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화
유흥업소 토킹바에 오다..? (2)
“네! 손님? 죄송한데, 더 안 시키실거면…”
바텐더 슬기가 시운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손님을 존중한다는 배려심은 없었다.
“여기 손님이 술 시키면 바텐더한테 인센티브가 떨어지나요?”
시운의 물음에 슬기는 고개를 저었다. 저은 고갯짓으로 그녀의 뾰족한 턱이 뒤따라 흔들린다.
‘인센티브가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술 시켜도 너한테 떨어지는 돈이 없다는 거군, 좋네.’
시운은 가만히 슬기를 바라봤다.
슬기 또한 눈을 크게, 아니 전투적인 눈빛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이제 맥주 손님 따위는 사이즈도 안 나오고 귀찮으니 가라는 신호가 눈빛에 서려있다 못해 그냥 뒤덮여 있었다.
시운이 입을 연다.
“발렌타인 17년산 주세요.”
“발렌타인 17년산이요?”
슬기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동공은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졌으나. 티 안내려고 노력 중인 것도 시운의 눈에는 다 보였다.
조용히 끄덕인 시운을 멍하니 바라보던 슬기는.
“아, 알겠습니다. 안주는 뭘로?”
“안주 필요 없습니다. 술만 있으면 됩니다.”
“네.”
슬기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돌아서 진열대로 가려고 할 때. 시운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서브라고 하나요?”
“네?”
“술 시키면 앞에서 말상대 해 주는 것을 서브라고 하냐고 물었습니다.”
“아, 네. 그것을 서브라고 하죠.”
“바텐더들은 서브를 보는 게 역할이죠?”
“그럼요. 그게 저희가 해야할 일이죠.”
“그럼, 술 시켰으니 그쪽이 해야할 일은 좀 해주세요.”
“네?”
시운을 대하는 바텐더의 태도는 어느새 누그러져 있었다.
“자리 비우지 말고 자리 지키면서 서브 봐달라 이 말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저희가 지금 손님이 많아서 신경을 못 써드렸죠? 당연히 써드려야죠.”
그녀가 웃었다.
뻔뻔하게 웃는 입꼬리는 불안한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고.
“……….”
슬기가 술이 나열된 진열대의 유리문을 연다. 그리고 양주를 골라 꺼낼 동안.
시운은 좌측과 우측의 손님들을 살폈다.
‘보통 이런 바에 오는 손님의 심리가 뭘까?’
우측의 손님을 바라봤다. 평소 자기 관리도 없이 술과 먹을 것만 좋아할 것 같은 살집이 가득한 30대의 남성은 바텐더 하나를 두고 온갖 자신만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하아. 우리 부서 과장이 얼마나 좆같은 줄 알아? 내가 일 처리를 잘 해와도 그냥, 일단 인상부터 쓰고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어머, 왜요, 오빠?”
“그게, 꼬투리 하나 잡아서 나한테 스트레스 풀려는 거야. 과장이 얼마 전에 이혼을 했거든. 마누라가 바람이 났대. 멍청한 새끼. 밤일도 제대로 못했겠지, 그 인간이. 큭큭 원래 결혼하면 여자가 왜 바람나는 줄 알아? 결혼하면 부인은 오래한 남자의 방망이 크기에 질 크기가 딱 맞춰지거든? 그때. 남자가 여자를 더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여자는 더 자극이 안 와.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내돌게 되는 거야. 해바라기라도 박든가 해서 마누라를 만족 시켜줘야 마누라가 밖으로 안 도는 법이거든. 여자든 남자든 다 똑같은 인간이고, 성생활에 만족 못하면 누구든 눈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거지. 그게 절대 이상한 게 아니야.”
“어머, 그런 말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밤일이 중요하긴 하지, 오빠. 한잔 마셔요.”
남성과 바텐더가 술잔을 부딪힌다.
‘자기 일상 스트레스 늘어놓으려고 온 사람과.’
시운은 이번엔 좌측 손님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유독 시끄러웠던 테이블.
좌측엔.
시운의 삼촌 뻘 정도 되는 아저씨가 바텐더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대화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마치 바텐더를 다루기라도 하듯 자신감 찬 남성의 목소리는 바텐더를 연이어 빵빵 터지게 했다.
바텐더의 과도한 리액션이 아니었다. 저건 진짜 즐겁고, 웃겨서 웃는 미소였다.
‘어떻게 나이도 많은 사람이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애를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양주가 나올동안 좀 지켜봤다.
“그게 아니지. 너는 이쁘긴 한데, 살짝 아쉬워. 왠 줄 아냐? 좀 싸보이게 다니거든.”
“싸 보이다니! 오빠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싸 보이지 않게 치장하고 다녀야지. 여자는 야하게 입고 화장만 잘 한다고 다가 아니야.”
“진짜 제가 싸 보여요?”
“내가 없는 말 하겠냐?”
“그럼. 어떻게 하면 좀 고급스러워 보일까요?”
