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화
이세계로 (2)
맑은 알람음과 함께 눈 앞으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28
[레벨] 46
[생명력] 754/754 [마나] 235/235
[근력] <230>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0 [갈증도] 2 [피로감] 0
[여유 능력치] 24
‘역시.’
역시나가 역시였다.
시운이 현계에 휴가 아닌 휴가를 나오기 전의 명성 수치는 26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고 나서 시운의 현재 명성 수치는 28.
‘2나 오른 셈이군.’
돈다발을 쓸어 모으는 박태석이 헌터협회에 허가를 받으면서까지 스트리밍을 하는 이유가 밝혀진 셈이었다.
‘박태석. 이런 방식으로 명성을 올린 거였군.’
총명한 그의 행동에 이유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헌터에게 명성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명성이 높으면 헌터의 승급이 빠르게 이어질 뿐만 아니라,
고난이도의 국가 퀘스트를 수행할 자격이 주어지고,
특정 NPC들에게서 대우를 받는다.
‘게다가.’
명성 수치를 일정 소모하여 특수 스크롤을 얻는 것까지 가능했다.
‘나중에 나도 스트리밍을 시작해야겠다. 조건이 부합된다면.’
시운의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아직 팔불출의 F랭크 헌터지만,
랭크가 상승하고 입지가 굳어지면 협회에서 까다로운 방송 허락 허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
‘일단 여유 스탯을 분배해야겠다.’
근력 스탯을 7정도 분배했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28
[레벨] 46
[생명력] 754/754 [마나] 235/235
[근력] <237> [민첩] <100>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0 [갈증도] 2 [피로감] 1
[여유 능력치] 17
‘그리고.’
적절히 근육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민첩에 5를 분배한다.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28
[레벨] 46
[생명력] 754/754 [마나] 235/235
[근력] <237> [민첩] <105>
[체력] <60>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0 [갈증도] 2 [피로감] 1
[여유 능력치] 12
‘나머지는….’
점점 레벨은 상승하고,
상대 몹 렙도 상승할 것이다.
사실.
몬스터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아프다.
근래에 들어 생명력의 한계를 느껴 위태함을 느낀 시운.
나머지 여유 스탯 12를 모두 체력에 분배했다.
‘헌터에게 체력은 어쨌든 필수니까.’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28
[레벨] 46
[생명력] 790/790 [마나] 235/235
[근력] <237> [민첩] <105>
[체력] <72>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0 [갈증도] 2 [피로감] 1
[여유 능력치] 0
‘스탯 분배는 모두 끝났다, 이제는.’
50이란 레벨까지 달려야 할 때.
부웅!
붉은 트롤의 팔가죽이 허공을 가른다. 상태창을 주시하고 있어도 놈의 느린 움직임 쯤은 허리만 틀어서 피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샥샥샥!
단검질 세 격.
그억!
붉은 트롤의 가죽 껍데기가 벗겨져 늘어진다.
“일참.”
단검에 오라가 피어나 단숨에 트롤의 면상에 검신을 쏟아 꽂는다!
그어어어억!
-붉은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홍란검으로 팍팍 사냥해 줘야겠다, 레벨 50까지는 빡세게 노가다가 필요할 테니까.’
곧바로.
시운은 눈을 돌렸다.
공모자의 지하도로.
“다 왔다.”
“오케이. 가 보자.”
어두운 공모자의 숲.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어둑한 달빛이 무장한 헌터 셋의 얼굴을 은은히 비추고 있다.
헌터 셋은 파티로 한 조를 이뤄 일부러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찾았다.
사람들이 한산한 시간은 다른 헌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열렙을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니까 말이다.
걷고 또 걸은 헌터 일행들은 공모자의 숲 끝자락에 다다랐다.
“저기가 지하도 입구 맞지? 근데 요상한 냄새 나지 않아?”
완드를 든 여성이 코를 킁킁거리며 묻자.
“뭐야? 역해.. 이거 탄내 같은데?”
“지하도 안에서 나는 냄새 같아.”
불이라도 난 것일까?
지하도 입구에서 검은 연기가 폴폴 피어나 풍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레벨 40 중반에 인원이 세 명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어서 들어가자.”
뭐 별일 있으랴.
일단 들어가서 사냥에 집중할 터였다.
화륵!
매지션 계열의 헌터가 완드에 불을 피워 어두운 지하도 주변을 밝혔다.
터벅터벅-
헌터 셋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지하도의 정적을 깨고 메아리 친다.
“뭐야? 이상한데? 트롤이 한 마리도 없잖아?”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네..”
그들은 시무룩한 얼굴로 일단 걸었다.
뭐, 좀 더 걸으면 트롤은 나오겠지.
어차피 트롤이란 몬스터는 경험치도 많이 주는 괴이종의 몬스터에다가 리젠도 빠른 편이니까.
