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화
픽업 아티스트보다 뛰어난 작가님, 헌터란 독자님 (2)
여사장의 시선이 진희의 작은 입술에 내려 머문다.
그 입술이 열리기 시작했다.
“방금 그 사람 헌터에요. 그것도 헌터시험 만점으로 합격한 엘리트.”
“뭐, 뭐?”
여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튀어나올 듯 했다.
“그게 사실이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제가 저 사람의 헌터 면허증을 우연찮게 보게 됐어요. 그리고 대기실에서 잠깐 폰 만지면서 헌터에 대해 인터넷에 서칭하다가 기사를 봤거든요?”
“그런데?”
“많은 기사들 중 딱 제목이 눈에 띄는 한 기사를 봤거든요? 근데 저 사람 얼굴이 기사에 있는거에요? 그리고 기사 밑 글에는 최초로 헌터자격시험을 한 문항의 오답도 없이 패스한 엘리트. 라는 글까지 읽었어요….”
“……….”
여사장은 벌린 입을 손바닥으로 포갰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선결제.
보통 손님들에게는 술을 먹고 나가는 자리가 아닌,
손님이 음주가무를 하는 동안에 결제를 권하는 것은 사실 결례였다.
“하아. 나 실수 했네.”
여사장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녀의 뇌리로 예전에 봤던 뉴스가 하나 떠올랐다.
-질풍같이 떠오른 신인 헌터 김유한 씨가 들린 가라오케 안에서 가라오케 사장과 직원들이 김유한 씨에게 폭언과 하대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김유한 씨는 가라오케에 나갔다가 잠시 후, 정장을 입은 수많은 남성과 들어오더니 자신을 하대했던 사장과 직원들을 강제로 산에 끌고 간 뒤에, 협박과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나타나였습니다. 의문의 정장 차림 남성들은 김유한 씨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xx 대기업이 고용한 용역들로 밝혀져 큰 충격을………
여사장은 불안한 눈으로 진희를 보며 이야기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진희는 알아들었단 듯 끄덕 했다.
이미 그녀는 바텐더 경력 5년차의 프로니까.
***
“저, 손님.”
조용히 스트레이트 잔에 눈을 두던 시운은 기척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사장이 밝게 웃으며 테이블에 무언가를 내려놓는다.
과일화채와 오징어가 담긴 안주였다.
“이건 저희가 드리는 서비스에요. 원래 양주만 시키시면 안 드리는 건데…. 방금 술 드시고 있는 와중에 제가 결제하라고 재촉한 게 죄송해서….”
여사장이 말끝을 흐리자 진희가 바톤을 이어받는다.
“우리 사장님이 되게 좋으신 분이거든요? 이 안주 웬만하면 아무한테나 드리는 거 아닌데, 워낙 손님이 얼굴도 잘생기시고 젠틀하시고 뭐……”
이러쿵 저러쿵 말을 늘어놓는다.
비위를 맞춰주려는 것 같은데.
꽤나 당황하고 있는지 이 바닥 프로들이 횡설수설 하는 느낌이다.
“아, 안주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리고 결제 먼저 하던 나중에 하던 저는 상관 없어요. 지금 결제 할게요.”
“아, 아니에요! 다 드시고 천천히 계산하시면 돼요.”
지갑을 벌리던 시운을 여사장이 급하게 막는다.
“계산 먼저 해도 전 상관없는데.”
“네, 즐겁게 드시고 나중에 나가실 때 편하게 계산하시고 살펴가시면 돼요. 그나저나 우리 바에 이렇게 잘생긴 손님이 오다니 진짜 오랜만에 눈호강 하는 느낌인데요?”
“아, 감사합니다.”
시운은 과한 칭찬을 불안하게 늘어놓는 여사장이 의아스러웠다.
“그럼, 전 빠져드릴게요. 우리 바텐더 진희가 진짜 인기 많고 애가 말도 잘하거든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아, 예.”
