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53화 (53/278)

제 53화

생존 서바이벌 (3)

헌터 특성카드.

일명 헌터의 특성을 추가 시켜주는 카드였다. 스킬북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과는 차원이 다른 효과를 부여해준다.

‘그냥 특성카드도 아니고 히든이 붙었다.’

히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적어도 카드의 색은 동색, 은색이 아닌 금색이라는 것이다.

금색이라면.

‘그 특성 카드에서 특성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스킬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1위를 기록하여 서바이벌을 통과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안 들어줄 것인가?”

노인은 상념에 잠겨있는 시운의 입이 떨어지길 계속 기다린 모양이었다.

“보상이 내 눈에 찬다면 해 드리겠습니다.

***

동굴의 구석구석을 모두 들쑤셨다.

나오는 몬스터는 그 자리에서 태워버리고.

동굴의 구석구석에 숨겨진 마석을 찾아 해방시켰다.

‘퀘스트를 깨기 위해서다.’

방금 노인이 준 퀘스트를 깨는 중이다. 그 퀘스트는 지금 시점에서 반드시 깨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보상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해.’

그랬다. 노인이 내놓은 성공 보상은 시운의 눈을 돌아가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탁.

동굴 끝자락에 멈춰섰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동굴에 봉인된 마석 다섯 개를 모두 해방시켰다. 마석 다섯 개를 해방시키면 마녀가 소환된다고 했다.

‘그 마녀를 잡는 것이 퀘스트의 목표다.’

시운은 곧 상념을 떨쳐낼 수 있었다. 기다리던 마녀가 소환되고 있었기에.

앞에 놓인 낡은 제단.

제단의 촛불에 불이 번쩍! 켜지면서.

쾌쾌한 연기들이 흘러나와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모인 연기들은 곧 커져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마녀다.’

[겁 없이 날 소환한게 네놈이렸다?]

난장스런 퍼리칼 밑으로 보이는 퍼런 두 눈으로 시운을 응시하던 마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짓눌려진 괴물의 목소리였다.

파자장!

마녀의 손아귀에서 무언가 소환되었다. 번개의 구체가 휘감긴 지팡이였다.

[각오 하는 게 좋을 게야. 덧없는 인간아.]

아마도 번개 속성의 마법을 다루는 마녀인 듯 하다.

무서울 건 없다.

곧바로 홍란검을 겨누었다.

“마녀야. 내가 시간이 없으니 금방 목을 따 줄게.”

***

[크어어어억……….]

마녀가 괴성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녀의 육신 주위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영혼인 듯 하다.

“후우….”

시운은 한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마녀란 이름답게도 까다로운 상대였다.

번개 마법을 구사하면서도 공격을 흘리고 피하는 솜씨가 귀신같았다. 덕분에 시운의 얼굴은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팔과 다리는 멍투성이였다.

마녀의 육신이 사라지고 빛이 한번 번쩍이더니 무언가가 땅에 툭 떨어졌다.

그것은 은색의 반지였다.

‘저거다.’

그것을 주워들었다.

-마녀의 은색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

“여기 있습니다.”

시운은 동굴 앞에서 기다리던 노인에게 반지를 건넸다.

노인은 좋지 않은 눈을 비집어 뜨고 반지의 형태를 확인한다.

“오오. 맞아, 정말 해 왔구먼.”

노인이 썩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알람이 들려온다.

[‘봉인된 마녀에게서 그 반지를’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이건 내 선물일세.”

[30000 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았어.’

미소가 입을 비집고 나왔다.

퀘스트의 보상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서바이벌의 포인트였다.

그것도 3만 포인트.

순위가 3위인 이 시점에서 단번에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귀중한 보상이었다.

“부디 무사히 시험을 마치게나.”

나직한 노인의 육성과 함께 노인은 귀신같이 사라졌다.

테스트에 추가된 NPC라서 그런지 몰라도 인위적인 느낌이었다.

‘지금쯤이면 1위겠지.’

곧바로 순위창을 띄웠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장세준 [66000 Point]

2위 - 이시운 [64500 Point]

3위 - 강혜령 [48200 Point]

‘고작2위란 말인가.’

