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3회차-68화 (68/278)

제 68화

전생의 구원자 (2)

『너로 환생하기 전 나는 검술에는 도가 튼 놈이었지만, 너처럼 답답한 놈이었지. 한 여자를 미친 듯이 좋아했는데, 죽기 직전까지 고백을 못하고 죽었다. 그것이 이어진 것이지.』

“뭐라고?”

『일명 트라우마. 다음 생까지 이어지는 ‘전생 트라우마’라는 것이지.』

“잠깐. 이해를 못 하겠다. 내가 그 트라우마를 물려받았다 치자. 근데 상대가 왜 내 친구 천세정이란 말이냐? 그것 또한 설명해라.”

『천세정. 저 아이는 네가 전생에 아니, 네 현계에서의 첫 번째, 두 번째 그 전생 말고. 그 전의 시대의 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니까.』

“이, 이봐. 그니까 내 전생도 나처럼 휴, 뒈질 때까지 고백도 못하다가 억울하게 뒈진 병신같은 당신놈. 그 당신놈이 그렇게도 열불나게 좋아했던 여자가 환생한 것이 천세정이라고?”

『…….』

가슴이 아팠다.

남자가 말없이 끄덕였다.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

『많은 걸 지금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네가 사는 이터널 라이프와 너의 그 전생. 그리고 이계, 저 천세정이란 아이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얽혀있다.』

“그럼 이건 대답해라. 그러니까 이시운으로서의 내 인생 전에 그 답답하게 살다 뒈진 당신놈. 당신은 어떤 놈이었냐? 내 말대로 전생 트라우마라면 난 당신의 또다른 면과 공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알아야겠다.”

『내가 말하기 쑥쓰러운데, 사실이니까 이야기 해주지. 붉은 머리에 검신이었던 자. 그리고 네가 드나드는 이계의 패망을 막아냈던….』

시운의 동공이 번쩍 뜨였고. 녀석의 머리칼이 삐쭉 섰다.

“설마...당신이 발카스 왕국의 그 검신 레딘의 환생이란 말이냐?”

단번에 때려 맞추다니.

남자는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 해준다.

“그렇다면… 그 헌터탐사시험에서 그 거인놈이 나에게 공격을 갑자기 멈추었던 것도, 그리고 탐사시험 던전 클리어 때 들렸던 ‘만나서 영광이었다는’ 목소리도 내가 당신의 환생이라 그런 것이란 말인가?”

오.

멍청한 줄 알았더니,

똑똑한데?

남자는 흐뭇하게 시운을 바라봤다.

『정확해. 그 거인은 나의 충신 군단장 자크였지. 그는 이미 죽은 몸. 죽어 귀신이 된 자는 산 자의 전생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니까.』

“휴우- 믿기지도 않고, 그냥 머리아픈 사실이긴 한데 말은 되는군.”

『시운아.』

남자는 녀석을 나직이 불렀다.

녀석은.

대답없이 남자를 바라본다.

『내가 여기에 온 진짜 이유. 그리고 내가 너에게 주겠다는 선물을 줄 시간이 온 것 같다.』

“선물이 뭐지?”

시운의 눈이 빛났다.

『천세정이란 아이는 널 친구로 생각하는 마음이 커. 그러나 천세정과 나는 수천 년 전 어떤 술법에 의해 죽었다. 그래서 그 술법에 의해 여러 가지 작용들이 나타나게 됐어. 이를테면, 내 회귀의 능력이라던가. 뭐, 그리고 천세정과 너는 친구사이지만 서로 수천 년 전의 그 생에서 나눴던 감정을 현생인 지금 공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가 천세정을 가질 수도 있단 말이냐?”

『난 시간을 되돌려 주는 일 밖에 못해. 너에게 심은 내 술법은 단 하나. 그것은 곧 끝나가고 있다.』

“정말 너무 갑작스럽게 듣는 이야기라 정신이 없다, 근데 당신이 정말 레딘이라면 고대에 살던 사람인데 어떻게 나처럼 현대스러운 말투를 사용할 수 있는거지? 그것 또한 내 의식을 공명해서 단어, 말투 모든 것을 공명하여 일부러 사용한 건가?”

『그래. 이제 잘도 이해하는 구나.』

“이럴거면, 진작에, 아니! 당신이 그 여자에게 고백 좀 했으면 전생 트라우마인지 뭔지가 나한테 남질 않아서 내가 아프지 않았을 거 아니냐? 내가 세정이를 오래 사랑하고 또 거절당하고 얼마나 가슴이 찢어 발겨졌는지 모른단 말이냐.”

『그건, 참 미안하다, 네가 괴로워 하는 모습 또한 모두 알고 있지. 이미 네 의식 속에서 모두 볼 수 있었으니까.』

“후- 정말 검만 잘 다루었다고 전해졌지. 뭐, 여자한테는 찌질스럽게도 쑥맥인 게 참 나랑 지랄스럽게도 닮았군.”

시운은 골이 아픈지 머리를 양손으로 마구 긁적였다.

남자의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이제 슬슬.

이별할 시간이다.

그래야만 한다.

애틋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

‘녀석은 지금 너무나 혼란스럽겠지.’

“아직 믿기지도, 실감나지도 않는다. 머리가 아프네. 네가 주겠다는 그 선물이나 지금 줘라. 세정의 대답을 들을 타이밍을 훼방놓은 댓가로.”

남자는 녀석에게 씩 웃어주었다.

