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화
픽업 아티스트보다 뛰어난 작가님, 헌터란 독자님 (3)
춘식.
그러니까 로맨스 판을 뒤집고, 헤집어서 트렌드를 바꾼 유일무이한 남자 작가인 춘식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혓바닥에 붙은 백태가 튀어나올 정도로 격하게.
“여자는 말이야!! 항상 핸드폰을 자신의 머리맡에 두고 있는다고오, 이 사람아! 여자가 늦었다고 톡을 못 봤다? 개, 개. 개, 개소리 개 풀 뜯는 소 고환 후려차서 소가 비명지르는 소리라고! 내가 만났던 여자 중 하나는 이랬어. 전화를 받더라? 근데, 전화 받자마자 ‘오빠 나 샤워하고 있어, 이따 전화할게.’ 이러더라. 이 뜻은? 여자는 폰 없이는 못 사는 거라고. 섬세한 동물이지만 알면 또 달라. 자네 여자한테 톡을 하는데 여자가 답장이 늦어. 그럼 어떻게 하나?”
시운은 기억을 더듬었다.
보자. 내가 썸을 탈 때 여자한테 어떻게 했더라.
더듬은 기억 하나를 꺼내 말로 풀어낸다.
“톡을 한 번 더 보냅니다. 그래서 씹히면 장문의 톡을 보내요. 그래도 씹히면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생각……”
“흐아…….”
“……….”
춘식과 슬기는 입을 닫았다.
팍!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시운이 옆을 바라봤다. 언제 다가와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진희가 배를 부여잡고 웃으면서 시운의 등짝을 내려친 손을 천천히 거둔다.
“꺄하하학…. 아, 진짜아.”
진희도 답답한 모양이었다.
춘식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흉내를 내며 술을 급하게 들이킨 뒤.
“자네를 보면 나한테 생긴 암세포가 암에 걸려 치유될 것 같아. 장문 카톡? 그건 썸이 아닌 따뜻한 연애 감정을 불같이 느낄 때 감성적으로 하는거고. 여자는 귀찮게 자꾸 연락하는 남자 질색한다. 그러니까 남자도 적당히 밀당을 해야 해. 사귀기 전까지는. 응? 들어보라고. 어차피 서로 호감 정도가 있으면 톡을 아무리 서로 늦게 해도 결국엔 그 하룻동안 이야기는 이어져. 그리고 자네가 그렇게 허겁지겁 톡을 보내고, 다시 장문의 톡을 보내면……”
시운은 풀죽어 죄인처럼 경청한다.
‘진짜 내가 병신같이 살긴 살았구나. 오늘 이후로 정신 차려야겠다.’
오늘 바에 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 된다.
그리고.
이젠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춘식. 그가 입을 연다.
“자자, 다시, 다시! 내 독자님? 자네가 그렇게 톡을 보내고 바로 장문의 톡을 허겁지겁 보내면 자네의 패를 상대에게 보여주는 꼴이야. 그건 뭐다? 상대가 ‘이 남자가 과연 날 좋아하는 걸까?’ 라는 설렘과 환상을 싹 지워버리고 그냥 네 마음을 훤히 드러내는 거라고. 그럼 네가 쉬워져. 네가 그 순간부터 그 여자에겐 쉬워 보인다고. 급이 낮아 보인단 말이야. 그럼 자네가 아무리 잘생기고 능력이 좋아봤자 끌리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지.”
시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희와 슬기를 번갈아 봤다.
진희는 두 손바닥으로 턱을 바치고 고개를 끄덕.
슬기는 격하게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들며 한숨을 푸- 쉬고 있고.
‘이게 여자의 마음이였군.’
시운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전부 밀당을 하는 거군요. 밀당을 안 한다는 여자는 솔직히 연애를 해 보지 않았거나, 거짓말이거나.”
“그렇지이!”
이제야 알았냐는 듯 춘식이 시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춘식이 급하게 스트레이트 잔을 입으로 꺽는다.
술을 굉장히 잘 마시는 듯 하다.