그런데.
“..저게 뭐야?”
여성이 앞으로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머지 헌터들의 눈이 일제히 움직여 그곳에 멈춘다.
“거, 검……?”
그들 앞으로.
지하도 바닥 깊숙이 검 하나가 꽂혀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런 자태의 검.
그런데.
“트롤이다!”
헌터 하나가 외치자 곧바로 무기를 겨누었는데………
그에엑!
그윽!
그어억!
돌진해오던 트롤 세 마리의 가죽이 타들어가더니……
새된 비명과 함께 그 트롤들은,
쿵! 쿵! 쿵!
지하도의 곰팡이 가득한 바닥에 육신을 처박고 타들어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
“……….”
헌터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히 달려오던 트롤 세 마리는 땅에 검신이 깊숙이 꽂힌 검에게 다가오자마자,
육신이 타들어가 재가 되고 말았으니.
뒤이어-
우어어!
우억!
그오오!
그엑!
뒷따라 뒤뚱뒤뚱 걸어오던 트롤 네 마리 또한………
땅 속에 꽂혀있던 검으로 걸어오자 마자 타들어가 잿더미가 되고 만다.
“뭐지?”
여성은 호기심이 일어 검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해, 유연아.”
“함부로 만지지 마.”
그러나 여성은 그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검의 자태를 눈동자에 담았다.
‘완전 좋은 장비 같은데?’
누가 이 쓰레기 소굴인 지하도에 이런 좋은 아이템을 놓고 간 것일까.
‘완전 개이득! 이거 가지고 가서 팔면 돈 꽤나 만지겠어.’
여성은 그대로 검에 손을 뻗은 뒤 손잡이에 손을 걸쳤다.
-장착에 필요한 근력 수치가 부족합니다.
“응?”
-적군으로 간주되어 화염의 열기가 발동됩니다.
“으앗 끄아아앗!”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손이 활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힐.”
“꺄아아악!”
그녀가 불타는 자신의 손을 마구 흔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나머지 헌터 둘이 그녀에게 포션을 먹였고, 사제인 헌터가 힐을 지속적으로 발산하자.
여성의 손을 무섭게 달군 불길이 스르르, 꺼졌다.
“후아,후아아앙…. 놀랬어.”
여성은 쭈그려 앉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리고 화상 자국이 가득한 자신의 오른손을 들여다 보았다.
“씨, 씨이…….”
병원으로 가서 마취를 하고 화상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평생 흉터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함부로 손 대지 말랬잖아.”
“근데 저 검이 대체 왜 저기에 있는거지?”
그우욱!
그억!
검은 트롤.
그러니까 트롤보다 한 단계 위의 몹 조차 검에 다가가마자 몸이 익어버린다.
“……!”
“헐.”
“저, 저길 봐.”
그들의 눈은 지하도의 어두컴컴한 구석의 한구탱이로 이동해 꽂혔다.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한 남자가 손깍지를 끼고 머리를 기댄 채, 태평하게 지하도의 바닥에 등을 기대고 자고 있었다.
“크르렁~ 쿠우우우울….”
남자의 코고는 소리였다.
-뭐야? 저 사람 여기서 늘어져 자는 거야? 실화야?
-미친 거 아니야? 개또라이.
-저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정말 미친놈스러운 남자였다.
헌터 둘이 작게 속삭였다. 그러나. 나머지 헌터 하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야. 저 사람은….”
그는 떠는 목소리로 말을 멈칫 하다가 말을 이었다.
“저 검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거야.”
“뭐, 뭐라고?”
“그게 무슨…….”
그우욱….
그악!
그아악! 그악!
리젠된 트롤 세 마리가 연신 다가와서 누워있는 남자에게 공격을 가하려 할 때.
땅에 꽂힌 검이 붉게 타오르며 그들의 육신을 잿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봐. 트롤들이 죽을 때마다 저기 누워있는 사람의 몸 주위로 임팩트가 생기잖아,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임팩트…….”
“정말이잖아.”
화상을 입었던 여성이 벌린 입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정말 놀라운? 참신함? 아니 …… 이상하고 괴상한 사냥 방식이었다.
그때.
세상 모르고 코를 골던 남자의 한쪽 눈이 열렸다.
“끄으음…. 왜 이렇게 시끄러워?”
남자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더니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셋을 주시했다.
“아, 깜짝이야! 사람이네?”
그가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헌터 세명이었다.
그가 물어왔다.
“거,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 아니요….”
“실례했습니다, 그냥 저 아이템이 신기해 보여서 좀 구경하려고 했었어요.”
“야, 야. 그냥 가자, 가자.”
헌터 셋은 남자의 태연한 얼굴에서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아우라를 느꼈다.
그때.
남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내 검을 훔쳐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죠? 던전에서 절도죄 또한 형량이 작진 않다는 거 모르나?”
