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화
생존 서바이벌 (5)
“서바이벌을 왜 서로 죽이고 죽게 만든담?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나, 참.”
연희는 연신 투덜대며 걸었다. 그녀의 옆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살기를 느끼지도 못한 채.
‘미안하게 됐지만.’
세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눈으로 자신보다 몇 보 앞에서 걸어가는 연희의 뒷모습이 보인다.
걸을 때마다 휘날리는 가는 머리칼 밑으로 떨어진 그녀의 하얀 목선.
완드를 치켜 올린다.
그리고.
빠악!
“....!”
목이 부서지는 통증과 함께 연희는 힘없이 바닥에 발라당 쓰러졌다.
“아아…….”
그녀의 입에서 숨빠진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녀의 눈 앞으로 세준의 신발이 보인다.
“세준씨?”
머리가 울리는 통증 때문에 말조차 잘 안 나왔다.
“하아. 원래 여자 패는 데는 취미가 없는데.”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읇조린 세준은 다리를 구부려 연희와 눈높이를 맞춘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연희의 커진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바닥에 코를 제대로 박았는지 그녀의 오똑한 코에서 붉은 피가 입가로 떨어진다.
“인연은 인연이고. 룰은 룰이잖아요? 연희 씨. 서바이벌 끝나고 밖에서 술이나 한잔 하시죠?”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변해? 어떡해!”
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 따지는 연희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장세준은 탐탁찮은 얼굴로 완드를 치켜 세운다.
끝내야 할 시간이다.
“아이스 블래스트.”
세준의 완드 끝에 장식된 해골바가지의 입에서 하얀색 오라가 피어난다. 이 오라는 곧 무방비 상태인 연희의 몸을 박살낼 것이었다.
“나, 나쁜, 나쁜 자식!!”
연희는 울먹거리며 소리질렀다.
일어나서 덤벼보고 싶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점점 강하게 느껴진다.
“연희 씨, 수고했어요.”
세준의 입술은 얄밉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완드에서 완성된 냉기가 완드에서 벗어나 연희에게로 향하려는데.
차앙!
완드와 칼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파공성이 일었다.
세준은 완드를 통해 아주 묵직한 힘을 느끼고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뭐야?”
세준은 비집어 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장세준 씨?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좀 치사한 구석이 있네.”
열기가 피어나는 검을 든 헌터가 자신 앞을 막아선채 하찮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세준은 금방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살갑게 말했다.
“누군지 안다고? 이거 영광인데?”
헌터는 검신을 세준에게 향하게 한 채, 고개를 젖혀 쓰러진 연희에게 눈길을 주었다.
“괜찮아요?”
“이시운….”
“아, 우리 이제 말 놓기로 했던가? 다쳤죠? 잠깐 누워있어요. 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시운은 맘만 먹으면 세준을 처리할 수 있다는 눈치였다.
연희는 시운을 보자 감정이 복받쳤는지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이거 귀찮게 됐네.’
세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이시운. 듣기로는 들었다. 껄끄러운 상대.
굳이 지금 맞붙는다면.
‘손해다.’
세준은 완드를 집어넣고 두 손바닥을 위로 들어올렸다.
“워워~ 이시운 씨. 그쪽하고는 싸울 마음이 없어요. 아무리 지금이 피케이 시간이라도 서로 귀찮게 피보지 맙시다. 당신이나 나나 일반 헌터보다 강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굳이 서로 싸워서 피보면 손해겠죠?”
“혀가 기네. 그 해골바가지 완드나 뽑아들어.”
시운은 장황히 늘어놓는 세준을 짜증난다는 듯 바라봤다.
그런 시운은 생각했다.
‘장세준. 네 놈에 대해서도 잘 알지.’
전생.
그리고 그 전생에서도 장세준은 현계 게임 역사의 획을 완전히 그어버린 프로게이머였다.
신의 손. 게임에 최적화된 신의 두뇌를 가졌다고 잘 알려진 세준.
흙수저가 인생역전을 하고 정점의 자리에 올랐다는 그의 이야기는 젊은 이들의 가슴에 많은 희망을 심어주었고.