“독자님은, 여자들을 참 답답하게 하는 성격이야. 그 비율좋은 몸뚱이에, 그 얼굴에, 그 직업으로 그런 하수들이나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모순. 모순이라고. 특히 자네가 아까 털어놨던 그 모텔 일은 말일세.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다음날 일어나서 이불 뿐만 아니라 장롱까지 다 발로 차고, 그냥 그 이후로 내 자신을, 아니 내 자아를 집 밖 창문으로 던져버렸을 걸세.”
“제가 생각해도 참 전 한심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얻고 가네요.”
시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시운 본인 조차도.
왜…… 아니, 도대체 왜 그렇게 몇 생에 걸쳐 병적으로 천세정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대답을 모르겠다.
정말 특출나게 예쁘고.
매력적이고.
완소적인 능력 베이스까지 덤으로 갖춘 천세정인 건 알겠지만.
‘나도 사실 모르겠단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걔한테 끌리고 있는 것인지.’
비현실적인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혹시 이 세상은 허상이고, 신이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만약 그렇다면 날 조종하는 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신아! 권능을 사용하여 조종 하려거든 좀 사람 구차하게 상황 그만 만들고 화끈하게 진행하게 해 달란 말이다.’
비현실적인 생각은.
뭐, 미안하게도 이랬다.
다시 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몇 생에 걸쳐 날 빠지게 한 천세정. 넌 참 좋은 아이다. 근데 오늘 너를 만나고 종결 짓고 말겠다. 난 너도 중요하지만, 나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없는 형편에 철없이 돈 끌어모아 호주로 도망가듯 멋대로 유학가버린 시연이 누나가 있다. 너 하나만 보고 살 수는 없다, 이제.’
시운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춘식에게 예의 가득한 폴더인사를 건넸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가치관이 좀 바뀔 것 같습니다.”
“우리 잘생긴 독자님, 자네는 여자에게는 답답한 면이 좀 있었을 지는 몰라도 그냥 보고 느끼는 건데. 사람을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야. 자존감을 갖고,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휘두르게. 뭐든 일이든 사건이든 주도 해 나가란 말일세, 자네 시점에서.”
“네.”
시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모든 걸 주도 해 나간다라.’
주먹을 말아쥔다.
‘앞으로 모든 중심에는 내가 있겠다. 연애든, 헌터의 방식이든.’
“저기요.”
시운이 진희를 오라 손짓했다.
진희가 다가오자 시운은 진희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댄 뒤.
속삭였다.
“저, 작가님 테이블 것까지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작가님이 아시면 부담스러워 하실 수도 있으니까 대충 돌려서 말씀 하시던지 제가 나가면 말씀 드리던지 해 주실래요?”
“정말요?”
진희가 되물었다.
시운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 한번 끄덕이며 카드가 담긴 손을 내민다.
골반을 뒤흔들며 단말기를 향해 걸어가는 진희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 바지 속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몇 분간의 통화 연결음 후에.
-어, 시운아.
받았다. 그녀가.
“아까 그 모텔이냐?”
시운의 육성과 말투는 세정을 대하던 여느 때와는 달랐다.
-응? 아, 어…. 나, 아직 그 모텔이지.
아까 일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쑥쓰러워 하는 그녀의 목소리다.
“나와라.”
-지금?
“나오라고. 여기 토킹바거든? 위치 문자로 보내줄게.”
-시운아. 기분 안 좋아?
“기분 안 좋은 건 아니고. 나와.”
-음…. 지금 나 화장 다 지워서 나가기 그래.
“지금 안 나오면, 다신 나랑 볼 일은 없을 것 같아, 세정아. 그러니 나와줘라.”
-뭐? 시운아? 너 그게 무슨 말…
뚝.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톡으로 이곳의 위치를 보냈다.
‘모든 걸 털어내고 아니다 싶으면 정말 아닌 거다. 그냥, 이제 나를 위해 살자, 시운아.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아아~ 오빠! 왜 벌써 가냐?”
“가야지. 이래뵈도 집에 가서 글 써야 한다고.”
