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64화 (64/278)

제 64화

픽업 아티스트보다 뛰어난 작가님, 헌터란 독자님 (1)

“대화를 하면 뭔가 내가 이 사람에게 빠져드는 느낌? 소용돌이처럼 날 빨아들이는 그런 느낌? 아니,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랄까?”

진희는 말을 하면서도 모르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매력이라.’

매력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일이든 인간적인 요소에서 그 인간을 특별하게 할 수 있는 추상적인 장점을 뜻한다.

매력.

누군가에겐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 빠진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기고 멋있어보이는 착각까지도 들게 할만큼의 가치가 있는 유대관계의 매개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운이 물었다.

“매력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음에 진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거렸다.

“당연하죠. 아무리 잘생기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도 매력 없으면 호기심이 안 드는데요? 그 사람만의 매력이 있어야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빠지는 거 아닌가요?”

“그렇군요.”

취기가 돋아 흐릿해진 시야로 양주병이 들어왔다.

어느새 발렌타인의 양주병은 1/3이 줄어있었다.

“잔 비었네요, 채워 드릴게요.”

주륵-

진희가 따른 잔을 그대로 입에 털어넣으려는데. 진희의 눈이 자신의 잔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테이블로 옮겨간다.

그녀의 동공이 톡톡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방금 좀 심했나?’

진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당연했다. 슬기라는 바텐더가 흔히 말하는 ‘술 버리기’ 일명 술작업이란 기술을 펼쳐서 시운이 당차게 쏘아주었고.

슬기는 기겁한 기색을 숨기며 다른 테이블로 쫓겨나듯 쫓겨났다. 그런 광경을 옆 테이블에서 서브를 보던 진희라는 여성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바텐더들은 앞의 손님과 대화하면서도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을 시간마다 살피는 습관이 있다.

그 손님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언제 왔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

더군다나 시운처럼 잘생긴 훈남이 술을 먹고 있으면.

어쨌든 눈이 한 번쯤은 더 돌아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술은 먹고 싶은데 방금 그 일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군.’

한마디로 눈치보고 있다 그뜻이다.

솔직히 뭐.

술 버리기 스킬을 사용한 것은 바 시스템의 사기와 가까운 비양심적인 문제였고.

그 시스템으로 갖춰진 바라고 하더라도 비양심적 행위를 한 슬기가 혼나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잔 줄게요.”

“네? 저 먹어도 돼요?”

굳어진 진희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난 그냥 술작업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 거였지. 바텐 보고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 그쪽도 술 마시고 싶은데 못 먹고 있죠? 혹시 내가 시킨 양주 그쪽이 먹으면 나중에 술병 비었을 때, 네가 당신에게 왜 이렇게 눈치없이 양주를 먹어댔냐고 쏘아댈까봐?”

“아……”

진희가 시운의 시선을 피하더니 킥, 웃었다. 마치 의중을 들켰단 듯이 화들짝 눈꺼풀을 떠는 것은 덤이었고.

진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진상 손님 많아요. 자기가 먹으랄 데는 언제고. 나중에 양주 다 먹고 계산할 때에 갑자기 불같이 화내면서 ‘네가 이 비싼 양주 다 처먹었으니 나 술값 못내!’ 라는 손님들이요.”

시운이 고개를 젓는다.

“난 그런 사람은 아니고요.”

탁.

스트레이트 잔을 서로 부딪힌다.

진희는 잔을 비우고 시운의 스트레이트 잔 옆 글라스 잔으로 얼음을 든 집게를 넣어 얼음을 채워주는 것을 잊지 않고 실행한다.

“여기 양주 키핑 기간이 2개월인가요?”

“네. 저희 가게는 먹다 남기신 양주는 두 달동안 보관해 드려요. 바를 많이 와보셨나 봐요? 그런 것도 다 아시구….”

시운은 말없이 웃었다.

사실 바는 처음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온 바라도 어느정도 와본 것 같은 손님으로 둔갑시켜 보이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헌터라는 일 덕분.’

이었다.

헌터라는 직종은 이계에서 자신의 생명줄을 쥐고 괴물과 수싸움을 벌이는 사냥가다.

F급이든 S급이든 가릴 것 없이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몇 가지 감각이 자연스레 발달한다.

그 감각 중 하나가 청각이란 감각.

몬스터의 숨소리. 던전의 들려오는 괴수의 기척.

몬스터가 어떤 형태로 공격해올지 파악하기 위해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이란 기관을 응용하여 소리로 판별하고 다음 수를 머릿속에 그려내어 타이밍을 잡아 반격해야 능숙하게 사냥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눈 뿐만 아니라 청각까지.’

