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67화 (67/278)

제 67화

전생의 구원자 (1)

“난…….”

세정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끝을 흐린다.

그 말 끝에 아니,

곧 이어질 말에 시운의 희비가 엇갈리리라.

희비 뿐만 아니라 시운의 가치관과 인생 또한 통틀어 흔들리겠지.

이시운은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아래로 향한 세정의 눈을 보자.

그 불안은 곧 현실이 되리란 것을 직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있잖아….”

세정의 입술이 또다시 움직였다.

시운의 눈빛이 흔들린다. 미세하게 흔들린 눈빛은 격하게.

‘하, 불쌍한 놈 더는 안 되겠다. 내가 개입해야 할 시간이다.’

『시운아.』

순간 시운이 놀라 허공을 바라봤다.

그 목소리는,

귓가로 들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뭐, 뭐야?’

시운은 놀라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 주위의 광경은 놀랍게도,

아니 영화스럽게도 모든 게 멈춰 있었으니까.

세정의 허벅지를 힐끗 훑은 채로 멈춰 있는 옆 테이블의 손님.

그리고 그 손님에게 자신의 잔을 내민 채 술을 따라주길 기다리며 굳어버린 바텐더 슬기.

그리고 화장실의 손잡이에 손을 뻗은 채 멈춰 있는 진희.

그리고.

술잔에 손을 올린 채 다음 말을 이으려고 입술을 살포시 벌린 채 움직이지 않는 세정까지.

‘어떻게 된 거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일어나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진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술병들.

그리고 흐르다가 끊겨버린 음악.

곧바로 창문으로 걸어갔다.

‘모든 게 멈췄잖아?’

늦은 밤.

택시의 문이 열린 채 한쪽 다리를 택시 안에 밀어넣은 채로 움직이지 않은 남성과 그 주위로 어디론가 향하다가 멈춰버린 사람들.

그리고.

불이 켜진 맞은편의 편의점 내부에는 알바생이 고된 낯빛으로 손님이 테이블에 던진 동전을 검지 손가락으로 집은 채 멈춰버린 모습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야? 뭐야? 갑자기?’

곧 세정의 대답을 들어야 한다.

그 대답을 듣고 이제 모든 걸 체념하고 다시……

시운은 방금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설마 꿈인가?’

『꿈은 아니다.』

시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경계 태세를 취한다.

귀여운 녀석. 너에겐 이번에 내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려주는 거지?

반응이 귀엽다.

“누구야? 어디서 말하는 거야?”

『네가 안 쓰러워서. 그리고 한 번은 널 만나야 했어.』

“뭐라고?”

모든 만물이 멈춰버린 바 안을 비추는 조명빛이 시운의 피부색을 뒤섞어 밝히고 있다.

이제. 잠시 녀석에게 모습을 보일 시간이다.

‘죽기 직 전에 내가 내 몸에 심어둔 금기의 술법.’

시운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

곧바로 뒤로 물러나는 시운은 싸울 태세라도 취하는 듯 두 주먹을 올린다.

『긴장할 필요 없다, 시운아. 너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러 왔어.』

남자,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채로,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이상하게 남자의 목소리는 시운에게 낯선 것이 아닌 친숙하게 들려왔다.

“느닷없이 나타난 당신은 누구냐고 묻잖아!”

시운 앞의 남성.

큰 키에 체구를 잘 덮어쓴 은빛 갑옷.

그리고 빨간 머리칼 밑으로 빛나는 파란 눈동자.

등뒤로 맨 녹슨 검집.

‘이, 이 자는?’

시운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뭔가 익숙하단 느낌일까? 아니, 무언가가…’

검을 맨채 뜬금없이 등장한 남성에게 이상하게도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웬지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아.’

『맞아. 너에게 해를 끼치진 않지. 』

“뭐, 뭐야?”

시운이 놀라 눈을 더욱 크게 떴다.

하긴 놀랄 만도 하다.

자신의 속마음을 단번에 읽어내었으니.

“당신이 누구냐고 다섯 번째 물었어.”

『나는 너다.』

남자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남자는 지금 시운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었다.

“뭐라는 거야? 나라니?”

『넌, 나의 환생자다.』

“환생자?”

이시운.

그러니까 녀석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미친놈 보듯 쳐다보는 눈빛이 섞여있는 것도 덤이고.