“아, 오빠 없으면 노잼이라고요~ 좀 있다가 가지, 왜?”
“갈게, 계산 좀 해줘.”
일어선 춘식 주위로 바텐더들이 둘러쌓여 있다.
그를 보는 바텐더들의 눈은 아쉬움이 가득 서려있었고.
나이가 많아도, 외모가 잘 나지 않아도 그는 이렇듯 여자에게 호감스런 형태의 남자였다.
“저, 사실은 저기 손님께서 오빠 술값 계산 했어.”
“뭐?”
지갑을 열던 춘식이 놀라 시운을 바라봤다.
시운은 빙그레 웃었다.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덕분에 좋은 말씀 듣고 바뀔 계기가 됐으니까 제가 얻은 게 더 많습니다. 처음 본 저에게 아낌없는 말씀 감사했습니다.”
앉은 채 시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니… 거, 독자님. 내가 자네같은 독자들 때문에 이렇게 양주라도 먹고 밥도 먹고 살 수 있는건데 어떻게 내가 양주를 얻어 먹겠어?”
“사 드리지 않으면 제가 정말 아쉬워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냥 제 성의다 생각하시고 그냥 받아주세요.”
“하이고……. 참.”
강춘식이 다가왔다.
시운 또한 일어났다.
춘식이 두 팔을 벌리자 시운은 그의 품으로 들어간다.
“성의라니까 무시할 수는 없겠네. 독자님. 꼭 연애 잘 되길 바랄게요.”
“작가님도 앞으로 작품 더 잘 되시길 바랍니다. 지켜보겠습니다.”
“고마워, 진짜! 사랑하는 독자님.”
그들은,
훈훈한 대화를 마치고.
손을 흔든 뒤 멀어졌다.
강춘식은 집이란 공간으로.
시운은 이곳 바라는 공간에서.
‘내가 소설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강춘식 당신이란 분이 쓴 소설은 틈날 때 꼭 챙겨볼게요.’
손님 한명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세정?’
아니었다.
남자 두 명의 손님.
“어서와요, 오빠!”
“와, 오늘은 늦게 왔네?”
남자 둘이 테이블에 앉는다.
30살 정도 되는 남자들이다.
톡. 톡.
투명 테이블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내리친 시운은 잔을 다시 비웠다.
진희가 시운 앞으로 다가왔다.
“아저씨한테 조언 듣고 좀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네, 아주 많이요.”
“여자한테 끌려다니는 건 오히려 여자 애만 타게 하는 거란 거 이제 잘 알겠죠~?”
“늦게 알았네요. 헛 살았나 봅니다.”
“에이, 괜찮아요. 이제부터 잘하면 되는거지.”
시운은 말없이 진희의 잔을 채워주었다.
알고보면.
‘바라는 곳도 영 나쁜 곳은 아닌 것 같군.’
오기 전에는 사실 인식이 그랬다.
좀 어둡고 피폐할 거란.
그러나.
다 사람 사는 세상 중 하나였다.
그뿐이었다.
띠링.
“어서오세요! ……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인사하던 바텐더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들의 망막으로 정말, 연예인? 실물로 보는듯한 탑급 연예인의 아우라를 뿜어 갈기는 여성을 보고서.
“와, 와아.”
슬기가 입을 벌리며 탄성을 뱉었다.
진희 또한 동공이 벌어졌다.
‘완전 여신이네. 질투날 정도로? 근데 우리 바에 여자가 웬일이지?’
“오…….”
“죽이는데?”
얼마 전 들어와 구석에서 술을 먹던 남성 둘의 시선은 천세정에게 빨려들어갈 듯 했고.
터벅. 터벅.
천세정이 바 내부를 의아하게 둘러보더니 시운에게 걸어왔다.
걸어오는 그녀의 외적 매력은 나름 꾸민 채 일을 하고 있는 나름 예쁜 바텐더들을 찍어 누르고도 모자라 바텐더들의 기까지 죽일 정도로 빛났다.
진희가 일어나 허리를 세우며 입을 연다.