그의 이미지는 성실하고 지적인 선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시운의 전생과 그 전생에서 세준은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똑같은 일을 벌이고 말았다. 그 일은 기사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돈을 모아 직접 게임 회사를 차려 대표가 된 세준은.
자신들의 직원들에게 강제로 본인 회사의 주식을 사라고 권유했고.
직원들은 대출까지 받아가며 주식을 샀다. 그 후.
장세준은 비열하게 회사를 팔아넘겼다. 일명 강매 후 먹튀.
종이쪼가리가 된 주식을 산 직원들은 빛에 쫓기게 되었고.
그들은 자살하거나 폐인이 되었다.
반면 세준은 돈과 명성을 이용해 다른 회사를 차린 뒤 승승장구 했다.
‘내 전생과 그 전생에서와 지금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장세준. 네 놈은 쓰레기 같은 인간. 네 놈에게 통수를 맞을 일은 없다.’
시운은 두 번의 인생을 더 산 경험이 이럴 때 도움이 된 것이었다.
평소 시운같았으면.
세준의 말에 넘어갔을 테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그쪽이랑 나랑 굳이 싸워서 이득될 게 있나? 둘 중에 누가 이길지도 모르는 거고. 그냥 서로 가던 길 가고 순위 1위 2위 각각 먹어서 통과하면 그만 아닌가? 우린 엘리트인데 서로 피볼 게 뭐 있어?”
세준의 긴 물음에 시운은 홍란검으로 대답해 주었다.
부웅!
기습적으로 검신이 세준의 팔목을 쓸어갔다. 세준의 로브의 소매가 뜯겨져 나가면서 그곳에 불이 붙었다.
“상태이상 해제.”
세준의 입술이 움직이자 세준의 소매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꺼졌다.
“이시운! 파티 신청 받았어.”
“좋아.”
그 사이에 시운은 하나를 해내었다.
그것은.
연희와의 파티였다.
지금은 피케이 모드라.
시운이 광역 스킬을 사용하면 연희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연희와 파티 관계를 맺어 그녀에게 대미지를 입히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나온다면 뭐, 어쩔 수는 없겠네요. 안타깝게 됐네.”
“닥치고 덤비기나 해. 질주.”
시운이 눈썹을 휘날리며 빠르게 다가왔다.
차앙!
검과 완드가 부딪혔다.
부딪힌 두 무기 사이로 시운과 세준의 시선이 맞물린다.
‘장세준. 이 자식. 내 검을 완드로 맞받아 치다니.’
시운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근력은 넘사벽 수준인데.
근력이 하등한 매지션 따위가 완드로 자신의 일격을 막는다니 말이다.
막아냈다곤 하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쪽은 세준이었다.
한편 세준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힘이 장난이 아닌데…….’
시운의 검을 맞받은 완드로 힘이 온전히 전해졌다.
분명 이 완드에 비장의 옵션들을 장착시켜놓은 상태인데,
그런 이 완드를 이 정도로 압박하다니.
세준의 손이 더욱 떨렸다.
시운은 그대로 오른발을 들어 세준의 복부를 걷어찬다.
퍼억!
“컥!”
허리가 굽혀져 자세가 흐트러진 세준에게.
“일참.”
홍란검의 검신이 공기를 가르며 세준의 로브로 향한다.
“텔레포트.”
피익!
공격은 빗나갔다.
시운은 예리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핀다.
‘텔레포트까지?’
이동한 세준의 위치를 파악한 시운은 그대로 화룡의 도약을 통해 폭발적으로 세준에게 날아간다.
“흐압!”
날아가며 검을 꽉 붙잡고 일격의 준비를 한다.
“아이스 블래스트.”
차앙! 차앙!
매섭게 날아오는 얼음 구체들을 검으로 모조리 쳐내며 멈추지 않고 날아갔다.
“이거나 쳐먹어라.”
세준의 머리를 향해 하강하며 두 손으로 꽉 붙들어 잡은 홍란검의 검신을 힘껏-
내리친다.
콰아앙!
‘환영?’
검신이 세준의 몸통을 가르자 세준은 연기를 피워내며 사라졌다.