여사장은 시운에게 목례를 하고 대기실로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꽤나 불안해 보인다.
“우리 바에 오징어 안주 진짜 맛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진희가 오징어를 하나하나 잘라서 그릇에 놓아둔다.
시운은 오징어를 집어들며, 고개를 돌려 강춘식을 바라봤다.
‘슬슬 접근해볼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머릿속에 그려놓은 상태다.
스트레이트 잔 하나를 든 시운은 춘식의 테이블 옆으로 갔다.
그리고 앉기 전에.
“저, 강춘식 작가님 맞으시죠?”
춘식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든다.
“아, 예. 맞습니다만.”
“저, 강 작가님 독자입니다. 연재하신 카라멜마끼야또의 불방망이 진짜 재밌게 읽었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제 얼굴은 어떻게 알아보신건가?”
반색하며 묻는 춘식 옆으로 자연스레 시운이 앉았다.
“워낙 유명하셔서 기사에서도 사진이 있으시잖아요. 기사도 봤고, 제가 작가님 팬이라서 작가님 인스타도 들어가보고 그랬거든요.”
“어이구, 이거 영광인데? 쑥스럽네. 하하하 이런 자리에서 우리 독자님을 만나다니 반갑네, 한잔 드릴게요.”
“주시면 감사히 받죠.”
춘식의 잔을 받으며 접근은 자연스럽게 성공했다.
‘작가들은 자신의 독자에게 관대할 수 밖에 없는 거지, 술까지 먹어서 기분도 업 된 상태인데 이런 상황에 다가오는 독자를 경계하고 거부하는 작가는 없다.’
그리고.
뭐, 능청스레 작가의 작품 재밌게 읽었다, 뭐했다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방금 25편 정도는 읽었으니까.’
어쨌든 사실이라면 사실인 것이었다.
***
취기가 오른 상황에서.
춘식과 시운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벽을 허물고 어느새 많은 대화 후로 친해져 있었다.
춘식은 어느새 시운에게 편하게 말까지 놓을 정도로 말이다.
“하하하! 근데, 자네 그 나이에 헌터란 직업까지 가졌으니 인기 많겠네?”
“작가님. 근데 질문 받는 거 안 좋아하시나요?”
“질문?”
춘식은 두터운 입술을 오물 내밀며, 고개를 갸웃하다 반색한다.
“질문 좋지. 왜?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진짜 나는 이런 로맨틱한 상황을 너무 좋아한다고. 독자와 작가가 이런 우연으로 팍 마주쳐서 친해지는 이런 서프라이즈 같은 상황들 말이야. 현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잖아.”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요.”
“좋아하는 여자? 아, 질문이 아니고 고민이구만? 오케이, 다 털어놔봐.”
춘식은 호탕하게 말했다.
게다가 나이답지 않게 신세대스러운 말투까지 버무리면서.
시운은 세정과의 일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다.
모두 다 털어놓은 뒤 시운은 춘식을 바라봤다.
춘식의 표정은 아니, 표정이 아니라 그냥 혀를 차고 있었다.
“쯧쯧쯧. 하아…. 자네 왜 그러나?”
“저도 모르겠습니다. 걔가 정말 완벽한 여자지만, 그걸 떠나서 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끌리는 그런 이유를 모르겠어요.”
“자네는 그 여자를 대하는 태도부터 완전히 바꿔야 해.”
“태도 말입니까?”
시운의 눈이 빛났다.
어느새 시운은 경청을 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자신감부터 좀 가져. 자네는 인물도 좋고, 능력도 탄탄한데 왜 그렇게 그 여자한테 목매고 그러나? 그리고 말이야. 여자는 자신감 없고 찌질하고 자기한테 끌려다니는 남자는 취급을 안 해.”
춘식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바디시그널은 정말 거짓이 없는 듯 했다.
맞은 편에 서서 멀뚱히 이야기를 듣던 슬기는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고.
춘식은 가슴팍을 활짝 벌렸다.
