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9화
히든 클래스 전직으로 (3)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그리고 가르샤의 흰 안광이 더욱 진해졌다.
“정확해. 이 감각은 고대의 그 무당 이르마 라는 자가 사용하던 은빛단의 목걸이야.”
목걸이를 쥔 가르샤의 손이 떨린다.
‘방금 내가 죽였던 그 해골놈이 이르마란 무당?’
그 무당이 대체 어떤 놈이기에 그의 유물을 쥐며 이토록 떠는 것일까.
단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아이템 정보창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그놈은 여자를 겁탈하고 죽여 뼈를 수집한 개새끼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이요…. 이르마라는 무당, 아니 고대 주술사가 되었던 남자가 사용하던 목걸이요. 이 목걸이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대륙의 절세 미녀들의 손가락뼈가 모두 담겨있지 말이요.”
“손가락뼈 라고요?”
놀랍긴 한데,
참 괴상스런 수집 취향이었다.
“그렇단 말이요. 지금은 사라진 오르비안 제국의 황실 권력을 쥔 이르마. 그는 다양한 주술을 사용하는 희대의 악마였소. 게다가 말이요…. 쿨럭, 쿨럭!”
말을 쉬지 않고 해서 숨이 찼는지 기침을 한 후에 말을 이어간다.
“색기가 가득했던 이르마는 권력을 사용해 대륙의 모든 여자를 강제로 품었소. 그리고 그의 취미는 품은 여자를 그 직후 죽여버리는 것이라는 악렬한 것이었지요….”
듣던 시운의 표정이 썩어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나 고대라는 옛날옛적 세상에서나 사람새끼 아닌 것들은 꼭 존재했구나.’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르마는 고대의 주술을 사용하는 자인지라 한 사람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단 말이요….”
시운은 잠자코 경청했다.
“그를 눈독들인 자는 바로 그 흑마법을 모조리 터득했다는 카인. 이르마는 카인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이끌림과 함께 달콤하던 권력조차 모조리 그를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 옵니다. 단, 그가 모은 손가락뼈들은 카인이란 자의 흑마력 연마에 도움이 되었단 말이요….”
“으음….”
이야기가 다소 길어지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미녀들의 손가락뼈에는 여자가 품고 있는 음기가 가득 베어있었지요. 그 음기를 적절히 흑마력에 조합하여 공력을 증강시켰고 이르마는 그의 부흥을 위해 보이는 여자 족족 겁탈하고 손가락뼈들을 모조리 수집해 가져다 바쳤단 말이요….”
쯧쯧. 미친놈.
시운은 들으면서도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도망간 그놈을 끝까지 찾아내어 죽인 것은 정말 잘한 일인 듯 하다.
“심지어 이르마는 눈이 돌아 자신의 어머니 손가락뼈까지 카인에게 바쳤소…. 그런 이르마는 카인의 개로 살아가다가……”
가르샤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했는지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을 자연스레 바꿨다.
그런 그의 입이 떨렸다.
“카인의 주술의 실험 대상이 되어 죽지도 살지도 못한 몸이 돼버리고 말았단 말이요…. 육신은 완전히 죽었으나 부패하지는 않는 몸뚱아리, 그러나 영혼은 아직 살아 숨쉬는….”
“……….”
아무 말 없이 듣던 시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인과응보 제대로 당했군.’
사이다를 마시는 청량감이 잠시 감돈 것은 여담이고.
“……그 자는 흑마력의 실험에 쓰이고 카인은 그 사실을 세상에서 지우기 위해 그를 가두었소. 아르네의 감옥이란 곳에. 그 감옷이 훗날 방금 그대가 다녀왔던 그 동굴이 되었단 말이지요….”
시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을 죽인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근데 그거 아시오?”
가르샤의 표정이 진해졌다.
“뭘 말입니까?”
“카인. 그가 어쩌면 다시 재림할지도 모른단 말이요…. 레딘의 별자리. 그 별자리가 떨어졌소.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빛을 뿜어내며.”
‘뭐지?’
순간.
시운의 가슴 한켠에서 이상한 느낌이 일었다.