실망스러웠다. 아니 그보다 놀라웠다.

무려 3만 포인트를 획득했는데 정점을 찍지 못하다니.

격차는 좁혀놨지만.

‘장세준. 저 놈은….’

장세준.

생각처럼 호락호락한 헌터가 아니었다.

***

“어떻게 1위부터 3위까지 한 헌터들의 포인트가 이렇게 높을 수 있는거지?”

“우리하고는 차원이 달라….”

“하. 춥고 배고프고 순위는 못 찍겠고.”

횃불 하나에 몸을 녹이던 세 명은 순위창을 보고는 실망을 토해냈다.

세 명이 팀을 이뤄 보이는 몬스터마다 족족 잡고 또 잡아왔다.

쉬지도 않고 움직였다.

그런데.

상위권의 헌터들과 자신들의 포인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포기해야 되나?”

“포기는 무슨! 몸 좀 녹이고 바로 엉덩이 떼고 사냥 가야지.”

“그래, 끝나지 않은 이상 끝난 게 아니란 말 몰라?”

장작을 태우며 타들어가는 횃불에 두 손을 뻗는다. 잠시 추위만 녹이고 바로 움직일 생각이다.

서바이벌 테스트의 결과는 이력으로 평생 남을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휙!

“횃불이 꺼졌어?”

“갑자기?”

횃불에 손을 녹이던 헌터의 시야가 순간 어두워졌다.

헌터 둘은 당황해 했지만 나머지 헌터가 차분히 불꽃을 소환했다.

화륵!

“불이 꺼지면 다시 붙이면 되지……커헉.”

헌터의 말은 다 이어지질 못했다.

“컥!”

불꽃을 소환한 헌터가 배를 부여잡고 피를 토해내더니 땅에 쓰러졌다.

“왜, 왜 그러는거야?”

“공격. 공격을 당한거야!”

곧바로 두 헌터가 일어났다.

일어선 헌터 둘은 검과 도끼를 내밀고 주위를 살폈다.

“...뭐지?”

서있던 헌터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헌터에게로 옮겨갔다.

외상을 입고 헐떡거리느라 쓰러진 헌터의 갈비뼈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포션을….”

일어선 헌터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쓰러진 헌터는 힐러였다. 힐러가 아웃되면 상황이 굉장히 난처해진다.

그때였다.

파앙!

“끄악!”

“누, 눈앞이…….”

눈 앞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연막탄이었다.

연막탄이 터진 뒤.

연기가 주위를 모두 뒤덮었다.

“대시 스트라이크!”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스킬을 내질렀다.

그러나 형태도 확보하지 못한 적에게 적중시킬 리 없었다.

“콜록! 콜록!”

“아악. 숨이 잘 안 쉬어져…….”

연기가 눈과 코에 흘러들어가 머리가 띵했다.

그때.

무언가가 다리에 닿는 느낌과 함께.

세상이 휘청했다!

“끄악!”

빠악.

그대로 뭔가에 걸려 넘어진 헌터 에게로 무언가가 날아온다.

푸슉.

“끄헉…….”

그것은 단검이었다.

“태진아!!”

옆의 헌터가 소리치며 주위로 도끼질을 했다.

부웅! 붕!

그러나 적이 맞을 리가 없었다.

“제기랄! 어디서 공격해 오는 거야!”

-열세 번째 탈락자 발생!

-열네 번째 탈락자 발생!

“아웃된거야?”

남은 헌터 하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풍속의 망토!”

착용한 망토에 바람이 깃들면서 주위의 연기를 날려보냈다.

연막탄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가 걷히자마자 보인 것은.

별이 보이는 하늘이었다.

“크윽.”

빠른 뭔가가 다리를 낚아챈 것이었다. 순식간에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헌터는 옆에 떨어뜨린 도끼로 손을 뻗었다.

“어딜!”

“으악…….”

목이 조여왔다. 숨이 턱 막혀온다.

손은 무언가에 의해 압박되었고.

그 후.

앞에 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후드를 뒤집어 쓴 두 남자는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헌터? 왜, 왜 이러는 거에요!”