“어서오세요, 혼자 오셨어요?”
“아니요. 친구보러 왔어요.”
세정이 시운 옆에 조신히 앉자 진희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지? 설마 이 여신이 방금 이 남자가 털어놓은 그 이야기 속 여자?’
시운은 고개를 들어 진희를 보며 말했다.
“죄송한데, 잠시 친구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
“아, 네. 비켜 드릴게요.”
진희는 일어서서 자리를 비켜주며 대기실로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본다.
‘쌩얼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이쁠 수 있는거야?’
여자가 봐도 뭐, 예뻤다.
“술 한잔 할래?”
시운은 세정 앞으로 잔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래, 한잔 마시지, 뭐. 안그래도 술이 고팠다.”
세정이 술잔을 받는다.
“발렌타인 17년산?”
양주를 보며 세정이 읇조렸다.
양주병을 든 세정은 다시 시운에게 눈을 옮긴다.
“너 양주도 먹는구나?”
“천세정. 넌 이런 거 매일 먹지?”
“아니. 난 양주 가끔 마시는데, 몇 달 전에 아빠 때문에 글렌피딕 50년산 한정판 먹어보고 그 후로 양주 입에 안 댔어.”
글렌피딕 50년산.
한화로 천만원이 넘는 술이다.
한잔에 백만원이 넘어갈 정도.
그런 세정의 눈에는 바에서 파는 돈 삼십도 안 되는 양주는 조금 특별하게 말아탄 소맥 정도의 감흥일 것이리라.
말없이 세정의 술잔을 따랐다.
‘단판.’
내야한다.
시운은 고개를 돌려 세정을 똑바로 바라봤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세정은 그저 빛이 났다.
여자의 무기인 화장품의 가치를 얼굴로 찍어눌러 무용지물로 만드는 뭐 그런 것?
세정은 시운과 시선을 마주치자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천세정. 하나 물어보자. 나는 너에게 그저 친구냐?”
꺼리김 없이. 말 더듬음 없이. 큰 목소리로 불쑥 물었다.
“어?”
놀란 세정이 뜸을 들인다.
“나에게 남자로서 매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지 궁금해서 물어본다. 툭 까놓고 그냥 지금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말 해줘라. 내가 너에게 지금이든, 앞으로든 계속 친구가 아닌 남자로서 느껴지지 않을 건지?”
묻는 시운.
그리고 세정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강하게 쳐다보는 시운의 눈은 세정이 아는 평소의 착한 시운의 눈과는 멀었다.
갑작스러운.
‘시운아.’
세정이 말을 못하고 뜸을 들였다.
“내가 상처 받던, 안 받던 그런 거 개의치 말고 그냥 속시원하게 말해줘.”
말하는 시운의 속 생각은,
‘너에겐 갑작스러울지 몰라도, 나에겐 너무도 지금 이 순간이 느린 것이었다. 이제 나, 그만 아플래.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시운아.”
그녀의 입술이 사뿐히 움직였다.
곧 이어질 말이 있으리라.
그게 어떤 대답이던.
시운은 이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살기로 다짐했다.
세 번째 인생을 사는 시운.
3회차의 인생 동안 열렬히 사랑했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편하게 후회없이 보낼 생각이다.
이시운.
그는 이터널 라이프를 살고 있다.
끊임없이 회귀하는, 영생을 사는 삶을 말이다.
그게 축복이든 아니면 뫼비우스의 띠에 갖혀 평생을 헤매게 되는 축복 아닌 축복이던.
끊임없이 살아난다.
그런 이시운은 지금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이터널 라이프의 내막.
그리고 그 실체를 밝히는 키를
맞추는 퍼즐의 판 속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몇 생에 걸쳐 세정에게 열렬히 끌리게 되는 이유가 그 퍼즐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에.
시운은.
어쩌면,
멀지 않은 시간에,
그게 아니면 가까울 수도 있는 시간에,
아니면 영영히.
모를 수도, 알 수도 있게 되리라.
이터널 라이프에 숨겨진,
비밀의 실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