그들의 대화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의 눈과 어투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상대 바텐더의 눈치 또한 보지 않은 채 대화 주제를 주도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느낌상 카사노바.
즉 여자를 다루고 가지고 놀 줄 아는 남자라는 직감이 뇌리에 들어왔다.
단순히 대화 몇 마디? 허세 몇 마디 들어보고 아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눈에 읽힌 감정과 그 남자에 빠져 집중하는 바텐더의 바디시그널을 관찰 했을 때.
‘나이랑 관계 없이 바텐더의 기분을 실시간으로 자기 마음대로 주도하고, 바텐더에게서 이 사람이 다음은 무슨 말을 할까?‘ 라는 흥미를 느끼게 하고 있군.
나중에 말을 좀 섞어봐야 겠다.’
분명 뭔가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시운은 다른 바텐더를 잠시 불러 세웠다.
“네.”
생긋 웃으며 다가오는 진희라는 바텐더.
“손님하고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노래 하나만 틀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어떤 노래요?”
“버즈의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아! 저도 그 노래 좋아하는데.”
진희. 그러니까 방금 맥주 하나 놓고 있는 시운을 외면하고 양주 테이블에 돌진했던 여성이 이젠 더 붙일 필요 없는 말까지 덧붙이며 생긋 웃고 있다.
시운은 입꼬리를 조용히 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가소롭군. 돈이 뭐길래.’
“……….”
진희는 눈을 멀뚱멀뚱 뜨며 시운을 빤히 바라봤다. 아마 자신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질문이라던지 아니면, 사족이라던지.
“거기 서 계시지 마시고, 노래나 틀어주세요. 그쪽은 보던 손님 서브 마저 보셔야죠.”
“네.”
바텐더는 머쓱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노래를 튼다.
신청곡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때였다.
“아! 씨발. 무슨 바에서 발라드가 갑자기 튀어나오냐? 우울해지게.”
우측 손님의 욕지기였다.
느닷없는 타이밍이었다.
신나게 과장 욕을 늘어놓으며 한탄을 풀던 손님.
남자의 격앙된 목소리가 내부를 감싸자 순간 바에 정적이 흘렀다.
“오빠, 왜 그래요?”
“아니, 내가 신나는 댄스곡이나 걸그룹 상큼한 노래들 들으면서 술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발라드가 튀어 나오니까 화 나잖아! 씨발 거.”
“다른 손님이 신청하신 거에요. 손님이 신청하신 노래는 당연히 틀어드려야 해요. 그리고 발라드던 댄스곡이던 클럽 음악이던 정해놓지 않고 트는 거 알잖아요, 오빠!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해? 한 잔 마시자~”
“아니, 누가 틀으라고 시켰어? 쟤야?”
남자가 시운을 삿대질 하며 바텐더에게 물었다.
취기가 이미 정신을 잠식했는 모양이었다.
시운은 말없이 담배 하나를 물고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어이, 젊은 친구?”
우측 아저씨가 시운을 불렀다. 시운은 입술에서 담배를 떼고 조용히 그와 시선을 맞댄다.
‘꼭 취해서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어디든 있군.’
눈을 돌려 남자를 살폈다.
육중한 떡대 위로 눈꼬리를 말아 새우고 흰 동공을 드러내며 시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름 자기 방식대로 겁을 주려고 짓는 표정인 듯 했지만, 그 표정에는 그다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계에서 이미 생사 고비를 넘나 들며 저 떡대보다 몇 백배는 강한 몬스터를 주먹과 칼로 때려잡고 다니는 게 일상인데. 저런 게 무서우랴?
“조용히 술이나 드시죠. 바는 기분 좋게 마시고 가려고 오는 거 아닙니까?”
나직이 말하던 시운의 두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담배 연기는 조용히 바의 천장에 피어오르고 있다.
“발라드를 뭐하러 시키냐고. 아까 모양새 안 나오게 맥주 두 병 시킨 친구 아니냐?”
“내가 무슨 술을 마시던 당신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시운의 말에 떡대의 뱃살이 출렁였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오빠! 참아요. 그러지 말고….”
“놔봐, 씨발. 젊은 놈이 말투가 건방지잖아?”
‘젊은 놈? 재밌네.’
시운은 속으로 웃었다.
남자가 일어선 채 시운을 내려다 본다. 나름 살기를 담은 눈으로 보는 것 같긴 한데.
“야. 딱 보니 이제 대학생 쯤이나 되는 새끼인 것 같은데. 새파란 놈이 뭐하러 바에 오냐? 너 취직이나 했냐? 앙? 인마! 형은 30대 중반이란 나이에 팀장 직 달고 어엿한 사무직에서 일 하걸랑?”
다른 손님과 바텐더들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의 눈은 그 떡대에게 멈춰 있었다.
“그 나이엔 공부를 해서 스펙을 쌓고 취직을 하던 하란 말이야, 어린 새끼야. 바에 와서 무리해 가면서 돈지랄이나 하면, 너는 40대까지 쭉- 취준생인거야? 알아 들었어?”
가관이다.
처음 보는 손님이.