카인이란 남자에 대해선 안다.
워낙 강하고 악귀였던 놈이라 알고는 있다.
근데 그런 놈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렇게 가슴이 찌릿거리고 시릴 수가 있나?
‘레딘.’
머릿속에 떠오른 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 떠오르자 이번엔 반대쪽 가슴마저 시려왔다.
왜일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뭔가 무언가……
‘나하고 알던 사람같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터였다.
몇 천년이나 전 시대를 풍미했던 검신 레딘이 시운과 알리는커녕 마주칠 일조차 없을 것이다.
‘잡생각은 이쯤 접어두고.’
“어쨌든…. 정말로 고맙단 말이요…. 이 은빛단의 목걸이가 마침 두 개가 필요했단 말이요.”
“두 개요? 그럼 하나는 이미 구하셨다는 말입니까?”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묻는 시운에게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인 가르샤가 말했다.
“사실 이르마라는 무당은 쌍둥이였단 말이요…. 그 쌍둥이인 료한이란 자 또한 이르마와 같이 여자를 겁탈하고 뼈를 수집하여 목걸이를 만들었단 말이지요….”
시운은 의아함이 들어 급히 물었다.
“그럼 나머지 은빛단의 목걸이는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궁금했다.
사기 스탯의 시운조차 고비 두 차례를 넘기고 어렵사리 구한 것인데.
과연 그것과 같은 것을 어떻게 구했을까.
“모든 헌터들에게 부탁을 했으나 모조리 실패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던 사내가 곽원이란 사내였소. 곽원.”
가르샤는 끝에 그의 호를 한 번 더 붙여 강조하고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곽원이라고?’
한 번 들어는 보았다.
맹인 클래스를 거쳐간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던 사내.
비록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어쨌든! 자네는 정말 대단하단 말이요…. 곽원 그 사내를 제외한 모든 헌터들이 찾지 못했던 이 목걸이를 나에게 가져다 주다니! 난 이 두 목걸이가 꼭 필요했소…. 고맙소, 당신은 필시 맹인의 그 동물같은 감각을 분명 다루게 될 날이 올 것이오. 자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소. 이건 확실하단 말이요….”
말을 끝낸 그는 시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닿은 살결 사이로 주름진 그의 살결의 온기가 전해진다.
[충족 완료 은빛단의 목걸이 (1/1)]
[퀘스트 ‘아르네스의 보물’을 완료하였습니다.]
“내 열정은 이제 살아숨쉰단 말이요…!”
그가 호쾌하게 말했다.
그러자.
[가르샤와의 호감도가 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맹인들의 충족][직업 퀘스트]
세 명의 맹인 장로들의 부탁을 들어주어 그들을 충족시키라는 안내원 미르의 부탁이다.
맹인 장로들의 마음을 열어 그들을 충족시키도록 하자.
성공 조건
-카엘의 만족(0/1)
-이파엘의 관계도 (0/1)
-가르샤의 열정 충족 (1/1)
“크! 오늘 기분좋단 말이요…. 특별히 자네에게 이걸 주도록 하지요.”
가르샤가 옷 품속에 손을 넣고 시운에게 내민 것은 스크롤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식별 스크롤을 획득하였습니다.
‘안 그래도 필요했는데….’
애초에 퀘스트창의 설명으로는 가르샤에게서 완료 보상으로 주어지는 보상은 아무 것도 없다고 표시 돼 있었다.
허나.
즉흥적으로 이렇 듯이 보상이 주어질 수도 있다.
가르샤 또한 게임 시스템 속의 영혼없는 인물이 아니라 언제든지 기분이 바뀔 수 있는 것이었고.
그 바뀐 기분에 의해 보상이 덤으로 더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퀘스트 보상 또한 아주 희박한 확률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군.’
퀘스트의 보상 그리고 내용을 시스템화 해서 나타낸다는 정의는,
그 퀘스트를 부탁하는 그 사람의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의 차크라와 헌터의 연동 시스템이 교합 돼 사실을 정리하여 그 사실이 시스템화 되면서 헌터의 눈 앞으로 텍스트화 되어 생성되는 것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신.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신.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시운은 다시 목례를 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가르샤와 멀어져 가는 시운.