“말해줘야 할 게 있다.”

남자는 쓰러진 헌터를 짓누른 자신의 손에 힘을 콱 주었다.

“…이것부터 놔 줘요.”

“닥치고 내 말이나 들어라. 너 장세준 알지?”

“흐억……….”

질문을 던진 남성은 쓰러진 헌터의 숨통이 트이게 잠시 손을 풀어준다.

그러자 헌터는 콜록 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흐아. 흐아! 아니, 당신들도 헌터잖아요. 근데 왜 같은 헌터를 공격하는 거냐고! 그

이건 반칙이야.”

“반칙이든 뭐든 이기면 장땡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내 손을 니 피로 적셔지는 걸 원하나?”

남성이 서늘한 눈으로 물어오자 헌터는 떨면서 고개를 힘껏 저었다.

“그렇다면 대답해. 장세준 알지?”

헌터가 끄덕인다.

“장세준이 어디로 갔는지 보았냐?”

“보기는 봤는데….”

“어디서 봤어?”

헌터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의 위해 올라탄 남성을 보며.

“말해주면 이거 놔 줄거지?”

“그럼, 그럼.”

“정말이야?”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지 되묻는 헌터에게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 침을 뱉었다.

“악! 씨, 씨발 왜 침을 뱉고 지랄이야. 이 개새끼들이!”

눈덩이에 묽은 침이 들어가자 눈을 껌뻑이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곧바로 단검을 꺼내들고는 목에 갖다댄다.

“야. 한 번만 더 묻는다. 한 번 더 질질 끌면 그때는 이 칼이 네 목을 격하게 간지럽힐거야.”

“마, 말할게. 장세준은…….”

절박함에 헌터는 일단 살고보자는 마음으로 남자가 원할만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대답을 얻은 남자는 웃었다.

그리고.

-열다섯 번째 탈락자 발생!

텅빈 하늘에서 알람이 울려퍼졌다.

***

“이제 점점 날이 밝는 것 같아!”

“캄캄해서 무서웠는데….”

두 여성이 점점 밝아져가는 하늘을 보더니 안색이 밝아졌다.

아무리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두 여성이 어두운 밤길을 헤집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은 사실상 무섭고 떨렸다.

하늘에 떠오르는 해는 점점 지상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고.

대지의 풍경은 선명해진다.

“어마맛!”

"꺄아아악! 이게 뭐냐고!”

경치를 구경하며 걷던 여성 둘은 갑작스런 중력의 힘을 느끼고 비명을 내질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구덩이 속이였다.

“어떻게 된 거야?”

“함정이야. 누가 파놓은 함정이라고.”

“뭐?”

“자, 잠깐 위, 위…….”

그들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위에서 누군가에 의해 떨어진 흙더미가 구덩이의 빈틈을 그대로 메워버렸기 때문이다.

-열여섯 번째 탈락자 발생!

-열일곱 번째 탈락자 발생!

***

“으음?”

쏟아지는 빛줄기에 눈이 절로 떠졌다.

눈을 비비고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니.

아침을 맞은 하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끄하아아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편 헌터. 그는 정연희였다.

가슴까지 덮은 담요를 벗고 무거운 상체를 일으켰다.

“장세준 씨!”

큰 이파리로 뒤덮인 빈 천장만이 눈에 들어왔다. 큰 이파리 밑으로는 그것을 고정한 둥근 목재.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통 안에서 횃불이 타들어가고 있다.

즉흥적으로 만든 텐트였다.

“어디 갔지?”

홀로 이를 악물고 초원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을 찾아온 세준과 합류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냥을 하고 휴식 겸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세준은 사라져 있었다.

“나를 놔두고 간 건가?”

그렇다해도 상관은 없었다.

혼자보단 둘이 움직이면 몬스터의 습격도 피하고 아웃되지 않을 것임에 순수히 세준과 합류했었다.

이성의 감정은 없었다.

그뿐이었다.

“칫. 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가지.”

세준과 파티를 맺고 던전을 공략했던 어젯밤이 떠올랐다.

