 준다고?’
히든 특성카드.
그 카드는 단순한 카드가 아니었다.
단순히 얻을 수 있는 카드도 아니고.
그 카드는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