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화
유흥업소 토킹바에 오다..? (3)
두 눈을 초롱거리는 슬기의 입이 다시 열린다.
“진짜 헌터에요?”
“네, 헌터인데요.”
“안 믿기는데….”
“참고로 헌터자격 사칭죄는 형법제987조, 헌터 자격을 사칭하여 직권을 행사하는 자는 4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란 규정이 있습니다, 공무원사칭 죄보다 더 세죠.”
“아….”
유창하게 늘어놓는 시운의 입만 보던 슬기의 고개가 곧 저절로 끄덕여진다. 이제야 믿는 눈치다. 형법이 뭔지조차 모를 것 같지만.
“와, 신기하다. 저희 바에 헌터 분이 들린다는 게….”
시운을 바라보는 슬기의 두 동공에는 정말 신기함이 담겨 있었다.
시운은 조용히 스트레이트 잔을 비운다.
“양주는 솔직히 처음 먹어 보는데. 먹을만은 하네요?”
“소주나 맥주보다 깔끔하고, 숙취가 깔끔해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요.”
슬기가 공손히 대답한다.
이제야 손님 대접 정도는 해주는 바텐더의 뉘앙스에 시운은 다소 회의감을 느꼈다.
‘다 같은 사람인데, 이 여자처럼 남을 무시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한테는 태도를 확 낮추는 구나.’
그게 세상이였다.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방금 전 그 떡대와의 일 또한.
‘내가 한 짓에 후회감이 전혀 안 든다.’
그랬다.
시운은 세 번째의 인생을 맞이하고 일반인과 다른 삶의 가도를 달리며 느끼고 바뀌어 가는 것이 있었다.
‘남에게 막하고, 약자를 누르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겸손질 떨며 답답하게 받아치지 않고, 그저 그런 부류보다 더 큰 힘과 능력으로 더 세게 눌러줘야 한다는 것.
‘약자들과 선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주고, 그들을 존중해주는 것.
시운은 세 번째 인생만큼은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항상 선하고 약자란 부류에 속하기만 했던 시운이다.
‘사실 히든 퀘스트 때에 막대한 골드의 보상까지 포기하며 디하르트를 도운 것 또한…’
이 마음가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뿐이었다.
시운은 양주의 스트레이트 잔으로 손을 뻗었다.
“아, 제가 따라 드릴게요.”
친절히도 슬기가 두 손으로 양주를 들어 시운의 잔을 채워준다.
시운의 목으로 흘러들어간 양주는 따갑게 경직된 목을 이완시키며 타고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소주보다 확실히 낫군. 이래서 돈 좀 더 내고 양주를 찾는건가?’
하루 빨리 C랭크가 되고 싶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2차 전직만 찍으면, D랭크 승급심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은 모두 충족 시켜놓은 상태다.
‘승훈이 도와주면서 꼭 확인해 볼 것도 있고.’
며칠 머무는 현계에서 하나 시험해볼 것이 있었다.
인터넷 방송이란 것에 게스트로 나가는 일.
‘친구도 도와줄 겸, 그것에 대한 내 예상이 맞는 지 또한 알아볼 겸.’
만약.
실험을 통해 그 예상이 맞는다면?
돈을 쓸어담는 몇 십억 연봉의 헌터 박태석.
그가 굳이 유튜브 스트리밍까지 손을 벌리는 의문 또한 확실히 풀리고 만다.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안녕히 가세요, 오빠 취했는데 택시라도 타고 가요! 내일 출근 잘하고.”
“어, 어어….”
시운과 눈빛 싸움을 나누었던 떡대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평소라면 그는,
양주 병을 모조리 다 비우고 마감 시간까지 남아 바텐더들에게 나가서 소주 먹자, 맥주 먹자란 추파를 지겹게 던졌을 것이리라.
“안녕하세요!”
명량한 인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진희란 여성이 입꼬리를 가득 올리며 슬기 옆에 서서 웃고 있다.
그녀들의 네 개의 눈은 시운의 얼굴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
‘둘이서 내 서브를 봐주려는 거군.’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진희가 물었다.
“물어보세요.”