연희는 던전에서 한 것이 없었다.

세준의 광역 스킬이 던전 안 몬스터들을 휩쓰는 것을 구경만 했었다.

“대단했지이….”

실로 그의 마력은 대단했었다.

같은 F랭크의 헌터라고 납득이 가지 않을만큼.

“엄마야!”

연희는 작은 텐트에서 나오자마자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 앞으로 번쩍 거리는 무언가가 굉음을 토해내며 공간을 뒤덮었다.

그리고.

“꾸에에엑….”

“케엑.”

늘어진 비명이 이어졌다.

“이, 이건?”

자신 앞으로 몸이 으깨진 채 혓바닥을 내밀고 죽은 늑대가 보인다.

“일어났어요?”

쭈구려 앉은 연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안 잤어요? 그보다 이 늑대 둘 세준 씨가?”

꾸부려 앉은 채로 늑대 시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 누워있다가 잠이 안 와서 여기 텐트 앞에서 사냥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늑대 둘이 연희 씨가 자고 있던 텐트로 들어가려고 하는 걸 보고….”

“아아….”

연희는 세준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신기했다.

한숨도 자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다.

“안 피곤해요?”

연희가 물었다.

“익숙해요.”

“밤을 새고 계속 움직였는데 익숙하단 말이에요?”

“난 이런 것 십 년을 겪어봤어요. 그래서 익숙해요.”

“아아….”

연희는 그의 말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명실상부 최고의 프로게이머 출신.

분명 신의 컨트롤러라는 별명도 가진 그였지만.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 매일 밤을 지새우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잠깐.”

굳은 얼굴의 세준. 그가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였다.

“...왜요?”

“쉿.”

세준의 표정은 심상찮았다.

곧바로 세준이 품에서 완드를 꺼내들었다.

마정석이 박힌 스켈레톤의 머리가 그의 완드 끝자락에서 보란 빛을 뿜었다.

“연희 씨. 어서 일어나…”

세준의 입을 누군가가 틀어막았다. 그런 세준의 목에 뭔가가 번쩍였다.

칼이었다.

“꺄악!”

연희 또한 인벤토리창을 열어 환복을 하려는데.

움직여지질 않았다.

“끄윽.”

남성의 팔뚝이 자신의 목을 꽉 휘감은 것이 보였다.

완강한 남성의 힘에 몸이 꼼짝여지질 않았다.

그리고,

목에 섬뜩한 것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누…… 누구세요?”

“너희들도 데이트 중이였냐. 하아…. 여긴 커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게 서바이벌 테스트인지 짝짓기 테스트인지 모르겠네.”

“왜, 왜 이러는 거냐구요!”

불안해 떨던 연희가 말했다. 연희의 목소리를 들은 남성은 그 반응에 쾌락을 느꼈는지 묘하게 웃는다.

“큭큭. 왜 이러긴…. 앙탈을 부리는 건가? 반반하게 생겨갖고. 야, 이것도 서바이벌의 공략법이라고. 이만 죽어줘야겠어.”

연희의 뒤를 차지한 남자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눈빛을 보낸다. 눈빛을 받은 남자는 싸늘한 미소를 띠며 단검에 힘을 준다.

“장세준. 너부터 일단 죽거라.”

푸슉-

“윽…….”

단검의 날이 세준의 옆구리를 꿰뚫자 세준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 신입생 중에 가장 실력있는 놈이라면서? 별 거 없네?”

“세준 씨!!”

연희가 소리쳤다.

연희의 눈에는 세준이 고개를 툭 떨군채 몸을 떨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런데.

“뭐비? 이 놈 왜 피가 나질 않는 거야?”

옆구리를 들쑤신 남자가 의아해했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남자의 눈이 세준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쑤신 거 맞아?”

“그렇다니까……. 이 새끼 뭐야?”

세준의 목을 감싸쥔 남자는 옆구리를 들쑤신 단검을 빼내었다.

슉.

그리고 다시 단검을 들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쑤셔주마.”

그때였다.

팡!

세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뒤에 있던 남자는 놀라며 뒤로 물러난다.