시비를 거는가 싶더니 취기가 얼마나 달아올랐으면 저런 오지랖이 터지는 듯한 꼰대스러운 조언을 내어주는지.
“직급이 회사 팀장이시라고요?”
시운이 일어나서 그에게 걸어갔다.
터벅터벅.
시운이 다가오자 눈을 더 크게 비집어 뜬 떡대.
둘의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지켜보던 바텐더들의 눈빛은 불안해졌다.
척.
떡대 앞에 멈춘 시운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는 취준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닙니다.”
“그럼 백수 새끼냐? 그것도 자랑이냐? 푸하하. 그리고 일어서서 내 앞에 온 이유가 뭐야? 겁 먹을 것 같아?”
“아으~ 오빠! 오늘 왜 이렇게 진상인거야? 젊은 사람들도 기분 내려고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돈 좀 쓰러 올 수도 있는 거지이! 능력있는 오빠가 참아요.”
거든 진희라는 바텐더의 말이었다.
피곤한 상황인데.
‘웬만하면 참고 넘기려고 했는데.’
그냥.
경우없는 바텐더와 술기운에 예의란 것을 집에다가 잠시 놓고 온 남자의 입을 닫게 해주고 싶어서 시운은 조용히 지갑을 열었다.
“어른이 묻는데 새끼가! 대답은 안 하고 지갑은 왜 열………”
남자의 멱따듯이 꿱꿱 거리는 큰 육성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남자의 눈에는.
좀처럼 일상에서 보기 힘든 것이 바로 앞에 있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헌터 면허증이었다.
“허, 헌터?”
떡대의 눈이 커졌고 입이 벙끗은 거리는데 벙끗 벌린 입 속으로 말은 더 나오질은 않는다. 못 나오는 거겠지.
격하게 떨리던 남자의 뱃살은 조용했고, 대신 남자의 턱살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진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입을 꾹 닫은 채 입이 아닌, 눈만 벌리고 있다.
“회사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술의 힘을 빌어 아무한테나 힘자랑 하고 오지랖이나 부리며 누르려 말고. 난 당신보다 대우받고 편하게 돈 벌 수 있으니까.”
“허, 헌터였어……?”
남자의 반응이 이런 건 당연했다.
모던 바에 검사가 올 일이 흔하겠는가.
아니면 판사가 올 일 또한 흔하겠는가. 절대 흔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검사와 판사 보다 선망 받는, 희귀한 직종이 헌터였으니까.
시운이 무표정으로 물었다.
“더 할 말 있습니까?”
“아, 아니, 아, 내가 오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예민했나봐. 미안해요, 젊은 친구. 아, 내가 집에 들어가봐야 하나? 오늘 이상하게 술이 안 받는지 취하는 듯 하네, 크, 크흠!”
떡대가 조용히 엉덩이를 의자에 안착 시키고, 앉는다.
시운은 그대로 일어선 채 떡대를 내려다 본다.
조용히 열린 눈으로.
“……….”
떡대는 시운의 눈을 보지 못하고 맞은 편에 있는 바텐더만 바라보며 술잔을 내밀고 있다.
“지, 진희야 한 잔 줘봐….”
“아, 응. 한 잔 줘야지.”
술잔을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대우받는 직종인 헌터를 일반인들이 어려워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보통 만두귀나 몸이 굉장히 좋은 격투기 선수를 보면 본능적으로 기가 죽는다. 그러나, 그 격투기 선수들 못지않게 강하다고 알려진 부류가 바로 헌터였다.
이계에 적용된 능력치 스테이터스는 현계인 이곳으로 넘어오면 적용되진 않는다.
허나.
이계에서 몬스터와 피 터지는 난전을 벌이며 전투 경험을 쌓은 헌터들의 경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괴물과 혈전을 벌이며 쌓은,
수도 없는 실전 탓에 본능적으로 싸움을 하는 감각이 발달 됐다고 알려진 이들이 헌터였다.
술취한 건장한 남성 둘이 길을 가다가 여성 헌터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아스팔트에 나가 떨어진 두 남성 중 한 명이 식물인간이 된 사례 또한 뉴스를 통해 알려져 세상을 시끄럽게 했었다.
‘뭐, 이제 조용해졌으니.’
만족한 시운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떡대가 시비를 건 이유는 애초에 알고 있었다.
자신을 담당하던 바텐더가 시운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 같으니 어줍잖은 질투나 난 것이겠지.
떡대는 시운의 눈을 보지 못하고 바텐더와 조용히 대화만 하고 있다. 아까와는 달리 아주 개미 기어가듯한 목소리로.
“술 오픈 하세요.”
시운이 자신 앞에 있는 슬기에게 말했다.
술의 뚜껑에 손을 갖다댄 채 눈만 껌뻑이며 시운을 보던 슬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술을 오픈한다.
“한 잔 주시죠.”
“네, 네!”
시운의 손에 들린 스트레이트잔이 술로 채워진다.
술병을 따르는 슬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스르르 열렸다.
“저 근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