“봐봐, 내 지금 자세가 어때?”
“자세요?”
시운은 의아한 눈으로 춘식의 자세를 훑었다.
“가슴을 활짝 피고 어깨를 쭉 폈잖아. 이런 게 중요한 거란 말이야.”
“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더 들어봐야 겠다.
“바디랭귀지. 이 바디랭귀지는 자신감으로 가득하잖아. 사실. 여자한테는 남자의 말보다 보여주는 행동이 더 중요한 법이야. 그리고 여자는 자신감 있는 남자 싫어하는 법 없어. 허세와 자신감은 다른 거 알지? 자, 그렇다면…”
일단 한잔 마시고 말을 이어가잔 듯이 춘식이 스트레이트 잔을 내밀었다. 건배를 해주고 시운과 춘식이 서로의 목구멍으로 양주를 적신다.
탁.
스트레이트 잔을 내려놓은 춘식의 입이 열린다.
“어깨를 쭉, 벌리고 허리를 쭉 피고 다니란 말이야. 여자는 섬세한 동물이야. 그래서 일단 그런 태도를 보면 ‘아, 이 사람이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해. 이게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거란 말이야. 그리고 또…”
면도로 밀다 만듯한 콧수염이 불쑥불쑥 돋아난 그의 입술이 다시 열린다.
“그런 상태에서. 네가 여자에게 기가 죽거나 낮은 자세로 대하면 안 돼. 이건 자신감하곤 별개의 문제야. 여자는 있잖아? 내 생각이지만, 거의 태반이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급을 매겨. 이 남자가 나와 맞는 급인지, 아니면 나에겐 과분한 급인지, 나보다 떨어지는 급인지를….”
“아….”
시운이 탄성을 뱉으며 끄덕인다.
춘식.
그의 열렬한 열변.
그 열변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 속에서 녹아 나오는 말들이었다.
“아무리 잘생기고 몸 좋고 해도, 일단 남자가 자신감이 없고 눈에 힘이 없어보이잖아? 그러면.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서 매력을 못 느낀다고. 자네의 문제는 또 이거야.”
경청하던 시운의 눈이 커진다.
다시 말은 이어졌다.
“너는 그 여자애를 자네, 자신보다 훨씬 높은 급수로 무의식적으로 매기고 들어가잖아? 그럼 뭘 해도 너는 그 여자를 리드할 수도, 가지고 놀 수도 없다고. 자네, 그 여자 앞에서 목소리도 작아지고 어깨도 움츠러들고 그러지?”
“네.”
“자네, 그 여자가 먹고 싶은 것 음식 중에 자네가 별로 안 당기는 것들이 있어도 일부러 맞춰주려고, 다른 음식 먹자고 말 안하고 그냥 먹었지?”
“네…….”
“에라이!”
춘식이 웃으며 시운에게 주먹을 쥐어 올렸다.
듣는 그도 답답이 터질 것 같은가 보다.
그의 말은,
신기하게 다 들어맞았다.
‘춘식. 이 남자는 예리함을 떠나 여자에 대해 이론이 아닌, 본능적으로 아는 남자야.’
“여자 앞에서는 목소리도 좀 크고, 바디랭귀지도 좀 자신감있고 크게 해야 해. 또, 여자를 맞춰주지 말고 네 기준을 분명히 펼쳐야 한다. 왜냐? 일단 목소리가 커야 전달력이 생기니까 여자가 남자의 말에 더 귀가 가게 되고, 또한!”
춘식은 검지를 휙휙, 저으며 말을 멈췄다. 목이 아프니 목 좀 적시고 이어가자는 신호였다.
‘이 아저씨 정말 말을 잘하네. 듣는 나도 뭔가 모르게 빠져드는 위트가 있다.’
착.
술잔을 부딪힌 뒤.
역시나 춘식의 입술은,
다시 열린다.
자신의 독자가 연애를 성공하길 바라는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예를 들자, 여자가 떡볶이 먹고 싶어 해. 근데 넌 떡볶이 안 좋아해. 그럼 뭐라고 해야할까?”