“끕! 아닌데요? 그런 거?”
소스라치게 놀란 여성이 눈이 번쩍 뜨며 손사레를 치더니,
“하하, 저희는 가볼게요. 여, 열렙하세요.”
헌터 셋은 쫓기듯 그대로 던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끄흠…….”
잠결에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뜬다.
쿵! 쿵!
대지가 울린다.
트롤 세 마리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시운에게 달려오다가……
화르르륵!
그어억! 그억!
그에엑!
그우우욱!
쿵! 쿵! 쿠웅!
뭐, 이렇게 죽어버리고 만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오호….”
남자. 그러니까 이시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지하도에서 얼굴이 다 타들어갈 정도로 사냥하고 또 사냥했다.
그리고 피곤에 못 이겨 자는 동안에도 화룡의 홍란검을 교묘히 이용해 게임 매크로 돌리듯 사냥하다 보니.
어느새 레벨은,
<이시운>
[클래스] 맹인
[분류] 헌터 [등급] F
[종족] 현계인 [성별] 남성
[명성] 28
[레벨] 50
[생명력] 805/805 [마나] 240/240
[근력] <237> [민첩] <105>
[체력] <72>
[지능] 9 [지혜] 44
[열정] 3
[상태] 정상
[공복도] 18 [갈증도] 12 [피로감] 0
[여유 능력치] 12
“끄하… 드디어 레벨 50을 찍었구만, 그래.”
4일간 지하도에 처박혀서 이루어낸 성과였다.
드디어!
이제 2차 전직의 때가 온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지하도의 공기를 완전히 오염 시켜버렸네?”
코를 찌르는 역한 탄내는 이미 지하도 내부에 온전히 다 퍼져있었다.
그런데.
크아아아앙!
다른 트롤들 보다 더욱 강력한 괴성이 귓가를 때려왔다.
곧바로 시운은 눈을 돌렸다.
‘트롤리안?’
차캉!
땅에 처박은 홍란검을 꺼내 들었다.
거대한 트롤리안이 투박하게 몸을 뒤뚱거리며 시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금방 죽여줄게.”
활활활!
“일참.”
푸슉-
“맹인일참.”
푸슉-
크앙! 크아아앙!
트롤리안이 아프다는 듯 대가리를 마구 흔들며 포효했다.
휙!
놈의 공격을 피해내고.
“질주.”
곧바로 파고 들어서,
푸슉!
푸슉!
푸슉!
빠아아악!
쑤시고,
쑤시고,
베고,
그대로 검신을 놈의 면상에 처박듯 내리찍었다.
전율적인 손맛!
묵혀있던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는 해소감!
짜릿함!
두터운 껍질과 가죽을 해체하고 야들한 살점에 검신을 쑤셔박는 손맛이란 참으로 일품이었다.
쑤욱!
마지막 일격.
그리고……
트롤리안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졌다.
‘마지막은.’
유종의 미를 장식할 때.
“홍란의 일참!”
검신에서 붉은 오라가 피어나서 거센 열기를 통해 놈의 육신을 그대로 집어삼킨다.
번개같이 타들어가는 놈의 육신.
놈은 숨통에서 터져나오는 신음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쿵!
나름 지하도의 보스라는 놈이 싱겁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휙휙-
검을 여유롭게 돌리며 시운은 발길을 돌린다.
‘이제 쉬러 가볼까.’
다음날.
햇살이 창창히 레프론 도시를 밝히는 대낮의 광경-
원룸텔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 시운은 사냥의 무리로 인해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 하며 어딘가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었다.
시운의 눈동자에 비춰진 것은,
맹인 직업소란 건물이었다.
현대식 인테리어의 건물이지만 낡음스러움이 가득한 이곳.
‘한달 좀 안 됐나? 일단 들어가보자~’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에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진다.
여전히…… 문 틈새를 닦지 않았는지 떨어진 것은 잔뜩 쌓인 먼지들.
이젠 좀 청소도 할 법 한데 말이다.
그때.
“거, 누구요!”
다소 공격스러움이 가득하지만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대를 찬 채, 수녀복을 입고 지팡이를 땅에 짚고 걸어오는 안내원.
안내원은 시운 앞에 섰다.
“대낮부터 누구요!”
공격스러움이 가득한 말투였다.
그럴만도 했다.
맹인 직업소는 이제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었으니까.
“접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전직했었던….”
“아, 아아! 목소리를 들으니 알 것 같아요, 헌터님. 기다렸어요.”
그때.
시운의 귓가로 알람음이 참신하게 들려왔다.
[맹인 직업소 안내원 ‘미르’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맹인 직업소의 평판이 기대에서 확신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알람음과 함께,
이어진 안내원의 말은.
시운이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바로,
히든 직업에서 히든 루트를 밟게 되는 통과의례의 절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