『그래, 그것은 두 시간이란 것과 또 하나의 선물이다.』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그 선물은 네가 이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심어줄 거야. 훗날에 넌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테지.』

“.........”

시운.

녀석이 혼란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하나 더.』

“말해라.”

『이미 세정은 친구로 느끼는 너와 모텔에서 있을 때 미묘한 감정을 느꼈어. 그건 수천년 전 나와 그녀가 나누었던 감정의 공명의 파편이었다. 그 파편의 힘을 실어주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곧, 알게 될 거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마라. 강춘식 작가의 말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니까.』

“자, 잠깐만.”

녀석이 남자에게 손을 뻗는다.

남자는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시운은 시선을 내려 남자의 발끝을 보았다.

남자의 발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그 위 다리가 투명해지며, 내 허리, 그리고 명치가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난 소멸이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가지 더, 넌 내 존재를 이 시각 이후로 잊게 된다.』

“그럼 내가 묻는 질문에 답해준 이유가 뭐냐? 어차피 난 그 사실들을 까먹을 텐데.”

『네 성장을 위해서다. 그리고 네게 말했던 사실들은 네 머릿속에 합리적으로 인지 시켜놓을 것이다. 다만, 네 기억 속에서 내 존재에 대한 기억만 소거시킬 뿐. 』

‘내 몸이 거의 사라져 간다.’

녀석이.

남자를.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믿기지도 않고, 지금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지도 않고…. 내 전생이 그 대단했다던 레딘 당신이었다는 것도.”

『시운아.』

“?”

『나의 또다른 나야. 난 생을 살면서 나라와 세상을 위해 날 놓고 살았었다, 고되고, 고독한 생이었지. 행복이란 내겐 먼 이야기였다. 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내가 살고 싶었던 인생을 네가 대신 살아주거라. 그래서 내 한을 풀어주거라. 성공이 꼭 다가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열렬히 사랑하며 편히 살거라. 이제 정말 작별할 시간이구나.』

시운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 또한.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온기.

녀석의 손을 통해 녀석의 온기가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넌 또다른 나.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 꼭 네가 대단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사는 세상 말로 ’찌질‘하게 살아도 돼. 그저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족하다.’

남자의 빛나던 눈이 흐려졌다.

『간다, 반가웠다, 또다른 나여.』

남자 또한 안타깝게 녀석을 보았고.

녀석의 눈은 더욱 슬퍼진다.

그때.

녀석의 입술이 움직인다.

“당신 말은 아직 안 믿긴다. 그러나 당신 말이 맞다면 내가 당신 몫까지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줄게. 당신 한을 내가 풀어준다고. 그러니 편히 잠들어.”

피식.

남자는 입꼬리 하나만 올려 웃었다.

이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남자에게 “이계의 비밀 힌트를 줘!” 또는, “어마어마한 장비가 있는 이계의 비밀 장소를 말해라!” 라는 둥의 질문을 던질 것이었다.

‘근데 이 녀석은.’

참. 또 다른 나지만.

참. 멍청할 정도로 감성적이고 정이 많은 놈이란 말이야.

그래서 더 정이 간다.

‘또 다른 나여. 부디 카인이란 자에게서 이번 생만큼은 자유롭길.’

“끄악.”

뱉어진 신음은 시운의 것이었다. 입에서는 소주 냄새가 진동을 했고.

‘여기는?’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분명 시운은 바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천세정에게 마지막 대답을 들으려고 기다렸던 그 순간이 마지막 기억의 끝이다.

‘세, 세정아.’

주위로 비좁은 방 한칸 속, 티비. 뜯어진 인테리어. 재떨이. ‘강성 모텔’이라 쓰인 시트가 덮인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시운의 양 손 위로.

천세정이 눈을 감고, 쌔근쌔근 의식을 잃은 채로 들려있다.

‘설마? 회귀? 아니다. 이건…’

시간이 앞당겨진 것이었다.

바로.

천세정에게 알몸으로 처절히 손절당했던 그 시점의 그 시간으로.

“으음….”

그때.

세정이 입술을 웅얼거리며.

침음을 흘렸다.

정신없는 이 상황 속에서.

시운의 눈은 의연해졌다.

‘뒈지고, 자살하고, 살아나면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지. 믿기 힘든,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면 일단 난감함에 난감해 하며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우선. 일을 끝마친 뒤로 미루고, 그 순간에서 그 상황을 차선책으로 해쳐나가기 위해 집중부터 하라는 사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여긴 모텔. 그리고 지금은 아까 천세정에게 손절당했던 그 순간.’

여긴 아까 그 시간 속 모텔 안이다.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의식이 흐린 세정을 침대 밑으로 내려주었다.

그녀의 등이 침대에 떨어지자 그녀는 몸을 한 번 들썩거리더니 조목한 입술을 움찔 거린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왜일까.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머리가 굉장히 아프다.

술기운? 그것때문은 아니다.

분명 모던바에서 입도 대보지 않은 양주를 처음 시켜 먹어봤고.

강춘식이라는 작가를 만났으며.

그 작가에게서 뼈깊은 말들을 듣고 가슴에 새겼었다.

‘근데.’

확실히 그 이후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뭔가.

아니, 뭔가를 보았던 것 같……

“윽.”

그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니.

뇌리가 무언가로 조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이해되진 않는 상황이지만.’

그때.

시운의 머리 위로 스르르, 창이 하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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