그때였다.
“블리자드.”
시운. 자신에게서 십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이미 세준은 블리자드의 시전 대기시간을 끝낸 상태였다.
‘보통 놈이 아니야.’
시운은 다시금 놀랐다. 타 F랭크의 헌터들과는 완전하게 이질적인 장세준.
‘게임하던 놈이라 그런지.’
헌터 시스템 또한 완벽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대지가 뒤흔들리고. 주변의 공기까지 얼어붙을 정도의 냉기가 세준의 머리 위로 가득 피어나있었다.
그리고 그 냉기들은 폭풍처럼 시운에게 쏟아졌다.
‘마력이 엄청나군. 얼음 속성엔 불로 상대해준다.’
시운은 눈을 크게 비집어 떴다.
“홍란의 일참.”
땅에 꽂힌 홍란검의 검신이 불타기 시작하면서 불길이 순식간에 치솟아 주위를 뒤덮었다.
뒤덮은 불길과 쏟아지는 냉기가 서로 팽창하면서 부딪힌다.
콰아아아앙!
불과 냉기 두 가지의 속성이 격하게 맞물리면서 뒤섞였고.
그것은.
곧 연쇄적인 폭발로 이어졌다.
***
맹인과 매지션의 격돌은 5분이란 시간동안 쉬지 않고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제.
그 격돌의 끝이 보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하아아…….”
거칠게 숨을 내몰아쉰 세준의 얼굴은 화상자국과 검자국으로 엉망이 돼 있었다. 그의 로브는 난도질되어 있었고. 완드를 든 손은 당장이라도 힘이 풀릴 듯 떨리고 있다.
“한 끗 차이였어. 내 인생에서 나랑 이런 공방을 벌인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군.”
세준은 쓰러진 시운을 응시하며 말을 뱉었다.
머리칼이 헝클어진채 쓰러진 시운의 전신은 얼음으로 장식 돼 있다.
“맹인불괴.”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으나.
[빙결 상태 이상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반갑지 않은 알람이 들려왔다.
“내가 사용한 마법은 웬만한 상태이상 해제 마법으로는 풀지 못해. 빈첸트 스크롤을 좀 발라놨거든.”
시운의 궁금함을 세준은 친절히 말로서 풀어주었다.
세준 또한 생명력과 마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
‘이시운. 이 마법으로 끝낸다.’
세준의 완드에 오라가 피어나며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여파로 세준의 머리칼이 위로 솟았다.
“날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었다. 이시운.”
그 다음으로 세준의 입술이 움직인다.
“윈드 커터.”
“그, 그만해!!”
그때. 힘겹게 연희가 소리쳤다. 정연희는 쓰러진 시운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비켜요.”
세준이 말했다.
“됐거든. 이 비열한 자식아!”
세준의 완드에서 날이 서린 바람이 팽창한다.
“이시운. 괜찮아?”
앞을 막아선 채 연희가 시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연희. 비켜.”
시운이 힘겹게 말했다.
“비키긴 뭘 비켜? 난 이번 서바이벌은 포기했어.”
연희는 후회가 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 미소가 시운의 마음을 흔들었다.
시운은 들리지 않게 입술을 움직였다.
“인벤토리 창.”
인벤토리가 시운 앞으로 떠오른다.
시운만 볼 수 있는 창이었다.
‘영생의 팬던트.’
아직 방법은 있다.
죽어도 그 자리에서 부활시켜주는 영생의 팬던트라는 아이템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곳에서 이 아이템을 사용하긴 아깝지만.’
영생의 팬던트는 2회의 횟수 제한이 있다. 그 횟수 중 하나를 지금 써야 할 처지였다.
‘이 아이템으로 부활하여 단숨에 찍어눌러줄게. 장세준.’
세준의 완드 주위로 칼바람이 춤추고 있다. 당장이라도 이 칼바람은 연희와 시운의 육신을 찢으리라는 기세였다.
“정연희. 나한테 수가 있어. 그러니까 비켜.”
“못 비켜.”
“비키라니까!”
“난 괜찮아. 후회 안 해.”