“나 안그래도 오늘 매운 거 당겼는데, 좋아 먹자. 이렇게 말하면서 여자의 비위를……”
“예끼! 병신아.”
“……….”
독자에게 ‘병신’이라고 말하며 술을 급하게 따라 가슴속으로 뒤집는 작가.
얼마나 속이 탔으면 나오는 행동이였겠는가.
탁!
춘식이 시운의 어깨에 손을 세게 얹었다.
“자네는! 후……. 날 암에 걸리게 할 정도로 답답해. 그러니까 자네가 안 된거야. 내가 쓰는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자네처럼 멍청하고 찌질하게 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독자한테 작가는 신나게 욕먹고 소중한 독자들은 죄다 다른 소설 보러 가는거야. 소설이 단순히 먼 상상 같지? 소설 또한 실제와 많이 다르지 않아. 다 독자들의 현실적인 대리만족과 현실적 개연성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과학이 담긴 예술이라고. 만약 자네의 그 이야기를 내가 소설로 쓴다? 하……. 그걸 보는 독자들의 표정이 상상이 간다. 육시럴! 그 소설을 본 그 독자들은 그날 술을 먹으러 갈 게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설을 봤는데, 소설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먹으러 간다고. 큼! 사설이 길어졌네. 아, 잠깐.”
다시 급하게 술을 들이킨다.
다시 말을 잇는다.
“다시. 여자가 떡볶이 먹자고 하는데 너는 떡볶이가 먹기 싫어. 그러면 너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오늘은 떡볶이가 땡기지 않는다고 말 해야 해.”
“왜죠?”
“하! 왜라니!!”
춘식이 아예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독자의 머리를 쥐어 뜯어버릴 수는 없으니.
“아아, 진짜, 대박이다. 얼굴 값 좀 해요!! 듣는 나도 소름이다. 진짜아~”
앞에 있던 슬기가 자신의 양팔을 매만지며 썩은 표정을 짓는다.
마치, 이계의 쪼개진 오크 머릿속 뇌수를 보면 사람이 짓게 되는 표정이랄까.
“네가 네 자신의 선택을 숨기고 여자에게 맞춰주면. 그 여자는 누구하고 사귀는 거야? 그 여자는 그저 혼자 연애하는 거야. 그냥 자기 비위맞춰주는 가상의 상대하고.”
“……….”
시운 또한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이젠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내 이야기지만 듣는 이들이 이럴 정도니…….’
춘식이 말을 잇는다.
“잘생긴 내 독자님아! 방금 그 말은, 네 기준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맞춰주고 소극적으로 상대에게 대하면, 넌 남자, 아니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없는거야. 여자는 그 매력을 못 느낀다고. 상대 남자가 기준도 없고, 그저 자신만의 생각도, 색깔도 없는데… 그럼 네가 남자로 보이겠나? 안 보이겠나?”
“안 보이……”
“그럼, 좀 아휴!”
춘식과 슬기가 서로 술잔을 부딪힌다. 듣는 지들은 고구마 아니, 똥을 집어 삼킨 것마냥 속이 막힌다는 안색으로.
“끄헉- 트름 쏘리, 독자님. 다시 이어갈게. 네 색깔과 기준, 생각을 분명하게, 큰 목소리로 여자에게 표현해. 그리고 밀당 도 좀 하라고. 아니, 여자들 다 톡이나 전화하면 못 받았다거나 늦게 봤다고 하잖아. 이거 진짜일 거 같냐?”
“아마도 일 중이거나 바빠서 못 본 게 맞지 않을……”
“으아악!”
“꺄아악!”
춘식과 슬기가 괴성을 지른다.
춘식이 그동안 살아오며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다 뱉어내듯이, 푸! 한숨을 뱉고서 시운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말한다.
“잘 들어. 내가 소름끼치는 진실을 알려줄게. 그 진실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