‘녀석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안다.’

바디시그널을 캐치하고 있는 중이겠지.

‘이미 공명된 네 의식을 통해 네 삶을 모두 지켜봐왔으니까.’

반면,

시운의 생각은.

‘저 놈의 바디시그널에는 거짓이란 반응이 없다.’

『잘 맞췄어, 거짓이 아니야.』

“설마, 방금 내 속마음을 읽은건가?”

『그럼. 넌 바디시그널을 사용해서 남들의 감정을 추리잖아.』

“나에 대해서 정말 다 알고 있는 눈치군.”

시운은 머리를 찍어누르는 취기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근데 정신은 바짝 차려야겠어. 저 놈의 속내를 읽어낼 수가 없다. 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짝짝!

남자가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뚱딴지스런 반응에 이시운. 그러니까 남자의 후생자가 남자를 뚫어지게 본다.

『좋아. 네가 생각한대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야. 그리고 너 알게모르게 많이 성장했네?』

“정말 내 마음을 읽는 모양이군. 뭐가 성장했단 말이지?”

『예전 같았으면 뭐.. 이런 상황이면 정신차릴 생각은 안하고 그저 놀라서 다리만 덜덜 떨고 있었을 거잖아? 근데 지금은 놀란 감정은 뒷 순위로 제쳐두고, 넌 날 분석부터 하려고 하잖아? 이게 많이 성장했단 뜻이지.』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방금 당신이 했던 말 내가 당신의 후생자라고? 혹시 그 후생자의 뜻이 당신이 내 전생에 살던 사람이란 미친 소린가?”

하.

역시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근데 이시운이라는 녀석이 이렇게 생겼구나.’

남자는 녀석의 눈을 통해 의식을 흐름을 담았기에 이렇게 앞에서 녀석을 보니 참 새롭고 신기했다.

“이, 이럴 수가!!”

시운이 상당히 놀라는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남자는 뭐, 일부러 놀라라고 좀 뭔가를 보여줬다. 지금 이 공간의 풍경을 우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시운 주위로 많은 별들이 반짝 거리고 그 주변을 칠흑의 어둠이 가득 매운 이곳은 우주의 배경이다.

『신기한가? 미리 물을까봐 대답해 주는 거다, 난 죽기 전에 미리 내 몸에 술법을 심고 죽었다. 그 술법은 반드시 필요했어. 지금 난 너와 공명된 상태. 잠시 시간을 멈춘 것도 또한 풍경을 이렇게 만든 것도.』

“그 소리는 말도 안 돼. 당신은 신인가?”

이시운은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앞에 펼쳐진 광경은 오직 신이 아니면 행할 수 없는 능력이었기에 신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말했잖아, 난 너의 전생이고 넌 내 후생이라고.』

“당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시운이 절대 믿지 못하겠는지 말을 하다가 말을 멈추었다.

남자가 말을 멈추게 했다.

“..........”

녀석이 말 없이, 눈을 뜬 채,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아니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넌, 지금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못하겠지? 말했잖아. 이게 공명된 내 술법의 힘이다. 지금 잠시 시간을 멈춘 것이야, 넌 내 말을 믿어야 해. 반드시 전할 게 있으니까.』

“푸, 푸하!”

녀석이 숨 막힐 것 같아서 곧바로 마력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답답했는지 숨을 몰아 푹 뱉어냈다.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한 30분간의 긴 대화를 통해 녀석을 이해시켜야 할 것 같다.

***

30분이 지났다.

뭐, 남자가 위에 언급한 대로 이 시간동안 녀석에게 상황을 이해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아직 믿진 않는 눈치지만, 남자의 말을 미친놈의 말로 치부하는 눈빛은 좀 삭힌 듯 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카인이란 자에 의해 죽었고, 그 카인은 죽지 않고 다시 나타나 이계를 혼란에 빠뜨릴 것 이기에, 죽고 후생에서도 그 카인이란 자의 재림을 막기 위해, 당신 몸에 술법을 심고, 그 술법은 몇 천년이 지난 내가 당신과 아주 잠시 재회하게 해 주는 술법이었다고?”

『그렇지.』

“미친 소리. 미친 소리가 분명해.”

시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표정을 바꾼 시운이 다시 입을 연다.