"뭐야? 사라졌어? 죽은건가?“

뭔가 찝찝했다.

남자는 급하게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그 소리가 들려와야 한다.

“아웃 되었다는 안내 음성이 뜨질 않잖아?”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남자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 아니?!”

뒤편에서는 망토를 펄럭거리며 공중에 떠오른 세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단검으로 정확히 급소를 찔렀거늘.

“아악!”

한눈을 팔던 반대편 남성의 신음이었다.

“이잇!”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남자의 팔뚝살을 깨문 연희는 곧바로 완드를 뒤편의 남자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빠악!

“큭.”

남자는 머리를 감싸쥐며 뒤로 물러났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경직된 얼굴로 세준을 바라보던 남성의 눈이 커졌다.

“환영이었다.”

세준이 태연하게 말했다.

“환영? 방금 그게 환영이었다고?”

세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기 힘들었다.

환영.

매지션의 2차 전직 스킬이다.

같은 F랭크 처지의 헌터 놈 주제에 레벨이 50은 돼야 시전할 수 있는 환영 스킬을 시전했다니.

방금 겪고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지랄맞을!’

남자는 곧바로 단검을 세준에게로 겨누었다. 그리고 빠르게 돌진했다.

“대시!”

세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매지션에게는 거리를 주면 안 된다. 근접전이 최고의 전략.

“쉐도우 스트라이크.”

남자의 단검의 검신에서 독이 피어오른다. 독 대미지와 크리티컬을 상승시켜주는 어쌔신의 일격 스킬이었다.

‘닿았다.’

단검을 내지른 남성의 입꼬리가 올랐다. 분명 단검이 자신 머리 위에 있는 세준의 다리에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 일격을 맞으면 맹독 효과와 함께 움직임이 느려지지. 아무리 네가 뛰어난 매지션이라 할 지라도…….’

그런데.

“텔레포트.”

또 다시 세준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고. 남자가 내지른 단검은 허공을 향해 뻗어가기만 했다.

“....텔레포트라고?”

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텔레포트는 2차 전직을 한 매지션이 얻을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우어어어억-.”

남자의 비명 소리는 딱 3초간 흐르고 멈춰졌다.

남자는 놀란 얼굴의 표정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온 몸이 순식간에 얼어버린 것이었다.

탁.

세준은 바닥에 안착한 뒤에.

나머지 한 남자로 눈을 돌렸다.

남자는 단검 두 자루를 쥔 채 긴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제기랄….”

그리고.

연희는 빠르게 로브를 장착한 뒤에 남자에게로 완드를 뻗었다.

“파이어 볼트!”

슈우욱!

“컥.”

남자의 어깨에 적중한 불꽃은 남자의 어깨쭉지를 불꽃으로 덮기 시작했다.

세준은 그런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편법을 써서 서바이벌을 통과하려고 했나? 안타깝지만 그런 얄팍한 수에 통할 내가 아니라서.”

“세준 씨! 빨리 나머지 한명도!”

연희가 마나 포션을 복용하고 곧바로 다음 마법을 이어가려고 할 때.

팟!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타타타타탁!

뛰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도망가는 것 같아요!”

세준은 연희에게 다가갔다.

“그냥 도망가게 내버려둬요.”

“그치만 나중에 다시 복수하러 오면 어떡해요?”

“놈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이미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힘을 보여주었으니. 난 저런 놈들에 대해 잘 알아요.”

그리고 세준은 옆으로 눈을 돌려 남자를 응시했다. 온 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남자를.

세준은 연희를 보며 턱짓을 했다.

“처리해요, 연희 씨.”

“제가요?”

“빙결상태인 상대는 불꽃 마법을 퍼부어주면 끝납니다. 해 봐요.”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움직였다.

“파이어 볼트!”

화르륵!

시뻘건 불꽃은 남자를 칭칭 감싼 얼음덩어리에 붙어갔다.

얼음에 균열이 생기더니.

와장창!

이윽고 땅바닥에 파편이 되어 쏟아졌다.

-열여섯 번째 탈락자 발생!

알람을 들은 세준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막타는 정연희에게.’