“제 남동생이 헌터자격시험에 올인하겠다고 공부 하겠다는데 합격하는 팁 좀 알려주세요.”
“팁이요? 그런 거 없어요.”
“에이, 그래도 편법 하나 쯤은 있을 거 아니에요?”
시운은 킥, 웃으며 진희를 똑바로 보고 말한다.
“헌터자격시험이 편법 따위가 통할 시험이라 생각해요? 그냥, 노력이 정당한 편법입니다. 그런 거 기대하고 공부하려거든 포기하고 다른 길 가라 하세요.”
“아….”
진희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근데! 헌터면 인기 많겠네요?”
슬기가 물었다.
“여자 만날 시간이 많진 않아서.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두 바텐더가 동시에 답한다.
“네, 뭐요?”
“다 물어보세요! 대신 우리 친하게 지내요!”
두 바텐더는 자신들의 대답이 겹치자 서로를 바라봤다.
“진희야. 이 테이블은 나 혼자 서브 봐도 될 것 같은데?”
“언니. 헌터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하고 대화할 기회가 생겼는데 저도 여기 있을래요.”
“아, 그래?”
“네.”
두 바텐더가 웃으며 서로를 몇 초간 바라본다.
그 웃음과 상반되게 눈빛과 눈빛은 이상한 기류가 흘러 만난다.
고위 랭크의 헌터는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한다. 고수입에 넓은 인맥,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쥐게 되며 그런 헌터와 인맥을 쌓고 지내면 자신에게 뭔가 떨어질 거란 환상을 품는 일반인들이 몇 있었다.
그 범주에 바텐더가 속하는 것도 예외랄 건 없었다.
“저기, 진희 씨.”
시운이 부르자 진희가 방긋 웃으며 대답을 맞이한다.
“제가 정신 사나운 거 싫어서 그런데, 한 명하고만 대화 할게요. 그쪽은 다른 일 보세요.”
“아, 저 그냥 여기서 조용히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안 될까요?”
시운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 응, 안 된다.
“……네.”
입을 삐죽 거리며 진희가 그대로 바 안의 대기실 쪽으로 걸어간다.
자존심이 상한 듯 시선을 더 안 주고 빠르게 걸어갔다.
슬기는 그 모습을 보고 미묘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바에서 오래 일하고 볼 일이네. 나 혼자서 헌터와 술도 일대일로 마실 기회도 생기고.’
만족스러운 듯한 눈치다.
“여자의 심리가 궁금한데, 남자가 한없이 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쳐요, 근데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친구로만 생각합니다. 마음을 몰라줘요.”
뜬금없는 시운의 질문에 슬기가 귀를 쫑긋 세운다.
“설마 손님의 연애 경험 질문인가요?”
“아뇨, 제 이야기는 아니고. 친구 이야기.”
친구 이야기라 했다.
자신의 이야기라 하면 바텐더는 손님의 입장을 배려해서 솔직한 조언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애둘러 말한 것이었다.
“아휴.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여사친, 남사친인데 남사친이 여사친을 해바라기처럼 좋아하는데 여사친은 그 남사친에게 관심이 없다? 이 말이죠?”
“네.”
아주 찰떡같이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슬기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톡톡 치며 한숨을 내뱉는다.
“아휴. 답답해, 그거 본인 친구 이야기에요?”
“네.”
“계속 좋아해도 여자가 남자를 그저 친구로만 본다면 다음에 좋아할 일도 없어요. 아우 듣는 내가 속 터져. 당장 그 친구보고 꿈 깨고 다른 여자 찾으라고 해요.”
“다른 여자?”
“당연하죠. 여자가 마음이 있었으면 애초에 썸이라도 일어났겠지. 당연한 걸 물어보시네요? 완전 고구마 한가득 입에 삼킨 기분이다. 그 친구 솔직히 굉장히 찌질하죠?”
“……….”
말 뒤끝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뼈가 아팠다. 대답 못 했다.
“여자는 자신한테 질척거리거나 극도로 좋아해주고 그러는 거 싫어해요. 여자가 좋아하게 만들어야지….”
맞는 말이었다.