연희가 말을 듣질 않는다. 시운의 말을 믿지 않는 듯 했다. 정말 저 마법을 저 연약한 몸뚱아리로 막아낼 생각인 듯 하다.
“비키라고 했다!! 나한테 방법이 있다고.”
“어서 회복이나…… 하셔.”
연희는 두 팔을 벌린 채 여전히 시운 앞에 서서 말했다. 그녀의 얇은 다리가 떨리고 있다. 그녀도 겁을 먹은 것이었다.
“정연희!!”
이시운이 소리쳤으나. 연희는 이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세준은 완드를 앞으로 치켜들었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마력이 바닥난 지라 마력을 구축하는데 오래 걸렸네. 그 광경? 꼴사납지만 보기 좋다고 해줄게.”
완드 주위로 칼바람이 매섭게 빗발친다.
팟!
공기를 가르는 탄탄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세준의 것이 아니었다.
팍!
“....?”
방금 흘러나온 신음은 세준의 것이었다.
완드를 잡은 세준의 어깨쭉지에 화살이 박혀있다.
척.
시운의 시선으로 뭔가가 보였다.
스판으로 꽉 조인 탄력적이고 아찔한 애플 힙.
그리고 그 예술적으로 휘어진 골반과 그밑으로 쭉 뻗은 매끈한 다리.
여성의…… 하체였다.
“어딜 보는건데!”
여성이 시운을 보며 으르렁! 거렸다. 강혜령이었다.
“당신이 갑자기 왜?”
시운이 의아하게 물었고. 연희도 놀란 눈으로 혜령을 바라보고 있다.
“뭘 왜야.”
혜령은 활을 세준에게로 겨누더니 곧바로 활시위를 탁! 당긴다.
슈욱!
차앙!
세준이 휘두른 완드에 화살은 두 동강이 나 엉뚱한 곳에 박힌다.
“당신은 뭔데 나타나 훼방질이야?”
세준이 이를 갈며 물었다.
혜령은 오른손으로 긴 머리를 위로 쓸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하얗고 예쁜 이마가 드러난다.
시운이 물었다.
“나한테 한 번 도움 받은 것을 갚으려는 건가요?”
“무슨! 그저 도움만 받는 것을 싫어할 뿐야.”
“훗, 그래요. 고마워요.”
“그런 소리 별로 안 좋아하거든?”
시운의 말에 혜령은 얼굴을 찌푸리고 곧바로 입술을 움직인다.
“맹렬의 가짐.”
그녀의 두 다리로 보란 오라가 피어난다. 민첩성을 상승 시켜주는 버프 스킬인 듯 했다.
그리고.
혜령의 눈이 빛난다.
타타타탁!
곧바로 세준에게 달려나간다.
‘빠르다.’
연희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여성의 움직임은 빠른 정도가 아니었다. 눈으로 잡기도 힘들 정도.
“멀티 샷.”
팟!
팟!
팟!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은 장세준을 향한다!
세준의 안면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다.
그런 세준이 말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사용할 수 밖에.”
“어스퀘이크.”
세준의 입술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시동어는 단순한 전직스킬에 의한 스킬은 분명 아니었다.
화살이 세준에게 빗발쳐 오는 그 순간이었다.
“텔레포트.”
화살들은 요란히 빈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드드드드드!
대지를 뒤틀어버릴 만큼의 굉음과 진동이 일었다.
혜령의 땅 주위가 빠르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콰쾅!
“윽.”
대지의 파편의 충격으로.
혜령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쩌걱! 거리며 균열되어 가는 대지를 감각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대미지를 피한 혜령은 그대로 세준에게로 향했다.
반면.
시운은 빙결이 해제되자 곧바로 일어섰다.
‘강혜령을 돕겠다.’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복용한 뒤.
세준을 노려보았다.
세준은 혜령과 대치 중이었다.
‘장세준. 네 패턴은 이제 다 파악했다.’
다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쩌걱! 쩌걱!
발밑으로 땅이 갈라짐과 함께 대지의 흙먼지들이 튀어올랐다.
시운은 곧바로 연희를 들춰안고.
“화룡의 도약.”