살아남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괴수와 결전을 벌이다보니 인간의 오감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시각에만 의존한 형태의 헌터는 딱 거기까지 밖에 성장할 수 없다.

설명이 좀 길었는가.

그러나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면 조금 풀어 설명해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미 이해했다면,

진희가 말을 뱉어내는 시간까지,

스크롤을 내려주길 친절히 권장한다.

권장하는 이유는, 이미 이해한 당신은 또 한 번의 설명을 들으며 뇌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될 테니까.

글을 읽는 당신은 스크롤 하나로 이 이야기의 미래와 과거를 언제라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잖은가.

이를테면, 한 주택의 윗층에 안하무인의 성격에 죽어도 쌀 정도로 층간소음을 내어 아랫집에 피해를 주는 망할개자식 같은 놈이 있다 치자.

그럼 그 아랫집에 사는 사람은 괴로워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랫집 사람의 귀는 본능적으로 트이게 된다.

이것을 바로 청각과민증이라 일컫는다.

귀가 트이게 되면 트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시계 초침 소리나, 문을 쾅! 닫는 듯한 작은 소리에도 큰 반응을 하게 된다.

층간소음이 인간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존 방어기재를 발휘해,

그 소리가 더욱 잘 들리게 하여 그 소리를 감지하고 그 소리를 피하게 하려고 귀라는 감각을 열리게 하는 것이다.

시운 또한 헌터로서의 생존을 위해 위와 같이 귀란 감각이 본능적으로 열린 상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옆 손님과 방금 그 옆 손님의 대화도.’

손님들이 바텐더에게 은연 중 던지는 단어들은 시운의 열린 귀에 들어가 바에서만 구사하는 용어 ‘서브’ ‘키핑’ ‘술작업’ ‘로테이션’ 등의 뜻은 소리를 통해 뇌에 심어진다.

그렇게해서.

시운의 입을 통해 그 단어들이 배출되어 바텐더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진희의 물음에 시운이 화들짝 눈을 떴다.

“아, 그냥 좀 딴 생각 좀 했네요. 그보다 저 옆에 손님은 뭐하는 분인가요?”

“저 손님이요?”

진희는 왜 자꾸 자신에 대한 질문이 아닌 옆 손님을 주제로 담아 묻는거냔 듯 뾰로퉁한 눈으로 옆 손님을 흘깃 보더니.

“아…. 저 분, 작가에요.”

“작가요? 무슨 작가요? 드라마? 웹툰? 영화 시나리오?”

“웹소설 작가요.”

“소설?”

시운의 눈이 커진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겠군.’

“로맨스 웹소설 작간데 그 바닥에선 진짜 유명하대요.”

진희가 옆 테이블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시운의 눈은 더욱 휘둥그레진다.

“로맨스 웹소설 작가요?”

보통 남자보단 여자가 로맨스 소설을 많이 쓰지 않나.

뭔가 매칭이 안 되는데.

“안 믿기죠?”

진희는 시운의 속마음을 자신의 되물음으로 대신했다.

‘당찬 자신감과 한참 어린 여자들을 본인에게 빠지게 하는 것이 소설 작가와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 그런 부분들은 차라리 픽업 아티스트 하는 애들한테나 관련 있는 거 아니었나?’

시운이 핸드폰을 꺼냈다.

“저 손님 이름이 뭐에요? 소설 한 번 검색해보게.”

“강춘식이요. 근데 왜 저 손님한테 그렇게 관심을 갖는 거에요? 저, 심심해요. 그쪽이 같이 술도 안 마셔주고…. 저에 대해서는 물어주지도 않고.”

서운한 듯 진희가 셀쭉 거렸다.

대충 미소를 지어 답례한 시운은 핸드폰에 시선을 묻었다.

‘요즘은 종이책이 아닌 핸드폰으로 소설을 보는 시대다. ’웹‘소설 작가라고 했으니까.’

2분.

그러니까 2분이란 시간만 시운은 핸드폰에 눈을 묻었다.

“뭐하세요? 뭘 하길래 그렇게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그렇게 빠르게 넘겨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2분 만에.

강춘식이란 손님의 소설을 다 읽었다. 무료 편수까지 25화라는 편수를.

웹소설 25화라는 편수는 종이책으로 약 한 권에 달한다.

‘놀랍다.’

시운은 다시 옆의 강춘식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그는.

“이야, 오빠 오늘 하루는 쿨하게 양주 휙휙 목구멍으로 쏟아붓고 조용히 들어가려 했는데. 우리 슬기가 자꾸 오빠의 제 3의 신체를 톡톡 건드린다?”

“푸하하하하! 아우, 진짜 오빠 성드립을 어떻게 그렇게 감성있게 칠 수 있는 거야? 진짜 웃겨.”

바텐더의 입가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주인공이 남자.’