"어떻게 여자가 좋아하게 만들어요?”
“그거야 당연히 여자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잘생긴 얼굴, 능력 이런 게 쫌 충족이 되면 쉽긴 한데….”
“그게 다 충족 된 상태라면? 그런데 그 여자가 봐주지 않는다면?”
“아우!”
슬기가 얼굴을 찌푸린다. 굉장히 답답한 질문인 듯 하다.
그녀의 입이 다시 열린다.
“생각만 해도 복장 터지는 질문이네, 그거 진짜 친구 실제 경험담이죠? 그러면 여자를 안달나게 만들어야죠. 여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남자가 여자를 휘두를 줄 알아야지. 그런 것도 못하면 포기해야죠. 떡 줄 생각도 않는 여자를 뭐하러 한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요?”
대답없이 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그러고보니.
시운, 자신은 몇 생에 걸쳐서 세정을 하염없이 좋아했다.
그녀를 위해서 헌터가 되겠다는 동기부여도 탄탄해졌고.
그녀를 위해 도약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슴에 묻었다.
‘세정이는…’
정말 일반인과는 달리 넘사벽으로 이쁘다.
게다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능력이나 성격까지 말하면 입 아플 정도.
‘내가 굳이 안 되는 걸 이렇게까지 가슴 찢어가며 좋아할 필요가 정말 있을까….’
회의감이 뇌리를 휘감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지만.
정말 안 되면 놓아야 인생이 편해지는 법이었다.
“그 친구 그 여자를 얼만큼 좋아하는데요?”
“많이 좋아하죠.”
“고백은 했대요?”
“아뇨.”
“아우 속 터져. 그럼 뭐 했대요?”
“그냥 바라만 보고 그 여자를 위해 능력을 쌓았고 또……”
“우와!! 아오, 진짜!”
슬기가 입꼬리를 비틀며 바의 바닥을 힐로 쿵쿵! 찍었다.
“답답해, 디지겠네. 그 친구보고 계속 그럴거면 그냥 뛰어내리라 하세요. 와, 듣는 내가 이렇게 답답한데 그 여자는 오죽할까?”
시운 또한 반박할 수 없었다.
이런 게 여자의 심리.
‘진짜 내가 생각해보면 정말 답답하고 병신같았지. 이제 그만 해야할까.’
슬기가 허리를 굽혀 뾰족한 턱을 테이블에 올리고 시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왔다.
“진짜~ 친구 이야기 맞아요?”
“맞는데요.”
“하긴, 본인 이야기 일리는 없겠다. 그쪽처럼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가 좋아한다는데 어느 미친년이 마다하겠어요?”
“내가 그럼 그쪽을 좋아한다면 그쪽은 나하고 만날 거란 이야기?”
“그거야 당연히……”
당차게 말하던 슬기가 잠시 입을 닫는다.
좀 수줍어하는 눈치다. 넉살 좋은 줄 알았는데 그녀 또한 여자였다.
슬기는 옆에 손님과 옆 바텐더의 눈치를 힐끗 살핀 뒤.
작게 입술을 움직여 속삭인다.
“나 같으면 만나주죠, 당연히.”
“만약 방금 그게 내 이야기라면?”
“그렇다면…”
슬기가 어깨를 들썩이고 세상 떠나가듯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얼굴 값, 능력 값 못하고 있단 거죠.”
말없이 시운은 끄덕였다.
“근데 몇 살이에요?”
“스물네 살요.”
“스물네 살에 헌터? 와…. 부모님은 좋겠다.”
드르륵.
시운의 허벅지 살을 뒤흔든 것은 핸드폰 진동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천세정.
세정이의 전화였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조용히.
핸드폰의 액정을 스르르 넘겨서 수신거절 했다.
천세정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사실 삼생(三生)에 걸쳐 지금이 처음이다.
“저, 짠해요! 술 먹고 싶어….”
슬기가 보챘다.
“술 먹고 싶단 건 좋은데…”
시운이 말을 멈추고 슬기의 술병 옆에 있는 따개가 열려있는 음료수 캔에 시선을 둔다.