안전한 곳으로 착지한다.
“…!”
시운의 품에 안겨 갑작스레 날아든지라 연희가 좀 놀란 모양이다.
“여기서 쉬고 있어. 저 여자를 도와주고 올게.”
“나도 도울게.”
“아니, 넌 그냥 여기있어.”
연희는 화가 났다.
바로 자신에게.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세 인물들의 싸움에는 자신은 도움조차 되질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해….’
어느새 시운은 세준의 곁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이시운. 그에게.
연희는 분함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
“도움은 필요 없다고. 나 혼자 가능해.”
혜령이 인상을 쓰며 시운에게 말했지만 시운은 들은 척도 않고 세준에게로 뛰어든다.
이미 주위는 지진으로 인해 바닥이 박살나고 나무와 바위, 모든 것들이 짙눌려 땅 속에 처박힌 상태였다.
드드드드!
지진은 계속 되었다.
달려가는 시운은 그 여파로 휘청였다.
순간 날아든 세준의 마력 구체를 예리한 눈으로 캐치하고 피했다.
그리고 세준의 코앞까지 파고 들었다.
“카운터 어택.”
검신은 세준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갔다.
결단코 이 공격은 피하지 못하리라.
세준 또한 체념했다.
‘둘은 버겁군. 여기서 끝인가.’
그때였다.
[서바이벌 피케이 허용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부터 헌터를 탈락 시키면 그만큼의 벌점이 주어집니다. 차질이 없이 마지막까지 좋은 성적으로 서바이벌을 마치길 바랍니다.]
턱.
시운의 검신이 세준의 목젖.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아아….”
세준은 고개를 젖혀들고 입을 벌린 채 긴장이 서린 눈을 검신에 두고 있다.
시운은 그대로 세준을 노려본다.
“아쉽게도 시간이 다 돼 버렸네요?”
세준은 얄밉게 말하면서 시운의 검신을 바라봤다.
그만 칼을 치우라는 말투였다.
“칫.”
카앙!
시운은 검신을 내린 뒤 검집에 밀어넣는다.
혜령 또한 세준을 겨누던 활을 내려놓았다.
“꽤나 짜릿한 전투였는걸?”
세준은 잘도 짓껄였다. 엉망이 된 얼굴로.
시운은 세준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저런 놈의 말은 더 듣고 싶지 않았으니.
“강혜령 씨 맞죠?”
시운이 물었다.
혜령은 시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두 팔을 올려 자신의 머리칼을 묶는다.
“고마워요.”
“….”
시운의 말에 혜령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으나 그녀는 말없이 휙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멀어졌다.
“이시운 씨. 사용하는 스킬을 보니 일반적인 클래스는 아닌 것 같은데?”
세준은 알이 하나 빠진 자신의 안경을 매만지며 말했다.
시운은 그런 세준을 그대로 쏘아보았다. 이만 닥치고 꺼지라는 눈빛으로.
“워, 워. 너무 감적적인데요? 안 그래도 갈 거에요. 지금 서바이벌 중인데 내가 그쪽하고 하루종일 붙어 있겠나요?”
“알아 들었으면 꺼져.”
“훗.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비린 미소를 보내던 세준의 얼굴이 사라진다. 텔레포트.
시운은 연희에게 걸어갔다.
꽤나 반반한 그녀의 얼굴은 상처로 망가져 있었다.
“괜찮아?”
시운이 묻자 연희는 어깨를 들썩거린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우리 살았어. 그것도 같이.”
덥썩.
“어?”
의외의 상황에 시운의 눈이 커졌다. 연희는 시운을 양팔로 껴안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눈물이 시운. 자신의 어깨에 떨어져 촉촉해지는 감촉이 느껴진다.
“무서웠어….”
무서울 만 했겠지.
서바이벌의 이력은 평생 남을 테고. 여기서 아웃되어도 정말 죽는 것은 아니지만. 공격을 받았을 때 느껴지는 통증은 진짜니까.
‘너무 꽉 달라붙은 거 아니야?’
어색했다.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 울고 있는 연희.
그런데 시운의 가슴으로 다른(?) 감촉이 느껴진다.