세준의 계획대로였다.

서바이벌에서 같은 아군을 죽여 아웃시키면 벌점을 받게 된다.

현재 상위권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 그 상황에서 랭커인 자신이 벌점을 받는다면 그건 치명적인 것이었다.

‘힘 빼고 다루느라 고생했네.’

방금 그 어쌔신을 상대로 쓴 마력은 고작 1/3이였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전력으로 상대하면 어쌔신이 그 자리에서 죽어 벌점을 맞게 될 테니까.

“세준 씨.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했네요. 휴우. 서바이벌에 저런 놈들도 있구나….”

연희는 세준의 의중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연희를 보자 세준은 비집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착한 남자 코스프레는 참 재밌단 말이야.’

눈 앞에 있는 보랏빛 단발 머리의 여자는 참 순진하다.

서바이벌에 일회용으로 잠시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

어느새.

서바이벌의 경쟁은 절정까지 치열해지고 있었다.

서바이벌에 제공되는 맵은 실로 광활했다.

그 넓은 맵에는 다양한 던전들이 많았다.

또한 던전에서 리젠되는 보스몹은 일반 대지의 몹보다 높은 포인트를 제공하였기에 실력이 된다면 던전의 보스몹만을 공략해서 순위를 노리는 게 정석이었다.

서바이벌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 소대륙의 대지.

미노타우르스 던전에선 한바탕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잇.”

여성의 앵두같은 입술에서 나온 소리였다. 핏기가 없을 정도로 하얀 여성의 얼굴은 붉은 미노타우르스의 공격에 의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우우우!

눈 앞에서 사람만한 도끼를 든 보스몹 붉은 미노타우르스가 포효했다. 놈의 몸 이곳저곳은 수많은 화살이 박혀있다.

‘아직도 안 죽는단 말야?’

다시금 활을 놈에게 겨누었다.

피슝!

피슝!

피슝!

차아앙!

무섭게 날아간 화살은 도끼에 의해 튕겨나가 타겟이 아니던 맨바닥에 처박힌다.

그리고.

놈의 붉은 전신에서 푸른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각성했군.’

예쁜 여성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체력이 10% 이하가 되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폭등하는 놈의 패시브 스킬이었다.

‘위험한데.’

여성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던전의 보스들만 보이는족족 잡고 또 잡아왔다. 그로 인해 피로도가 쌓여서 움직임이 느린 상태였다.

‘칫.’

민첩성이 장점인 여성이 그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니 난감했다.

크아아앙!

마지막 포효를 날린 붉은 미노타우르스는 육중한 몸을 뒤흔들며 도끼를 휘둘렀다.

콰앙!

콰앙!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놈의 도끼가 지나간 땅은 흥건하게 패여있었다.

‘저 도끼에 한 번 맞았다간….’

다시 자세를 잡고 화살을 겨누었다. 그러나.

-피로도가 축적되었습니다.

-이동 속도가 감소됩니다.

“젠장! 젠장!”

팔이 움직이질 않는다.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데 손이 슬로우 비디오를 돌린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인다.

부웅!

도끼의 날은 요란하게 날아왔다.

‘이건 피할 수가 없겠어.’

그런데.

쿠아아아악!

붉은 미노타우르스가 몸을 휘청대더니 아가리를 벌리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뭐지?’

여성은 미노타우르스의 명치를 바라봤다. 그 명치에 칼이 쑤셔나와져 있었고.

미노타우르스가 착용한 철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쿵!

놈이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도끼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쿠어어어어-

대가리를 마구 흔들며 괴성을 쏟아내더니.

쿠웅!

던전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대자로 드러누웠다.

육중한 놈이 쓰러지자 대지가 한 번 크게 진동했다.

‘저 사람은.’

쓰러진 놈 뒤로 사람이 보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얀 얼굴.

그리고 짙은 눈썹에 맑은 눈.

그 헌터였다.

‘자격시험을 만점으로 패스한?’

이시운이라는 헌터.

“괜찮아요?”

시운이 여성에게로 걸어왔다.

여성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훔쳐내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던전에 왔는데 위험해 보이길래 도와드렸어요.”