가르샤는 생각했다.
‘저 청년은 제발 그처럼 되지 않기를, 오 헤르네메스님이시여, 청년에게 은총을 주소서!’
가르샤가 시운에게 했던 많은 말들 속에는,
다가올 시운의 미래를 비틀 수도,
정할 수도,
짓밟을 수도 있을 은연의 비밀이 숨어있었다.
그 비밀을 시운은 아직 인지하지 못한 터였다.
부우웅-
선함의 뱃고동 소리가 하늘을 은은히 뒤흔들었고 그 소리에 날던 비둘기들의 날갯짓이 빨라진다.
그 밑으로 펼쳐진 깔끔한 도시.
이곳은 바로 모스칼의 북쪽에 위치한 멘시아 항구였다.
이노티아 왕국으로 배란 수단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곳.
멘시아 앞 바다에는 각종 어류들이 많이 서식하여 어선들이 많았고,
그 덕에,
음식점들은 주로 회를 비롯한 해산물이 주를 이룬 곳이었다.
많은 어부들이 비린내를 풍기는 옷을 입고 도시를 배회하는 한 가운데 광장에서.
비둘기 떼들에게 먹이를 주며 싱긋 웃고있는 한 노파 앞에 시운이 도착했다.
“카엘 장로님. 원하시던 비둘기를 찾아왔습니다.”
“오오….”
시운이 두 시간을 허비하여 찾아온 흰 비둘기를 조심스레 내밀자 노파의 얼굴이 더없이 환해진다.
“고맙네, 고마워. 내가 정말 이 아이를 잃고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카엘의 호감도가 으로 상승하였습니다.
“고마우이, 고마워.”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신.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그려, 신.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곧바로 쉬지않고 움직였다.
‘그 다음은.’
선글라스로 동공이 빈 눈을 가린 중년 여성은 보랏빛 망토 하나를 두른 채 산 정상에서 바람을 맞고 있다.
펄럭!
산바람이 차게 불어 그가 두른 망토를 춤추게 한다.
그의 등가로 시운이 걸어왔다.
“이파엘 장로님. 부탁하신 것들을 해결했습니다.”
“벌써 그 골치 아픈 것들을 다 죽이고 왔단 말이냐?”
여성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물었다.
시스템 연동을 통해 시운의 성과의 확인을 마친 여성의 입꼬리가 아주 작게 비틀어 올라간다.
“정말이군. 대단해,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느냐?”
“이시운 이라고 합니다.”
“수고했어, 그대의 그 이름 석자 꼭 기억해 두겠다. 이런 빠른 시간 내에 그 일을 마치고 오다니 정말 의외이구나.”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겸손히 말하며 웃어보이는 시운의 귓가로 불어오는 산바람 소리와 뒤섞인 알람소리가 들려온다.
-이파엘 과의 관계도가 으로 상승하였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신.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헤르네메스님의 가호를!”
목례한 시운은 서둘러 하산했다.
그제서야 움직이지도 않던 고개를 움직여 그가 걸어간 방향으로 여성이 고개를 돌린다.
‘인물이 하나 나왔구나.’
끼이익-
문을 조심스레 여는 소리와,
우드득-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반기듯 떨어지는 문틈의 먼지 소리.
이제 익숙하다.
곧 들려올 목소리와 말 또한…
“게, 누구요!”
복층에서 지팡이와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온다.
“접니다, 이시운.”
“헌터님?”
미르가 쓴 안대가 꿈틀 거렸다. 아마 반가워서 화색하느라 눈웃음을 지은 것이리라.
“부탁하신 모든 것들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왔습니다.”
“…………뭐라구요?!”
그 시크하고 표정없던 미르가 입을 벌리며 놀라워 했다.
곧바로.
시운의 성과를 확인하는 그녀.
성공 조건
-카엘의 만족(1/1)
-이파엘의 관계도 (1/1)
-가르샤의 열정 충족 (1/1)
*조건 모두 부합
*즉시 전직 가능
그녀의 안대가 더욱 크게 꿈틀거린다.