물컹하고 탄력적인 그것이 가슴에 닿아 비벼지는 느낌.
‘잡생각은 떨쳐버리자.’
“흐흑…….”
시운은 엉덩이를 살짝 뺀 뒤에,
자신의 가슴팍에 파묻은 연희의 턱을 들어올렸다.
얼굴이 눈물에 젖여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이목구비는 꽤나 예뻤다.
“그만 울어라. 애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네가 알아? 갑자기 장세준 그 놈이 날 공격하고 죽이려는데. 얼마나 그 상황이 무서웠다고!”
정연희. 당돌하고 씩씩한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여린 것 같다.
그런데.
“근데 정연희. 너 몇 살이야?”
시운의 물음에 연희는 울음을 멈추고 휘둥그레진 눈을 한다.
아직까지 서로 나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시운. 너어…. 내 나이도 아직 몰랐냐?”
“네가 알려준 적이 없잖아.”
“그건 그렇네…….”
조용히 서로를 쳐다봤다.
아직 서로의 나이조차 모르는데. 서로를 살리겠다고 아등바등한 방금 그 상황이 웃겼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 여태 나이도 몰랐던 거네.”
“참나….”
버거운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자.
다시 인간적인 광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
“종료까지 한 시간 남았습니다, 협회장님.”
보좌관이 협회장에게 말했다.
스크린에 눈을 두던 협회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시운.’
방금 스크린 속의 광경들이 협회장의 뇌리에 그려졌다.
강혜령. 그리고 정연희.
협회장 대익의 이마에 서서히 힘줄이 솟는다.
‘사람들을 끌어들으는 능력이 있는 듯 하군.’
그러나.
바랬던 그 모습은 없었다.
교활하고.
짐승같은 생존의 본능적인 모습.
‘사냥개로 쓰기에는.’
여러 가지가 걸린다.
“저어…. 협회장님.”
이사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 말에 협회장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제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슬슬 진행하시는 것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대익은 서서 대기하던 보좌관을 보고 한번 끄덕이자 보좌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회의실 밖을 나갔다. 아마 시스템 관리실로 향하는 것일 터였다.
대익은 입에문 시가를 이빨로 씹어내며 스크린으로 눈을 둔다.
“실망적이지만 마지막이 남았으니 좀 더 지켜볼까.”
대익의 말에 임원들의 눈 또한 스크린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관문.
그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
시운과 연희는 엉망이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히히덕 거렸다.
그리고.
시운은 일어섰다. 서바이벌 테스트의 우승을 장식하기 위해선.
끝없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
마침 그때였다.
곧 울릴 알람은 늘어진 긴장을 다시 세워주기에 알맞았다.
[서바이벌 종료까지 한 시간 남았습니다. 마지막 관문인 보스 레이드가 진행 됩니다. 모든 헌터들의 위치는 공통된 던전으로 지정 됩니다.]
‘보스 레이드라.’
알람을 듣던 시운의 눈빛이 진해졌다. 보스레이드.
확실한 포인트를 득점해서 굳혀야 할 타이밍이 다가온 것이었다.
***
현대의 스타디움 만한 직사각형의 큰 공간.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투명한 벽이 공간의 끝을 애워쌓고 있다.
그 공간으로 열 명의 헌터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며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열 명?”
“이것밖에 안 남은건가….”
헌터들은 다른 헌터들을 마주한다. 모두가 고된 서바이벌로 인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 자네 역시 끝까지 살아남았구만.”
시운에게 반갑게 말을 건 것은 태식이었다.
“아저씨도 계셨군요. 다행이네요.”
“오오? 연희 양도?”
태식이 연희를 가리키자 연희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반가워요, 아저씨. 저도 죽을 뻔 한 거 용케 여기까지 남게 되었네요.”
“다들 고생한 티가 얼굴에 팍팍 나는데.”
이렇 듯 인간적인 안부를 묻는 헌터들이 있는 반면.
경계심의 눈으로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는 헌터들도 존재했다.
‘저들이 이번 상위권 탑 쓰리인가.’
헌터 몇몇의 눈은 세 명에게로 향해있었다.