그리고 시운이 그 음료수 캔을 들어 빈 잔에 따랐다.
주르르-
순간.
슬기의 얼굴이 싸하게 굳어진다.
잔에 따라진 음료수의 색깔은 본래의 색깔과 좀 달랐다.
시운이 그거를 자신의 입 안에 갖다댄다.
“그쪽이 술 한잔 먹고 음료수 캔 입에 갖다대고 반복하던데. 만약 여기에 양주 맛이 나면…”
“네, 아, 아니 저희는 술작업 안해요.”
손사레를 치며 턱을 떠는 슬기는 당황을 꽤나 집어먹은 듯 했다.
바에 처음 오는 손님이라 그런 것은 일절 알아차리지도 못했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술작업 할거면 그냥 마시지 마요. 이거 내가 사는 술이지 당신이 사는 술인가? 왜 손님의 술을 이딴 식으로 교묘하게 버리는 거지?”
“아, 진짜 아닌데….”
“마셔볼까? 양주 맛이 나는지 안 나는지?”
“……….”
일반인의 여섯 배가 넘는 시각을 가진 시운의 눈으로 그런 것을 캐치 못할 리가 없었다.
“옆에 있는 바텐더랑 자리 바꿔요.”
“네? 아니, 오해하신 것 같은데…”
“사장 부를까?”
시운의 물음에 슬기는 어깨를 바들 떨면서 옆 테이블로 걸어간다.
그녀가 걸어가는 뒤태가 보인다.
등까지 떨리는 것이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지금 시운의 행동은,
손님이란 타이틀로 부리는 갑질?
아니었다.
당연히 행사해야 할 권리였다.
다른 바텐더가 걸어왔고.
그녀의 인사는 조심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시운은 고개만 끄덕여주고 방금 그 음료수 캔을 찌그러뜨렸다.
“술작업 하지 마세요. 저 바텐더처럼.”
“아, 오해신 것 같은데, 저희는 술작업을 하지 않…”
“더 따질 생각은 없고. 술 작업 하지 말라는 말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 진상 손님도 아니고 그냥 기분 풀고 조용히 가려는 손님입니다.”
“네.”
시운이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앞에 있는 바텐더의 동공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다.
근데.
이 바텐더는 그 손님과 이야기를 하던 여자였다.
자신감이 들어차 여자를 능숙히 다루는 연륜이 느껴지는 중년의 손님을 말이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혹시 방금 옆에 계신 남자하고 이야기하다 왔죠?”
“네.”
시운은 목소리 톤을 확, 낮췄다. 혹시나 옆 손님이 들을까봐.
“저 남자 분 몇 번 갔다온 사람 맞죠?”
몇 번 갔다온 사람이라면 돌싱.
바텐더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아셨어요?”
“저 사람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도 돼요?”
“아….”
바텐더는 옆 손님을 힐끗 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연다.
“42살의 아저씨인데 무려 다섯 번이나 식장을 갔다 왔어요.”
“다섯 번?”
“그리고 저 아저씨 꽤 유명해요. 여기 바텐더 젊은 애들도 몇 번 건드렸는데 신기한 건 나중에 헤어지면 그 젊은 애들이 오히려 저 아저씨한테 울며 매달리더라구요. 중년의 맛에 빠진 애들처럼…. 그 바텐더들 지금 다 그만뒀어요.”
시운은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돌려 옆 손님을 쳐다봤다.
중년 남성.
매부리 코에, 적당히 짙은 눈썹.
착하지 않은 눈매. 탄력 없이 늘어진 몸매까지.
이성에게 어필하기엔 부족한 외모.
일반 아저씨의 생김새 였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떻게 저 아저씨가 바텐더들까지 꼬시고 휘어잡을 수 있는거죠? 그쪽이 생각하는 저 아저씨의 매력이 뭔데요?”
“그게요…”
바텐더가 잠시 고민하다가 곧 말을 이었다.
‘오늘 확실한 답의 힌트 정도는 얻고 갈 수 있겠다. 그 힌트를 얻고 천세정. 너를 이 자리에 불러 널 놓을지, 좋아할지를 정하겠다. 비록 그게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