게다가.

작품 자체가 필력이 뛰어난 것도,

작품성이 뛰어날 정도다 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25편까지 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 장르판에서 남자 주인공을 통해 그가 쓴 스토리는.

‘경험 없이는 절대 이렇게 쓸 수 없어.’

필력이 좋지 않아도, 작품성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아도.

절로 몰입되고, 읽고 있는 내가 주인공이 된 기분 같고, 정말 너무나 실감이 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강춘식의 작품 중 하나인 가 남성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숱한 여자 경험을…’

기반으로 집필하였기에다.

적어도 ‘실감’이란 단어는 제아무리 왕성한 상상력이라도 실화를 이길 수는 없다.

작품명이 좀 괴상하고 천박스러워서 고치라고 오지랖 떨어주고는 싶은 건 여담.

‘잡생각은 여기서 끝내고.’

춘식에게 접근해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천세정에게 알 수없이, 정말 왜? 라고 스스로 묻고 싶을 만큼 끌리고 있는지. 또 그 한없는 끌림을 반대로 비틀어 내가 끌고 올 수 있는지.’

“저 한잔 주세요. 아, 왜 이렇게 핸드폰만 봐요? 나 혼자 심심하게 계속 놔둘 거에요?”

진희가 찡찡 거린다.

일단 시운은 웃으며 그녀에게 한잔 따라준다.

***

회색 롱 코트에 진한 화장을 한 여성이 앵클부츠를 또각 거리며 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손님이 두 명이네?’

“어서오세요, 사장님!”

“이제 나오신 거에요?”

바텐더 두 명이 벌떡 일어나서 목례했다.

여성은 대충스런 손짓으로 인사를 받는다.

‘양주 두 테이블이네? 근데….’

한 테이블에 눈이 갔다.

발렌타인 17년산의 양주가 놓인 테이블.

그 앞에는 젊은 여자 애들이 꼬일만한 얼굴의 어린 남자가 의젓하게 술을 먹고 있다.

‘끽해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발렌타인 17년산을 시켰다고?’

게다가.

저런 어린 20대 초반 핏덩이들은 이런 바에 오면 취기에 막 입을 열며 쉴새없이 떠드는 게 정상인데.

‘의외로 조용하네? 의젓한 느낌?’

여사장은 한 가지 걱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아우, 요즘 양주 먹고 계산할 때 돈 없다고 깽판 죽이는 손님 한 트럭인데…. 편의점 소주나 먹을 나이인 저 어린 남자애가 양주값을 낼 돈이나 있을까? 나중에 술기운에 계산 못한다고 깽판칠 수도 있으니 미리….’

여사장이 시운 앞으로 걸어갔다.

앵클부츠 굽이 바닥을 톡, 톡, 두드리는 소리에 시운의 고개가 돌아간다.

“저, 손님 죄송한데요.”

여사장이 서비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시운에게 말하자.

“예.”

“아, 죄송한데… 양주 드신 거 일단은 먼저 계산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그게 왜냐면 저희가 원래 선결제는 손님에게 실례일 수 있으니 잘 안하는데요. 요즘 워낙 뭐, 이런저런 손님들이 많……”

30대 후반 치고 예쁜 여사장은 미안스런 말투로 핑계를 늘어놓는다.

그때.

진희가 미간을 찡그리고 손을 마구 흔들며 사인을 보내왔다.

“왜 그래? 정진희. 여기 혹시 선결제 했어?”

“아니, 그게 아니고요. 사장님 저, 잠시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진희가 테이블에서 나와 여사장 앞으로 빠르다 못해 급하게 걸어갔다.

그러더니 진희가 대기실이 있는 쪽으로 눈짓을 한다.

“얘가 왜 이래? 여기서 이야기 해.”

사장은 진희의 반응이 이상하단 듯이 말한다.

그때. 시운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난다.

“계산 먼저 할게요. 여기 카드요.”

시운이 카드를 내미는 순간 진희가 손을 좌우로 흔들며 저지했다.

“아니, 다 드시고 나중에 하셔도 충분해요. 사장님 잠시만 저 좀.”

진희는 이제 아예 여사장의 소매를 끌며 대기실을 손으로 가리켰다.

***

“야, 정진희. 너 오늘 왜 이래? 그리고 아무리 너랑 내가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손님하고 내가 대화하고 있는 와중에 감히 이런 행동을 해?”

여사장은 예쁜 얼굴을, 진희가 겁 정도는 먹어줄 정도로 찌푸리고 양팔을 허리춤에 차며 쏘았다.

“사장님. 저, 그게 아니구요. 사실은….”

어렵게 이어진 진희의 다음 말은 여사장의 눈과 코, 귀를 아예 열리게 할 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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