한 명은 여자 한명을 옆에 두고 늙은 헌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고.
또 한 명은 무표정으로 활을 정비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허공에 가만히 눈을 두고 있다.
‘3위 안으로 진입하긴 틀린건가….’
‘아직 보스가 남았다. 역전이 불가능한 건 아니야.’
‘점수 차이가 너무 나는데. 뒤집기란 불가능하겠어.’
‘저 세 녀석 보다 먼저 보스에게 뛰어가서 죽도록 대미지를 뽑아내야지.’
헌터들의 생각은 경쟁심에 의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
쿵!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가 등장한다는 알람은 불친절하게도 없었다.
원형 경기장의 1/5을 채울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보스는 골렘이었다.
헌터들은 재빨리 보스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골렘의 두 눈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 인위적이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을까.
움직이지 않던 골렘에게 헌터 하나가 뛰어간다.
“보스에게 첫타를 가하는 건 나다!”
메이스를 들고 뛰어든 헌터는 곧바로 골렘의 다리를 향해 무기를 찍어내린다.
쿠웅!
“헉!”
“꺄악!”
지켜보던 헌터들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터진다.
골렘의 다리가 위로 올라가자.
땅에 그대로 처박혀 몸통이 아스라진 헌터의 시체가 드러난다.
[스물한 번째 탈락자 발생!]
“너, 너무 강하다.”
“방금 봤어? 순식간에 헌터를 밟아버렸어.”
헌터 몇몇은 기가 완전히 꺽인 채 뒤로 물러났고.
감정보다 차분함으로 골렘의 움직임을 분석해내려는 헌터들도 있는 반면에.
“준비 됐지?”
“당근. 좌우로 흩어져서 양동 작전을 벌이는 거다!”
헌터 둘은 눈빛 교환을 하고 골렘을 향해 돌진하다.
돌진하던 헌터 둘은 그대로 좌우로 흩어진 뒤에.
각자 다른 방향에서 골렘을 향해 공격한다.
“크라잉 대시!”
“스트라이크 펀치!”
대검과 건틀렛이 골렘의 몸에 적중한다.
그때.
크아아아앙!
조용하던 골렘이 아가리를 벌리고 포효했다.
그리고.
골렘의 거대한 양 팔이 움직여 땅을 내찍는다.
쿵!
쿵!
굉음이 흐르고.
골렘은 대지에 내리꽂은 양손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으, 으아아아….”
“또 죽었어.”
“심하게 강한 거 아니야?”
지켜보던 헌터들의 눈에는 바닥에 터진 두 헌터의 시체가 생생히 들어왔다.
갈비뼈가 터지고 머리가 터져 뇌수가 박살난 끔찍한 두 시체.
[스물두 번째 탈락자 발생!]
[스물세 번째 탈락자 발생! ]
남은 헌터는 고작 7명이다.
‘괴물이잖아.’
‘저건 오바라고.’
헌터들이 뒤로 물러났다.
딱 세 명을 제외하고.
쿵!
골렘이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쿵!
쿵!
쿵!
그 세명을 향해 골렘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
“정말 대단하다.”
“우리가 저기 끼면 그냥 죽어버리겠죠?”
“휴우…. 보스한테서 점수 좀 따려고 했는데 이 꼴이 뭐냐고!”
네 명의 헌터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들의 망막으로 진풍경의 광경이 비춰지고 있었다.
세 가지의 물체가 골렘의 몸에 마구 때려박히고 있었다.
불.
얼음.
그리고 화살.
바로 세 명의 각기 다른 무기에서 발산되는 것이었다.
포효하며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는 골렘의 발과 다리를 피하고, 받아치고, 막아내기까지 하는 세 명의 전투를 보는 헌터들은 회의감과 놀라움 두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우린 저 세 사람들이 잡을 때까지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하나.”
“자존심 상하네. 벽이 느껴져.”
그들 틈에서 연희는 두 손을 모으고 그 광경을 지켜본다.
‘제발 다치지 않기를.’
그녀의 눈은 한 남자에게로 가 있었다.
불을 뿜어내는 검을 들고 골렘과 맞서고 있는 한 남자에게.