시운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해왔다.

빠직.

여성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고맙단 말이라도 듣고 싶다는 건가요?”

여성은 차가운 눈매로 쏘았다.

“단지 위험해 보여서 도와드렸습니다. 그뿐입니다.”

“쳇.”

여성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남자에게서 등을 휙 돌렸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해왔다.

‘도움 받는 거 딱 질색이라고.’

언제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자란 여성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했고 뭣보다 도움을 빌리는 것을 경멸하는 성향이었다.

-피로도가 축적되었습니다.

“휴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쪽 상태를 보니 스태미너가 다 한 것 같네요? 이거 받아요.”

남자가 내민 것은 스태미너 포션이었다.

“됐어요. 그만 가요!”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사실 본심과는 달랐다. 상위권 경쟁을 벌이는 이 타이밍에서 저 스태미너 포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게 어색하고 창피하다.

그뿐이었다.

탁.

시운은 내민 손이 민망했던 건지 손을 움직여 땅에다가 포션을 내려놓았다.

“여기다 둘게요. 분명 그쪽한테 필요할 테니까.”

“아, 됐다니깐요! 남이사. 무슨 상관인데?”

“어쨌든 여기 놔뒀습니다. 이걸 마시던, 그냥 버리던 알아서 하세요, 그럼 이만.”

시운이 더는 눈길을 주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 화가 난 것일까.

점점 희미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성은 아주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쳇. 누가 도와달랬어? 왜 오지랖이야.’

남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본 여성은 곧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던전 바닥에 놓여있는 노오란 포션병.

포션이 눈에 들어오자 고민이 되었다.

‘1위를 놓치고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남길 바에는 그냥 도움 한 번 딱 받은 셈 치자. 뭐 내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곧바로 포션을 복용한다.

-스태미너가 회복되었습니다.

돌같이 무겁게 느껴졌던 전신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근데 방금 그 남자….’

검신으로 미노타우르스의 급소를 찌르자. 탄탄한 방어력의 명대사인 붉은 미노타우르스가 단번에 혼절했다. 아무리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였다고 해도.

‘꽤 강한 남자이긴 한가본데?’

***

공략이 끝난 던전에서 걸어나온 시운.

하늘을 올려다보니.

화창한 햇살이 대지를 따사롭게 쬐여오고 있었다.

눈부심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점심 시간 정도 되었나 보군.’

서바이벌이 종료되기 까지 시간은 많이 남지는 않은 듯 하다.

곧바로 순위 창을 띄웠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장세준 [89000 Point]

2위 - 이시운 [88500 Point]

3위 - 강혜령 [79200 Point]

‘아직도 1등을 탈환하지 못한건가.’

이쯤 되었으면 1등이란 자리는 분명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초조함이 맴돌았다.

‘특성 카드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맞았다.

이번 보상으로 추가된 히든 특성카드는 시운에게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그 특성카드에서 어떤 효과의 카드가 나올지 모른다.

보통.

개봉되지 않은 특성카드는 등급(카드의 색)에 따라 천차만별의 능력이 깃든 카드가 튀어나온다.

그러나.

아무 카드나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헌터와 관련된 카드가.’

그랬다.

카드를 개봉하는 헌터와 관련이 있는 카드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백 퍼센트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특성카드를 개봉했던 헌터들의 의견에 따르면 거의 기정사실인 것이었다.

카드를 개봉하는 헌터가 지금 가장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 헌터의 신념. 그리고 그 헌터의 신체구조와 의식 등등을 결합하여 그것과 관련이 있는 카드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금.’

방금 던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강혜령을 도왔던 일.

사실.

도와주지도 않고 미노타우르스의 도끼에 처참히 죽게 내버려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운은 도와준다는 선택을 내렸다.

‘이미 강혜령 너에 대해선 잘 알고 있지.’

시운은 그녀를 꽤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 누군가가 안다면 분명 놀랄 것이었다.

얼음여신 강혜령.

얼음여신.

그녀의 미소를 한 번도 본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별명이었다.

“강혜령 그녀는.‘

그녀의 과거는 참으로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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