“미친 소리는 분명한데. 당신은 내 속마음을 읽었고, 내 모든 과거 또한 알고 있으며,

이상하게 당신을 보았을 때 따뜻하고 익숙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진짜 개같은 이런 타이밍에 밑도 끝도 없이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나 훼방을 놓았는데도, 이상하게 난 당신이 밉지가 않았다.”

『그거 고마운데? 전생자가 후생의 삶을 사는 ‘나’에게 미움 받으면 그만큼 서러운 것이 없지.』

“근데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의 신체는 가짜고, 당신의 의식의 하나일 뿐이란 것인가?”

캬!

남자는 흐뭇해서 박수를 한 번 더 쳤다.

녀석의 분석력에 남자 스스로가 감탄했기 때문이니까.

‘예전 그 멍청한 이시운은 좀 사라지긴 했구나.’

“자꾸 박수는 왜 치는거냐? 당신 맨정신은 아닌 느낌인데?”

『흐뭇하니까. 네가 놀라운 분석으로 네 세상 말로 비유하자면 ‘팩트를 때려버렸으니까.’ 한 가지 물을게, 지금 내 모습이 가짜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팩트? 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니까 옛날 사람은 아닌 듯 싶다.

“내 눈에는 보인다. 당신의 왼쪽 가슴은 흔들리지 않아. 즉 심장이 뛰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고, 당신의 혈액 속 피도 없다, 게다가 숨도 쉬고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당신 얼굴의 반이 투명해. 의아한 점이 많아.”

짝! 짝! 짝!

와아! 흐뭇해서 남자가 박수 세 번을 때려줬다.

남자의 하얀 치아가 밝게 빛났다.

당신 같으면 어떻겠는가? 찌질스러움이 가득하게 살았던 ‘후생자’가 검신이라 불리웠던 전생의 남자보다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주며 ‘나 이만큼 성장했다!’를 반증하고 있는데.

당신 같으면 뿌듯하지 않겠는가?

“후-”

시운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웃던 남자의 치아가 없어졌다.

‘좀 어이없고 화난 눈친데?’

“당신 말이 다 맞다고 치자. 근데 말이 안 되는 상황이잖아. 난 지금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을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이유. 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말해봐.”

『널 보고 있는 내가 힘들거든. 그리고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실패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으니까.』

녀석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조차 끄덕이질 않고 빤히 남잘 본다.

『미안한데 말이다, 저기 천세정이라는 아이 있잖아. 사실… 네가 저 아이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 그리고 난 네가 이번에는 반드시 저 아이와 연결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고.』

남자는 말을 해주면서 고개를 슬쩍 돌려 천세정을 바라봤다.

여전히 이쁘다.

그리고,

가슴이 너무나도 미어진다.

‘프리아…. 널 이렇게 보는구나.’

남자의 눈이 뜨거워진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나와 천세정을 이어주려고 이렇게 귀신같이 등장했단 말인가? 그렇단 말이야? 그것도 기괴한 술법 하나 의 작용 때문에 전생자가 후생자인 나를 이렇게 대뜸 찾아와서?”

남자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신 말이 다 맞다고 치고 이야기 해줄게. 어차피 내 삶은 과학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당신 말이 맞다치자, 당신은 날 어찌 도와줄 거지?”

『시간을 돌려주겠다. 대신에 내가 죽기 직전에 시전한 술법이라 공명된 마력이 약하다. 그래서 너와 이렇게 대면하는 것 만으로 술법에 담은 마력 대부분을 소모했다, 그래서 시간은 많이는 못 돌린다. 시간을 돌렸을 때부턴 네 몫인거다.』

남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다.

전생자.

후생자.

그런 것도 존재한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스럽다.

일단.

“아까 했던 이야기부터 마저 끝내라. 내가 천세정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는 말.”

남자는 머뭇거렸다.

의외로, 그가 착용한 장비는 옛날식 냄새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지만 그의 말투는 시운과 동시대에 사는 사람 같았다.

남자가 말했다.

『네가 천세정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할 테지. 말해줄게.』

남자의 말에 시운의 안색이 변하며. 시운의 눈은 절로 세정에게로 옮겨갔다.

멈춘 시간 속에 시선을 내린 그녀의 모습은 여신의 석상 같았다.

“그 이유가 뭔데?”

『그 연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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