***
“홍란의 일참.”
골렘의 탄탄한 다리에 꽂힌 검신이 뻘겋게 달아오른다.
콰콰콰콰쾅!
불길이 치솟아 골렘의 육신을 덮어버린다.
“광역 스킬 좀 적당히 쓰죠? 연기 때문에 시야가 잡히질 않잖아.”
미간을 찡그린 혜령이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이게 내가 가진 최고의 스킬이라.”
연기가 걷히자.
골렘의 주먹이 날아온다.
차앙!
홍란검으로 주먹을 막아낸다.
크으으으
골렘이 작게 포효한다.
‘이 놈 힘이 장난이 아니네.’
자신의 머리 위를 누르는 주먹을 검신으로 막아 밀어내고 있다.
짓누르는 골렘의 힘에 시운의 허리가 꺽이려 했다.
‘내 근력 스탯이 일반적이었다면 이대로 짓뭉개졌겠지.’
파파파팍!
골렘의 두 눈에 번개같이 화살이 꽂힌다.
골렘의 대가리가 돌아가 혜령에게로 멈춘다.
이윽고 날아오는 골렘의 투박한 주먹.
혜령은 아슬하게 피해낸 뒤에 골렘의 팔 부분에 안착한 뒤에 그 팔을 타고 골렘의 어깨를 지나 머리 부분에 안착한다.
골렘의 눈 바로 앞에 다달은 혜령은 활을 눈에 대고 그 자리에서 쏜다.
팟!
팟!
쿠어어어…….
최근접 거리에서 눈에 화살을 맞은 골렘이 아픈 소리를 낸다.
‘저 눈이 약점인가 보군.’
시운은 화룡의 도약을 통해 단번에 골렘의 머리까지 날아오른다.
“맹인일참.”
샤아악!
시운에게는 홍란의 일참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액티브 스킬인 맹인일참이었다.
검신은 그대로 골렘의 눈덩이를 파고들어 강력한 오라를 발산했다.
곧바로 검신을 뺀 시운은.
“일참.”
다시 눈에 일격을.
다시 검신을 뺀 뒤.
푸욱!
꽂아넣는다.
골렘이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마구 발광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땅으로 안착한 시운.
광활한 공간의 허공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이시운 [160020 Point]
2위 - 장세준 [159800 Point]
3위 - 강혜령 [159770Point]
허공에 떠오른 점수표.
‘한끗 차이다.’
한끗 차이로 순위가 갈라지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골렘이 괴로운 소리를 낸다.
이제 거의 보스레이드는 끝을 달려감을 알리는 신호였다.
“어스퀘이트.”
빠지지직!
세준에 의해 발현된 마법은 대지를 찢어놓는다. 그 여파로. 골렘의 큰 두 다리에 생채기가 팍! 팍! 돋아나기 시작했다.
New Comer Survival
현재 순위 집계
1위 - 장세준 [161120 Point]
2위 - 이시운 [160020 Point]
3위 - 강혜령 [159770Point]
‘그렇다면.’
“질주.”
마법을 구사하고 있는 세준에게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리고.
“아까 당한 건 이걸로 퉁치자?”
시운의 말 소리와 함께.
빠악!
둔탁음이 터져나왔다.
시운의 오른 주먹에 강타당한 세준의 얼굴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대로.
세준의 머리가 흔들리며 구현되던 어스퀘이크의 발동이 멈추었다.
씨익.
시운의 미소가 좌우로 일그러졌다.
‘죽이지만 않으면 벌점은 없는 거니까.’
아까의 복수.
그리고 전생과 그 전생에서 이놈때문에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에 대한 복수였다.
주먹이 얼얼하다.
그 만큼 온힘을 다해 후려쳤다.
통쾌했다.
그 순간.
쿵! 쿵!
골렘이 두 무릎을 꿇었다.
“크윽.”
세준이 코를 감싸쥐었다.
그 틈에 시운은 골렘을 향해 뛰어갔다.
이제 마지막 대미지를 입혀야 할 시간.
그런데.
‘아, 아니?! 아저씨!’
그 앞으로.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