“저, 정말이군요! 이렇게 빠른 시간만에 이 세 분의 인정을 모두 받아 오시다니!”
미르의 가녀린 손이 떨린다.
[퀘스트 ‘맹인들의 충족’ 을 완료하였습니다.]
“대단 해요, 정말…… 대단 하시다구요.”
미르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머쓱한 시운은 그저 웃었다.
‘이제 드디어 2차 전직을 하는구나.’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다.
2차 전직을 통해 신빨나는 스킬들을 얻고,
곧바로 헌터 심사를 통해 랭크 업을 한 뒤,
열렙을 이어가고,
돈을 모으며,
필요하면 길드도 알아보고,
헌터 던전 레이드를 솔플이든 팀플이든 해서 모조리 클리어하고 각종 유물을 끌어모은 뒤,
현계로 이송하여 경매를 통해 현계의 한화를 만지는 것.
‘속도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상념에 잠긴 시운을 한참동안 응시하던 미르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만족스럽습니다, 헌터님. 이제 마음의 채비를 마치시면 그 방으로 오시면 돼요!”
미르의 힘찬 말에 시운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꾹-
시운은 미르가 내민 계약서의 날인 부분에 지장을 찍었다.
-주의 한 번 전직한 클래스는 임의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2차 전직 승급을 시도합니다.
“헌터님! 확실히 마음 굳히신 거지요?”
“물론입니다.”
미르의 물음에 당차게 대답을 쏴주었다.
잠시 후.
계약서가 무언가에 의해 펄럭이더니,
미르의 두 손에서 뻗어난 마력이 시운을 감싸기 시작했다.
시운의 두 눈.
그리고 그 밑의 코와 턱을 은은히 돌며-
얼굴으르 감싸고,
뒤이어 시운의 전신을 뒤덮어 은은하게 흐르던 마력은 맹렬히 흐르기 시작하면서 진해진다.
‘전신에 힘이 샘솟는 기분이야.’
과연.
히든 직업이라는 맹인.
그 맹인의 히든 루트를 통해 얻은 2차 전직의 스킬은 어떤 것들일까.
궁금함이 곧 가슴을 설레게 했다.
번쩍!
망막을 뒤흔들만큼 강렬한 빛이 뿜어졌고,
시운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칠흑의 시야에서 오롯이 집중된 귀의 청각으로 알람음이 들려왔다.
[2차 전직을 완료하였습니다.]
빛의 강렬함이 어느새 잦아들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조심스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헌터님 눈을 떠보세요. 헌터님이 얻으신 새로운 클래스에 대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언제나,
아니 항상 딱딱하고 감정없이 굴었던 미르. 그녀의 말투는 생기가 가득 돌고 있었다.
‘이건?’
들어올린 눈꺼풀 사이로 찌그러진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흐려진 시야의 초점이 잡히며 선명해지자.
앞에 활자들과 영상 하나가 홀로그램화 되어 보였다.
*클래스: Shadow murderer
*분류: 2차 형태
*설명: 눈을 잃은 맹인들은 비시각이란 약점을 극복하고 전투적 맹인으로 거듭났다.
그들 중에서도 맹인들을 위협하는 악들을 암살하는데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보한 맹인을 우리는 쉐도우 머더러라고 부른다.
헤르네메스를 숭배하는 신념을 가지고, 헤르네메스가 환수 구미호를 귀속시켜 전장을 누비며 전쟁을 벌이던 신 헤르네메스의 전투 방식을 동경하는 쉐도우 머더러는 그녀의 전투와 생존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한다고 전해진다.
*전투력: 요괴 여우를 다루며 검술에 능한 데다가 살수의 정찰력 및 암살자 스킬까지 두루 갖춘 쉐도우 머더러들은 헤르네메스가 사용하는 능력의 20% 까지 발휘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쉐도우 머더러?’
놀라 눈이 뜨인 시운은 뒤이어 펼쳐질 스킬에 더욱……… 눈이 뜨일 수 밖에 없었다.